미하일 크리체프스키
1. 개요
미하일 예피모비치 크리체프스키는 1897년 코스티안티노그라드에서 태어나 2008년 111세의 나이로 사망한 인물이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이후 광산 기술자로서 돈바스 지역의 광산에서 근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우랄 산맥의 광산으로 이동하여 근무했고, 종전 후에는 도네츠크 광업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광산 기계 관련 발명과 저술 활동을 했다. 그는 도네츠크 광산 복구에 기여하여 붉은 깃발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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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 -
미하일 키르포노스
미하일 페트로비치 키르포노스는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내전에 참전한 소련 군인으로, 독소 전쟁 초기에 남서 전선 사령관으로 참전하여 키예프 전투에서 전사 후 소련 영웅 칭호와 1급 조국전쟁 훈장을 받았다. -
폴타바주 출신 -
니콜라이 포드고르니
니콜라이 포드고르니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소련 공산당에서 경력을 쌓아 흐루쇼프 시대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1서기를 거쳐 소련 지도부에 진입했으나, 브레즈네프와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 해임된 후 사망했으며, 소련 내 자유주의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
폴타바주 출신 -
트로핌 리센코
트로핌 리센코는 소련 농업에 큰 영향력을 미친 우크라이나 출신 농학자로, 독자적인 유전학설을 주장하며 스탈린의 지지를 받아 정통 유전학자들을 탄압했으나, 과학적 검증 부족으로 소련 농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19세기 우크라이나 사람 -
레샤 우크라인카
레샤 우크라인카는 1871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시인으로, 결핵으로 인해 가정 교육을 받고 여러 언어에 능통했으며, 시인의 외로움과 우크라이나 민족의 자유를 노래하며 희곡 《숲의 노래》를 남겼고, 러시아 제국에 반대하며 활동하다 1913년 사망했다. -
19세기 우크라이나 사람 -
타라스 셰우첸코
타라스 셰우첸코는 우크라이나의 시인이자 화가, 민족주의 운동가로서, 시집 《코브자르》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러시아 제국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우크라이나 문학과 민족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국민 시인이다.
2. 생애
미하일 예피모비치 크리체프스키는 우크라이나 코스티안티노그라드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유대인 초등학교를 다녔다. 1917년 제1차 세계 대전에 동원되어 군 복무를 마친 후, 예카테리노슬라프(현 드니프로)의 광산 학교에 입학하여 광산 기술자의 길을 걸었다. 돈바스와 스탈리노(현 도네츠크) 지역의 광산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우랄산맥의 광산으로 이동하여 근무했다. 전쟁 후에는 1946년부터 1972년까지 도네츠크 광업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광산 기계 분야에 기여했고, 전쟁으로 파괴된 광산 복구 공로로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08년 111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도네츠크에 묻혔다.
2.1. 초기 생애
미하일 예피모비치 크리체프스키는 코스티안티노그라드에서 가난한 유대인 가정의 네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멕렌버그-스트렐리츠스키 공작의 공장 관리자로 일했다. 그는 유대인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0살 때부터 제화공 견습공으로 일했다.
1917년, 그는 폴타바에 있는 학교를 최우수로 졸업했다. 같은 해 제1차 세계 대전에 동원되어 키예프의 군사 학교에서 공부했다. 군사 학교를 마친 후 1917년 11월, 포병 소위 계급으로 코시체의 오스트리아-독일 전선에 파견되었다.
2.2. 군 복무
1917년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 러시아 제국군에 동원되었다. 이후 키예프에 있는 군사 공병 학교에 입학하여 공병 프라포르시크(준위급 장교)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남서부 전선으로 보내졌으며, 구체적으로는 1917년 11월 포병 소위 계급으로 코시체의 오스트리아-독일 전선에 파견되어 참혹한 전쟁을 겪어야 했다. 같은 해 전쟁의 승기가 보이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2.3. 광산 기술자 경력
1917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돌아온 후, 예카테리노슬라프 (현 드니프로)의 광산 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년에는 돈바스의 광산에 배치되었고, 1926년 광산 학교를 졸업했다.
1920년대 말부터는 스탈리노 (현 도네츠크)의 광산에서 기계화 부서를 지휘했으며, 1930년대 중반에는 해당 광산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나치 독일이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진격하자, 그는 우랄산맥의 광산으로 보내져 근무했다.
1946년부터 1972년 퇴임할 때까지 도네츠크 광업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광산 기계의 유지 보수 및 관리에 관한 다수의 발명품을 개발하고 관련 서적 두 권을 집필했다. 특히 전쟁으로 파괴된 도네츠크 광산의 복원에 크게 기여하여 1947년에는 붉은 깃발 훈장과 여러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