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조 브리오
1. 개요
세르조 브리오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코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US 레체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유벤투스 FC에서 1978년부터 1990년까지 10시즌 이상 뛰며, 세리에 A 4회, 코파 이탈리아 3회, 유러피언컵 1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1회, UEFA컵 1회, 유러피언 슈퍼컵 1회, 인터콘티넨털컵 1회 우승을 달성했다. 브리오는 6명뿐인 모든 국제 클럽 대항전을 우승한 선수 중 한 명이며,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의 수석 코치를 역임하고 벨기에의 몽스 감독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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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체 출신 -
프란코 카우시오
프란코 카우시오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윙어,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으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982년 FIFA 월드컵 우승을 포함하여 63경기 6골을 기록했고,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6회 우승 등을 달성했다. -
레체 출신 -
안토니오 콘테
안토니오 콘테는 유벤투스 FC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 FC, 첼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등 명문 클럽을 지휘하며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준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으로, 현재는 SSC 나폴리의 감독이다. -
풀리아주 출신 축구 선수 -
티아고 알칸타라
티아고 알칸타라는 창의적인 플레이메이킹과 뛰어난 기술을 가진 스페인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리버풀 FC 등 명문 클럽에서 다양한 우승을 경험하고,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 골든 플레이어, UEFA 올해의 팀 등에 선정되며 세계적인 미드필더로 인정받았다. -
풀리아주 출신 축구 선수 -
안토니오 베나리보
안토니오 베나리보는 이탈리아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파르마에서 257번의 세리에 A 경기에 출전하며 구단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
세리에 A의 축구 선수 -
조지 웨아
조지 웨아는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FIFA 올해의 선수와 발롱도르를 수상한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이자 전 축구 선수이며, 선수 은퇴 후에는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
세리에 A의 축구 선수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2. 클럽 경력
브리오는 풀리아 주 레체 출신으로, 고향 클럽 레체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1973-74 시즌에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1974-75 시즌에 유벤투스로 이적했지만, 첫 해에는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1975년부터 1978년까지 피스토이에세에서 임대 생활을 보낸 후 유벤투스로 복귀했다.
유벤투스 복귀 후 1978-79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출전 기회를 얻기 시작했으며, 1979년 3월 18일에 열린 나폴리와의 경기(1-0 승)에서 유벤투스 소속으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1989-90 시즌까지 유벤투스에서 활약했으며, 마지막 시즌에는 주장을 맡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유벤투스 소속으로 모든 대회를 통틀어 378경기에 출전하여 24골을 기록했으며, 이 중 세리에 A에서는 243경기에 출전하여 16골을 넣었다.
브리오는 유벤투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기 중 하나에 활약했다. 그는 디노 초프, 가에타노 시레아, 클라우디오 젠틸레, 안토니오 카브리니와 함께 강력한 수비진을 구축했으며,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과 이후 디노 초프 감독의 지휘 아래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5년 인터콘티넨털컵 결승전에서는 AA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를 상대로 선발 출전하여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브리오는 안토니오 카브리니, 가에타노 시레아, 스테파노 타코니, 다니 블린트, 아르놀트 뮈런과 함께 UEFA가 주관하는 모든 국제 클럽 대항전에서 우승을 경험한 6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소속 구단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브리오는 유벤투스의 동료 수비수 루차노 파베로와 함께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는 당시 엔초 베아르초트 감독이 같은 역할을 맡은 선수 중 풀비오 콜로바티의 우아한 플레이 스타일과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의 빠른 주력 및 지역 방어 능력 활용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다만, 1980년대 말에는 전 동료였던 디노 초프가 이끄는 이탈리아 올림픽 대표팀의 일원으로 발탁된 경험이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이지 않은 대륙형 스토퍼였던 브리오는 기술적으로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힘, 끈기, 그리고 피지컬 능력으로 유명했다. 또한 세트피스 상황에서 공중볼 장악 능력이 뛰어나 종종 득점 위협이 되었는데, 이러한 능력 덕분에 선수 경력 초반에는 최전방 공격수로도 뛸 수 있었다. 그의 운동 능력 외에도, 그는 집중력이 뛰어났으며, 우수한 대인 방어 능력과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공격적이고 피지컬한 플레이 스타일은 1980년대에 AS 로마의 공격수 로베르토 프루초나 리버풀의 공격수 이안 러시 (이후 그의 팀 동료가 되었다)와 같은 라이벌 선수들과 경기장에서 잦은 충돌을 일으키게 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그는 지역 방어 시스템보다는 대인 방어 시스템에 더 적합했다.
그는 유벤투스에서 그의 역할을 물려받은 동료 '스토퍼' 프란체스코 모리니와 종종 비교되었고, 두 수비수 모두 클럽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축구 선수로서 보여준 강인한 이미지와 달리, 그는 경기장 밖에서는 활기차고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5. 감독 경력
은퇴 후, 그는 유벤투스에서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 코치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유벤투스는 1992-93년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03년부터 2004년까지는 벨기에의 RAEC 몽스 감독을 맡았다.
6. 수상
브리오는 역사상 단 6명뿐인 모든 국제 클럽 대항전(유러피언컵, 컵위너스컵, UEFA컵, 유러피언 슈퍼컵, 인터콘티넨털컵)을 모두 우승한 선수 중 한 명이다. 다른 5명의 선수는 안토니오 카브리니, 가에타노 시레아, 스테파노 타코니, 다니 블린트, 아르놀트 뮈런이다.
6.1. 유벤투스
브리오는 풀리아 주 레체 출신으로, 고향 클럽 레체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74-75 시즌에 유벤투스로 이적했지만, 첫 해에는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1975년부터 1978년까지 피스토이에세에서 임대 생활을 한 뒤 유벤투스로 복귀했다.
그가 유벤투스 소속으로 처음 경기에 나선 것은 1978-79 시즌으로, 1979년 3월 18일 나폴리와의 경기(1-0 승리)에서 데뷔했다. 브리오는 1989-90 시즌까지 유벤투스에서 활약했으며, 마지막 시즌에는 주장을 맡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유벤투스 소속으로 모든 대회를 통틀어 378경기에 출전해 24골을 기록했고, 이 중 세리에 A에서는 243경기에 출전해 16골을 넣었다.
브리오는 유벤투스의 황금기를 이끈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디노 초프, 가에타노 시레아, 클라우디오 젠틸레, 안토니오 카브리니와 함께 축구 역사상 가장 손꼽히게 위압감이 느껴지는 수비진을 구축했으며,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과 이후 디노 초프 감독의 지휘 아래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특히 브리오는 역사상 단 6명뿐인 모든 국제 클럽 대항전(유러피언컵, 컵위너스컵, UEFA컵, 유러피언 슈퍼컵, 인터콘티넨털컵) 우승 기록을 달성한 선수 중 한 명이다. 다른 5명은 안토니오 카브리니, 가에타노 시레아, 스테파노 타코니, 다니 블린트, 아르놀트 뮈런이다. 1985년 인터콘티넨털컵에서는 AA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와의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우승에 기여했다.
주요 우승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