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아니코 대교
1. 개요
산후아니코 대교는 필리핀 레이테 섬의 타클로반 시와 사마르 섬의 산타 리타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1969년 건설이 시작되어 1973년에 완공되었으며, 일본 정부 개발 원조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건설 초기에는 경제적 타당성 논란이 있었으나, 이후 사마르와 레이테의 경제 활동에 기여하고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2022년 LED 조명 프로젝트를 통해 야간 경관을 개선했다. 이 다리는 범-필리핀 고속도로의 일부이며,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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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식 명칭 | 산후아니코 다리 |
|---|---|
| 다른 이름 | 필리핀-일본 우정 고속도로 다리 이전 명칭: 마르코스 다리 |
| 위치 | 산타리타, 사마르와 타클로반, 레이테 연결 |
| 종류 | 아치형 트러스교 |
|---|---|
| 차선 | 마르할리카 고속도로 2차선, 보행자 도로 |
| 경간 수 | 43개 |
| 주요 경간 | 192m |
| 총 길이 | 2164m |
| 너비 | 14m |
| 관리 | 필리핀 공공사업도로부 |
|---|---|
| 건설사 | 건설 개발 공사 |
| 시작 | 1969년 |
| 완공 | 1973년 |
| 개통 | 1973년 7월 2일 |
| 건설 비용 | 미화 2200만 달러 (필리핀 페소 1억 5400만 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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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완공된 교량 -
영동대교
영동대교는 서울 성동구와 강남구를 잇는 다리로, 강남 개발 시기 '영동'에서 유래되었으며 강변북로와 연결되어 강북과 강남 동부 지역을 잇는 간선도로이자 국도 제47호선의 일부이고, 문화적으로도 의미를 지닌다. -
1973년 완공된 교량 -
남해대교
남해대교는 1973년 준공된 현수교로, 일제강점기 피해 보상 자금으로 건설되었으며, 개통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고, 남해군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트러스교 -
한강철교
한강철교는 경부선 등 주요 철도 노선을 잇는 서울 한강의 철교로, A, B, C, D선의 4개 교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철도 역사와 전쟁의 역사, 그리고 산업 발전의 상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
트러스교 -
당산철교
당산철교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한강 횡단 교량으로, 개통 후 안전 문제로 인해 재시공을 거쳐 재개통되었으며 현재는 지속적인 관리와 보수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2. 역사
산후아니코 대교는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건설되어 1973년 그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생일에 맞춰 개통되었다. 건설 초기에는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비판과 함께 "백색 코끼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레이테섬과 사마르섬 간의 교통과 경제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지역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자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후 태풍 하이옌으로 인한 피해 복구, 야간 LED 조명 설치 등 여러 변화를 겪었다.
2.1. 개발
강철 구조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직선이 아닌 완만한 S자 모양으로 산후아니코 해협을 가로지른다. 다리 기둥 사이의 경간(기둥 사이 간격)은 총 43개이며, 중앙부는 트러스 교량 형태로 되어 있다. 다리의 가장 높은 지점은 해수면으로부터 41m 높이에 위치한다. 다리는 레이테섬의 중심 도시인 타크로반과 사마르섬의 산타 리타 마을을 연결한다.
산후아니코 대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뛰어나며, 소용돌이가 많은 산후아니코 해협과 그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섬들 사이를 구불구불하게 지나가는 다리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타크로반 시 중심에서는 지프니, 버스, 모터 택시(일본제 트럭 화물칸을 좌석으로 개조한 차량), 자가용 등을 이용해 약 10분이면 다리에 도착할 수 있다.
이 다리는 1976년 완공된 칸다바 비아덕트(Candaba Viaduct)에 이어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이다. (2015년 기준)
2.1.1. 구상
"필리핀-일본 우호 고속도로 다리" 건설은 당시 필리핀 대통령이었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행정부가 1969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시작한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는 대외 차관으로 자금을 조달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는 목적에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구상될 당시에는 레이테섬과 사마르섬 사이의 교통량이 많지 않았다. 두 섬 모두 비교적 개발이 덜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리 건설은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이자가 발생하는 대외 차관을 통해 건설이 추진되었다.
2.1.2. 재정
"필리핀-일본 우호 고속도로 다리"는 당시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행정부가 1969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시작한 대규모 대외 차관 인프라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프로젝트 구상 당시 레이테와 사마르 섬 사이의 교통량은 두 섬이 비교적 덜 개발되었기 때문에 많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다리 건설은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자가 붙는 대외 차관으로 자금을 조달하여 건설이 진행되었다.
필리핀-일본 우호 고속도로 프로젝트는 1960년대 중반, 도로 개발 장비 구매를 위한 일본 수출입 은행의 25 대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는 이 사업을 확장하여 레이테 섬과 사마르 섬 사이의 교량 건설과 롤온/롤오프 페리 같은 다양한 해상 교통 프로젝트를 포함하도록 요청했다.
다리 건설 비용은 22 (1970년대 당시 약 154)였으며, 이는 현재의 일본 국제 협력 기구(JICA)의 전신인 일본 해외 기술 협력 기구(OTCA)로부터 받은 일본 정부 개발 원조(ODA) 차관을 통해 조달되었다. 이는 일본이 JICA를 통해 필리핀에 제공한 최초의 정부 개발 원조였다.
