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중
1. 개요
서문중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1680년 정시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광주부윤을 시작으로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경상도관찰사, 호조참판, 어영대장, 도승지, 예조참판, 대사간, 공조참판, 우참찬 등을 역임했으며,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가 갑술환국 이후 다시 등용되어 좌참찬을 지냈다. 1698년 우의정을 거쳐 1699년 좌의정을 역임하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서문중 초상 및 함은 대한민국의 보물 제189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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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서문중 |
|---|---|
| 원어명 | 徐文重 |
| 직책 | 조선 영의정 |
| 자 | 도윤(道潤) |
| 호 | 몽어정(夢漁亭) |
| 국적 | 조선 |
| 성별 | 남성 |
| 출생일 | 1634년 |
| 사망일 | 1709년 |
| 본관 | 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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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년 출생 -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디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디 사보이아 공작은 어린 나이에 공작위를 계승하여 발도파 박해로 비난받았으나, 니스 항구 개발, 도로 건설, 군사 개혁 등을 통해 공국의 부를 증진시킨 인물이다. -
1634년 출생 -
마쓰다이라 다다토모 (1634년)
마쓰다이라 다다토모는 에도 시대 이이야마 번을 다스린 다이묘로, 치수 사업, 관개 시설 정비, 신전 개발 등을 통해 번의 기반을 다지고 노다 기자에몬을 등용하여 번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오사카 가반 등 요직을 역임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
1709년 사망 -
다카쓰카사 노부코
다카쓰카사 노부코는 도쿠가와 마사코를 고미즈오 천황의 중궁으로 삼는 데 관여하고, 도쿠가와 쓰나요시와 결혼하여 에도 성 오오쿠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일화를 남겼으며, 쓰나요시 사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
1709년 사망 -
마쓰다이라 무네나가
마쓰다이라 무네나가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생모 게이쇼인의 친척으로 다카모리 번 2만 석을 받아 다이묘가 되었으나 23세에 사망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서문중은 1680년(숙종 6)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기사환국으로 잠시 파직되었으나, 갑술환국 이후 복직하여 1698년 우의정, 1699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2.1. 관직 경력
1680년(숙종 6)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광주부윤이 되었다. 경상도관찰사, 승지, 동부승지를 역임하고 호조참판이 되었다. 숙종의 총애로 어영대장, 호조참판, 도승지, 예조참판, 대사간, 공조참판을 지냈다. 우참찬에 올랐으나,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갑술환국 이후 강릉부사로 복직하여 지의금부사,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형조판서, 훈련대장, 대사헌을 거쳐 좌참찬을 지냈다. 1698년 우의정, 판돈녕부사를 거쳐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99년 좌의정, 영의정, 판중추부사를 역임했다.
2.2.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1680년(숙종) 6년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광주부윤이 되었다. 경상도관찰사, 승지, 동부승지, 호조참판을 거쳤다. 숙종의 총애로 어영대장, 도승지, 예조참판, 대사간, 공조참판을 역임했다. 우참찬에 올랐으나,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갑술환국 이후 서용되어 강릉부사, 지의금부사,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형조판서, 훈련대장, 대사헌, 좌참찬을 지냈다.
2.3. 영의정 임명과 사망
1680년(숙종 6)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광주부윤이 되었다. 경상도관찰사, 승지를 거쳐 동부승지, 호조참판을 지냈다. 숙종의 총애로 어영대장, 도승지, 예조참판, 대사간, 공조참판을 역임하고 우참찬이 되었으나,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갑술환국 이후 복직되어 강릉부사, 지의금부사,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형조판서, 훈련대장, 대사헌, 좌참찬을 지냈다. 1698년 우의정을 거쳐 판돈녕부사로 치사했다가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99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고 판중추부사로 치사했다.
3. 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고조부 | 서해(徐嶰) | |
| 증조부 | 서성(徐渻) | |
| 친조부 | 서경주(徐景霌, 1579 ~ 1643) | 달성위 |
| 친조모 | 정신옹주(貞愼翁主, 1583 ~ 1653) | |
| 친아버지 | 서정리(徐貞履, 1599 ~ 1664) | |
| 친어머니 | 경주 이씨(慶州 李氏) | 판서(判書) 이시발(李時發)의 딸 |
| 양조부 | 서경우(徐景雨) | 종조부이자 양조부 |
| 양아버지 | 서원리(徐元履) | |
| 양어머니 | 최산립의 딸 | |
| 양어머니 | 김육의 딸 | |
| 부인 | 용인 이씨 | 참판(參判) 이후산(李後山)의 딸 |
| 장남 | 서종보(徐宗普, 1653 ~ ?) | |
| 자부 | 한산 이씨 | 참판(參判) 이정기(李廷夔)의 딸 |
| 장녀 | 서경순(徐慶純, 1655 ~ ?) | 풍양 조씨 조대수(趙大壽)에게 출가 |
| 차남 | 서종로(徐宗魯, 1658 ~ ?) | |
| 자부 | 파평 윤씨 | 윤평(尹坪)의 딸 |
4. 관련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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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중 초상 및 함 (대한민국 보물 제1898호)
: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서문중(1634∼1709) 선생의 초상화 1폭과 초상화를 담았던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