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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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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재응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투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법학과에 재학하며 1998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이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뉴욕 메츠와 자유 계약 선수로 계약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MLB 데뷔 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를 거쳐 2007년 KIA 타이거즈와 계약하며 한국 프로 야구에 진출했다. KIA 타이거즈에서 2016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이후 지도자, 해설위원, 행정가로 활동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준수한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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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응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Jae Weong Seo in Tampa Bay Rays
2007년 탬파베이 레이스 시절
이름서재응 (徐在應)
로마자 표기Seo Jae-eung
출생일1977년 5월 24일
출생지광주광역시
신장181cm
체중97kg
포지션투수 / 투수 코치
투타우투우타
프로 입단1998년 (아마추어 자유 계약, 뉴욕 메츠)
선수 경력
MLB뉴욕 메츠 (2002년~2005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6년)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2006년~2007년)
KBOKIA 타이거즈 (2008년~2015년)
코치 경력
해설 경력
대표팀 경력
국가대표대한민국
올림픽(참가 기록 없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
2013년
아시안 게임1998년 아시안 게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1997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1996년
수상 내역
한국시리즈우승 (2009년)
MLB 통계
승패28승 40패
평균 자책점4.60
탈삼진340
KBO 통계
승패42승 48패
평균 자책점4.30
탈삼진417

2. 선수 시절

서재응은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인하대학교에 진학하여, 1997년 팀을 한국 대학 선수권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8년 자유 계약 선수로 뉴욕 메츠와 계약하였다. 프로 첫해에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1999년에 팔꿈치 재건 수술을 받았다.[1] 2001년까지 재활로 등판하지 못하다가, 2002년 7월 21일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1이닝 무실점 구원 투수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2003년에는 메츠에서 선발 투수로 시즌 전체를 보냈다. 188 이닝, 31 선발 등판을 기록하며 그해 내셔널 리그 루키 투수 중 최고 기록을 세웠다.

메이저 리그에서 처음 투구했을 때, 그는 시속 91~92마일의 패스트볼과 80마일 중반의 체인지업을 던졌다. 토미 존 수술 이후 구속이 감소하면서 제구력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때때로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투구 메커니즘을 바꾸는 것을 꺼려 했던 서재응과 메츠의 투수 코치 릭 피터슨과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슬라이더, 스플리터, 커브를 개발하며 다양한 구종을 던지게 되었다.

2006년 1월 4일, 듀아니 산체스와 스티브 스몰을 받는 조건으로 팀 하뮬락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6월 26일에는 투수 마크 헨드릭슨과 포수 토비 홀을 받는 조건으로 포수 디오너 나바로와 외야수 저스틴 루지아노와 함께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006년 6월 28일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레이스 데뷔전을 치르며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2007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3승 4패, 8.13 ERA를 기록했고, 이후 트리플 A 더럼 불스로 보내졌고 9승 4패, 3.69 ERA로 준수한 시즌을 보냈다.

2007년 12월 11일, KIA 타이거즈와 계약하며 2008년부터 한국 프로 야구에서 뛰게 되었다. 한국 프로 야구 첫해는 부상으로 5승에 그쳤다. 2009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시즌 후반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팀은 12년 만에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서재응은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2010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갔고, 한국 3년 만에 처음으로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하지만 팀은 전년도 우승에서 5위로 추락했다. 2011년에는 팀 사정으로 4월에는 구원 투수로 등판해 한국 첫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5월 이후에는 선발로 복귀했다. 2012년에는 9월부터 10월에 걸쳐 선발로서 44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한국 프로 야구 신기록을 세우는 등 활약했다.

2013년부터 프로 야구 선수 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제3회 WBC 대한민국 대표로 선발되어 1라운드 네덜란드전에 1경기 구원 등판했지만, 팀은 해당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014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승리 없이 시즌을 마쳤고, 2015년에도 1승에 그쳤다. 2016년 1월 28일,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5]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어 출전했던 서재응은 0.64의 평균자책점으로 도미니카 공화국바톨로 콜론과 함께 대회에서 두 번째로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투구를 선보였다.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6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득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비록 일본이 결국 이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서재응의 선발 등판은 여전히 WBC 최고의 투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2. 1. 아마추어 시절

1996년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고 팀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 우선 지명을 받았으나, 인하대학교에 입학했다.[2] 인하대 법학과 시절 1998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해 야구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특례를 받았다. 이후 인하대학교를 중퇴하고 형 서재환과 함께 메이저 리그 뉴욕 메츠에 입단했다.[7] 1997년에는 인하대학교를 한국 대학 선수권 우승으로 이끌었다.