2.1.3. 계약 체결
필리핀 정부는 공공 도로부를 통해 산후아니코 대교 건설 공사를 마르코스 대통령의 측근인 로돌포 쿠엔카가 설립한 회사인 필리핀 국립 건설 공사(Philippine National Construction Corporation, CDCP의 현재 이름)에 계약을 체결했다.
2.1.4. 건설
교량 건설은 1969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시작되었다. 4년 뒤인 1973년에 완공되었으며, 당시 필리핀 영부인이자 레이테섬 출신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생일에 맞춰 같은 해 7월 2일에 개통되었다.
이 다리의 건설은 마르코스 부부의 소위 "건축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다른 사회 기반 시설 프로젝트들과 유사한 미학을 보여준다. 건축 역사가 제라드 리코는 이를 "위대함의 특징으로서 건물 건설에 대한 집착과 강박"이라고 묘사하며, 당시 정권의 과시적인 성격을 지적했다.
2.2. 건설 이후
전 국가 경제 개발청 부국장 루페르토 알론조에 따르면, 산후아니코 대교는 건설 초기 유지 보수 비용이 많이 들고 처분하기 어려운 "쓸모없고 비싼 소유물"이라는 의미의 백색 코끼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건설 비용에 비해 일일 평균 교통량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리 건설은 마르코스 정권의 과시적인 건설 사업, 이른바 "건축 콤플렉스"의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리가 건설되고 몇 년이 지나면서, 사마르와 레이테 간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져 다리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고, 지역의 상징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2013년 11월, 필리핀 현지에서 '슈퍼 태풍 욜란다'로 불린 태풍 하이옌으로 인해 다리가 일부 손상되었으나, 한 달 만에 신속히 복구되어 통행이 재개되었다.
사마르 주 정부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다리에 특정 시간에 맞춰 색이 변하는 LED 조명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80 규모의 이 조명 프로젝트는 2018년 1월 관광 인프라 및 기업 구역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시행 과정에서 지연이 있었으나, 2019년 7월 26일 기공식이 열렸고, 당초 2019년 말 또는 2020년 초 완공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완공은 더 늦어졌고, 2022년 10월 20일에 마침내 첫 점등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3. 특징
산후아니코 대교는 레이테와 사마르 섬을 연결하며, 레이테의 타클로반 시와 사마르의 산타 리타 마을을 잇는다. 다리는 산후아니코 해협을 지난다. 총 길이는 2164m이며, 이는 세부-코르도바 연결 고속도로와 팡길 만 대교에 이어 필리핀에서 해수를 가로지르는 세 번째로 긴 다리에 해당한다.
다리는 강철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직선이 아닌 완만한 S자 모양으로 해협을 가로지른다. 다리 기둥 사이의 간격인 경간은 총 43개이며, 주요 경간의 길이는 192m이다. 중앙부는 트러스 구조로 되어 있으며, 다리의 가장 높은 지점은 해수면으로부터 41m이다.
다리의 양쪽 끝부분인 교대는 강철 H파일 위에 세워졌고, 교각은 Prepakt 공법을 사용하여 건설된 암반 기초 위에 단일 원통형 기둥과 끝이 좁아지는 캔틸레버 형태의 코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다리는 범-필리핀 고속도로 (마할리카 고속도로)의 일부로, 루손, 사마르, 레이테, 민다나오를 연결하는 도로, 교량, 해상 노선 네트워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고속도로는 필리핀 교통망의 핵심 역할을 하기 위해 1965년에 제안되어 건설되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산후아니코 해협의 경치가 뛰어나며, 여러 섬 사이를 굽이치는 다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타클로반 시 중심에서 다리까지는 자동차로 약 10분 정도 소요된다.
4. 경제적 의의
산후아니코 대교는 사마르섬과 레이테섬을 연결하여 관광 및 경제 모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에서도 타클로반의 주요 관광 명소로 간주하고 있다.
5. 대중문화
산후아니코 대교는 필리핀의 주요 건축물로서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소재가 되었다. 특히 다리 건설과 관련된 도시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여러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5.1. 영화 및 문학
필리핀의 배우이자 스턴트 배우인 단테 바로나는 1981년 영화 《하리 앙 스턴트》에서 안전 장비 없이 산후아니코 대교에서 뛰어내리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베트 탄의 단편 소설 "다리"는 산후아니코 대교를 둘러싼 도시 전설 중 하나를 소재로 한다. 이 작품은 《필리핀 그래픽》에서 소설 부문 상을 받았다.
5.2. 도시 전설
산후아니코 대교 건설과 관련하여 여러 도시 전설이 전해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다리 건설을 감독하던 한 여성이 점쟁이의 조언을 받아들여,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의 피를 다리 기초 부분에 섞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이 전설에 따르면, 강 요정이 그 여성에게 저주를 내려 다리 건설을 감독하는 동안 그녀의 다리에서 악취가 나는 비늘이 돋아나게 했다고 한다.
6. 사건 사고
* 2002년 9월 22일, 바지선이 교량의 콘크리트 기초를 들이받아 25의 피해를 입혔다. 이후 같은 해 10월에는 콘크리트 기초의 금속 지지대가 파손되면서 교량의 일부가 최소 10cm 가량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했다. 엔지니어 지미 찬(Jimmy Chan)은 이 사고의 원인을 "재료 피로"라고 밝혔다.
7.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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