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베아라
1. 개요
블라디미르 베아라는 1928년 오늘날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유고슬라비아의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와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뛰며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을 여러 차례 달성했으며, 독일에서 선수 경력을 마쳤다.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으로 59경기에 출전하여 1952년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세 번의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활동하며 여러 팀을 지도했으며, 2014년에 사망했다. 그는 뛰어난 운동 신경과 용감한 플레이 스타일로 "강철 손의 발레리노"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레프 야신이 최고의 골키퍼로 꼽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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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블라디미르 베아라 |
|---|---|
| 출생일 | 1928년 11월 2일 |
| 출생지 | 유고슬라비아 왕국 젤로보 |
| 사망일 | 2014년 8월 11일 |
| 사망지 |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
| 키 | 1.84m |
| 포지션 | 골키퍼 |
| 유소년 클럽 | 정보 없음 (제공된 문서에 유소년 클럽 정보 없음) |
|---|---|
| 선수 경력 | 1947–1955: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136경기 0골) 1955–1960: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83경기 0골) 1960–1963: 알레마니아 아헨 (23경기 0골) 1963–1964: FC 빅토리아 쾰른 (23경기 0골) |
| 총 출장 수 | 265경기 |
| 총 득점 수 | 0골 |
| 국가대표팀 | 유고슬라비아 (1950–1959, 59경기 0골) |
|---|
| 감독 경력 | 1964–1966: 프라이부르거 FC 1966–1967: 시타르디아 1967–1968: 리예카 1969–1970: SC 포르투나 쾰른 1970–1972: 하이두크 스플리트 (수석 코치) 정보 없음: 오시예크 정보 없음: 트로글라브 리브노 1973–1975: 카메룬 정보 없음: 디나라 크닌 정보 없음: 브레갈니차 슈티프 1979: 퍼스트 비엔나 1980–1981: 스플리트 1986–1987: BŠK 즈마이 블라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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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 1952 헬싱키 축구 은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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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거 FC의 축구 감독 -
로란트 줄러
로란트 줄러는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매직 마자르'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올림픽 금메달, 중앙유럽 국제컵 우승,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클럽의 감독을 역임하며 PAOK 테살로니키 FC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나 감독 재임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헝가리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
퍼스트 비엔나 FC의 축구 감독 -
펠릭스 라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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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 오시예크의 축구 감독 -
미로슬라브 블라제비치
미로슬라브 블라제비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의 전 축구 감독이자 정치인으로,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1998년 FIFA 월드컵 3위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클럽 우승 경력과 강한 카리스마로 유명하며, 크로아티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
NK 오시예크의 축구 감독 -
안테 차치치
안테 차치치는 크로아티아의 축구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을 지휘하며, 리비아 U-20 대표팀을 이끌고 동메달을 획득하고, 디나모 자그레브와 마리보르에서 우승을 기록했다.
2. 클럽 경력
베아라는 1928년 세르비아인 가정에서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신 근처 젤로보에서 태어났다.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알레마니아 아헨, FC 빅토리아 쾰른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다. 1963년 소련의 골키퍼 레프 야신은 베아라를 자신보다 뛰어난 역대 최고의 골키퍼라고 평가했다.
2.1.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1946-1955)
베아라는 1947년부터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뛰며 1950년, 1952년, 1955년에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에서 우승했다. 1946년부터 1955년까지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308경기에 출전했다.
2.2.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55-1960)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1955년에 이적한 베아라는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에서 1956년, 1957년, 1959년, 1960년에 우승했고, 유고슬라비아 컵에서 1958년과 1959년에 우승했다. 베아라는 뮌헨 비행기 참사 직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마지막 경기를 치른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골키퍼였다.
2.3. 알레마니아 아헨과 빅토리아 쾰른 (1960-1964)
1960년, 베아라는 서독의 알레마니아 아헨(1960–62)과 FC 빅토리아 쾰른(1963–64)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3. 국가대표팀 경력
베아라는 1950년부터 1959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59경기에 출전했다. 국가대표팀에 뽑힌 뒤 1950년 11월 22일에 아스널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놀라운 선방을 보여주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위대한 블라디미르' 혹은 '강철 손의 발레리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3.2. FIFA 월드컵
베아라는 1950년, 1954년, 1958년 FIFA 월드컵에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세 번 출전했다.
3.3. 유럽 대표팀
1953년 11월 21일, 베아라는 유럽 연합팀으로 뽑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 경기를 가졌다. 이 경기는 4-4 무승부로 끝났고, 베아라는 FIFA 월드 올스타 XI의 유고슬라비아 선수 4명 중 한 명으로서 단 한 골만을 허용했다.
