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산체스
1. 개요
페드로 산체스는 1972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스페인 정치인이다. 1993년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에 입당하여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며, 브뤼셀 자유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카밀로 호세 셀라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8년 총선에서 스페인 사회노동당이 승리하면서 스페인 총리가 되었고, 2023년에도 연임에 성공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코로나19 대응, 과거사 청산, 카탈루냐 독립 문제 해결, 유럽 통합 지지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2021년 문재인 대통령, 2022년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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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페드로 산체스 페레스-카스테혼 |
|---|---|
| 원어 이름 | Pedro Sánchez Pérez-Castejón |
| 로마자 표기 | Pedro Sánchez Pérez-Castejón |
| 출생일 | 1972년 2월 29일 |
| 출생지 | 마드리드, 스페인 |
| 국적 | 스페인 |
| 배우자 | 베고냐 고메스 (2006년 결혼) |
| 자녀 | 2명 |
| 종교 | 무신론 |
| 서명 | Firma Pedro Sánchez.png |
| 소속 정당 | 스페인 사회노동당 |
| 학력 | 레알 센트로 우니베르시타리오 에스코리알-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 브뤼셀 자유 대학교 IESE 경영대학원 카밀로 호세 셀라 대학교 |
|---|
| 직책 | 스페인 총리 |
|---|---|
| 재임 시작 | 2018년 6월 2일 |
| 군주 | 펠리페 6세 |
| 제1 부총리 | 카르멘 칼보 나디아 칼비뇨 마리아 헤수스 몬테로 |
| 제2 부총리 |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욜란다 디아스 |
| 제3 부총리 | 테레사 리베라 사라 아아헤센 |
| 이전 총리 | 마리아노 라호이 |
| 직책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장 |
|---|---|
| 사무총장 | 베네딕타 라시 |
| 재임 시작 | 2022년 11월 25일 |
| 이전 의장 |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
| 직책 | 스페인 사회노동당 사무총장 |
|---|---|
| 당 대표 | 크리스티나 나르보나 |
| 부대표 | 아드리아나 라스트라 마리아 헤수스 몬테로 |
| 재임 시작 | 2017년 6월 17일 |
| 이전 사무총장 | 과도 위원회 |
| 당 대표 | 미카엘라 나바로 |
| 재임 시작 | 2014년 7월 26일 |
| 재임 종료 | 2016년 10월 1일 |
| 이전 사무총장 | 알프레도 페레스 루발카바 |
| 이후 사무총장 | 과도 위원회 |
| 직책 | 야당 대표 |
|---|---|
| 총리 | 마리아노 라호이 |
| 재임 시작 | 2017년 6월 18일 |
| 재임 종료 | 2018년 6월 2일 |
| 이전 야당 대표 | 공석 |
| 이후 야당 대표 | 파블로 카사도 |
| 총리 | 마리아노 라호이 |
| 재임 시작 | 2014년 7월 26일 |
| 재임 종료 | 2016년 10월 1일 |
| 이전 야당 대표 | 알프레도 페레스 루발카바 |
| 이후 야당 대표 | 공석 |
| 직책 | 하원 의원 |
|---|---|
| 선거구 | 마드리드 |
| 재임 시작 | 2019년 5월 21일 |
| 선거구 | 마드리드 |
| 재임 시작 | 2013년 1월 10일 |
| 재임 종료 | 2016년 10월 29일 |
| 선거구 | 마드리드 |
| 재임 시작 | 2009년 9월 15일 |
| 재임 종료 | 2011년 9월 27일 |
| 직책 | 마드리드 시의회 의원 |
|---|---|
| 재임 시작 | 2004년 5월 18일 |
| 재임 종료 | 2009년 9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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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자유 대학교 (프랑스어) 동문 -
샤를 미셸
샤를 미셸은 벨기에 정치인으로, 벨기에 총리와 유럽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며 연금 및 노동법 개혁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적 현안에 대처하며 유럽 연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
브뤼셀 자유 대학교 (프랑스어) 동문 -
사라 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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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무신론자 -
살바도르 달리
스페인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정교한 기술과 몽환적인 이미지,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논란적인 행보로도 알려져 있다. -
스페인의 무신론자 -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입체파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 미술 양식을 창시했으며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의 대표작과 함께 회화, 조각, 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작품을 남긴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
스페인의 총리 -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는 스페인 사회노동당과 스페인노동총동맹의 지도자로서 스페인 제2공화국 시기에 노동부 장관과 총리를 역임했으며, 급진 좌파로 전환 후 스페인 내전 중에는 총리 겸 국방장관을 지냈으나 나치에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에 수감 후 파리에서 사망한 스페인의 정치인이자 노동 운동가이다. -
스페인의 총리 -
마리아노 라호이
마리아노 라호이는 1981년 국민동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한 스페인의 보수 성향 정치인으로, 장관직과 국민당 대표를 거쳐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스페인 총리를 역임하며 경제 위기, 카탈루냐 독립, 부패 스캔들 등에 직면했다.
