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얀 로이
1. 개요
브리얀 로이는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아약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1992년 UEFA컵 우승을 경험했으며, 이후 US 포자, 노팅엄 포레스트, 헤르타 BSC, NAC 브레다 등에서 활약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으로 32경기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으며, 1990년, 1992년, 1994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활동하며, 아약스 2군 감독을 역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음모론을 유포하고, 마르크 뤼터 총리를 협박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 전체 이름 | 브라이언 에두아르트 스티븐 로이 |
|---|---|
| 출생일 | 1970년 2월 12일 |
| 출생지 |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
| 신장 | 1.78m |
| 포지션 | 윙어 |
| 유소년 클럽 | 플루흐 & 파르디흐 |
|---|---|
| 블라우 비트 | |
| 연도 | 1987–1992 |
|---|---|
| 클럽 | 아약스 |
| 출장 | 126 |
| 득점 | 17 |
| 연도 | 1992–1994 |
| 클럽 | 포자 |
| 출장 | 50 |
| 득점 | 15 |
| 연도 | 1994–1997 |
| 클럽 | 노팅엄 포레스트 |
| 출장 | 85 |
| 득점 | 24 |
| 연도 | 1997–2000 |
| 클럽 | 헤르타 BSC |
| 출장 | 50 |
| 득점 | 3 |
| 연도 | 2001–2002 |
| 클럽 | NAC |
| 출장 | 14 |
| 득점 | 2 |
| 총 출장 | 334 |
| 총 득점 | 63 |
| 국가대표 연도 | 1989–1995 |
|---|---|
| 국가대표팀 | 네덜란드 |
| 국가대표 출장 | 32 |
| 국가대표 득점 | 9 |
| 감독 연도 | 2001–2010 |
|---|---|
| 감독 클럽 | 아약스 E1 |
| 감독 연도 | 2010–2015 |
| 감독 클럽 | 아약스 B |
-
FC 블라우빗 암스테르담의 축구 선수 -
마르틴 쿠만
마르틴 쿠만은 네덜란드의 축구 선수로, GVAV/FC 흐로닝언에서 주로 활동하며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도 한 경기 출전했고, 은퇴 후에는 FC 흐로닝언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했으며, 에르빈 쿠만과 로날트 쿠만 형제의 아버지로 알려져 흐로닝언의 유로보르흐 경기장에 "쿠만 스탠드"가 조성되고 동상이 건립되는 등 그의 업적이 기려지고 있다. -
FC 블라우빗 암스테르담의 축구 선수 -
배리 휴스
배리 휴스는 웨일스 출신으로 축구 선수와 감독, 음악가로 활동했으며, AZ 알크마르'54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KNVB 컵 우승을 했고, 여러 팀에서 감독을 역임했으며, 코미디 그룹과 함께 음악 활동을 하기도 했다. -
AFC 아약스의 비선수진 -
데니스 베르흐캄프
데니스 베르흐캄프는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로, 아약스, 인테르 밀란, 아스널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볼 컨트롤, 패싱 능력, 침착한 마무리 능력으로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 "논-플라잉 더치맨"이라는 별명과 함께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
AFC 아약스의 비선수진 -
마르코 판 바스턴
마르코 판 바스턴은 네덜란드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아약스와 AC 밀란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하고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UEFA 유로 1988 우승을 이끌었으며 선수 시절 부상으로 일찍 은퇴했다. -
네덜란드의 축구 감독 -
거스 히딩크
거스 히딩크는 네덜란드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PSV 에인트호번을 이끌고 트레블을 달성하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002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끄는 등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도했다. -
네덜란드의 축구 감독 -
요니 렙
요니 렙은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로, 1970년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주축 공격수로서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아약스, 발렌시아 등 유럽 명문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드리블과 다재다능함으로 명성을 떨쳤다.
2. 클럽 경력
브리얀 로이는 1987년 아약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1992년 UEFA컵 우승에 기여했다. 1992-93 시즌 도중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포자 칼초로 이적했고, 1994년에는 2.9의 이적료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했다. 노팅엄에서는 스탠 콜리모어와 콤비를 이루어 활약하며 팀의 UEFA컵 진출에 기여했다. 1997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헤르타 베를린으로 이적했고, 2000년 네덜란드로 돌아와 NAC 브레다에서 뛰었다. 2002년, 31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AFC 아약스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로이는 1987년 아약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2년 UEFA컵에서 우승했다. 1992년 11월, 마르크 오베르마르스가 그의 왼쪽 윙어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로이는 이탈리아 클럽 포자로 이적했다.
1989년 6월, 수리남계 네덜란드인으로 구성된 네덜란드 대표팀(통칭: 컬러풀 일레븐)이 수리남으로 원정을 갔을 때 수리남 항공 764편 추락 사고를 겪어 선수 18명 중 15명이 사망했다(3명의 생존자 중 경기 복귀가 가능했던 선수는 1명뿐). 이 컬러풀 일레븐에 로이도 선발되었지만, 소속 클럽의 의향으로 불참하여 목숨을 건졌다. 같은 이유로 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루트 굴리트도 목숨을 건졌다.
