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하리리
1. 개요
사드 하리리는 197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난 레바논의 정치인으로, 2009년부터 2011년, 2016년부터 2020년 두 차례 레바논 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라피크 하리리의 아들이자 미래운동의 지도자로서, 시리아군의 레바논 철수와 관련된 시더 혁명에 참여했다. 2017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총리직 사임을 발표하고, 2020년 베이루트 폭발 이후 총리로 지명되었으나 내각 구성에 실패하여 사퇴했다. 2022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며, 사생활과 관련하여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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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사드 하리리 |
|---|---|
| 로마자 표기 | Saad ed Deen Rafiq al-Hariri |
| 원어 이름 | سعد الدين رفيق الحريري |
| 출생 이름 | 사드 엘딘 라피크 알하리리 |
| 출생일 | 1970년 4월 18일 |
| 출생지 | 리야드, 사우디아라비아 |
| 국적 |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
| 종교 | 수니파 이슬람 |
| 배우자 | 라라 알 아젬(1998년 결혼) |
| 자녀 | 3명 |
| 거주지 | 베이루트, 레바논 |
| 아버지 | 라피크 하리리 |
| 어머니 | 니달 부스타니 |
| 친척 | 하리리 가문 |
| 학력 | 조지타운 대학교 |
| 공식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 소속 정당 | 미래운동 |
|---|---|
| 다른 소속 정당 | 3월 14일 동맹 |
| 미래운동 지도자 임기 시작 | 2005년 4월 20일 |
| 미래운동 지도자 전임 | 라피크 하리리 |
| 레바논 의회 의원 임기 시작 | 2005년 6월 28일 |
| 레바논 의회 의원 임기 종료 | 2022년 5월 21일 |
| 레바논 의회 의원 지역구 | 베이루트 |
| 레바논 의회 의원 전임 | 라피크 하리리 |
| 레바논 총리 임기 시작 (1) | 2009년 11월 9일 |
| 레바논 총리 임기 종료 (1) | 2011년 6월 13일 |
| 레바논 총리 전임 (1) | 푸아드 시니오라 |
| 레바논 총리 후임 (1) | 나지브 미카티 |
| 레바논 총리 임기 시작 (2) | 2016년 12월 18일 |
| 레바논 총리 임기 종료 (2) | 2020년 1월 21일 |
| 레바논 총리 전임 (2) | 탐맘 살람 |
| 레바논 총리 후임 (2) | 하산 디아브 |
| 레바논 대통령 (1) | 미셸 슬레이만 |
| 레바논 대통령 (2) | 미셸 아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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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계 레바논인 -
미셸 시하
레바논의 은행가이자 정치인, 언론인, 작가였던 미셸 시하는 프랑스 위임통치령 레바논 시기에 독립운동, 의회 의원 활동, 신문 창간 및 언론 활동, 그리고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레바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
레바논의 억만장자 -
라피크 하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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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억만장자 -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의 수니 무슬림 정치인이자 사업가인 나지브 미카티는 2005년, 2011년, 2021년에 총리를 역임하며 레바논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정치 계급 대표로 여겨져 비판받고 위키리크스 폭로와 부패 혐의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
레바논의 총리 -
하산 디아브
하산 디아브는 공학 학위를 취득하고 베이루트 아메리카 대학교의 전기 공학 교수로 재직한 레바논의 정치인이자 학자이며, 교육부 장관과 총리를 역임했으나 2020년 베이루트 폭발 사고에 대한 대처 미흡으로 사임 후 기소되었다. -
레바논의 총리 -
라피크 하리리
2. 초기 생애 및 교육
사드 하리리는 1970년 4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라피크 하리리와 그의 첫 번째 아내이자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 쿠르드/Kurdîkur계 여성인 니달 부스타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공부하는 동안 만났다. 하리리는 모국어인 아랍어 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구사한다. 그는 1992년 조지타운 대학교 맥도너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3. 기업 활동
정계 입문 전, 하리리는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통신 사업을 추진한 오거 텔레콤(Oger Telecom) 집행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옴니아 홀딩스 회장이었으며, 오거 인터내셔널, 사우디 오거, 사우디 투자 은행, 사우디 연구 및 마케팅 그룹, 퓨처 TV의 이사회 멤버였다.
4. 정치 경력
2005년 4월 20일, 하리리 가족은 사드 하리리가 부친 라피크 하리리가 창설하고 이끌었던 수니파 운동인 미래운동을 이끌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3월 14일 연합의 지도자였는데, 이 연합은 대규모 인민 시위와 서방의 지원을 통해 29년간 이어진 시리아군의 레바논 철수(2005년)로 이어진 시더 혁명에서 생겨난 정치 단체들의 연합이었다. 위키리크스 문서에 따르면, 하리리는 2006년 레바논 전쟁 중 8월 20일에 제프리 펠트먼 대사를 만나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후 헤즈볼라에 대해 비굴한 태도를 보인 육군 사령관 미셸 수라이만을 비판하고, 의회 의장 나비 베리에게 베이루트 국제공항의 선적장에서 시아파 장교들을 이동시켜 달라고 요청했으며, 유엔이 이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베리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헤즈볼라를 타격하고 전복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렸다.
