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덕
1. 개요
석덕은 전한 무제 시기의 인물로, 목구후 작위를 습작하고 태상을 지냈다. 제사에 쓸 희생물을 속인 죄로 서인이 되었으나, 이후 태자소부를 지냈다. 유거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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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91년 사망 -
한열
한열은 전한 시대 흉노 정벌과 동월 정벌에 공을 세워 용액후와 안도후에 봉해진 관료이자 무장으로, 만년에 광록훈을 지냈으나 무고의 난 당시 살해당했다. -
기원전 91년 사망 -
유진 (도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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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은택후 -
곽거병
곽거병은 전한 무제 시대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운 명장으로, 젊은 나이에 표기장군과 대사마에 오르며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24세에 병사했으며, 그의 묘는 흉노를 짓밟는 말의 석상으로 유명하다. -
전한의 은택후 -
여록
여록은 전한 고황후 시기에 고황후의 신임을 받아 군권을 장악하고 조왕에 봉해지는 등 막강한 권력을 누렸으나, 고황후 사후 여씨 일족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주살된 여씨 일족의 핵심 인물이다. -
전한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정치인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2. 생애
석덕은 전한 무제 시기의 관료로, 태상과 태자소부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무제는 태초 3년(기원전 102년) 아버지 석경이 죽자, 그가 생전에 석덕을 아꼈다는 이유로 석덕에게 목구후(牧丘侯) 작위를 잇게 하고 태상에 임명하였다.
천한 원년(기원전 100년), 제사에 쓸 희생물을 속인 죄로 처형될 위기에 놓였으나, 속죄금을 내고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다시 조정에 들어가 태자소부를 지내던 중, 유거에게 군사를 일으킬 것을 권유하여 함께 반란(무고의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어 경건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태초 3년(기원전 102년), 아버지 석경이 죽었다. 무제는 석경이 생전에 석덕을 몹시 사랑했다 하여, 석덕으로 하여금 목구후(牧丘侯) 작위를 잇게 하고 태상에 임명하였다.
천한 원년(기원전 100년), 제사에 쓸 희생물을 속인 죄로 목이 베일 처지에 놓였다. 석덕은 속죄금을 내어 사형만은 면하였고, 서인이 되었다.
훗날 다시 조정에 나아가 태자소부를 지내던 중 태자 유거에게 거병을 종용하여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나(무고의 난), 반란은 진압되어 경건에게 사로잡히고 처형되었다.
2.2. 관직 생활과 몰락
무제는 태초 3년(기원전 102년) 아버지 석경이 죽자, 생전에 석덕을 몹시 사랑했다 하여 석덕으로 하여금 목구후(牧丘侯) 작위를 잇게 하고 태상에 임명하였다.
천한 원년(기원전 100년), 제사에 쓸 희생물을 속인 죄로 목이 베일 처지에 놓였으나, 속죄금을 내어 사형만은 면하고 서인이 되었다.
훗날 다시 조정에 나아가 태자소부를 지내던 중 태자 유거에게 거병을 종용하여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나(무고의 난), 진압되어 경건에게 사로잡히고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