2. 2. 미국 프로야구 시절

서재응은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에 진학하여 1997년 팀을 한국 대학 선수권 우승으로 이끌었다.[2] 1998년 자유 계약 선수로 뉴욕 메츠와 계약했다. 프로 첫해에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1999년에 팔꿈치 재건 수술을 받았다.[1] 2001년까지 재활에 전념했고, 2002년 7월 21일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1이닝 무실점 구원 투수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메이저 리그에서 처음 투구했을 때, 그는 시속 91~92마일의 패스트볼과 80마일 중반의 체인지업을 던졌다. 토미 존 수술 이후 구속이 감소하면서, 제구력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때때로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투구 메커니즘을 바꾸는 것을 꺼려 했던 서재응과 메츠의 투수 코치 릭 피터슨과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슬라이더, 스플리터, 커브를 개발하며 다양한 구종을 던지게 되었다. 2007년 6월, 부진한 성적으로 DFA가 되었고, 웨이버 공시되었지만 영입하는 구단이 나타나지 않아 데블레이스 산하 AAA급 더럼 불스에서 뛰었다. 2007년 10월 3일 FA가 되었다.

2. 2. 1. 뉴욕 메츠 시절

1998년 1월 6일, 인하대학교 재학 중 뉴욕 메츠에 스카우트되어 입단했다.[8] 원래는 강속구 투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마이너 리그 시절 팔꿈치 부상을 당했다. 토미 존 수술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수술 후 구속이 회복되지 않아, 기교파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제구력을 연마하여, 2002년에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1] 2002년 7월 21일 시너지 필드에서 열린 신시내티전 8회 말에 중간계투로 등판, 무실점으로 1이닝을 소화하며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2003년 메츠 선발진의 붕괴로 5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했다. 9승에 그쳤지만, 평균자책점은 3점대로 나쁘지 않았고, 당시 메츠의 팀 사정을 고려하면 선전했다고 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2005년에는 후반기에 메이저 리그로 올라와 선발진에 합류, 14경기에 등판하여 8승 2패 평균자책점 2.59를 기록했다.

2. 2. 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2006년 1월 4일, 두아넬 산체스, 스티브 슈몰과의 트레이드로 팀 햄락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했다.[3] 제1회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출되었다. 2차 리그 일본전 경기 종료 후, 에인절 스타디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는데,[4] 이 행위에 일본이 불쾌감을 느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선수들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것은 승리의 축하였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라고 반박했다.[4] 정규 시즌에서는 6월까지 2승에 그치며 불안정한 투구를 이어가다 불펜으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같은 해 6월 26일 트레이드로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로 이적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2006년 6월 7일)

2. 2. 3.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시절

년 6월 26일, 투수 마크 헨드릭슨과 포수 토비 홀을 받는 조건으로 포수 디오너 나바로와 외야수 저스틴 루지아노와 함께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로 트레이드되었다.[1] 서재응은 2006년 6월 28일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레이스 데뷔전을 치르며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3승 4패, 8.13 ERA를 기록했다. 그는 이후 트리플 A 더럼 불스로 보내졌고 9승 4패, 3.69 ERA로 준수한 시즌을 보냈다.[1]

2. 3. 한국 프로야구 시절

2007년 12월 KIA 타이거즈와 계약을 맺고, 2008년부터 한국 프로 야구에서 뛰게 되었다. 한국 프로 야구 첫 해는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기간이 길었고, 5승에 그쳤다.

2009년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시즌 후반에는 중간 계투로 기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팀은 12년 만에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서재응은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2010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갔고, 한국 3년 만에 처음으로 규정 투구 이닝을 채웠다. 하지만 팀은 전년도 우승에서 5위로 추락했다.

2011년에는 팀 사정으로 4월에는 구원 투수로 등판해 한국 첫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5월 이후에는 선발로 복귀했다.

2012년에는 9월부터 10월에 걸쳐 선발로서 44이닝 연속 무실점이라는 한국 프로 야구 신기록을 세우는 등 활약했다.

