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류정
1. 개요
벽류정은 금천 상류에 위치한 정자로, 대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좌의정을 지낸 민규호와 신헌의 현판, 김수항을 비롯한 여러 선비들의 시문 현판이 걸려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
| 이름 | 벽류정 |
|---|---|
| 한자 표기 | 碧流亭 |
| 유형 |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184 |
| 지정일 | 1992년 11월 30일 |
| 주소 |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 벽산리 475번지 |
| 시대 | 알 수 없음 |
| 소유 | 알 수 없음 |
| 참고 | 알 수 없음 |
| 면적 | 알 수 없음 |
| 수량 | 1동 |
| 전승지 | 알 수 없음 |
| 전승자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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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년 완공된 건축물 -
성 바울 성당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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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년 완공된 건축물 -
프로쿠라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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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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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문서를 링크하고 있는 -
알카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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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문서를 링크하고 있는 -
세례명
세례명은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을 때 받는 새로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며,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 변화에서 유래하여 중세 이후 유럽에서 일반적인 이름 형태로 정착되었고, 수호성인의 이름에서 따와 이름 축일로 기념되기도 한다.
2. 역사
벽류정은 1640년(인조 18년) 김운해가 건립한 정자이다. 본래 조선시대 세종 때 참판을 지낸 조주(趙注)의 별장이 있던 자리였으나, 이후 그의 외손인 김운해에게 넘겨져 광산 김씨 소유가 되었다. 건립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으며, 1678년(숙종 4)과 1862년(철종 13)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2.1. 건립 배경
벽류정은 김운해가 1640년(인조 18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원래 이 자리는 조주(趙注)라는 인물이 지은 별장이 있던 곳이었으나, 이후 광산 김씨의 소유가 되면서 그 터에 벽류정을 세우게 되었다.
2.2. 중수 및 보존
벽류정은 금천 상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에 대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지닌 정자이다.
조선시대 세종 때 참판을 지낸 청계 조주가 처음 세웠으며, 이후 외손인 김운해에게 물려주어 광산 김씨 소유가 되었다. 정자는 1678년(숙종 4)과 1862년(철종 13)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정자 내부에는 좌의정을 지냈고 글씨에 능했던 황사 민규호와 신헌의 현판, 그리고 김수항을 비롯한 여러 선비들의 시문 현판이 걸려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
건축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가운데 중재실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돌로 다진 허튼층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덤벙 주초)을 놓고, 바깥쪽에는 둥근 기둥을, 중재실에는 네모난 기둥(사각기둥)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3. 건축
벽류정은 김운해가 인조 18년(1640)에 건립한 정자이다. 원래 이 자리는 세종 때 참판을 지낸 청계 조주(趙注)가 지은 별장이 있었으나, 이후 외손인 김운해에게 양여되어 광산 김씨의 소유가 되었다. 이후 숙종 4년(1678)과 철종 13년(1862)에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아름다운 정자로 평가받는다.
3.1. 위치 및 경관
벽류정은 금성산을 뒤로하고 펼쳐진 평야 속에 자리한 3개의 언덕 중에서 가장 큰 언덕의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금천 상류에 위치하며, 주변에는 대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이룬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건축 구조를 보면, 돌을 다져 만든 허튼층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바깥쪽에는 둥근 기둥을 사용하고, 가운데 온돌방이 있는 중재실에는 사각기둥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3.2. 구조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이다. 건물은 돌을 다져 쌓은 허튼층 기단 위에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주초의 일종인 덤벙 주초를 놓고 세웠다. 바깥쪽 기둥은 둥근 모양의 원기둥을 사용했고, 가운데 방(중재실)에는 네모난 모양의 사각기둥을 사용했다. 가운데 중재실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정자 내부에는 좌의정을 지냈고 글씨에 능했던 황사 민규호와 신헌 등이 쓴 현판을 비롯하여, 김수항 등 여러 선비들의 시문 현판까지 총 11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모습이 아름다운 정자로 평가받는다.
4. 문화재적 가치
벽류정은 조선 인조 18년(1640) 김운해가 건립한 정자이다. 원래 이곳은 세종 때 참판을 지낸 청계 조주가 지은 별장이 있던 자리였으나, 이후 외손인 김운해에게 양여되어 광산 김씨의 소유가 되었다. 여러 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정자는 금성산을 뒤로하고 펼쳐진 평야 속 언덕의 숲, 금천 상류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의 대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정자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만들어낸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부에는 민규호, 신헌, 김수항 등 여러 선비들의 시문 현판 11개가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더한다.
4.2. 보존 상태
벽류정은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다. 1678년(숙종 4)과 1862년(철종 13)에 중수하였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축 구조를 보면 돌 다짐실 허튼층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바깥에는 둥근 기둥을, 가운데 중재실에는 사각기둥을 사용했으며, 중재실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내부에는 글씨에 능했던 민규호, 신헌 등이 쓴 현판과 김수항을 비롯한 여러 선비들의 시문 현판 등 총 11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벽류정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모습이 아름다운 정자로 평가받으며, 금천 상류에 자리 잡고 주변의 대나무와 느티나무 고목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