2. 생애
페드로 산체스 페레스-카스테혼은 1972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립공연예술음악원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사회보장제도 공무원 출신 변호사였다. 테투안에서 성장했으며, 10대 시절 브레이크댄스 모임에 참여했다.
1993년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에 입당,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뉴욕에서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이후 브뤼셀에서 유럽 의회 관련 업무를 하며 브뤼셀 자유 대학교 등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 카밀로 호세 셀라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베고냐 고메스와 결혼, 두 딸을 두었으며, 무신론자이다. 스페인어 외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한 최초의 스페인 총리이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페드로 산체스는 1972년 2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테투안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국립공연예술음악원 공무원 출신으로, 이후 산업 포장 회사 경영자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회보장제도 공무원 출신 변호사였다.
산체스는 산타 크리스티나 학교에서 공부한 후, 라미로 데 마에스투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에스투디안테스 유소년 시스템에서 농구를 하며 U-21 팀에서 활동했다. 10대 시절에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더블린에 머물기도 했다.
1993년, 1993년 스페인 총선에서 펠리페 곤살레스가 승리한 후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에 입당했다. 1995년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의 레알 콜레히오 우니베르시타리오 마리아 크리스티나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는 뉴욕에서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1998년 브뤼셀로 이동하여 유럽 의회에서 바르바라 뒤르코프 (유럽 의회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또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유엔 고등판무관 카를로스 베스텐도르프의 직원으로도 일했다. 같은 해 브뤼셀 자유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나바라 대학교의 IESE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2002년 오르테가 이 가셋 연구소에서 EU 통화 통합 심화 과정 수료증을 받았다. 2012년 카밀로 호세 셀라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페인어 외에 영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2.2. 정치 경력
1993년 스페인 총선에서 펠리페 곤살레스 총리가 이끄는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이 승리하자, 산체스는 사회노동당에 입당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1998년에는 유럽 의회에서 고문으로 일했고, 코소보 전쟁 기간에는 보스니아의 유엔 고위 대표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2000년에는 사회노동당 제35차 연방 의회 대의원이었다.
2003년 마드리드 시의회 선거에서 PSOE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나 1년 후, PSOE 의원 두 명의 사임으로 보궐선거를 통해 시의회에 합류했다. 2005년에는 갈리시아의 PSOE 자매 정당인 PSdG의 선거 운동을 지원했다. 시의원 재임 중 카밀로 호세 셀라 대학교(UCJC)에서 경제 관련 강의를 하기도 했다.
2009년, 페드로 솔베스(Pedro Solbes)를 대신하여 마드리드 스페인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011년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2013년 크리스티나 나르보나(Cristina Narbona)의 사임으로 다시 하원 의원이 되었다. 2013년 12월, 저서 『신 스페인 경제외교』 출판 기념회에 PSOE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면서 당 지도부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알프레도 페레스 루발카바(Alfredo Pérez Rubalcaba)의 사임 이후, 2014년 6월 PSOE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하여 에두아르도 마디나(Eduardo Madina), 호세 안토니오 페레스 타피아스(José Antonio Pérez Tapias)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7월에는 PSOE 임시 당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고, 야당 대표가 되었다.
산체스는 연방제 확립을 위한 헌법 개정, 진보적인 조세 정책, 복지 국가 확대, 노동 조합 회원 증가 등을 주장하며 정치 쇄신을 강조했다. 펠리페 곤살레스가 제안한 대연정 모델에는 반대했으며, 유럽 인민당의 장-클로드 융커 유럽 집행위원회 위원장 후보 지지에 반대했다.