2013년부터 프로 야구 선수 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제3회 WBC대한민국 대표로 선발되어 1라운드 네덜란드전에 1경기 구원 등판했지만, 팀은 해당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014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승리 없이 시즌을 마쳤고, 2015년에도 1승에 그쳤다.

2016년 1월 28일,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5]

2. 3. 1. KIA 타이거즈 시절

2007년 시즌을 마치고 탬파베이에서 방출된 서재응은 미국 생활에 한계를 느껴 일본 진출을 고려했으나, 고향 팀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13] 2007년 12월 17일 계약금 8억, 연봉 5억, 옵션 2억 등 총 15억의 조건으로 해태 타이거즈를 이어받은 KIA 타이거즈와 계약했다.[14]

한국 프로 야구 복귀 첫 해인 2008년에는 허벅지 및 팔꿈치 부상으로 5승 5패에 머물렀다. 2009년에는 스윙맨으로 주로 등판했고, 문학에서 열린 2009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정근우와 강한 신경전을 벌여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더그아웃에 앉아 있었던 내야수 김종국이 마운드로 달려와서 서재응과 정근우를 말리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혔다.[15]

2010년에는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12년 10월 1일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2경기 연속 완봉승, 44이닝 선발 연속 무실점 신기록을 달성하며 시즌 9승을 기록했다. 이는 KBO 데뷔 후 최고 성적(9승 7패, 2점대 평균자책점)이었다.

2012년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한 박재홍의 후임으로 2013년 선수협 회장에 선출됐다.[16] 그러나 2013년 5월 24일, 자신의 생일에 무등 NC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4이닝 동안 9안타 3볼넷을 허용하며 역대 최다 실점 타이인 10실점을 기록하고 조기 강판당했다.[17] 2013년 시즌 성적은 5승 9패, 평균자책점 6.54로 KBO 리그 복귀 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선발과 중간 계투를 오갔지만, 해가 갈수록 등판 기회가 줄었다. 2015년 시즌 후에는 5000만 삭감된 7000만에 연봉 계약을 맺고 2016년까지 활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스프링캠프 도중인 2016년 1월 28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18]

3. 지도자 경력

2017년 12월 19일KIA 타이거즈의 불펜코치로 계약하여 친정 팀에 복귀했다.[19] 2023년까지 KIA 타이거즈에서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나, 시즌 후 재계약하지 못했다. 2024년 시즌 후 NC 다이노스의 수석코치로 영입됐다.[6]

4. 해설 경력

2016년부터 SBS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20] 2023년 시즌을 마치고 SPOTV의 해설위원으로 영입됐으며, 2024년 7월 13일부터 SPOTV메이저리그 중계 해설도 병행했다.[21]

5. 행정가 경력

2024년 2월 16일 KBO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며 행정가 경력을 시작했다.[22]

6. 국제 대회 경력

서재응은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어 출전했다. 그는 0.64의 평균자책점으로 도미니카 공화국바톨로 콜론과 함께 대회에서 두 번째로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투구를 선보였다. 준결승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서재응은 6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득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비록 일본이 결국 이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서재응의 선발 등판은 여전히 WBC 최고의 투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3]

제1회 WBC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출된 서재응은 2차 리그 일본전 경기 종료 후, 에인절 스타디움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3] 이 행위에 일본이 불쾌감을 느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선수들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것은 승리의 축하였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라고 반박했다.[4]

7. 선수로서의 특징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에 진학한 서재응은 뛰어난 제구력과 낙차가 큰 체인지업을 비롯한 다채로운 변화구가 강점이었다.[2] 뉴욕 메츠 시절에는 시속 91~92마일(토미 존 수술 전에는 90마일 중반)의 패스트볼과 80마일 중반의 체인지업을 던졌다. 팔꿈치 수술 이후 구위가 떨어지자 제구력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때때로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투구 메커니즘을 바꾸는 것을 꺼려했던 서재응과 메츠 투수 코치 릭 피터슨과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1] 이후 슬라이더, 스플리터, 커브를 개발하며 다양한 구종을 던지게 되었다.

8. 기타


  • 메이저 리그를 거친 대한민국 투수들 중 박찬호, 김병현 다음으로 메이저 리그 경기에 많이 등판했다.[23]
  • 그의 형 서재환은 외야수 출신으로,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를 역임했다. 1997년 서재응과 함께 뉴욕 메츠에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1999년 방출되었다.[24]
  • 같은 팀 선수가 홈런이나 안타를 치면 덕아웃에서 응원하여 '응원단장'으로 불렸다. 이후 훈련 대신 응원만 한다며 비꼬는 용도로도 쓰였다.
  • 좋지 않은 투구를 보일 때 재앙을 일으킨다 하여 '서재앙'으로 불리기도 한다.

