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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미촌 (군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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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토미촌은 군마현에 위치했던 촌으로, 1889년에 성립되어 1955년 무로타정과 합병하여 하루나정이 되었다. 카라스 강이 흐르고 세키손 산이 위치하는 지리적 특징을 가지며, 사토미 씨와 관련된 지명 유래 설화가 전해진다. 사토미 촌에는 고묘지, 조후쿠지, 센푸쿠지, 도코지 등의 사찰과 여러 신사가 있으며, 사토미성터, 키지고 성터, 가미사토미성터와 같은 유적 및 문화재가 존재한다. 특히, 군 지정 천연기념물인 "사토미의 큰 배"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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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미촌 (군마현)
개요
기본 정보
폐지일1955년 2월 1일
폐지 사유신설 합병
폐지 상세무로다정, 사토미촌하루나정
현재의 자치체다카사키시
요미가나さとみむら (사토미무라)
자치체 명칭里見村 (사토미촌)
구분
도도부현군마현
우스이군
면적17.53
인구6327
인구 조사 시점1950년
인접 자치체다카사키시
군마군구루마촌
무로다정
구라타촌
우스이군이타바나정
아키마촌
가라스부치촌
소재지우스이군 사토미촌

2. 지리

사토미촌 지역은 산악 지형을 특징으로 하며, 주요 산으로는 석존산이 있다. 또한 까마귀 강이 이 지역을 흐른다.

2. 1. 산악


  • 석존산

2. 2. 하천


  • 까마귀 강

3. 지명의 유래

"사토미촌지"(里見村誌)에 따르면, '사토미'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진다. 일본 무존이 동쪽 정벌 중 마을을 발견했다는 전설이나, 도요키이리히코노미코토의 후손인 '사타노오미'라는 인물과 관련된 설 등이 있으나, 이는 확실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전승으로 여겨진다. "사토미촌지"는 중세 시대 이 지역의 지토였던 사토미 씨 가문과의 관련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즉, 사토미 씨 가문에서 지명이 유래했거나, 반대로 이 지역에 살면서 사토미라는 성씨를 사용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주요하게 보고 있다.

3. 1. 전설에 따른 유래

"사토미촌지"에 따르면, "사토미고"의 유래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 게이코 천황 26년경(97년), 동쪽 나라를 평정한 일본 무존 일행이 아즈마 산의 봉우리들을 따라 며칠간 힘겹게 숲 지대를 지나갔다. 현재의 사토미 연산 봉우리에 도착했을 때, 동쪽 멀리 민가와 밭이 보이자 일행은 "작은 마을이 보인다(里が見える, 사토가 미에루)"라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사토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 도요키이리히코노미코토의 자손 중에 "사타노오미"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이 땅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이름 "사타노오미"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토미"로 변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사토미촌지"는 이 두 가지 설 모두 확실한 근거가 없는 전승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중세 시대 이 지역의 지토였던 사토미 씨의 이름에서 유래했거나, 반대로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사토미라는 성씨를 사용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3. 2. 사토미 씨와의 관련성

'사토미촌지'에 따르면, '사토미고'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 하나는 게이코 천황 26년(97년)경, 동쪽 지역을 평정한 일본 무존 일행이 아즈마 산 봉우리를 따라 힘겹게 이동하던 중 현재의 사토미 연산 봉우리에서 동쪽 멀리 민가와 밭을 보고 "작은 마을(里)이 보인다"라고 외치며 기뻐했고, 이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사토미'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다.
  • 다른 하나는 도요키이리히코노미코토의 후손 중 '사타노오미'라는 인물이 이 지역에 거주했는데, 그의 이름 '사타노오미'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토미'로 변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사토미촌지'는 이 두 가지 설 모두 확실한 근거가 없는 전승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중세 시대 이 지역의 지토(地頭)였던 사토미 씨(里見氏)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즉, 사토미 씨 가문에서 지명이 유래했거나, 반대로 이 지역에 살면서 사토미라는 성씨를 사용하게 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4. 역사

1889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에 따라 가미사토미 촌, 나카사토미 촌, 시모사토미 촌, 가미오시마 촌이 합병하여 군마현 우스이군에 '''사토미 촌'''이 성립되었다. 촌 성립 이후, 촌 사무소의 신축과 이전이 있었으며, 우편, 전보, 전화 등 통신 시설이 점차 도입되었다. 1918년에는 가라스가와 수력 전기 주식회사의 사토미 발전소가 개업했고, 이듬해에는 사토미 궤도 주식회사가 설립되는 등 사회 기반 시설이 확충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와 쇼와 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큰 서리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1910년1935년에는 대규모 수해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1947년에는 신학제에 따라 사토미 중학교가 창립되었고, 1954년에는 "사토미의 큰 배나무"가 현 지정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55년 2월 1일, 군마군 무로타정과 합병하여 군마군 하루나정이 성립됨에 따라 사토미 촌은 폐지되었다.