사무총장 취임 직후, 포데모스의 등장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산체스는 분권 모델 대신 연방 모델을 제시하고, 교육 시스템의 세속화를 강화하는 정책으로 대응했다. 세사르 루에나를 부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2015년 스페인 총선에서 PSOE는 90석을 얻어 제2당이 되었다. 산체스는 국왕으로부터 연정 구성 요청을 받았으나, 의회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 조기 총선이 실시되었다. 2016년 총선에서 PSOE는 85석으로 의석이 감소했다.
2016년 9월, 당내 갈등으로 인해 산체스는 사무총장직을 사임했다. 10월에는 하원 의원직도 사퇴했다. 그러나, 2017년 1월, 다시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 5월 21일에 다시 당대표로 복귀하였다. 2017년 6월 18일, 제39차 당대회에서 산체스는 공식적으로 서기장에 취임했다.
카탈루냐 독립 선언 이후, 스페인 헌법 제155조를 적용하여 카탈루냐 지방 정부의 자치권을 중단시키는 것을 지지했다.
| 선거 | 정당 | 선거구 | 명부 순위 | 결과 |
|---|---|---|---|---|
| 2003년 마드리드 시의회 선거 | PSOE | 24위 (55명 중) | 낙선 | |
| 2007년 마드리드 시의회 선거 | PSOE | 15위 (57명 중) | 당선 | |
| 2008년 스페인 총선 | PSOE | 마드리드 | 21위 (35명 중) | 낙선 |
| 2011년 스페인 총선 | PSOE | 마드리드 | 11위 (36명 중) | 낙선 |
| 2015년 스페인 총선 | PSOE | 마드리드 | 1위 (36명 중) | 당선 |
| 2016년 스페인 총선 | PSOE | 마드리드 | 1위 (36명 중) | 당선 |
| 2019년 4월 스페인 총선 | PSOE | 마드리드 | 1위 (37명 중) | 당선 |
| 2019년 11월 스페인 총선 | PSOE | 마드리드 | 1위 (37명 중) | 당선 |
| 2023년 스페인 총선 | PSOE | 마드리드 | 1위 (37명 중) | 당선 |
3. 스페인의 총리
2018년 6월 2일,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을 이끌던 페드로 산체스는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통해 스페인 총리로 취임했다. 이는 구르텔 사건으로 알려진 국민당의 대규모 부패 스캔들에 대한 판결 이후 이루어졌다. 산체스는 취임 당시 십자가나 성경 없이 취임 선서를 했는데, 이는 스페인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산체스 정부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유해를 죽은 자의 계곡에서 밍고루비오 묘지로 이장하는 등 역사적 기억법 관련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카탈루냐 독립 운동 관련 인사들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여 정치적 화합을 시도했다.
2019년 총선과 2023년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은 연이어 승리했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산체스는 포데모스 등 다른 정당과의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정국을 운영했다. 2023년 스페인 총선거 이후, 산체스는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당들의 지지를 얻어 2023년 11월 17일 의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산체스 정부는 코로나19 범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적인 봉쇄 조치를 시행하고, 경제 회복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는 등 국제 문제에도 관여했다. 특히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가자 지구 내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추진하는 등 독자적인 외교 행보를 보였다.
2024년, 산체스의 아내 베고냐 고메스가 사익 추구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산체스는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3.1. 제1기 (2018-2019)
2018년 5월, 국민당의 대규모 부정부패 사건인 Caso_Gürtel스페인어 (구르텔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내려져, 관련자 29명에게 총 351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를 포함한 국민당 의원들의 증언은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5월 25일, 판결 직후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라호이 총리에 대한 내각 불신임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산체스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6월 1일, 불신임 투표 결과 찬성 180표, 반대 169표, 기권 1표로 산체스의 총리 취임이 확정되었다.
산체스는 야당 대표 시절부터 마리아노 라호이 전 총리의 스페인 역사적 기억법(Ley de Memoria Histórica de España)에 대한 소극적인 정책에 반대해왔다. 그는 라호이 정부가 역사적 기억법에 필요한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총리 취임 후, 산체스는 역사적 기억법을 정부의 주요 과제로 삼고, 내전과 독재 정권 하에서 박해와 폭력을 겪은 사람들을 지원하고, 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제도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왕령 698/2018에 따른 법 개정을 제안했다. 또한 법무부 내에 역사적 기억법 전담 부서를 설치했다.