4.1. 정계 입문
2005년 4월 20일, 하리리 가족은 사드 하리리가 부친 라피크 하리리가 창설하고 이끌었던 수니파 운동인 미래운동을 이끌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3월 14일 연합의 지도자였는데, 이 연합은 대규모 인민 시위와 서방의 지원을 통해 29년간 이어진 시리아군의 레바논 철수(2005년)로 이어진 시더 혁명에서 생겨난 정치 단체들의 연합이었다. 위키리크스 문서에 따르면, 하리리는 2006년 레바논 전쟁 중 8월 20일에 제프리 펠트먼 대사를 만나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후 헤즈볼라에 대해 비굴한 태도를 보인 육군 사령관 미셸 수라이만을 비판하고, 의회 의장 나비 베리에게 베이루트 국제공항의 선적장에서 시아파 장교들을 이동시켜 달라고 요청했으며, 유엔이 이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베리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헤즈볼라를 타격하고 전복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렸다.
4.2. 첫 번째 총리 재임 (2009-2011)
사드 하리리는 2009년 11월 9일부터 2011년 6월 13일까지 레바논의 총리직을 수행했다. 2005년 아버지 라피크 하리리의 암살 사건으로 미래운동 당수를 계승, 2009년 총선 승리 후 총리가 되었다. 2011년 1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과 회담 직후, 헤즈볼라(Hezbollah)를 포함한 야당 의원들의 사퇴로 연립 정부가 붕괴되었다. 이는 라피크 하리리 암살(assassination of Rafic Hariri) 조사로 인한 정치적 긴장과 레바논 특별재판소(Special Tribunal for Lebanon)와의 협력 철회에 대한 하리리 총리의 긴급 내각 회의 소집 거부 때문이었다. 레바논 특별재판소는 라피크 하리리(Rafic Hariri)의 암살과 관련하여 헤즈볼라 구성원들을 기소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정부 붕괴 이후 기소장이 곧 발표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레바논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의 3분의 1이 사퇴한 후 정부가 붕괴된 사례였다.
하리리는 4개월간 권한대행 총리직을 유지하며 위기 극복을 약속하고 새 지도자 선출을 위한 협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3월 8일 연합은 하리리 정부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3월 14일 연합은 하리리 이외의 인물은 수용 불가하다고 맞섰다. 2011년 6월 13일, 나지브 미카티(Najib Mikati)가 이끄는 3월 8일 연합 주도의 새 정부가 구성되면서 하리리의 첫 번째 총리 임기는 종료되었다.
4.3. 두 번째 총리 재임 (2016-2020)
대통령 선거 교착 상태가 2년 이상 지속된 끝에 미셸 아운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아운은 하리리를 총리로 임명하는 법령에 서명했고, 하리리는 2016년 12월 18일에 두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했다.
2017년 11월 4일, 하리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TV로 생중계된 성명을 통해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이란과 헤즈볼라가 중동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으며, 자신의 암살 위협을 느낀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다. 이란은 하리리의 발언을 부인하고 그의 사임이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한 음모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레바논군은 성명을 통해 "국내에 암살 계획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헤즈볼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이란 성향 레바논 단체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리리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하리리의 측근과 사우디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했다. 아사드 아부칼릴은 사우디가 하리리를 투옥하고 신체적으로 구금하고 폭행한 후 사임 방송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11월, 하리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에미리트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리리의 소속 정당은 그가 바레인으로 이동한 후 베이루트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두 번의 여행은 모두 취소되었고 그는 리야드로 돌아갔다. 하리리의 동맹들은 다른 정당들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해 하리리의 자유가 제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레바논 정부는 그의 귀국을 요청했다. 11월 11일, 레바논 대통령 미셸 아운은 "레바논은 총리가 국제 조약과 국가 간 관계의 표준 규칙과 어긋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11월 후반, 하리리는 프랑스로 가서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을 만났다. 11월 21일, 하리리는 베이루트에서 사임을 보류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미셸 아운 대통령이 "추가 협의에 앞서 사임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했다. 12월 5일, 하리리는 사임을 철회하고 정부 구성원 모두가 아랍 국가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2019년 10월 중순, 정치 개혁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 운동이 시작되었다. 10월 20일,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전국 각지에 모여 2005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10월 21일, 전국적인 총파업이 선포되며 경제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하리리는 긴급 내각 회의를 열고 의원과 국회의원의 급여를 절반으로 줄이는 등 다양한 경제 개혁을 발표했지만, 시위를 진압하는 데 실패했다.
