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엽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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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병엽은 1922년 전라남도 강진군 출생으로, 북한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1945년 북조선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고 북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조선노동당에서 활동했으며, 1960년대 중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부장, 1970년대 조선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부부장을 역임했다. 1980년대 초반 제3국에서 검거된 후, 1998년 사망했다. 한국에서는 서용규, 신경완, 신평길 등의 필명으로 활동했으며, 사후에 본명이 공개되었다. 그는 기억력이 비상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증언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병엽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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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력

1922년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태어났으며, 1930년대에 아버지를 따라 함경남도로 이주했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조선로동당의 간부로 활동했으며, 주로 대남 공작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1980년대 초반 제3국에서 피검되었고, 1998년 9월 13일 사망했다.

2.1. 정치 경력

그의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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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주요 경력
1945년북조선공산청년동맹 가입
1946년북조선공산당 입당
1949년조선로동당 사회부 지도원
1953년조선로동당 대남연락부 지도원
1960년대 중반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부장
1970년대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 부부장
1980년대 초반제3국에서 피검


한국에서는 필명으로 서용규(徐容奎), 신경완(申敬完), 신평길 등을 사용했으며, 본명 박병엽은 그의 사후에 비로소 공개되었다.

2.2. 필명 및 저술 활동

한국에서는 필명으로 서용규(徐容奎), 신경완(申敬完), 신평길 등을 사용했고, 본명 박병엽은 그의 사후에 비로소 공개되었다. 신경완이라는 필명으로는 납북 인사들의 삶과 통일에 대한 증언을 담은 《(현대사실록) 압록강변의 겨울 : 납북 요인들의 삶과 통일의 한》을 출간했으며, 신평길이라는 필명으로는 《김정일대남공작》을 출간했다.

3. 주요 저서

* 《(현대사실록) 압록강변의 겨울 : 납북 요인들의 삶과 통일의 한》 : 이태호 著; 신경완(申敬完) 증언 (다섯수레, 1991)
* 《김정일과 대남공작》: 신평길 저 (북한연구소, 1997.03.03)
* 《곁에서 본 김정일》: 정창현 著 (서울: 토지, 1999) - 신경완의 증언을 토대로 하고 있음.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 - 전 노동당 고위간부가 겪은 건국 비화》 : 박병엽 구술; 유영구, 정창현 엮음 (선인출판사, 2010.09.01)
*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 - 전 노동당 고위간부가 본 비밀회동》 : 박병엽 구술; 유영구, 정창현 엮음 (선인출판사, 2010.11.10.)
* 《증언(證言) 납북인사(拉北人士) 그때 그 순간 : 신경완(申敬完) 전(前) 북한정무원 부부장(副部長) 공개》- 조선일보 연재 기사 (총3회)

납북인사 사망경위 처음 밝혀져 김규식 조소앙 정인보 엄항섭 방응모 백관수씨등 망명 전북한 정무원 부부장 신경완씨 증언 조선일보 1991.10.02. 1면

신경완 전 북한정무원 부부장 공개 (증언 납북인사 그때 그순간 1) 폭격피해 야간 북송 처지면 산속버려 조선일보 1991.10.02. 3면

신경완 전 북한정무원 부부장 공개 (증언 납북인사 그때 그순간 2) 탈진 김규식 입원요구 거부당해 조선일보 1991.10.03. 2면

신경완 전 북한정무원 부부장 공개 (증언 납북인사 그때 그순간 3) 조소앙 항의단식 끝에 숨져 조선일보 1991.10.04. 2면
* 實錄(실록) 拉北(납북)인사들의 最後(최후) 前(전)북한정무원 부부장 申敬完(신경완)씨 증언 - 동아일보 연재 기사 (총 5회)