산체스 정부의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는 벨리데로스 묘지에 안장된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묘 이장이었다. 프랑코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체스 정부는 묘를 파랑헤당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의 기념비가 있는 곳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했다.
2018년 11월, 카탈루냐 주 경찰은 산체스의 묘 이장 계획을 방해하고 자택에 16정의 총기를 소지한 혐의로 카탈루냐 주 타라사에 거주하는 남성을 체포했다. 이 남성은 산체스 총리 암살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2. 제2기 (2020-2023)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은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전보다 의석 수를 늘렸다. 연립 협상은 난항을 겪었고, 2020년 1월 5일 스페인 하원에서 산체스를 총리로 승인할 것인지 묻는 투표에서 찬성 166표, 반대 165표, 기권 18표로 필요한 의회 과반수인 176표에 미치지 못해 부결되었다. 1월 7일 2차 투표에서 찬성 167표, 반대 165표로 간발의 차이로 승인되어 1978년 스페인 민정 복귀 이후 최초로 연립 정부(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가 출범했다.
산체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의회는 2021년 총 1,960억 유로의 중앙 정부 예산을 승인했는데, 이는 스페인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는 카탈루냐 독립 지지 정당인 카탈루냐 공화 좌파의 지지를 얻은 후 가능했다.
카불 함락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아미르국 수립 이후, 산체스는 유럽 연합과 협력한 아프간인들을 위한 중심지로 스페인을 제공했으며, 이들은 여러 국가에 정착하게 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토레호돈 데 아르도스 공군 기지에 임시 난민 캠프를 설치했으며, 유럽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과 유럽 이사회 의장 샤를 미셸 등 유럽 연합 관계자들이 방문했다. 폰데어라이엔은 산체스 정부의 조치를 칭찬하며, "최고의 유럽 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아프간 난민들을 일시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로타와 모론의 군사 기지 사용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며,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국제적 지원을 추구하는 스페인의 리더십"을 칭찬했다.
산체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스페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2022년 8월, 발칸 국가 방문 중 세르비아를 공식 방문했을 때 산체스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스페인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코로나19 범유행 여파로 2020년 3월 13일, 산체스는 스페인 민주주의 역사상 두 번째이자, 장기간에 걸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내각은 전국적인 봉쇄에 합의하여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이동을 금지했고, 물품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기업에 개입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2021년 7월,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복스의 항소를 받아들여, 스페인 헌법 제19조에 명시된 이동의 자유를 억압한 부분에 대해 비상사태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찬성 6표 대 반대 5표).
2021년 6월 22일, 카탈루냐 독립파와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우리올 훈켈라스 등 9명에 대한 사면을 결정했다.
2023년 5월 28일 실시된 통합 지방 선거에서 사회노동당이 패배하자, 다음 날인 29일 총선을 7월 23일에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의 패배가 예상되었지만, 종반에 추격하여 야당인 국민당과 극우 정당 Vox를 합쳐도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고, 사회노동당은 제2당으로 후퇴했지만 개선 전보다 의석 수를 늘려 극우 정당의 정권 진입을 막는 데 성공했다.
3.3. 제3기 (2023-)
2023년 총선에서 사회노동당(PSOE)은 국민당(PP)에 이어 제2당이 되었으나, 좌파 수마르(Sumar) 연합 및 지역 정당들과의 연대를 통해 총리직을 유지했다.
산체스는 2017~2018년 스페인 헌법 위기와 2019~2020년 카탈루냐 시위와 관련된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거나 수사를 받은 카탈루냐 독립 지지 정치인들을 위한 사면법을 수용했으며, 2023년 11월 16일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 총리로 재선출되었다. 이 사면법은 카탈루냐 독립 지지 정당인 함께 카탈루냐를 위해와 카탈루냐 공화 좌파가 2023년 산체스의 취임을 위해 요구한 것으로, 2011년과 2023년 사이에 카탈루냐 독립을 위해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기소된 모든 사람들을 사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산체스의 재선과 사면법 제안은 시위를 촉발했다.