9. 출신 학교

10. 통산 기록

연도소속나이승리패전승률평균자책점출장선발완투완봉세이브홀드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고의4구탈삼진몸맞보크폭투실점자책점타자수WHIP
2002NYM2600----0.00100000000010000030.00
200327912.4293.8232310000188.1innings19318461111060294808061.27
200428510.3334.9024210000117.2innings133175075421067645121.56
20052982.8002.591414100090.1innings8491605910226263631.11
2006LAD3024.3335.781910000075142514911145432961.49
TBD3018.1115.0017160001122173133930456504111.70
06합30312.2005.33362600011973156488415101937071.61
20073134.4298.131110000084111612840153472481.92
2008KIA3255.5004.081614000079.1innings9072504540137363461.45
20093354.5566.132115000079.1innings101123015380256543671.65
20103497.5633.34242300001341029168110153525721.16
20113589.4714.2830221022130.1innings144736384110368625621.38
20123698.5292.592927220014375159770051466631.21
20133759.3576.541916000011653333640369613941.77
20143802.0006.40161000232.1innings4561001830025231521.70
20153914.2004.95990000525801650123221741.50
MLB 통산 : 6년2840 .4124.601181021001606.1innings69186184233401721034131026391.44
KBO 통산 : 8년4248 .4674.301641273224745.1innings82559222134175301138235632301.41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참조

[1] 뉴스 KIA 서재응, 팔꿈치 부상 딛고 5선발 도전...조범현 "재활 배려" http://news.chosun.c[...] The Chosun Ilbo 2010-01-29
[2] 뉴스 School Spirit May Be Metaphysical for South Korean Baseball Players https://www.nytimes.[...] New York Times 2015-10-02
[3] 뉴스 http://www.latimes.c[...] Los Angeles Times 2009-03-20
[4] 뉴스 スポーツニッポン 2009-04-05
[5] 뉴스 野球:徐在応が引退、消えゆく「米大リーグ1990世代」 http://www.chosunonl[...] 朝鮮日報 2016-01-28
[6] 웹사이트 https://www.ncdinos.[...]
[7] 뉴스 서재환-서재응 형제, 뉴욕 메츠 입단 https://sports.news.[...] 연합뉴스
[8] 뉴스 서재응, 빅 리그 성공 데뷔... 신시내티전 1이닝 무실점 https://sports.news.[...] 한국경제
[9] 칼럼 KIA 서재응, 서른 일곱에 브레이크 걸리다! http://sports.news.n[...] 이영미 칼럼
[10] 뉴스 서재응, LA 다저스로 전격 트레이드 http://sports.news.n[...] 연합뉴스
[11] 뉴스 서재응, 탬파베이로 전격 트레이드 http://sports.news.n[...] 연합뉴스
[12] 뉴스 MLB 진출 가속화 일본야구…대한민국은 명맥 끊길 위기 https://sports.news.[...] 마이데일리
[13] 뉴스 KIA맨 서재응“살아 있음을 보여 주겠다” http://www.donga.com[...] 동아일보
[14] 뉴스 서재응, "KIA, V10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https://news.naver.c[...] 뉴시스
[15] 뉴스 서재응-정근우 신경전... 벤치 클리어링까지 http://joynews.inews[...] 조이뉴스24
[16] 뉴스 ‘선수협 신임 회장’ 서재응의 무거워진 어깨 https://news.naver.c[...] 일간스포츠
[17] 뉴스 KIA 서재응, 개인 한 경기 최다 10실점 수난 https://sports.news.[...] 스포츠조선
[18] 뉴스 "'은퇴' 서재응, 끝내 못 이룬 10승 꿈. 그러나..." http://sports.news.n[...] 이데일리
[19] 뉴스 서재응 전 KIA 투수코치, 이호준 감독 손잡았다... NC 수석코치로 합류 확정 https://m.sports.nav[...] 스포츠경향
[20] 뉴스 "'현역 은퇴' 서재응, SBS 해설 마이크 잡는다" http://sports.news.n[...]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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