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각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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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천 각산산성은 경상남도 사천시 삼천포항 동북쪽에 위치한 석성으로, 백제 무왕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시대에는 봉화대와 구라량영의 본거지로 활용되었으며,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는 요새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사천시의 문화 유적으로 관리되며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근에는 사천 각산봉수대, 남해 대방산 봉수대 등이 있다.

사천 각산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사천 각산산성
사천 각산산성
이름사천 각산산성
한자 표기泗川 角山山城
유형문화재자료
지정 번호95
지정일1983년 12월 20일
해지 여부해당 없음
주소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 산40번지
시대미상
소유자사천시
관리자사천시
면적미상
수량일원
전승지미상
전승자미상
설명미상
웹사이트미상
문화재청 ID31,0095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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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 각산 정상에는 옛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있으며, 서쪽 등성이에는 각산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 시대인 605년 무왕 때 처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원종(재위 1259년~1274년) 대에 성과 봉수대가 정비되었고, 삼별초의 난 평정 과정에서도 활용되었다. 또한 1350년(공민왕 9년) 왜구의 침입 당시 지역 주민들이 이곳에서 항전하기도 하였다. 고려 말 이후로는 주로 봉수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남쪽의 대방산 봉수대, 서쪽의 우산 봉수대, 북쪽의 안점 봉수대와 연결되어 통신망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2.1. 백제 시대

605년에 백제 제30대 무왕이 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서기는 6세기 중엽에 백제가 섬진강을 건너 진주 지역을 압박하고 있었음을 전하며,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주가 본래 백제의 거열성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정황을 통해 각산산성은 백제가 가야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으로 삼기 위해 쌓았던 산성으로 추정된다.

2.2. 고려 시대

고려 원종(재위 1259년~1274년) 때 각산산성과 봉수대가 만들어졌으며, 줄항터에는 구라량영의 본거지를 두어 이곳을 지켰다. 또한 고려 왕조가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도 이 산성이 이용되었다.

이후 고려 말에 사량도로 영(營)을 옮기면서 이곳의 방비가 허술해지자 왜구가 침입하여 성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1350년(공민왕 9년)에는 왜구가 대대적으로 침략하여 각산 마을이 불탔는데, 이때 지역 주민들은 각산산성으로 피신하여 돌을 던지며 항전하였다.

2.3. 조선 시대

고려 말 이후 각산은 봉화대가 자리하는 곳이 되었다. 이곳의 봉수는 남쪽으로 대방산 봉수대, 서쪽으로 곤양의 우산 봉수대, 북쪽으로 사천 안점 봉수대와 연결되어 중요한 통신 역할을 수행했다.

3. 구조

사천시 각산의 8부 능선에는 돌로 쌓은 산성인 각산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약 242m 길이의 성벽이 남아 있으며, 남쪽 성문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성벽 대부분은 복원된 것이다. 산 정상에는 옛 통신수단인 각산봉수대가 위치해 있다. 이 봉수대는 남쪽으로 남해 대방산 봉수대, 서쪽으로 사천 우산 봉수대, 북쪽으로 사천 안점산 봉수대와 연결되어 신호를 주고받는 역할을 했다.

3.1. 각산산성

삼천포항 동북쪽을 병풍처럼 두른 각산의 8부 능선에 있는 석성이다. 남해 바다를 굽어 볼 수 있는 위치에 돌로 쌓은 성벽 242m 가량이 남아 있다. 남쪽 성문은 원형대로 남아 있으나 성벽의 대부분은 허물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605년에 백제 제30대 무왕이 축성한 것으로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주가 본래 백제의 거열성이었음을 전하고, 일본서기는 6세기 중엽에 백제가 섬진강을 건너 진주지역을 압박하고 있음을 전한다. 백제가 가야 진출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쌓았던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왕조가 삼별초의 난을 평정할 때도 이용되었고, 1350년(공민왕 9년)에 왜구가 대대적으로 침략하여 각산 마을이 불탔을 때 지역의 주민들이 이 성에서 돌팔매로 항전하기도 하였다.

3.2. 각산봉수대

경상남도 사천시 대방동 각산 정상에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해 소식을 전하는 옛 통신수단인 봉화대가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고려 원종(재위 1259년 ~ 1274년) 때 성과 봉화대를 만들었으며, 당시 줄항터에는 구라량영의 본거지를 두어 이곳을 지켰다. 고려 말에 사량도로 영(營)을 옮긴 후 이곳이 무방비 상태가 되자 왜구가 침입하여 성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 후 각산은 봉화대가 자리하는 곳이 되었으며, 이곳의 봉수는 남쪽으로 대방산 봉수대, 서쪽으로 곤양의 우산 봉수대, 북쪽으로 안점 봉수대와 연결되어 신호를 주고받았다.

4. 관련 유적

각산 정상에는 옛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이 봉수대는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때 각산산성과 함께 만들어졌다. 당시 줄항터에는 구라량영의 본거지를 두어 이곳을 지켰으나, 고려 말에 사량도로 영을 옮기면서 방비가 허술해져 왜구의 침입을 받기도 했다. 이후 각산 봉수대는 남쪽으로 남해 대방산 봉수대, 서쪽으로 사천 우산 봉수대, 북쪽으로 사천 안점산 봉수대와 연결되어 통신망의 일부로 기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