산체스는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판했다. 그는 "유럽과 스페인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레오 바라드카 아일랜드 총리와 함께 그는 유럽 연합 내에서 가장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스페인은 2024년 5월 28일 아일랜드, 노르웨이와 협력하여 1967년에 설정된 국경을 가진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024년 6월 6일 스페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집단 학살 사건에 참여했다. 2024년 7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연설한 산체스는 NATO 회원국들에게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 전쟁에 대한 "이중 잣대"를 피할 것을 촉구하며, "우크라이나에서 국제법 존중을 요구한다면 가자에서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4년 4월, 극우 대리 노조인 마노스 림피아스가 제기한 사익 추구 혐의 의혹으로 그의 아내인 베고냐 고메스에 대한 법원 조사가 진행되자, 산체스는 총리직 사퇴를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언론은 마노스 림피아스가 산체스의 아내에 대해 제기한 혐의가 언론 헤드라인과 가짜 뉴스에 근거한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노조는 이를 인정했다. 결국 산체스는 "괴롭힘과 폭력 작전"에도 불구하고 사퇴하지 않고 총리로서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4. 정책 및 업적
페드로 산체스는 2016년 총선 이후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이 국민당(PP)의 정부 구성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정치적 교착 상태를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수사나 디아스 안달루시아 자치정부 대표를 비롯한 많은 PSOE 인사들은 산체스의 강경한 입장이 당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6년 바스크와 갈리시아 지방 선거에서 PSOE가 부진한 결과를 얻자, 당내 위기가 심화되었고, 결국 산체스는 사무총장직에서 사퇴했다.
PSOE 관리위원회는 마리아노 라호이의 총리 재선을 허용하기 위해 기권하기로 결정했지만, 산체스는 이를 거부하며 하원 의원직을 사퇴하고 차기 지도자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15명의 PSOE 국회의원들도 당의 규율을 어기고 라호이에게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라호이는 기권표만으로도 총리로 임명될 수 있었다.
산체스는 이후 스페인 전역을 돌며 당원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고, 2017년 당원 투표에서 50.2%의 득표율로 사무총장에 재선되었다. 그는 야당 대표로서 2017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에 반대하며 카탈루냐에 대한 중앙 정부의 직접 통치를 지지했다.
2018년 구르텔 사건으로 라호이 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산체스는 불신임안을 제출했고, 다른 정당들의 지지를 얻어 가결시켰다. 2018년 6월 1일, 산체스는 스페인 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선서 시 스페인 헌법에만 충성을 맹세하며, 성경이나 십자가 없이 선서한 최초의 총리가 되었다.
산체스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유해를 죽은 자의 계곡에서 이장하고, 카탈루냐 독립 운동 지도자들에게 부분적인 사면을 허용하는 등 과거사 청산과 사회 통합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유럽 통합을 적극 지지하며 국제 무대에서 스페인의 역할을 강화하려 노력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판매를 지속하고,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을 지원하는 등 논란이 있는 결정도 내렸다.
산체스는 사회자유주의를 표방하며 사회민주주의 재건과 신자유주의 종식을 주장했다. 그는 매춘 폐지를 옹호하기도 한다.
4.1. 국내 정책
산체스는 2018년 6월 총리로 취임한 이후, 국내 정책에서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다. 우선 노동 시장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남녀 동일 임금을 보장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과거사 청산에도 힘을 기울였다. 2018년 6월 18일, 산체스 정부는 전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유해를 죽은 자의 계곡에서 이장할 의향을 발표했다. 2019년 10월 24일, 프랑코의 유해는 엘 파르도의 밍고루비오 묘지에 재매장되었다. 이와 함께 역사적 기억법을 강화하여 과거사 청산 작업을 진행했다.
카탈루냐 독립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다. 2019년 카탈루냐 독립 지도자 재판 이후 사면 가능성을 부인하며 유죄 판결을 전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선언했지만, 2021년 결국 대부분의 유죄 판결자들에게 부분적인 사면을 허용했다. 산체스는 사면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23년 총선 이후에는 카탈루냐의 제도적, 정치적, 사회적 정상화를 위한 사면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코로나19 범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봉쇄 조치를 시행하고,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2020년 3월 13일, 스페인 역사상 두 번째이자 장기간에 걸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국적인 봉쇄 조치에 합의했다.
