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
1. 개요
변양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뛰어난 문장가이자 점사(占射)와 변론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진의 영사로 등용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조조에게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의 작품은 많이 소실되었으나, 장화부(章華賦)를 남겼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에게 대항하다 하후돈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2. 생애
변양은 재주와 명성이 뛰어나 하진의 부름을 받았으나, 처음에는 응하지 않았다. 하진은 변양을 군사로 속여 징소하여 영사로 서임했다. 변양은 점사와 변론에 능하여 많은 빈객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공융, 왕랑, 채옹 등 당대의 명사들도 변양을 존경하고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변양은 고재로 발탁되어 여러 차례 승진하여 구강태수까지 올랐으나, 그 직책을 수행할 능력은 부족했다.
이후 후한 말의 혼란기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조조에게 굽히지 않고 저항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2.1. 후한 말의 혼란과 저항
하진은 변양의 재주와 명성을 듣고 불렀으나, 변양이 응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군사라고 속이고 징소(徵召)하여 자신의 영사로 서임했다. 변양은 점사(占射)를 잘하고 변론에 능해, 항상 빈객들로 방을 채웠다. 공융과 왕랑도 이를 몰래 엿볼 정도였고, 의랑 채옹도 변양을 깊이 존경하여 하진에게 천거했다. 이후 변양은 고재(高才)로 발탁되었고, 여러 차례 승진하여 구강태수까지 올랐으나, 이를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
초평 연간(190년 ~ 193년)에 후한 전체가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변양은 조조에게 굽히지 않고, 자주 모욕했다. 건안 연간(196년 ~ 220년)에 마을 사람이 조조에게 변양을 고발했고, 조조는 군에 명을 내려 변양을 죽였다. 이 때문에 변양의 작품은 많이 소실되었다. 또한, 변양의 집안을 멸했다.
2.2. 죽음과 멸문
초평 연간(190년 ~ 193년)에 후한 전체가 어지러워지자 변양은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변양은 조조에게 굽히지 않고 자주 모욕했다. 건안 연간(196년 ~ 220년)에 마을 사람이 조조에게 변양을 고발했고, 조조는 군에 명을 내려 변양을 죽이고 그의 집안을 멸했다. 이 때문에 변양의 작품은 많이 소실되었다.
3. 평가
변양은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특히 초 영왕이 세운 장화대에 대한 부(賦)인 장화부(章華賦)를 남겼다. 그의 작품은 많이 소실되었지만, 이는 권력에 의한 문화적 탄압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193년에 조조에게 맞서 싸우다 전사한 인물로 그려진다. 구체적으로 조조의 공격을 받은 서주태수 도겸을 돕기 위해 5천 명을 거느리고 가다가 조조의 부하 하후돈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이는 민중들에게 변양이 저항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4. 작품
초 영왕이 세운 장화대에 대한 부(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