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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불회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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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주 불회사 대웅전은 1799년 중건된 조선 후기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용 조각, 연꽃봉오리 장식 등 화려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백제 침류왕 원년에 마라난타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 말 원정국사가 중창하고, 현재 건물은 1798년 화재 이후 1808년에 재건되었다.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으며, 22점의 불교 관련 벽화가 있다. 조선 후기 건축 양식과 불교 미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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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불회사 대웅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나주 불회사 대웅전
나주 불회사 대웅전
이름나주 불회사 대웅전
한자 표기羅州 佛會寺 大雄殿
유형보물
지정 번호1310
지정일2001년 4월 17일
주소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다도로 1224-142 (마산리)
시대조선시대
소유자불회사
추가 정보
유형 문화재 지정 (과거)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호 (1972년 1월 29일 지정, 2001년 4월 17일 해제)

2. 역사

불교백제에 전래된 것은 침류왕 원년(384년)으로,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동진으로부터 와서 불교를 전파하였다고 한다. 《조선사찰사료》에 따르면 마라난타가 백제의 도읍지로 바로 온 것이 아니라 지금의 법성포에 도착하여 불갑사를 창건하고 불회사를 세운 뒤 도성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불회사의 역사뿐만 아니라 백제의 불교 전파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록이다.[2] 불회사는 고려 말 원정국사가 크게 고쳐지었다.[2]

2. 1. 중건 및 중수

조선 정조 22년(1798년) 2월 큰 화재를 입어 순조 8년(1808년) 5월에 다시 지어졌다.[2]

3. 건축

나주 불회사 대웅전은 1799년(정조 23년) 조선 후기에 건립된 건축물로, 당시 건축 양식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특히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을 비롯한 변산반도 지역 사찰 건축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장식과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1]

3. 1. 구조

나주 불회사 대웅전은 상량문 및 건축 수법 등으로 볼 때 1799년(정조 23년)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으로, 조선 후기의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진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모두 궁창판이 있는 4분합 빗살문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꽃살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은 비교적 큰 덤벙주초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준다.

기둥 위에는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에 따라 창방과 평방이 놓이고, 전·후면의 각 주칸에는 외3출목, 내4출목 포작을 2조씩, 양측면에는 1조씩 배치하였다. 외부 살미의 끝은 심하게 휘어져 올라가 있고, 내부에서는 화려한 연봉형으로 마감하였다. 정면 어칸에는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을 사용하여 용두는 외부로 힘차게 빠져나왔고 그 꼬리는 내부로 힘차게 뻗었다.

건물 양측면 중앙에서는 건물 내부로 2개의 충량을 걸어 그 머리를 용두로 장식하여 대량에 걸쳤는데, 이러한 결구법은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수법이다. 건물 내부 천장은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혼용하였는데, 빗천장에는 물고기, 연화문 등을 매우 정교하게 조각하여 달았다.

건물 기둥 위 창방 위에 평방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려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른 것으로 보이나, 가운데 칸의 양 기둥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점이 특이하다. 용두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 꼬리를 건물 안쪽 대들보 밑에 끼어 넣은 수법, 양쪽 대들보 사이로 중앙을 향해 마주 보도록 또 다른 두 마리의 용을 목각으로 조각한 수법, 건물 내부에 연꽃봉오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등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찰과 건축 수법에 있어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3. 2. 공포

기둥 위에는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라 창방과 평방이 놓이고, 전·후면의 각 주칸에는 외3출목, 내4출목 포작을 2조씩, 양측면에는 1조씩 배치하였다. 외부 살미의 끝은 심하게 휘어져 올라가 있고, 내부에서는 화려한 연봉형으로 마감하였다.[1] 정면 어칸에는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을 사용하여 용두는 외부로, 꼬리는 내부로 향하게 하였다.[1]