4. 1. 근대 이전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1889년 이전의 사토미 지역 역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4. 2. 정촌제 시행 이후

연도주요 사건
1889년 (메이지 22년) 4월 1일정촌제 시행에 따라 가미사토미 촌, 나카사토미 촌, 시모사토미 촌, 가미오시마 촌이 합병하여 군마현 우스이군 사토미 촌이 성립되었다.
1890년 (메이지 23년)사토미 촌 사무소 신축
1892년 (메이지 25년)가미야마 시모마치에서 화재 발생 (전소 7채, 반소 2채)
1893년 (메이지 26년)큰 서리 피해 발생. 우스이군 전체적으로 뽕나무 밭의 90%가 피해를 입어 양잠 농가에 구원금이 지급되었다.
1896년 (메이지 29년)다시 서리 피해 발생. 뽕나무 밭 약 81.1ha (81정 8단보)가 피해를 입었다.
1898년 (메이지 31년)네기시에서 대화재 발생 (전소 11채)
1900년 (메이지 33년)사토미 촌 사무소 이전
1909년 (메이지 42년)무로타 우편국에서 전보 취급 시작
1910년 (메이지 43년) 8월간토 대수해로 큰 피해 발생. 사망 및 행방불명 11명, 가옥 유실 25호, 가옥 붕괴 102호.
1918년 (다이쇼 7년)가라스가와 수력 전기 주식회사의 사토미 발전소 개업
1919년 (다이쇼 8년)사토미 궤도 주식회사 설립
1922년 (다이쇼 11년)가미야마 지역에 전화 가설 (교환국은 무로타 우편국)
1927년 (쇼와 2년)서리 피해 발생. 사토미 촌 내 뽕나무 밭의 약 70%가 피해를 입었다.
1933년 (쇼와 8년) 4월 1일사토미 우편 취급소 설치
1935년 (쇼와 10년)가미야마 정(현 가미사토미 정) 뒷길 도로 준공
1935년 (쇼와 10년) 9월대수해 발생 (토석류). 사망 및 행방불명 8명, 가옥 유실 23호, 가옥 붕괴 135호.
1937년 (쇼와 12년)사토미 촌 사무소 청사 신축 및 이전 (5월)
1940년 (쇼와 15년) 12월 1일사토미 우편 취급소가 사토미 우편국으로 승격
1945년 (쇼와 20년)충령탑 건설
1947년 (쇼와 22년) 4월 10일신학제에 따라 사토미 중학교 창립
1948년 (쇼와 23년)사토미 중학교 교사 신축
1950년 (쇼와 25년)시모사토미 우편 취급소 설치
1954년 (쇼와 29년)"사토미의 큰 배나무"가 현 지정 천연기념물로 지정됨
1955년 (쇼와 30년) 2월 1일군마군 무로타정과 합병하여 군마군 하루나정이 성립됨에 따라 사토미 촌은 폐지되었다.


4. 3. 무로타정과의 합병

1955년 2월 1일, 군마군 무로타정과 합병하여 군마군 하루나정이 되었다.

5. 신사 및 불각

사토미 지역에는 지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여러 신사불교 사찰(불각)들이 위치해 있다. 이들 종교 시설은 오랜 시간 동안 지역 주민들의 신앙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각기 독특한 유래와 특징을 지니고 있다.

