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근왕
1. 개요
삼근왕은 백제의 제23대 왕으로, 문주왕의 맏아들이다. 477년 문주왕 사후 13세의 나이로 즉위했으나, 해구의 쿠데타로 인해 섭정을 받으며 불안정한 정국을 겪었다. 해구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진씨 세력이 성장하였으며, 479년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삼근왕 사후에는 곤지의 아들인 동성왕이 즉위하였다.
| 한글 이름 | 삼근왕 |
|---|---|
| 한자 이름 | 三斤王 |
| 로마자 표기 | Samgeun-wang |
| 다른 한자 표기 | 三乞王 壬乞王 |
| 다른 로마자 표기 | Samgeol-wang Imgeol-wang |
| 본명 | 부여삼근(扶餘三斤) |
|---|---|
| 출생일 | 465년 |
| 사망일 | 479년 11월 (14세) |
| 사망지 | 미상 |
| 매장지 | 미상 |
| 부왕 | 문주왕 |
|---|---|
| 모후 | 왕후 곽씨(郭氏) |
| 왕비 | 미상 |
| 자녀 | 미상 |
| 재위 기간 | 477년 ~ 479년 |
|---|---|
| 섭정 | 해구(477~478) 진로(478~479) |
| 전임자 | 문주왕 |
| 후임자 | 동성왕 |
| 묘호 | 없음 |
|---|---|
| 시호 | 없음 |
| 가문 | 부여씨 |
| 왕조 | 미상 |
| 연호 | 미상 |
| 종교 | 불교 |
| 호칭 | 어라하 |
| 목록 | 제23대 백제 국왕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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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년 사망 -
유랴쿠 천황
유랴쿠 천황은 456년 즉위한 제21대 일본 천황으로, 권력 투쟁 후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왕권을 확립하고 주변 소왕국들을 복속시키려 했으며, 유송과의 외교, 양잠업 장려 등의 정책을 펼쳤으나 잦은 처형으로 비판받았고, 능묘는 다니비 타카와시하라릉이며, 그의 기록은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신화와 전설을 포함하고 있어 신뢰성 논쟁이 있으며, '왜왕 무(武)'와 동일인물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
479년 사망 -
자비 마립간
자비 마립간은 눌지 마립간의 아들로, 왜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쌓고 고구려와 말갈의 침입을 막았으며, 삼년산성 축조와 나제동맹에 따른 고구려 공격에 대응하고 수도를 옮기는 등 영역 확장과 안보 강화에 힘쓴 신라의 제20대 왕이다. -
부여씨 -
기루왕
기루왕은 백제의 제5대 국왕으로, 다루왕 사후 즉위하여 신라를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신라와 평화 조약을 맺었으며 말갈의 침입 시 신라의 지원을 받았고 자연재해가 빈번했다. -
부여씨 -
아신왕
아신왕은 백제 제17대 국왕으로, 고구려의 침략에 맞서 왜와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등 국운 유지를 위해 노력했으나, 전쟁에서의 패배로 백제의 쇠퇴를 막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의 삶과 결정은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
백제 국왕 -
기루왕
기루왕은 백제의 제5대 국왕으로, 다루왕 사후 즉위하여 신라를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신라와 평화 조약을 맺었으며 말갈의 침입 시 신라의 지원을 받았고 자연재해가 빈번했다. -
백제 국왕 -
법왕
법왕은 백제의 제29대 왕으로, 혜왕 또는 위덕왕의 아들이며, 재위 기간 동안 불교를 숭상하고 미륵사 건립을 추진했으며 백성들에게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2. 생애
477년 4월, 문주왕의 맏아들로 태자로 책봉되었다. 같은 달 문주왕이 병관좌평 해구의 쿠데타로 시해되자, 왕족들의 추대로 13세에 즉위하였다. 전지왕의 외척이자 세력가였던 좌평 해구가 섭정을 하며 실권을 장악하였다. 478년 봄, 해구는 은솔 연신과 함께 왕위를 찬탈하려 대두성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남과 진로에 의해 진압되었다. 공모자인 연신이 고구려로 도주하자 연신의 3족을 멸해 거리에 매달았다.
479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매우 심했고, 11월에 삼근왕은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당시 해구의 반란을 토벌한 진씨 세력의 정치적 변란 결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근왕 사후, 일본에서 온 그의 종조부 혹은 삼촌인 곤지의 아들 모대가 동성왕으로 즉위했다.
2.1. 즉위 과정
문주왕의 맏아들로, 477년 4월 부왕에 의해 태자로 책봉되었다. 같은 달, 문주왕이 병관좌평(兵官佐平) 해구의 쿠데타에 의해 시해되자, 왕족들의 추대로 13세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전지왕의 외척이자 세력가였던 좌평 해구가 섭정으로 사실상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478년 봄, 좌평 해구가 은솔 연신(燕信)과 함께 왕위를 찬탈하려고 대두성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왕은 좌평 진남에게 군사 2000명을 주어 대두성을 공격하게 하고, 덕솔 진로에게 군사 500명을 주어 해구를 추격해 죽이게 했다. 진남과 진로에 의해 해구의 난이 평정되었으나 왕위는 불안정하였다. 공모자인 연신이 고구려로 도주하자 연신의 3족을 멸해 거리에 매달았다.
2.2. 해구의 난
문주왕의 맏아들로, 477년 4월 부왕에 의해 태자로 책봉되었다. 같은 달, 문주왕이 병관좌평(兵官佐平) 해구의 쿠데타에 의해 시해되자, 왕족들의 추대로 13세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전지왕의 외척이자 세력가였던 좌평 해구가 쿠데타를 일으켜 섭정으로 사실상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478년 봄, 좌평 해구가 은솔 연신(燕信)과 함께 왕위를 찬탈하려고 대두성(大豆城)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삼근왕은 좌평 진남(眞男)에게 군사 2,000명을 주어 대두성을 공격하게 하고, 덕솔 진로(眞老)에게 군사 500명을 주어 해구를 추격해 죽이게 했다. 진남과 진로에 의해 해구의 난이 평정되었으나 왕위는 불안정하였다. 공모자인 연신이 고구려로 도주하자 연신의 3족을 멸해 거리에 매달았다.
2.3. 사망
479년 봄과 여름에 가뭄이 매우 심했고, 11월에 삼근왕은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당시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 것은 한성시대 이래 또다른 귀족세력 출신인 진씨(眞氏) 세력이었는데, 해구의 반란이 평정된 다음 해에 삼근왕이 죽은 것을 두고 진씨 세력의 정치적 변란 결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근왕 사후, 일본에서 온 그의 종조부 혹은 삼촌인 곤지의 아들 모대가 동성왕으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