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 갈월건널목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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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학동 갈월건널목 사고는 1971년 10월 9일, 신탄리역에서 청량리역으로 향하던 열차가 방학동 갈월건널목에서 벙커C유를 적재한 탱크로리와 충돌하여 발생한 사고이다. 열차는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건널목을 지나가던 탱크로리를 들이받았으며, 충돌로 인한 화재와 탈선으로 인해 19명이 사망하고 9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탱크로리가 어린이를 먼저 보내기 위해 건널목에 정차한 것이었으며, 건널목의 안전 설비 미비, 시야 확보의 어려움, 운전기사와 주변 사람들의 안전 불감증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방학동 갈월건널목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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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고 개요

사고 당일 오전 10시 55분경, 신탄리역을 출발하여 청량리역으로 향하던 제 310호 동차가 갈월건널목에서 발생했다. 당시 건널목의 일단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통과하던 20톤급 대형 탱크로리의 옆 부분을 동차가 들이받았다.

충돌 후 동차는 탱크로리를 밀고 나갔고, 이 과정에서 탱크로리가 파손되면서 떨어져 나간 부품들이 철길 등과 마찰을 일으켰다. 이 마찰로 발생한 불꽃과 열로 인해 동차의 첫 번째 객차가 폭발하며 화염에 휩싸였고, 뒤따르던 동차 2량도 추가로 탈선했다.

사고 당시 탱크로리에는 벙커C유 26000L가 실려 있었으며, 인근 공장으로 납품을 가던 중이었다. 사고 열차에는 경기 북부 지역에서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장병들과 나들이를 나온 주민 등 약 300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3. 사고 순간

조사 결과, 사고는 탱크로리가 건널목을 건너던 두 명의 어린이를 먼저 보내기 위해 잠시 멈춘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탱크로리는 두 어린이가 길을 건너는 것을 보고 갑자기 멈춰 섰고, 주변을 살피는 사이 다가오던 열차와 충돌했다.

사고 당시 탱크로리 운전기사는 처음에는 앞서가던 택시를 따라 시속 5km/h 정도의 느린 속도로 건널목을 통과하려 했으나, 택시가 고장 나 건널목 위에 약 30초간 멈춰 서 있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후 진술을 바꾸는 등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4. 피해 규모

이 사고로 동차 승객과 당직 기관사 등 17명, 그리고 사고 현장 부근에서 놀던 어린이 2명까지 총 19명이 사망하였다. 또한, 98명이 중상 또는 경상을 입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탱크로리는 충돌 충격으로 세 동강 나며 완전히 파손되었다. 이 과정에서 토막 난 트럭 잔해가 철길 부근에 있던 어린이 2명을 덮쳐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했다. 사고 열차였던 5량 편성의 동차는 1량이 완전히 불에 탔고, 다른 2량은 탈선하여 전복되었다. 선로 역시 약 40m 구간이 파손되었다. 사고 충격으로 동차와 탱크로리 잔해가 인근 피혁공장 담벼락까지 밀려가면서, 담벽 약 10m가 무너지는 피해도 발생했다.

이 사고 수습으로 인해 열차 운행이 7시간 동안 중단되었다.

5. 사고의 문제점

사고가 발생한 갈월건널목은 상주하는 직원이나 별도의 안전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4등급 건널목이었다. 게다가 건널목 주변으로 가로수가 우거져 있어 열차나 차량 접근 시 운전자의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해당 건널목은 평소에도 대형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는 위험물을 적재한 탱크로리 운전기사의 안전 불감증이 지적된다. 운전기사는 열차가 수시로 통과하는 건널목 위에 위험물 차량을 그대로 정차시키는 등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또한, 사고 당시 위험한 철길 근처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었음에도 이를 제지하거나 주의를 주지 않고 방치한 주변 사람들의 안전 의식 부족 역시 사고의 간접적인 원인이자 문제점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