4.2. 대외 정책
산체스는 유럽 통합을 지지하며, 유럽 연합(EU) 내에서 스페인의 역할을 강화하고자 했다. 2019년 1월 16일 유럽 의회 연설에서 EU가 보호받고 세계적 행위자로 변모해야 하며, 강력한 통화 연합을 갖춘 보다 사회적인 유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의 적은 "유럽 연합 내부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두 번째 정부에서는 EU 독립 재정 기관 네트워크 전 의장인 호세 루이스 에스크리바를 사회보장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장관들의 친유럽 성향을 강화했다. 2020년 6월, 산체스 정부는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인 나디아 칼비뇨를 차기 유로그룹 의장으로 제안했다.
2018년 9월, 마르가리타 로블레스 국방장관은 예멘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개입과 관련된 우려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레이저 유도 폭탄 판매를 취소했다. 그러나 산체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1813 규모의 5척의 코르벳함 계약에 크게 의존하는 카디스 만의 조선소 일자리 보호를 돕겠다는 수사나 디아스에게 한 약속 때문에 판매를 진행하라고 명령했다. 2018년 10월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산체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판매 지속 결정을 옹호하고 무기 산업의 일자리 보호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카불 함락 이후, 산체스는 유럽 연합과 협력한 아프간인들을 위한 중심지로 스페인을 제공했으며, 이들은 나중에 여러 국가에 정착하게 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토레호돈 데 아르도스 공군 기지에 임시 난민 캠프를 설치했으며, 유럽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과 유럽 이사회 의장 샤를 미셸을 포함한 유럽 연합 관계자들이 방문했다. 폰데어라이엔은 산체스 정부의 이러한 조치를 칭찬하며, 스페인의 행동은 "최고의 유럽 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아프간 난민들을 일시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로타와 모론의 군사 기지 사용을 허가해 줄 것을 산체스에게 요청했으며,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국제적 지원을 추구하는 스페인의 리더십"을 칭찬했다.
산체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스페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2022년 8월, 발칸 국가 방문의 일환으로 세르비아를 공식 방문하는 동안 산체스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스페인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산체스는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판했다. 그는 "유럽과 스페인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일랜드의 레오 바라드카와 함께 그는 유럽 연합 내에서 가장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스페인은 2024년 5월 28일 아일랜드와 노르웨이와 협력하여 1967년에 설정된 국경을 가진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024년 6월 6일 스페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집단 학살 사건에 참여했다. 2024년 7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연설한 산체스는 NATO 회원국들에게 우크라이나와 가자의 전쟁에 대한 "이중 잣대"를 피할 것을 촉구하며, "우크라이나에서 국제법 존중을 요구한다면 가자에서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4.3. 한국과의 관계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의 스페인 국빈 방문 시 정상회담을 가졌고, 2022년에는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를 통해 양국 간 협력을 강화했다.
5. 논란
페드로 산체스는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2018년에는 산체스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는 그의 저서 La nueva diplomacia económica española(스페인의 새로운 경제 외교)가 다른 저작물을 표절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되어 박사 논문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산체스는 저서 Manual de resistencia(저항의 매뉴얼)에서 이레네 로사노와의 협업을 밝히며 표절 의혹을 반박했다.
카탈루냐 독립 문제와 관련하여, 2019년 카탈루냐 독립 지도자 재판 이후 사면 불가 입장을 밝혔으나 2021년 부분적인 사면을 허용했다. 2023년 총선 이후에는 카탈루냐 독립 지지 정당들의 요구에 따라 2011년에서 2023년 사이 카탈루냐 독립 운동 관련자들을 사면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2024년에는 부인 베고냐 고메스가 부당 이익을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법원 조사가 시작되었다. 산체스는 이를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고 사퇴를 고려하기도 했으나, 결국 총리직을 유지하며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을 선언했다. 이후 고메스는 사익 추구 및 기업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며, 진술 거부권을 행사했다.
