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군부 청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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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군부 청헌당은 1868년(고종 5)에 건립된 조선 말기 삼군부의 청사 건물이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부활한 삼군부는 군무 통솔, 숙위 문제 총괄, 변방 업무 관장을 담당했으며, 훈련도감 등 5개 군문을 장악했다. 청헌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초익공과 팔작지붕을 갖춘 조선 말기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1870년 화재 후 재건되었으며, 1967년 정부서울청사 건립으로 육군사관학교로 이전되었다.

삼군부 청헌당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삼군부청헌당
로마자 표기Samgunbu Cheongheondang
유형유형문화재
지정 번호16
지정일1973년 6월 18일
주소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682 (공릉동)
시대조선시대
면적토지 283m2
수량건물 1棟
꼬리표육군사관학교
문화재청 ID21,00160000,11
상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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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 초기 삼군부

조선 건국 직후, 군사 지휘 체계 확립을 위해 의흥삼군부가 설치되었다.

3. 조선 후기 삼군부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 비변사가 국가 정책 수립의 최고 합의 기관으로 세력이 비대해지자, 흥선대원군은 이를 견제하고 의정부의 기능을 확대·강화하기 위해 고종 2년(1865) 비변사를 의정부에 통합시켰다. 이와 함께 조선 초 정부와 군부를 분립한다는 원칙 아래 설치되었던 의흥삼군부를 훈국의 신영, 남영, 마병소를 합쳐 재설치하였다. 삼군부가 완전한 조직을 갖춘 것은 고종 4년(1867)이었다.

3.1. 삼군부의 기능과 역할

삼군부는 군무 통솔, 숙위 문제 총괄, 변방 관련 사항을 관장하였다.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금위영, 용호영 등 5개 군문을 비롯하여 전국의 군사권을 장악했으며, 병인양요신미양요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국방력을 강화했다.

3.2. 삼군부의 폐지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금위영, 용호영 등 5개 군문을 비롯하여 전국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병인양요신미양요 때에 위세를 떨쳤던 삼군부는 개항 이후인 1880년(고종 17년)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면서 폐지되었다.

4. 삼군부 청사: 청헌당

현판
현판

청헌당은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삼군부 청사로 사용된 건물이다. 삼군부는 조선 초 군령과 군무를 총괄하던 군사 기구였으나, 고종 2년(1865)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조직했고, 고종 17년(1880)에 폐지되어 통리기무아문에 소속되었다.

삼군부 시절 청헌당은 정청인 총무당(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을 중심으로 좌우에 덕의당과 함께 나란히 위치했으며, 총무당과는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고종은 조선 초 문무(文武) 양립의 정치를 위해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를 의정부 맞은편에 두었던 전통을 되살려, 1865년(고종 2)에 삼군부를 다시 설치하고 대궐 수비와 도성 순찰 등의 업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4.1. 건립과 이전

청헌당은 흥선대원군 집권 당시 삼군부 청사로서 고종 5년(1868)에 지어졌다. 고종 17년(1880)에 통리기무아문 청사, 고종 31년(1894) 이후 시위대 청사, 순종 4년(1910)부터 1926년까지 조선 보병대 사령부로 쓰였다. 1967년 현 정부서울청사를 지을 때 육군사관학교로 옮겨졌고, 1977년에 수리되었다.

1868년(고종 5)에 지어진 이 건물은 조선 말기 삼군부의 청사였다. 청사 건립 2년 뒤인 1870년 4월 화재로 79칸이 모두 소실되었고, 같은 해 윤 10월에 다시 지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이때 청헌당까지 다시 지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1967년까지 본래 위치에 있었으나 정부서울청사 건립으로 같은 해 육군사관학교로 이전되었다. 1977년 수리 과정에서 모습이 다소 변경되었다.

4.2. 건축 양식

청헌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새 날개 모양의 공포(익공양식)를 사용했다. 이는 조선 후기 서울 관아 건물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현판은 조선 후기 무신 신관호가 쓴 '청헌당(淸憲堂)'이다.

4.3. 역사적 가치

청헌당은 1868년(고종 5년)에 지어진 조선 말기 삼군부 청사 건물로, 신관호(신헌으로 개명)가 쓴 '청헌당(淸憲堂)' 현판이 남아있다. 총무당(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 덕의당과 함께 삼군부 청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이다.

1870년 4월 화재로 79칸이 소실되었다가 같은 해 윤 10월에 다시 지어졌으나, 청헌당 재건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1967년 정부서울청사 건립으로 육군사관학교로 이전되었고, 1977년 수리 과정에서 모습이 다소 변경되었다.

통리기무아문 청사, 시위대 청사, 조선 보병대 사령부 등으로 사용되며 근대사의 주요 사건들과 관련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