건물 기둥 위 창방 위에 평방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린 것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른 것이나, 가운데 칸 양 기둥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점이 특이하다.[1] 용두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 꼬리를 건물 안쪽 대들보 밑에 끼어 넣은 수법, 양쪽 대들보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을 마주 보도록 목각으로 조각한 수법, 건물 내부에 연꽃봉오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등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찰과 건축 수법에 있어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1]

3. 3. 내부 구조

나주 불회사 대웅전은 1799년(정조 23년)에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으로, 조선 후기의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인다.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진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4분합의 빗살문이 있다. 원래는 꽃살문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이전에 변경되었다. 기둥을 받치는 초석은 비교적 큰 덤벙주초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준다.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이 놓이고, 전·후면의 각 주칸에는 외3출목, 내4출목 포작을 2조씩, 양측면에는 1조씩 배치하였다. 외부 살미의 끝은 위로 휘어져 올라가 있고, 내부에서는 연봉형으로 마감하였다. 정면 어칸에는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을 사용하여 용두는 외부로, 꼬리는 내부로 뻗은 형태이다.

건물 양측면 중앙에는 건물 내부로 2개의 충량을 걸어 용두로 장식하고 대량에 걸쳤는데, 이는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수법이다. 건물 내부 천장은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혼용하였으며, 빗천장에는 물고기, 연화문 등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달았다.

건물 기둥 위 창방 위에 평방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려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다. 가운데 칸 양 기둥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을 조각했는데, 용두를 밖으로, 꼬리를 건물 안쪽 대들보 밑에 끼어 넣었다. 양쪽 대들보 사이로 중앙을 향해 마주 보도록 두 마리의 용을 목각으로 조각하고, 건물 내부에 연꽃봉오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등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찰과 건축 수법에 있어 그 맥을 같이 한다.[1]

3. 4. 특징

나주 불회사 대웅전은 상량문 및 건축 수법 등으로 볼 때 1799년(정조 23년)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조선 후기의 화려한 다포집이다. [1]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진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모두 궁창판이 있는 4분합의 빗살문인데, 한국 전쟁 이전에는 꽃살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은 덤벙주초로 비교적 큰 편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1]

기둥 위에는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라 창방과 평방이 놓이고 전·후면의 각 주칸에는 외3출목, 내4출목 포작을 2조씩, 양측면에는 1조씩 배치하였는데, 외부 살미의 끝은 심하게 휘어져 올라가 있고 내부에서는 화려한 연봉형으로 마감하였다. 또한 정면 어칸에는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을 사용하여 용두는 외부로 힘차게 빠져나왔고 그 꼬리는 내부로 힘차게 뻗었다. [1]

건물의 양측면 중앙에서는 건물 내부로 2개의 충량을 걸어 그 머리를 용두로 장식하여 대량에 걸치었는데, 이러한 결구법은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수법이다. 건물의 내부 천장은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혼용하였는데, 빗천장에는 물고기, 연화문 등을 매우 정교하게 조각하여 달았다. [1]

건물 기둥 위 창방 위에 평방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려 다포계(多包系)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른 것으로 보이나, 가운데 칸의 양 기둥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점이 특이하다. 즉, 용두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 꼬리를 건물 안쪽 대들보 밑에 끼어 넣은 수법, 양쪽 대들보 사이로 상호 중앙을 향해 마주 보도록 또 다른 두 마리의 용을 목각으로 조각한 수법, 건물 내부에 연꽃봉오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등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찰과 건축 수법에 있어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1]

이와 같이 나주 불회사 대웅전은 조선 후기 건립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건물로,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 가치가 있다. [1]

4. 불상 및 벽화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존불로 모시는 건물로, 조선 후기 양식이다. 천장 주위에는 불교와 관련된 22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2]

4. 1. 불상

대웅전 내부에는 모든 이에게 빛을 비추는 비로자나불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으며, 이는 공(空)한 우주 진리 자체를 상징한다. 이 불상은 종이에 옷칠을 해서 만들어진 희귀한 것으로, 심향사 아미타여래불과 남평 죽림사에 있는 불상과 함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2]

참조

[1]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문화재청 2001-04-27
[2]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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