5. 1. 신사


  • 가스가 신사 (다카사키시)
  • 아사마 신사
  • 고미 신사
  • 만교 신사

5. 2. 불각


  • 고묘지
  • 조후쿠지
  • 센푸쿠지
  • 도코지

6. 유적 및 문화재

사토미촌 지역에는 선사 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유적이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나카사토미 정의 구릉 지대에 분포하는 고분군, 닛타 씨와 관련된 사토미성터, 다케다 신겐과의 격전지였던 키지고 성터, 가미사토미 번의 흔적이 남은 가미사토미성터 등 여러 성터가 존재한다. 또한, 과거 번성했던 사찰들의 흔적인 폐사지와 함께, 지역 호족의 거주지로 추정되는 이세야마의 저택터도 발견되었다. 이 외에도 가미사토미 번 설치를 기념하며 시작된 고야마 삼정의 야타이나 기우제와 관련된 나카사토미 사자춤(춤을 출 때 비가 내렸다는 유래로 '아메지시'라고도 불린다)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문화재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6. 1. 고분

나카사토미 정(町)의 구릉 지대에 60여 개의 고분이 흩어져 있다.

6. 2. 성터


  • '''사토미성터''': 사토미 마을 오아자 시모사토미 코아자 코조에 위치한다. 닛타 요시사다를 배출한 닛타 씨 가문의 사토미 요시토시가 거주했던 곳이다.
  • '''키지고 성터''' (성산): 오아자 나카사토미 오노케야마 산 정상에 위치한다. 미노와성의 고즈케 나가노씨에 속해 있었으나, 에이로쿠 연간(1558년 ~ 1570년)에 다케다 신겐고즈케국 공략 당시 격렬한 전투 끝에 함락되었고 이후 폐성되었다.
  • '''가미사토미성터''' (고야마 진야): 간엔 원년(1748년) 8월부터 메이와 4년(1767년) 윤9월 28일까지 가미사토미 번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 '''이세야마의 저택터''': 가미사토미 아자 이세야마 1583번지에 위치하며, 현재는 밭으로 남아있다. "이세야마성터"라고도 불리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면적은 약 3300m2이며, 성터였다는 설과 조후쿠지라는 절이 이전하기 전의 터였다는 설이 있다. 가도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 호족의 거주지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6. 3. 폐사지

사토미촌에는 다음과 같은 폐사지가 존재한다.

  • 안요지(安養寺): 현재 가미오시마 공회당 자리에 위치했던 절이다. 신기 진언종 소속이었으며, 본존은 아미타여래였다. 메이지 23년(1890년) 여름, 낙뢰로 인한 화재로 전소되었다.
  • 만푸쿠지(満福寺): 시모사토미 아자 미야야토에 위치했던 절이다. 천태종 소속으로 코묘지의 말사(末寺, 본사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였으며, 본존은 대일여래였다.
  • 류몬지(竜門寺): 가미사토미 고야마 정 미나미우라에 위치했던 절이다. 황벽종 소속이었으며, 본존은 관세음보살이었다. 가미사토미 번 성주의 보리사(菩提寺, 조상의 명복을 비는 절)였다고 전해진다.
  • 후몬지(普門寺): 가미사토미 고야마 가미마치 키타우라에 위치했던 절이다. 정식 명칭은 시겐잔 관음원 후몬지(慈眼山 観音院 普門寺)이며, 천태종 소속이었다. 본존은 관세음보살이었고, 간에이 6년(1629년) 1월 30일에 창립되었다.

6. 4. 기타 유적


  • 이세야마의 저택터(가미사토미 아자 이세야마 1583번지): 현재는 밭으로 남아 있으며, "이세야마성터"라고도 불리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면적은 약 1000평(3306m2) 정도로, 성터였다는 설과 조후쿠지라는 절이 이전하기 전의 터였다는 설, 또는 가도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었던 호족의 거주지였다는 설 등이 있다.
  • 고야마 삼정의 야타이: 1748년 가미사토미 번이 가미사토미 고야마 삼정에 설치되어 성하 마을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야마카사(山笠)를 끌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야마카사는 각 마을마다 1대씩, 총 3대가 있다.
  • 나카사토미 사자춤: 과거 큰 가뭄이 들었을 때, 하루나 신사에 이 춤을 바치며 기우제를 지내자 마을로 돌아가기도 전에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아메지시(가미카미와라다이라): 이 사자춤을 출 때면 항상 도중에 비가 내렸다고 하여 '아메지시'(雨獅子, 비 사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7. 군 지정 천연기념물


  • '''사토미의 큰 배''': 카미사토미 자 카미고(上里見 字 上郷)에 위치한 배나무이다. 수령은 약 200년으로 추정되며, 뿌리 둘레는 11척, 나무 높이는 40척이다. 가지는 동서 방향으로 36척, 남북 방향으로 21척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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