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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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동진은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미술 교사에게 서양화를 배우고 일본 유학을 다녀왔으며, 교남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대구 서양화 운동을 이끌어 "대구 근대 미술의 대부"로 불렸다. 주요 작품으로는 《자화상》, 《오후의 풍경》, 《뒷골목》 등이 있다. 광복 후에는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국회의원을 두 번 역임했으나, 5·16 군사 정변 이후 정계를 떠나 한국화를 그리며 만년을 보냈다.

서동진
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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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
기본 정보
출생1903년
사망1978년
본관달성 서씨
죽농(竹儂)
다른 이름소허(小墟)
경력
주요 활동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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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50년 대구화우회 창립에 참여했으나, 이후 화단을 떠나 정계에 진출했다. 제2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1954년 제3대 총선과 1960년 제5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2번 역임했다. 경북 청년회 회장, 경북 원호회·경북 후생회 회장, 대구 금융 조합 감사, 영남일보사 이사,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 경북도 위원장, 민주국민당 경북도 당 최고위원, 민주당 대구시 갑구 당 위원장, 경북 체육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정계에서 은퇴, 한국화를 그리며 만년을 보냈다. 1970년 1월 15일 대구 자택에서 향년 70세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대구에서 신교육 운동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1918년 계성학교에 입학한 후 미술 교사인 이상정(이상화의 형)에게서 서양화를 공부했지만, 1919년 3·1 운동으로 중퇴했다. 이후, 고희동이 근무하는 경성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4년 졸업 후, 대구의 계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6개월간 재직했고, 1925년~26년에 일본 내지로 미술 유학을 갔다.

2.2. 미술가 활동

대구 출신으로, 신교육 운동가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이상정(이상화의 형)에게서 서양화를 배웠으며, 고희동이 근무하던 경성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대구 계성학교 미술 교사, 일본 유학, 교남학교(대륜고등학교 전신) 교사 등을 거치며 대구 서양화 운동을 주도하여 "대구 근대 미술대부"로 불렸다. 당시 대구의 서양화 운동은 조선에서 경성, 평양 다음으로 활발했으며, 서울과 평양이 유화 중심이었던 반면 대구는 수채화가 중심이었다.

1927년 대구 수동에 인쇄소 겸 미술 연구 시설인 대구미술사를 설립하고, 같은 해 6월 조양회관에서 동아일보 대구지국 주최로 첫 개인전을 열어 풍경화와 인물 수채화 45점을 출품했다. 1928년 7월에도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1928년부터 1932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 풍경화 4점을 출품했다. 이인성, 김용조 등 신인 화가를 격려했고, 1928년 서양화, 동요, 시가예술가와 학도로 구성된 문예 단체 "영과회"에 참여, 1930년 순수 예술을 추구하는 화가들의 모임 "향토회"를 창립했다. "향토회"는 1935년 화전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2.3. 정치 활동

해방 후 서동진은 화단을 떠나 정계에 진출했다. 1950년 제2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으나, 1954년 제3대 총선과 1960년 제5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두 번 역임했다.

정계 입문 전후로 경북 청년회 회장, 경북 원호회·경북 후생회 회장, 대구 금융 조합 감사, 영남일보사 이사,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 경북도 위원장, 경북 체육회 이사 등을 역임하며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쳤다. 정치적으로는 민주국민당 경북도당 최고위원, 민주당 대구시 갑구당 위원장을 지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2.4. 만년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고, 수채화가 아닌 한국화를 그리며 만년을 보냈다. 1970년 1월 15일 대구 자택에서 향년 70세로 사망했다.

3. 작품

서동진의 주요 작품으로는 자화상(1924년), 오후의 풍경(1931년), 뒷골목(1932년) 등이 있다. 그는 골목길 풍경이나 도시의 근대화를 표현하는 풍경화와 자화상, 친구의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4.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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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선거명대수직책선거구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50년총선제2대국회의원경북 대구시 갑무소속6,512표 (18.75%)2위낙선
1954년총선제3대국회의원경북 대구시 갑민주국민당21,211표 (41.30%)1위당선초선
1958년총선제4대국회의원경북 대구시 갑민주당10,840표 (38.78%)2위낙선
1960년총선제5대국회의원경북 대구시 갑민주당21,208표 (73.79%)1위당선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