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등산 포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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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등산 포위전은 기원전 200년경 전한 고조 유방이 흉노의 묵특 선우에게 백등산(현재의 다퉁 시)에서 포위된 사건이다. 묵특 선우는 동호, 정령, 월지 등을 공격하여 세력을 확장했고, 한왕 신이 흉노에 투항하면서 흉노는 마읍을 공격하고 태원으로 진격했다. 이에 유방은 32만 대군을 이끌고 흉노를 요격하려 했으나, 흉노의 계략에 빠져 백등산에서 포위되었다. 유방은 진평의 계책으로 포위를 탈출했고, 이후 흉노의 강함을 인정하여 화친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는 한과 흉노의 형제 관계, 한 공주의 흉노 선우 연지 책봉, 한의 흉노에 대한 물품 제공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이후 60년간 흉노의 침략과 화친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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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등산 포위전 - [전쟁]에 관한 문서 | |
---|---|
전투 개요 | |
분쟁 | 한-흉노 전쟁 |
날짜 | 기원전 200년 |
장소 | 백등산 (현재의 산서성 다퉁시 훈위안현 근교) |
결과 | 흉노의 결정적 승리 |
교전 세력 | |
교전국 1 | 흉노 제국 |
교전국 2 | 한 제국 |
지휘관 | |
흉노 지휘관 | 묵돌 선우 |
한 제국 지휘관 | 태조 고황제 |
병력 규모 | |
흉노 병력 | 400,000명 |
한 제국 병력 | 320,000명 |
피해 규모 | |
흉노 피해 | 심각함 |
한 제국 피해 | 100,000명 |
추가 정보 | |
관련 전투 | 흉노군이 만리장성을 넘어 한의 영토에 침공 |
위치 | 다퉁시 부근의 만리장성 |
2. 배경
기원전 209년, 묵특 선우는 아버지 두만 선우를 살해하고 선우가 된 후, 동호, 정령, 월지 등을 공격하여 세력을 크게 확장했다. 한편, 서초왕 항우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재통일한 유방은 북방의 흉노에 대비하기 위해 한왕 신을 대 땅으로 파견했다. 그러나 한왕 신은 흉노와의 평화를 주장했고, 유방이 이를 배신으로 간주하자 흉노에 투항했다.[1]
기원전 209년, 묵특 선우는 동쪽의 동호, 북쪽의 정령, 서쪽의 월지 등을 공격하여 그 땅을 빼앗아 세력을 크게 확대했다. 한편, 남쪽에서는 기원전 202년에 유방이 중원을 통일하여 한을 세웠다.
기원전 209년, 묵특 선우는 아버지 두만 선우를 살해하고 선우가 된 후, 동쪽의 동호, 북쪽의 정령, 서쪽의 월지 등을 공격하여 그 땅을 빼앗아 세력을 크게 확장했다.[2] 한편, 남쪽에서는 기원전 202년에 유방이 중원을 통일하여 한나라를 세웠다.[2]
기원전 202년에 유방이 중원을 통일하여 전한을 세웠다.[2] 기원전 201년, 고제는 한왕 신을 태원군에 봉하여 진양(현재의 타이위안 시)을 지키게 했지만, 같은 해에 묵특이 이끄는 흉노 군대가 만리장성을 넘어 마읍을 공격했다.[3] 한왕 신은 흉노에 항복하였고, 흉노는 태원으로 진격해왔다.[4]
3. 흉노의 공격
기원전 201년, 고제는 한왕 신을 태원군의 옛 땅에 봉하여 진양(현재의 타이위안 시)을 지키게 했지만, 같은 해에 묵특이 이끄는 흉노 군대가 만리장성을 넘어 마읍을 공격했다. 흉노는 한왕 신을 포위하여 항복시켰다. 한왕 신의 군대가 더해진 흉노는 남쪽으로 진격하여 태원을 공격했다.[1]
이에 고제는 32만 대군을 이끌고 친정하여 평성에서 흉노를 요격하려 했다. 하지만 약한 병사를 내세워 유인하는 흉노의 계략에 빠져 추격하다가 평성 근처의 백등산(현재의 다퉁 시 윈저우 구)에서 흉노의 대군에 포위되었다.[2]
4. 전술 및 전투