實錄(실록) 拉北(납북)인사들의 最後(최후) 前(전)북한정무원 부부장 申敬完(신경완)씨 증언 (1) 1991.10.01 동아일보 5면

實錄(실록) 拉北(납북)인사들의 最後(최후) 前(전)북한정무원 부부장 申敬完(신경완)씨 증언 (1) 1991.10.01 동아일보 5면

實錄(실록) 拉北(납북)인사들의 最後(최후) 前(전)북한정무원 부부장 申敬完(신경완)씨 증언 (2) 1991.10.02 동아일보 5면

實錄(실록) 拉北(납북)인사들의 最後(최후) 前(전)북한정무원 부부장 申敬完(신경완)씨 증언 (3) 1991.10.03 동아일보 5면

實錄(실록) 拉北(납북)인사들의 最後(최후) 前(전)북한정무원 부부장 申敬完(신경완)씨 증언 (4) 1991.10.04 동아일보 5면

實錄(실록) 拉北(납북)인사들의 最後(최후) 前(전)북한정무원 부부장 申敬完(신경완)씨 증언 (5) 1991.10.05 동아일보 5면

「拉北(납북)인사들의 最後(최후)」책나와 1991.10.07 동아일보 10면 : 망명 申敬完(신경완)씨 「압록강변의 겨울」

4. 박병엽 증언의 평가

박병엽은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증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대체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증언은 당시 북한의 문헌이나 직접 기록한 일기와 같은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노년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므로 모든 내용이 100%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검증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있다. 그의 증언 중 일부는 사실과 다른 점이 발견되기도 한다.

4.1. 비판적 평가

박병엽은 기억력이 뛰어난 인물로 알려져 그의 증언을 신뢰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북한 문헌이나 직접 기록한 일기 등 객관적인 자료 없이 노년의 기억에만 의존한 진술이기에, 그 정확성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그의 증언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발견되기도 한다.

* 현준혁 피살 사건의 경우, 박병엽은 피살 일자를 1945년 9월 28일이라고 증언했지만, 실제로는 9월 초 발생했으며 9월 3일 또는 4일이라는 기록이 더 신빙성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해방 직후 김일성박헌영의 두 번째 만남에 대해, 박병엽은 박헌영이 1945년 12월 28일 밤 비밀리에 평양으로 가 지침을 받고 신년 행사에 참석한 뒤 1946년 1월 2일 서울로 돌아왔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해당 기간 동안 박헌영이 서울에 있었다는 기록이 다수 존재하여, 그의 방북 주장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박헌영의 방북 시기에 대해서는 당시 서울 주재 소련 부영사였던 아나톨리 샤브신의 부인이자 영사관 도서관장이었던 샤브시나(쿨리코바)의 증언, 전 북한 외무성 부상 박길용(朴吉用), 소련 군정 핵심 인사였던 니콜라이 레베데프 소장과 그리고리 메클레르 중좌 등 여러 인물의 증언이 있지만, 그 시기가 제각각 달라 특정하기 어렵다.

4.2. 종합적 평가

박병엽은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의 증언은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그의 증언은 당시 기록이나 일기 등에 근거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의 기억에 의존하므로, 모든 내용이 정확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다른 자료와의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 실제로 그의 증언 중 다음과 같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확인되기도 한다.

* 예를 들어, 박병엽은 현준혁이 1945년 9월 28일에 피살되었다고 증언했지만, 실제 피살 시기는 9월 초(3일 또는 4일)라는 기록이 더 신빙성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또한 해방 직후 김일성박헌영의 두 번째 만남에 대해, 박병엽은 박헌영이 1945년 12월 28일 밤 비밀리에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가서 지침을 받고 신년 행사에 참석한 후, 1946년 1월 1일 밤 다시 3.8선을 넘어 1월 2일 서울로 돌아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해당 기간 동안 박헌영이 서울에 있었다는 다수의 기록이 존재하여 실제 방북 여부는 불확실하다. 박헌영의 방북 자체에 대한 증언은 여러 인물에게서 나오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증언마다 차이가 있어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당시 서울 주재 소련 부영사였던 아나톨리 샤브신의 부인이자 영사관 도서관장이었던 샤브시나(쿨리코바)의 증언, 전 북한 외무성 부상 박길용(朴吉用, 1920 ~1997), 소련 군정의 핵심 인물이었던 니콜라이 레베데프 소장과 그리고리 메클레르 중좌 등의 증언에서도 박헌영이 방북했다는 시기는 제각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