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홍산현 관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홍산현 관아는 백제 시대 대산현으로 시작하여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존재했던 홍산현의 관청이다. 조선 시대에는 대동미를 수납하는 홍산창이 위치한 중요한 요지였다. 현재의 동헌은 1871년에 건립되었고, 객사는 1836년에 세워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헌병대 사무소로, 해방 이후에는 홍산지서, 면사무소 등으로 사용되었다. 2010년부터 복원 사업이 진행되어 관청 등 건물이 추가로 복원되었다. 주요 건물로는 홍산동헌, 형방청, 객사 등이 있으며, 동헌의 아문인 집홍루는 부소산성으로 옮겨졌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부여군 - 정림사지박물관
정림사지박물관은 2006년 9월 29일에 개관했으며, 국보 제9호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보물 제108호인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등을 소장하고, 중앙홀, 백제 불교 문화관, 정림사지관, 기획전시실, 야외전시실 등으로 전시를 구성한다. - 부여군 - 규암면
규암면은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하며 백마강변의 교통 요지로서, 조선 후기에는 천을면으로 불렸고 현재는 19개의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인삼공사 고려인삼창, 백제문화단지, 자온대, 수북정 등의 주요 시설과 문화유산이 있다. - 충청남도의 사적 -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은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로, 한국 천주교 역사와 사회 변천, 신앙의 자유를 위한 저항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다. - 충청남도의 사적 - 부여 나성
부여 나성은 백제 사비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538년경에 축조된, 둘레 8km의 흙으로 쌓은 성으로, 금강과 자연 지형을 활용한 이중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는 일부 흔적만 남아있다.
부여 홍산현 관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부여 홍산현 관아 |
로마자 표기 | Bu-yeo Hongsan-hyeon Gwan-a |
영문 표기 | Government Office of Hongsan-hyeon, Buyeo |
종류 | 사적 |
지정 번호 | 481 |
지정일 | 2007년 7월 31일 |
면적 | 29,205m² |
시대 | 조선시대 |
주소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동헌로 38 일원 (산성리) |
![]() | |
문화재청 ID | 13,04810000,34 |
2. 역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여군에 편입되기 전까지 홍산현은 독립적인 현이었다. 백제 시기엔 대산현으로 불렸다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된 뒤 한산(翰山)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고려 초에 현산현으로 불렸다. 고려 시기엔 속현이었다가 1413년(태종 13년)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하였다.[3]
2. 1. 주요 사건
임진왜란 중에 이몽학의 난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4]2. 2. 문헌 기록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여군에 편입되기 전까지 홍산현은 독립적인 현이었다. 백제 시기엔 대산현으로 불렸다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된 뒤 한산(翰山)으로 지명이 바뀌었고, 고려 초에 현산현으로 불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려 시기엔 속현이었다가 1413년(태종 13년)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하였다.[3] 임진왜란 와중에는 이몽학의 난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4]홍산현 관아에 대한 기록은 여지도서(1757~1765), 홍산읍지(영조 이후), 호서읍지(1892~1895), 서울대 규장각 소장 홍산현 지도를 들 수 있다.[5] 홍산현은 대동미를 수납하는 홍산창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 시대의 중요 요지였다.
3. 건물
홍산현 관아는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최소 두 번 이상 다시 지어졌다.[7]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1871년(조선 고종 8년)과 1836년에 각각 세워진 동헌과 객사이다.[8] 201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을 시작하여, 각종 집기를 보관하던 관청(官廳)과 같은 건물이 추가로 복원 건축되었다.[6] 남아 있는 건물은 다음과 같다.[7][9]
3. 1. 동헌
홍산현 동헌은 1871년(조선 고종 8년) 군수 정몽화가 세웠으며[8], 제금당(製錦堂), 정사당(政事堂), 현악당(賢樂堂), 한산 정사당(翰山政事堂), 청성헌(淸省軒) 등의 당호가 있다.3. 1. 1. 구조
홍산현 동헌은 제금당(製錦堂), 정사당(政事堂), 현악당(賢樂堂), 한산 정사당(翰山政事堂), 청성헌(淸省軒) 등의 당호가 있으며, 그 가운데 한산 정사당과 제금당의 편액은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가로 7칸, 세로 2칸의 목조 건물로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서로 크기가 다른 온돌방이 있다. 1914년 홍산현이 부여군에 통합된 이후 홍산현 관아는 일본군 헌병대의 사무소로 쓰였다.[3] 1945년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7] 홍산지서로 활용되었다가 1984년 보수하였다.[8]3. 1. 2. 용도 변화
홍산현 관아는 처음 언제 세워졌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최소 두 번 이상 다시 지어졌다.[7] 현재의 홍산현 동헌은 1871년(조선 고종 8년) 군수 정몽화가 세웠고[8], 객사는 1836년 현감 김용근이 세웠다. 동헌과 객사 모두 용도가 변경되어 사용되었으나, 다행히 조선 후기 동헌과 객사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8]1914년 홍산현이 부여군에 통합된 이후 홍산현 관아는 일본군 헌병대 사무소로 쓰였다.[3]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7] 홍산지서로 활용되다가 1984년 보수하였다.[8]
3. 2. 아문 (집홍루)
1964년 부소산성 안의 영일루 자리로 옮겨졌던 동헌의 출입문인 아문(집홍루)은 1995년 복원되었다.3. 3. 형방청
형방청은 잠시 수감시설로 사용하다가 1914년에 잠업 전습소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개인 살림집으로 사용되면서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9호(이정우 가옥)로 지정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 지방 관아 가운데 치안을 맡았던 형방청이 남아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4]3. 4. 객사
홍산 객사는 1909년 이후 학교로 쓰였다가[3] 해방 이후엔 홍산면 면사무소로 사용되었다.[9]3. 5. 복원 사업
홍산현 관아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최소 두 번 이상 중건되었다.[7] 현재의 홍산현 동헌은 1871년(조선 고종 8년) 군수 정몽화가 세웠고[8], 객사는 1836년 현감 김용근이 세웠다. 동헌과 객사 모두 용도가 변경되어 사용되었으나 다행히 조선 후기 동헌과 객사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8] 홍산현 관아는 2010년 본격적인 복원 사업을 시작했으며, 각종 집기를 보관하던 관청(官廳)과 같은 건물이 추가로 복원 건축되었다.[6]참조
[1]
웹사이트
홍산현 관아
http://www.heritage.[...]
문화재청
[2]
웹사이트
부여 홍산현 관아
http://tour.buyeo.go[...]
부여군
[3]
논문
조선 후기 현산현 관아 건축에 관한 연구
2005-10
[4]
뉴스
충남 관아건물의 대표 홍산동헌, 그리고 이몽학의 난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7-08-29
[5]
간행물
사적 지정 예고
문화재청장
[6]
뉴스
홍산 옛 관아 복원 사업 “개토제” 거행
https://www.chungnam[...]
충남넷
2010-02-24
[7]
웹사이트
부여 홍산현 관아
http://encykorea.aks[...]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
웹인용
홍산동헌
http://korean.visitk[...]
2018-06-18
[9]
웹사이트
홍산현 문화재 관광지
http://www.buyeo.go.[...]
부여군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