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강
1. 개요
방강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47년 친시 문과에 급제하여 헌납, 사성, 정언, 흡곡현령, 사간, 이천부사를 역임하고 1454년 승정원 좌승지에 올랐다. 세조 때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아 학문 진흥에 기여했으며, 성종 대에는 학문과 교훈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흡곡 현령에서 유임되었다. 그의 묘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양원리에 위치해 있으며, 후손들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대룡리에 온양 방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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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출생 -
한확
한확은 조선 초 문신으로, 명나라 외교에서 활약하며 세종 대에 사신으로 공물 면제를 주청하고,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정난공신에 책록되어 우의정에 올랐으며, 세조의 명나라 책봉을 성사시키는 데 기여했으나 명나라로 가는 길에 사망했다. -
1400년 출생 -
도메니코 베네치아노
도메니코 베네치아노는 15세기 이탈리아 화가로, 베네치아 출신으로 추정되며 피렌체와 페루자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밝고 화려한 색채와 건축 요소를 화사하게 표현하는 화풍으로 후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
조선의 정치인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정치인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
몰년 미상 -
미와 와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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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미상 -
이태준
이태준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섬세한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실을 그린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특히 1930년대 〈달밤〉, 〈까마귀〉, 〈복덕방〉 등의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월북 후 숙청되어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2. 생애
방강은 1447년(세종 29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454년(단종 2년) 승정원 좌승지에 올랐다. 1466년(세조 12년) 공조 판서 구종직은 방강을 학문을 일으킬 인물 중 하나로 왕에게 추천하였다. 1475년(성종 6년) 왕실 종친들은 방강의 학문과 가르침을 높이 평가하여 흡곡 현령 대신 유임하여 가르침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고,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같은 해 방강은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으로서 윤대(輪對)에 참여하였다.
2.1. 관직 생활
1447년(세종 29년) 친시 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여 헌납(獻納), 사성(司成), 정언(正言), 흡곡현령, 사간(司諫), 이천부사를 역임하고, 1454년(단종 2년)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에 올랐다.
1466년(세조 12년) 공조 판서 구종직(丘從直)이 왕에게 학문을 일으키는 조건을 올렸는데, "공자(孔子)의 말씀에, ‘그대의 아는 사람만 천거하라.’고 했으니, 전 사성(司成) 신(臣) 주백손(朱伯孫)·전 사예(司藝) 신(臣) 임수겸(林守謙)·전 직강(直講) 신(臣) 이극증(李克增)·검상(檢詳) 신(臣) 이극기(李克基)·경력(經歷) 신(臣) 구치동(丘致峒)·군수(郡守) 신(臣) 김영벽(金映壁)·현감(縣監) 신(臣) 김석통(金石通)·신(臣) 방강(方綱) 등 8인은 학술(學術)이 정밀(精密)하고 심오(深奧)하므로, 모두가 남의 스승이 될 만합니다. 그들의 관작 차례에 따라서 성균관(成均館)이든지 종학(宗學)이든지 사학(四學)의 책임을 맡긴다면, 학도(學徒)들이 반드시 모두 자제(子弟)가 되기를 즐겨하고 부형(父兄)이 자제(子弟)를 소속시키기를 원하는 사람도 마땅히 또한 많을 것이니, 이것도 또한 학문을 일으키는 한 부분입니다.”라고 하였다.
성종 6년 1월 14일 왕실 종친(宗親) 등이 아뢰기를, “종학 사회(宗學司誨) 방강(方綱)은 학문이 정통(精通)하고 교회(敎誨)함에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흡곡 현령(歙谷縣令)으로 보임되어 나갔는데, 신 등의 소망에 어그러지니, 청컨대 유임하여 교훈(敎訓)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성종 6년 4월 6일(갑신)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방강(方綱) 등 세 사람이 윤대(輪對)하였다.
2.2. 학문적 업적
1466년(세조 12년) 공조 판서 구종직(丘從直)이 왕에게 학문을 일으키는 조건을 올렸는데, "공자(孔子)의 말씀에, ‘그대의 아는 사람만 천거하라.’고 했으니, 전 사성(司成) 신(臣) 주백손(朱伯孫)·전 사예(司藝) 신(臣) 임수겸(林守謙)·전 직강(直講) 신(臣) 이극증(李克增)·검상(檢詳) 신(臣) 이극기(李克基)·경력(經歷) 신(臣) 구치동(丘致峒)·군수(郡守) 신(臣) 김영벽(金映壁)·현감(縣監) 신(臣) 김석통(金石通)·신(臣) 방강(方綱) 등 8인은 학술(學術)이 정밀(精密)하고 심오(深奧)하므로, 모두가 남의 스승이 될 만합니다. 그들의 관작 차례에 따라서 성균관(成均館)이든지 종학(宗學)이든지 사학(四學)의 책임을 맡긴다면, 학도(學徒)들이 반드시 모두 자제(子弟)가 되기를 즐겨하고 부형(父兄)이 자제(子弟)를 소속시키기를 원하는 사람도 마땅히 또한 많을 것이니, 이것도 또한 학문을 일으키는 한 부분입니다.”라고 하였다.
성종 6년(1475년) 1월 14일 왕실 종친(宗親) 등이 아뢰기를, “종학 사회(宗學司誨) 방강(方綱)은 학문이 정통(精通)하고 교회(敎誨)함에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흡곡 현령(歙谷縣令)으로 보임되어 나갔는데, 신 등의 소망에 어그러지니, 청컨대 유임하여 교훈(敎訓)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성종 6년(1475년) 4월 6일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방강(方綱) 등 세 사람이 윤대(輪對)하였다.
3. 가족 관계
4. 묘소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양원리에 조선 초기 문신 방강의 묘가 있다. 묘는 반원 형태로 부인 순천 김씨(順天金氏)의 묘와 함께 2기가 서쪽을 향하고 있다. 묘 앞쪽에는 1974년에 새로 세운 묘비(墓碑),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 망주석(望柱石) 2기 등의 석물이 있다. 봉분 크기는 왼쪽 순천 김씨 묘가 직경 380cm, 높이 120cm이고, 오른쪽 방강 묘가 직경 390cm, 높이 110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