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본성
1. 개요
부산일본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의 침략 근거지로 사용되었던 성이다. 현재의 부산광역시 좌천동과 범일동 일대 증산공원에 위치하며, 1593년과 1598년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항에서 내륙으로 진입하는 입구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으며, 성터가 남아있다. 구조는 일본식이며, 고니시 유키나가가 축성했다는 설과 모리 데루모토가 축성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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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대한민국 |
|---|---|
| 유형 | 사적 |
| 지정 번호 | 35 |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 해제일 | 1969년 8월 1일 |
|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
| 시대 | 조선 |
| 문화재청 지정 번호 | 13,0035000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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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된 대한민국의 사적 -
소쇄원
전라남도 담양군에 위치한 소쇄원은 양산보가 기묘사화 이후 은거하며 1520년대 후반부터 1530년대 중반에 걸쳐 건립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돋보이는 원림이자 추월정, 광풍각, 대봉대 등의 건물과 아름다운 계곡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국가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되어 현재 양산보의 15대손이 관리하며 학술 연구와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
해제된 대한민국의 사적 -
울산왜성
울산왜성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울산에 축성한 왜성으로, 도산왜성이라고도 불렸으며 현재는 학성공원으로 조성되어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석축 일부가 남아 있는 곳이다. -
부산광역시의 성 -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부산, 양산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조선 중기부터 존재했으며 낙동강 하구와 동래를 방어하는 요충지로서 숙종 때 개축되었고 현재 일부 복원되어 사적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
부산광역시의 성 -
경상좌수영성지
경상좌수영성지는 경상좌도 수군 총 지휘관이 있던 진영으로, 1652년 부산포로 옮겨진 후 1895년까지 사용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성은 1692년 재건된 것으로, 방어 시설을 갖추었으나 현재는 성벽과 남문, 홍예문만 남아있다. -
정유재란 -
벽파진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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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
절이도 해전
절이도 해전은 1598년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거금도 북방 해역에서 일본 수군을 격파하여 고흥반도 서쪽 제해권을 장악한 해전이다.
2. 역사
좌천동과 범일동 일대 증산공원에 축성된 성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의 침략 근거지였다. 1593년과 1598년에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부산항으로부터 내륙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막을 수 있도록 했다. 성의 구조나 형식은 일본식 색채가 짙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방어 진지로 쌓았다는 설과 조선 선조 때 왜장 모리 데루모토가 축성했다는 설이 있다.
2.1.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의 주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의 침략 근거지였다. 1593년과 1598년에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부산항으로부터 내륙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막을 수 있도록 했다. 성터만 남아 있는 꼭대기에 장대를 지었던 흔적이 있고, 출입구는 서쪽과 남쪽 두 곳에 있다. 그 구조나 형식은 일본식 색채가 짙으며, 고니시 유키나가가 방어 진지로 쌓았다는 설이 있다. 조선 선조 때 왜장 모리 데루모토가 축성했다.
2.2. 축성 시기 및 주체 논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의 침략 근거지였던 부산일본성은 1593년과 1598년에 쌓은 것으로 추측된다. 부산항으로부터 내륙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막기 위해 좌천동과 범일동 일대 증산공원에 축성되었다. 성터만 남아 있는 꼭대기에는 장대를 지었던 흔적이 있고, 출입구는 서쪽과 남쪽 두 곳에 있다. 그 구조나 형식은 일본식 색채가 짙다.
축성 주체에 대해서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방어 진지로 쌓았다는 설과 조선 선조 때 왜장 모리 데루모토가 축성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