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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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재덕은 1925년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서 태어나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다. 수도사단 기갑 연대 부대원으로 안강-기계 전투, 원산 탈환 작전 등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1953년 금성 샛별고지 전투에서 분대장으로 백병전을 지휘하여 진지를 사수하는 공을 세웠다.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으며, 2013년 9월 '이달의 호국 인물'로 선정되었다. 전역 후에는 어업과 섬유 공장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1988년 사망했다.

백재덕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백재덕
서훈 내역이달의 호국영웅
태극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출생지경상남도 창원군 천가면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
성별남자
출생일1925년 9월 28일
사망일1988년 1월 24일 (63세)
군사 정보
지휘육군 수도사단 기갑연대 10중대 3소대 3분대장
복무대한민국 육군
근무육군 수도사단 기갑연대
참전한국전쟁
주요 참전 전투/전쟁안강·기계 전투, 원산 탈환 작전, 북진 작전, 금성 샛별고지 전투
최종 계급대한민국 육군 상사 (육군이등상사)
기타 정보
국적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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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백재덕 상사의 태극무공훈장 기록부 사진이다.
백재덕 상사의 태극무공훈장 기록부 사진이다.

백재덕(白在德, 1925년 9월 28일~1988년 1월 24일)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9월 입대하여 수도사단 기갑 연대 소속으로 복무했다. 그는 안강-기계 전투, 원산 탈환 작전, 북진 작전 등 여러 주요 전투에 참전하며 활약하였다.

특히 1953년 5월 15일, 금성 전투 중 샛별고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그는 수도사단 기갑연대 10중대 3소대 분대장(이등중사)으로서 매복 조장 임무를 수행했다. 작전 중 중공군 3개 중대 규모의 접근을 발견하고도 중대 주진지의 위기를 막기 위해 철수를 거부하고, 3차례의 공격을 수류탄백병전으로 격퇴하며 10여 명의 적을 사살하고 끝까지 진지를 지켜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는 1954년 백재덕에게 태극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육군 이등 상사로 1계급 특진시켰다. 1988년 1월 24일 사망하였다.

2.1. 요약

백재덕 상사의 태극무공훈장 기록부 사진이다.
백재덕 상사의 태극무공훈장 기록부 사진이다.

백재덕(白在德, 1925년 9월 28일~1988년 1월 24일)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에서 태어났으며,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9월 입대했다. 수도사단 기갑 연대 소속으로 안강-기계 전투, 원산 탈환 작전, 북진 작전 등 여러 주요 전투에 참전하며 활약하였다.

특히 1953년 5월 15일, 수도사단 기갑연대 10중대 3소대 분대장으로서 금성 샛별고지 전투에 매복 조장으로 투입되었을 때, 작전 중 적 3개 중대 규모의 접근을 발견하고도 중대 주진지의 위기를 막기 위해 철수를 거부했다. 그는 3차례의 공격을 수류탄백병전으로 격퇴하며 10여 명의 적을 사살하고 끝까지 진지를 지켜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는 1954년 백재덕에게 태극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육군 이등 상사로 1계급 특진시켰다.

2.2. 금성 샛별고지 전투 (1953년 5월)

1953년 5월, 한국 전쟁 막바지에 중공군금성돌출부 일대에서 이른바 '하계 제1단계 공세'를 시작했다. 이는 당시 재개된 휴전 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도사단이 방어하던 샛별고지 역시 중공군의 주요 공격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백재덕은 당시 수도사단 기갑연대 10중대 3소대 분대장(이등중사)으로서 이 전투에 직접 참전하여 고지를 지켜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2.1. 전투 배경

1953년 5월 12일, 중공군 제60군 예하 제180사단이 국군 제5사단의 텍사스고지를 공격하면서 금성돌출부 정면의 전초진지에 대한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이는 '중공군 하계 제1단계 공세'로 불리며, 1953년 4월 28일 휴전 회담이 재개되자 이를 지원하고 본공세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중대급 이하의 소규모 전초진지를 대상으로 한 공격이었다. 이 때문에 수도사단의 전초진지인 샛별고지도 중공군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샛별고지가 위치한 금성지구는 해발고도 500m~1000m의 고지들이 가로지르고, 이 고지들은 남쪽으로 흐르는 북한강금성천에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다. 샛별고지는 금성 서남쪽에 위치한 해발고도 470m의 고지로, 473고지, 477고지, 512고지 등에 의해 우측과 후방이 자연스럽게 둘러싸여 있었으며, 주변에는 깊은 계곡과 넓은 개활지가 펼쳐져 있었다.

금성지구 서남쪽의 중요 지점이었던 샛별고지는 수도사단의 전초진지로서, 만약 이곳을 잃게 되면 금성지구 서측방이 노출되어 국군과 유엔군의 전선이 무너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곧 체결될 것으로 예상되던 휴전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중요한 고지였다.

2.2.2. 전투 전개 과정

1953년 5월 16일 새벽 0시 10분, 중공군은 샛별고지 탈취를 위한 제2차 공격을 시작했다. 약 30분간의 포격 이후 3개 중대 규모의 병력이 제11중대 진지로 접근하자, 중대장은 새벽 0시 40분에 포병의 진내사격을 요청했다. 진내사격으로 중공군은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나, 사격이 멈추자 진지 전방 50m~100m까지 접근하여 양측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약 1시간 후, 병력을 보강한 중공군이 파상공격을 개시하면서 제11중대는 백병전에 돌입했다. 이때 중대 진지 전면에서 매복조를 이끌고 적의 동태를 살피던 제3소대 3분대장 백재덕 이등중사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매복진지가 돌파될 경우 중대의 주진지가 위험에 빠질 것으로 판단하고, 진지로 다가오는 중공군을 향해 소총 사격과 수류탄을 투척하며 적극적으로 저지했다. 중공군 일부가 진지 안으로 진입하자, 백재덕이 이끄는 매복조는 이들과 직접 백병전을 벌였다.

약 20분 뒤, 중공군 제2파가 진지로 접근하여 일부가 다시 진지 안으로 들어왔으나, 이들은 모두 매복조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후 이어진 제3파의 공격 역시 성공적으로 격퇴하면서 샛별고지는 국군의 수중에 남게 되었다. 백재덕과 그의 분대원들은 철수를 거부하고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며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2.3. 결과 및 영향

국군 수도사단 기갑연대는 이 전투에서 중공군 413명을 사살하고, 추가로 210명을 사살한 것으로 추정하며, 2명을 포로로 잡았다. 또한 다발총 36정과 수류탄 205발을 노획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국군 측도 4명이 전사하고 12명이 부상을 입는 인명 피해를 겪었다.

1953년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이어진 샛별고지 전투에서 국군 수도사단 기갑연대는 중공군 제199사단 제596연대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고지를 지켜냈다. 이 승리는 금성지구 서쪽 지역의 전선을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당시 진행 중이던 휴전 회담에서 유엔군 측이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3. 9월의 호국 인물 선정

백재덕 육군 이등 상사는 2013년 9월 이달의 호국 인물로 선정되었다. 이달의 호국 인물은 대한민국 전쟁기념관에서 선정하여 발표하는 한국의 호국(護國) 인물 명단이다.

4. 전후의 삶

1954년 예편한 백재덕 상사는 고향인 가덕도에서 정부 지원 없이 물고기를 잡으며 살다가 1974년 경상남도 마산시의 섬유공장에 취직해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였다. 이후 전쟁 당시 입은 부상으로 고생하다 1988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