기원전 201년, 고조는 한왕 신을 태원군의 옛 땅에 봉하여 진양(현재의 타이위안 시)을 지키게 했지만, 같은 해에 묵특이 이끄는 흉노 군대가 만리장성을 넘어 마읍을 공격했다.[2] 한왕 신은 흉노에 항복했고, 이에 분노한 고조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진양을 함락시켰다.[2]
흉노는 약한 병사들을 내세워 한나라 군대를 유인하는 계략을 썼고, 이에 속은 유방은 흉노군을 추격하여 백등산에서 포위되었다.[2]
4. 1. 한나라 군대의 위기
한 고조 유방의 본대는 약병으로 가장한 흉노의 위장 퇴각에 속아 진격하다가 백등산에서 포위되었다.[1] 이때 흉노군은 북방 군단은 흑마, 남방 군단은 적마, 서방 군단은 백마, 동방 군단은 흰 얼굴의 흑마에 타고 한군을 포위하고 있었다.[1]
7일간 포위된 한 고조는 진평의 건의에 따라 묵돌 선우의 아내에게 뇌물을 주어 포위의 일각을 벌렸고, 그곳을 통해 포위를 벗어나 간신히 장안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1] 이때 한군 병사들은 열 명에 세 명 꼴로 동상으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1]
5. 포위 탈출 및 화친 조약
고조는 진평의 계책에 따라 묵특 선우의 아내에게 뇌물을 주어 포위망의 일각을 열었고, 그 틈을 타 간신히 탈출했다. 이때 한군 병사들은 열 명에 세 명 꼴로 동상으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이 전투로 흉노의 강함을 알게 된 고조는 기원전 198년에 유경을 흉노에 파견하여 화친 조약을 맺었다.
5. 1. 화친 조약의 내용
기원전 198년, 고조는 유경을 흉노에 파견하여 화친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한나라는 흉노와 형제 관계를 맺고, 한나라 공주를 흉노 선우의 연지(閼氏)로 보내기로 했다. 또한 매년 한나라에서 흉노에게 물건을 보내기로 합의했다. 이 화친 조약은 무제 시대까지 이어졌다.6. 결과 및 영향
백등산 전투 이후에도 흉노가 한나라 영토를 몇 차례 침공했지만, 유방이 맺은 화친 관계는 한 무제 시대까지 대체로 유지되었다.[4] 이 화친으로 한나라는 국력을 회복하고 흉노에 대한 반격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기원전 198년, 유경이 흉노와 맺은 화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4]
- 한과 흉노는 형제가 된다.
- 한의 공주를 흉노 선우의 연지(閼氏)로 삼는다.
- 매년 한에서 흉노에게 물건을 보낸다.
참조
[1]
서적
The Rise of the Chinese Empire, Volume 1: Nation, State, and Imperialism in Early China, ca. 1600 B.C. - A.D. 8
https://babel.hathit[...]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
웹사이트
The rise of the Chinese Empire / Chun-shu Chang v.1.
https://babel.hathit[...]
[3]
웹사이트
The rise of the Chinese Empire / Chun-shu Chang v.1.
https://babel.hathit[...]
[4]
간행물
The Empire of the Steppes
1970/2008
[5]
서적
The Rise of the Chinese Empire, Volume 1: Nation, State, and Imperialism in Early China, ca. 1600 B.C. - A.D. 8
https://babel.hathit[...]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6]
서적
The Rise of the Chinese Empire, Volume 1: Nation, State, and Imperialism in Early China, ca. 1600 B.C. - A.D. 8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7]
기타
「白登之圍」雙方用兵策略比較
https://www.airit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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