4. 감독 경력
1967년 베아라는 독일 스포츠 대학 쾰른에서 감독 과정을 마쳤고,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의 팀들과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71년에는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의 수석 코치로 팀의 리그 우승을 도왔는데, 이는 베아라가 1955년에 팀을 떠난 뒤 처음으로 이룬 리그 우승이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맡아 토마스 은코노, 조제프앙투안 벨 등을 지도했다. 은코노와 벨은 훗날 카메룬 대표팀의 한 시대를 구축하며 아프리카 최고의 골키퍼로 칭송받았다. 은코노는 베아라의 지도에 대해 "그 전까지 재능만으로 해왔던 자신에게 골키퍼에게 필요한 연습법을 처음부터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
1975년 토네르 야운데에서 아프리카 컵 위너스 컵에서 우승했고, 이후 오스트리아의 퍼스트 비엔나 FC 등에서도 감독을 맡았다.
5. 사망
베아라는 2014년 8월 11일에 사망했다. 베아라의 가족들은 그가 죽기 전에 뇌졸중을 앓았다고 전했다.
베아라의 가족은 2014년 8월 11일, 그가 지난 1년간 여러 차례 뇌졸중을 겪은 후 스플리트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가톨릭 로브리나츠 묘지에 안장되었다. 베아라의 미망인 야드란카가 그를 가톨릭 묘지에 안장하기로 한 결정은 비판을 받았는데, 이는 베아라가 세르비아 정교회의 독실한 신자였기 때문이다.
6. 플레이 스타일
베아라는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자신감 넘치는 골키퍼로, 눈에 띄면서도 효과적인 스타일을 갖췄다. 공을 굳게 잡는 능력과 용감한 태도 덕분에 뛰어난 선방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골문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플레이하는 데에도 능숙했다. 그는 우아함과 골키핑 기술을 결합하는 능력 때문에 "강철 손을 가진 발레리노"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고슬라비아 시절, 발레 교사에게 발 기술을 배우면서 골키퍼로서의 능력은 물론, 우아한 골키핑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50년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상대 골키퍼였던 밥 윌슨(전 아스널 골키퍼)은 베아라에 대해 "그는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미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점프나 다이빙할 때, 발로 땅을 차고 아름답고 완벽한 자세를 취한다. 골대 앞에서 그는 발끝으로 서서 마치 스프링처럼 언제든지 솟아올라 날아갈 수 있는 자세로 폼을 잡고 있다"라고 칭찬했다.
베아라는 항상 골라인 위에 편안한 표정으로 서서, 배운 기술을 기계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싸우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그는 "상대 선수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로 상대 팀의 프리킥 시 벽을 세우는 것을 멈추게 했다고 한다.
베아라는 현대 축구를 "전술에 의해 잠식된 축구"라고 평하며, "1962년 칠레 대회, 1966년 잉글랜드 대회부터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공을 다루는 방식은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에도 좋은 골키퍼가 갖춰야 할 자질은 내 시대와 공통되는 점이 많다. 우선, 용감함과 자신감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레프 야신이 1963년 골키퍼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때 "세계 최고의 골키퍼는 나 자신이 아니라 베아라"라고 주장했다.
7. 평가
베아라는 유고슬라비아 시절 발레 교사에게 발 기술을 배우면서 골키퍼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우아한 골키핑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50년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상대 골키퍼였던 밥 윌슨(전 아스널 골키퍼)은 "그는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미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점프나 다이빙할 때, 발로 땅을 차고 아름답고 완벽한 자세를 취한다. 골대 앞에서 그는 발끝으로 서서 마치 스프링처럼 언제든지 솟아올라 날아갈 수 있는 자세로 폼을 잡고 있다"라며 베아라를 칭찬했다.
베아라는 골라인 위에 항상 편안한 표정으로 서서, 배운 기술을 기계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싸우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상대 선수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로 상대 팀의 프리킥 시 벽을 세우는 것을 멈추게 했다고 한다.
현대 축구를 "전술에 의해 잠식된 축구"라고 평하며, "월드컵 1962년 칠레 대회, 1966년 잉글랜드 대회부터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공을 다루는 방식은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고 말하는 한편, "현재에도 좋은 골키퍼가 갖춰야 할 자질은 내 시대와 공통되는 점이 많다. 우선, 용감함과 자신감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레프 야신은 1963년 골키퍼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때 "세계 최고의 골키퍼는 나 자신이 아니라 베아라"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