아약스에서는 리그전 108경기에 출전하여 16골을 기록했으며, 1992년에 UEFA 컵 우승에 기여했다.
2.2. US 포자
1992년 11월, 로이는 이탈리아 클럽 포자로 이적했다. 11월 22일 SS 라치오 전에서 데뷔하여 첫 골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시스템과 리듬의 차이에 고전했지만, 시즌 후반에는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93-94 시즌에는 리그전에서 12골을 넣으며 팀의 약진을 도왔다. 1994년 FIFA 월드컵에 네덜란드를 대표하여 참가했고, 8강에 진출하면서 한 골을 넣었다.
2.3. 노팅엄 포레스트
1994년 월드컵 이후, 로이는 2.9의 이적료로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했다. 노팅엄에서는 센터 포워드인 스탠 콜리모어와 콤비를 이루어 활약했다. 이적 첫 해인 1994-95 시즌, 로이는 리그에서만 13골을 기록하며 팀이 UEFA컵 본선 출전권(리그 3위)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포레스트가 헤이젤 참사 이후 처음으로 유럽 대회 진출 자격을 얻은 것이었다.
콜리모어는 1995년에 리버풀 FC로 이적했지만, 로이는 클럽에 남아 1995-96 시즌 UEFA컵 8강 진출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부상의 영향으로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1996-97 시즌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출전 기회가 제한되었고, 팀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되었다.
포레스트에서 로이가 기록한 24골은 2024년 12월 7일 크리스 우드가 경신할 때까지 클럽의 프리미어리그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2.4. 헤르타 BSC
1997년 여름, 로이는 헤르타 BSC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150만 파운드였다. 포레스트에서 기록한 그의 24골은 2024년 12월 7일 크리스 우드가 넘어설 때까지 클럽의 프리미어리그 기록이었다. 로이는 헤르타에서 3시즌을 보냈다.
2.5. NAC 브레다
2000년, 로이는 고국으로 돌아와 NAC 브레다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2002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NAC와의 계약이 만료된 2002년, 그는 31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로이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 32번의 국제 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넣었다. 1990년과 1994년 FIFA 월드컵, 그리고 UEFA 유로 1992에 출전했다. 1994년 월드컵 첫 라운드에서 모로코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는 결승골을 기록했다.
1989년에 네덜란드 대표팀으로 데뷔했다. 1990년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대회 대표팀 멤버였지만 출전 기회는 없었다. 이후 주전으로 정착하여 1992년 UEFA 유로 4강 진출, 1994년 FIFA 월드컵 미국 대회 조별 리그 첫 경기인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1도움을 기록했다. 모로코와의 3차전에서 1골을 넣어 8강 진출에 기여했다. 1995년 3월 29일 몰타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국제 A매치 32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
5. 논란
로이는 코로나19 범유행 기간 동안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팬데믹과 관련된 수많은 음모론을 퍼뜨렸으며, 코로나19 음모론 유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언론인 크리스 클롬프에게 위협적인 트윗을 보내기도 했다.
2021년 4월에는 마르크 뤼터 총리가 곧 머리에 총을 맞을 것이라는 트윗을 올려 협박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년의 보호관찰과 80시간의 사회 봉사를 선고받았으나, 사회 봉사를 이행하지 않아 40일간의 징역형을 살게 되었다.
5.1. 코로나19 음모론 유포
코로나19 범유행 기간 동안 로이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팬데믹과 관련된 수많은 음모론을 퍼뜨렸다. 2020년 10월, 로이는 코로나19 음모론 유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언론인 크리스 클롬프에게 위협적인 트윗을 보냈다.
2021년 4월, 로이는 마르크 뤼터 총리에 대한 트윗에 답글을 달아 뤼터가 곧 머리에 총을 맞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로이는 경찰의 조사를 받았는데, 그는 뤼터가 그와 관련된 큐어넌 음모론 때문에 처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진술했다. 로이는 이 트윗으로 인해 총리를 협박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2년의 보호관찰 하에 80시간의 사회 봉사를 선고받았다. 로이가 사회 봉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40일의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로이가 보호 관찰 조건을 위반할 경우, 추가로 4주간의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로이는 사회 봉사를 이행하지 못해 40일간의 징역형을 살기 위해 체포되었다.
5.2. 마르크 뤼터 총리 협박
2021년 4월, 로이는 마르크 뤼터 총리에 대한 트윗에 답글을 달아 뤼터가 곧 머리에 총을 맞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그는 뤼터가 그와 관련된 큐어넌 음모론 때문에 처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진술했다. 로이는 이 트윗으로 총리를 협박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2년의 보호관찰 하에 80시간의 사회 봉사를 선고받았다. 로이가 사회 봉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40일의 징역형을, 보호 관찰 조건을 위반할 경우 추가로 4주간의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로이는 사회 봉사를 이행하지 못해 40일간의 징역형을 살기 위해 체포되었다.
6.2. 개인
1987년 네덜란드 올해의 최우수 탤런트상을 1회 수상했다.
7. 통계
| 번호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1994년 6월 29일 | 시트러스 볼, 올랜도, 미국 | 모로코 | 2–1 | 2–1 | 1994년 FIFA 월드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