5.1. 박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
2018년 한 신문은 그의 저서 La nueva diplomacia económica española(스페인의 새로운 경제 외교)가 다른 6명의 저작물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혹은 그의 박사 논문으로까지 확대되었고, 저자 자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Manual de resistencia(저항의 매뉴얼)의 경우, 산체스가 저자로 되어 있지만, 산체스 자신이 서문에서 "이 책은 작가이자 사상가이자 정치인이자 친구인 이레네 로사노와의 긴 대화 시간의 결과물입니다. 그녀는 녹음 내용을 문학적으로 형식을 갖추도록 도왔고,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라고 밝혀, 해당 주장이 허위임을 알 수 있다. 해당 작가는 "제가 책을 만들었지만, 저자는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5.2. 카탈루냐 독립 운동 관련자 사면 논란
2019년 카탈루냐 독립 지도자 재판 이후, 산체스는 정부의 판결 지지 입장을 확인하고 사면 가능성을 부인하며 유죄 판결을 전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21년 산체스는 결국 대부분의 유죄 판결자들에게 부분적인 사면을 허용했고, 사면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대변인 마리아 헤수스 몬테로는 "정부는 우리나라, 공존, 안정, 발전에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카탈루냐 갈등은 "대화, 공존, 화합의 능력이 결코 잃어서는 안 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 총선 이후, 하원은 카탈루냐의 제도적, 정치적, 사회적 정상화를 위한 사면에 관한 2024년 유기법 1/2024를 통과시켰다. 이는 2023년 산체스의 총리 취임을 위해 카탈루냐 독립 지지 정당인 함께 카탈루냐를 위해와 카탈루냐 공화 좌파가 요구한 것으로, 2011년과 2023년 사이에 카탈루냐 독립을 위해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기소된 모든 사람들을 사면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1977년 사면법 46/1977 이후 두 번째 사면법이 되었다.
5.3. 부인 베고냐 고메스 관련 의혹
2024년 4월, 극우 성향의 노조인 마노스 림피아스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부인 베고냐 고메스가 부당하게 이익을 얻으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산체스 총리는 이를 우익 언론이 자신을 흠집 내려는 공세라고 비판하며, 총리직 사퇴를 고려하기도 했다.
몇몇 언론은 마노스 림피아스가 제기한 혐의가 언론 헤드라인과 가짜 뉴스에 근거한 것이라고 지적했고, 노조 측도 이를 인정했다. 2024년 4월, elDiario.es, El País, La Vanguardia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2014년 마리아노 라호이 정부 시절 국민당(PP)이 산체스와 고메스의 친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마노스 림피아스를 이용해 형사 고소를 제기하여 정치적으로 제거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산체스 총리는 2024년 4월 29일, "괴롭힘과 폭력 작전"에도 불구하고 사퇴하지 않고 총리로서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노스 림피아스의 고발로 인해 고메스는 사익 추구 및 기업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으며, 판사 후안 카를로스 페이나도는 당초 2024년 7월 5일 증언을 하라고 소환했지만, 이후 7월 19일로 연기했다. 그녀는 진술 거부권을 행사했다.
2024년 7월 15일, 사업가 후안 카를로스 바라베스는 베고냐 고메스가 총리 공식 관저이자 직장인 몬클로아 궁전에서 최대 8번 그를 만났다고 증언했다. 페드로 산체스도 이 회의에 두 번 참석했다고 알려졌지만, 그중 한 번은 간단한 "인사"였고 다른 한 번은 혁신적인 사업가들과의 회의였다. 7월 22일, 판사는 페드로 산체스에게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소환했지만, 그는 조사 대상인 사람의 남편으로서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행사했다.
복스(Vox)는 페드로 산체스와 사법부 장관이 아내를 조사하는 판사에 맞서 검찰청을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2024년 11월 현재 대법원은 산체스와 그의 아내에 대한 조사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복스, Hazte Oir, Iustitia Europa의 고소를 누적했다.
6.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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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베고냐 고메스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다. 민사 결혼식은 트리니다드 히메네스가 주례를 보았다. 무신론자이다.
스페인어 외에도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다. 마리아노 라호이 등 전임 총리들은 외국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산체스는 재임 중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첫 번째 스페인 총리이다. (전 총리인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는 퇴임 후 영어에 능통해졌다.)
21세까지 마드리드의 농구 클럽인 CB 에스투디안테스에서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했으며, 정치인이 된 후에는 에스투디안테스 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