10월 22일, 하리리는 미국, 러시아 등 여러 국가 및 국제기구 대표들과 회담을 가졌다. 하리리는 계획된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시위대의 평화적인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레바논 국제지원그룹 대표들은 경제 개혁과 시위대 보호를 지지하면서도 레바논 지도자들에게 국민과의 공개적인 대화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10월 23일, 하리리는 재정 및 경제 개혁을 담당하는 장관위원회와 회의를 갖고 국고 회수에 관한 법안 초안을 논의했다.
10월 29일, 하리리는 "변화를 요구하는 수천 명의 레바논 국민의 의지와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총리직 사임을 제안했다. 다음 날, 미셸 아운 대통령은 사임을 수락했지만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하리리가 직무를 유지할 것을 요청했다. 2020년 1월 21일, 하산 디아브가 총리로 임명되면서 하리리는 총리직에서 퇴임했다.
4.4. 세 번째 총리 지명 및 사퇴 (2020-2021)
2020년 8월, 베이루트 폭발 사건 발생 및 하산 디아브(하산 디아브) 총리의 사임으로, 하리리와 총리 클럽(총리 클럽)은 레바논 주독일대사 무스타파 아디브(무스타파 아디브)를 차기 총리로 지지했다. 무스타파 아디브는 8월 30일 120명의 의원 중 90명의 지명을 받아 총리로 임명되었지만,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는 데 실패하여 3주 후 사임했다.
2020년 10월 8일, 하리리는 자신이 총리직에 "확실히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0월 22일, 사드 하리리가 총리로 재지명되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운동(미래운동), 진보사회당(PSP), 아말운동(아말운동)의 지지를 받아 65표를 얻었다. 반면 헤즈볼라(헤즈볼라)와 주요 기독교 정당인 자유애국운동(자유애국운동)과 레바논군(레바논군)은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하리리는 2021년 1월 터키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을 만났고, 2월에는 이집트에서 압델 파타 알시시(압델 파타 알시시)를 만났으며,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무함마드 빈 자예드)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하지만, 일 동안 미셸 아운(미셸 아운) 대통령과 18번의 회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3월 16일, 환율은 1달러당 레바논 파운드 15,000에 달했다. 2021년 3월 17일, 미셸 아운 대통령은 사드 하리리 총리 지명자에게 즉시 정부를 구성하라고 말했고,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운은 또한 하리리 총리 지명자에게 더 이상 무기력하게 있을 수 없으며 사퇴하거나 정부를 구성하는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월 29일, 하리리는 아운 대통령이 자유애국운동(FPM)을 위한 제3세력을 포함하는 구성을 제안했고 자신은 거부했으며, 18명의 장관으로 구성된 또 다른 구성을 언론에 공개했다고 주장했다. 하리리에 따르면, 아운 대통령은 그의 팀에게 내각 의석의 3분의 1을 할당하는 명단을 제시했는데, 이는 레바논 정부의 의사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결국, 2021년 7월 15일, 내각 구성에 실패하고 미셸 아운 대통령과의 갈등이 심화되자 하리리는 총리 지명직에서 사퇴했다.
4.5. 정계 은퇴
2022년 1월 24일, 하리리는 레바논 정계에서 은퇴하고 2022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한 미래운동에도 다가오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후보를 지명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5. 사생활
사드 하리리는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의 복수국적 소지자이다. 1998년 시리아 건설업계 거물 바시르 알 아젬의 딸 라라 알 아젬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2007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안전상의 이유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파리에서 거주하다가 2014년 8월 8일 레바논으로 돌아왔다. 2018년 5월 기준 그의 순자산은 13억 6천만 달러로 추산된다.
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델에게 거액의 현금을 선물한 사건이 있었고, 2023년에는 전직 승무원 2명에게 성폭행 혐의로 피소되었으나 혐의를 부인했다.
6. 논란 및 비판
사드 하리리는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해 있다.
2013년, 하리리는 세이셸에서 만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비키니 모델 캔디스 반데르 메르웨(Candice van der Merwe)에게 1,600만 달러의 현금을 선물했다. 201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법원은 메르웨가 이 금액에 대한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다며 그녀를 고소했지만, 메르웨는 이를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사드 하리리가 소유한 건설회사 사우디 오제(en)의 비즈니스 제트기 안에서 여성 승무원 2명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2023년 3월 29일 미국 뉴욕 지방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제기되었다. 하리리 측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원고가 뉴욕에서 하리리에게 소송을 제기하려 한 것이 이번이 세 번째라며 금전 목적의 명예훼손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2023년 4월, 두 명의 승무원이 하리리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 기록에 따르면, 하리리는 직장 내 잔혹한 강간, 불법 감금, 성폭행 및 성희롱 혐의를 받았다.
이 외에도 레바논 경제 위기 심화에 대한 책임론, 잦은 해외 순방과 레바논 국내 정치 소홀에 대한 비판,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총리직 사임 발표 논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