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에타노 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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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에타노 시레아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아탈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유벤투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뛰면서 7번의 세리에 A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1982년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1980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대회 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뛰어난 기술과 스포츠맨십으로 존경받았으며, 은퇴 후 유벤투스의 스카우터와 코치를 역임했다. 1989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그의 이름을 딴 상과 유벤투스 팬석이 존재한다.

가에타노 시레아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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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유벤투스 FC의 시레아
본명가에타노 시레아
출생일1953년 5월 25일
출생지체르누스코 술 나빌리오, 롬바르디아, 이탈리아
사망일1989년 9월 3일
사망지밥스크, 스키에르니에비체, 폴란드
1.78m
포지션수비수
로마자 표기Gaetano Scirea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1970–1972: 아탈란타
클럽1972–1974: 아탈란타 (58경기, 1골)
1974–1988: 유벤투스 (377경기, 24골)
총 출장 및 득점435경기, 25골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연도1975–1986
국가대표팀 출장 및 득점78경기, 2골
메달
종목남자 축구
대회FIFA 월드컵
우승1982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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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가에타노 시레아는 밀라노 광역시 체르누스코 술 나빌리오에서 시칠리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탈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유벤투스로 이적해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세리에 A에서 총 397경기에 출전해 24골을 기록했다.

유벤투스로 이적한 시레아는 안토니오 카브리니, 클라우디오 젠틸레, 디노 초프와 함께 유벤투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세리에 A 7회, 코파 이탈리아 2회, UEFA컵 1회, 컵위너스컵 1회, 유러피언컵 1회, UEFA 슈퍼컵 1회, 인터콘티넨털컵 1회 우승 등 유럽 주요 대회와 이탈리아 국내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에서 스카우터와 코치로 활동했다.

2.1. 아탈란타 BC

시레아는 1972년 9월 24일, 칼리아리 칼초와의 경기에서 아탈란타 BC 소속으로 세리에 A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아탈란타에서 2년을 보냈으며, 1972-73 시즌 개막전에서 잔카를로 사비올라의 부상으로 인해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다. 이 시즌 20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은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1973-74 시즌 세리에 B에서 38경기에 출전하며 활약했다.

1970년대 초, 아탈란타 훈련의 시레아
1970년대 초, 아탈란타 훈련의 시레아

2.2. 유벤투스 FC

시레아는 1972년 9월 24일, 칼리아리 칼초와의 경기에서 아탈란타 BC 소속으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아탈란타에서 2시즌을 보낸 후 유벤투스 FC로 이적하여 은퇴할 때까지 유벤투스에서 활약했다. 유벤투스에서 그는 안토니오 카브리니, 클라우디오 젠틸레, 디노 초프와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유벤투스에서 뛰며 세리에 A 7회, 코파 이탈리아 2회, UEFA컵 1회, 컵위너스컵 1회, 유러피언컵 1회, UEFA 슈퍼컵 1회, 인터콘티넨털컵 1회 우승하며 모든 유럽대항전 및 국내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1974-75 시즌부터 유벤투스에서 뛴 시레아는 디노 초프와 함께 철벽 수비진을 구축하며, 유벤투스의 UEFA 챔피언스컵 우승과 7번의 스크데토 획득에 기여했다. 1985년 인터컨티넨탈컵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전에서는 부상으로 교체되었지만, 우승을 차지했다. 1987-88 시즌까지 현역으로 활동했지만, 마지막 시즌에는 벤치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1988년 4월 24일, 리그 27라운드 UC 삼프도리아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으며 선수 생활 마지막 득점을 기록했다. 리그 최종전 ACF 피오렌티나전에서 현역 생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유벤투스에서의 공식전 552경기 출전은 2008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 의해 깨질 때까지 구단 기록이었다.

1987-88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유벤투스의 스카우터를 맡았고, 이후 감독진에도 합류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1982년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시레아(뒷줄, 왼쪽에서 3번째)
1982년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시레아(뒷줄, 왼쪽에서 3번째)


시레아는 1975년 12월 30일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엔초 베아르초트 감독이 이끄는 팀의 핵심 선수로 도약했다. 1980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4강행에 공헌했고, 대회 선수단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시레아는 유벤투스 동료인 안토니오 카브리니, 클라우디오 젠틸레, 주세페 베르고미, 디노 초프와 함께 이탈리아의 전후 역대 가장 단단한 수비진을 구성하여,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국제 축구계를 주름잡았다.

1984년부터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을 역임했다.

3.1.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시레아는 1978년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이탈리아의 4위에 일조했다. 그는 엔초 베아르초트 감독이 이끄는 팀에서 곧바로 없어서는 안 될 중추적인 선수가 되었고, 3번의 월드컵1980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시레아는 유벤투스 동료인 안토니오 카브리니, 클라우디오 젠틸레와 더불어 중앙 수비수 주세페 베르고미, 수문장 디노 초프와 조합되어 이탈리아의 전후 역대 가장 단단한 수비진을 구성했다.

3.2. 1982년 스페인 월드컵

1982년 월드컵에서 시레아는 1차 조별 리그에서는 부진하게 시작했지만, 2차 조별 리그에서 아르헨티나브라질을 모두 제압하고, 준결승전에서 폴란드를 2-0으로 제쳤다.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는 3-1로 승리하며 월드컵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특히 결승전에서 마르코 타르델리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가에타노 시레아(왼쪽에서 세 번째 서 있는 선수)와 1982년 월드컵 우승팀인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가에타노 시레아(왼쪽에서 세 번째 서 있는 선수)와 1982년 월드컵 우승팀인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3.3.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시레아는 1982년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는 조용한 출발을 보였지만, 2라운드에서 아르헨티나브라질을 꺾고, 준결승에서 폴란드를 2-0으로 이기는 데 기여했다. 결승에서 서독을 3-1로 꺾으면서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1986년 월드컵에서는 팀이 세대교체를 겪었고, 2라운드에서 프랑스에 패했다. 이 경기는 시레아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78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한 마지막 경기였다.

4. 경기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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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레아는 기술력, 역량, 주력, 우아한 공 다루기, 그리고 경기를 읽는 능력이 뛰어난 현대적이고 재능 있는 수비수였다. 클라우디오 젠틸레와 같이 무자비한 전술을 사용한 다른 수비수들과 달리, 시레아는 품격, 신사적인 경기, 경기 예의로 유명하며, 현역 시절 퇴장당한 적이 없다.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주장을 맡을 정도로 지도자적 자질도 있었다.

이전에 미드필더였던 그는 최후방 수비수 혹은 자율 수비수 역할로 주로 활약했고, 시야, 공을 잡을 때의 평정심, 공넘김으로 이 역할을 더욱 발전시켰다. 수비벽을 쌓는 것 외에도, 시레아는 수비진에서 전진해 동료의 공격을 전개하고 득점까지의 과정에 자주 개입했으며, 스스로 마무리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주력이 떨어지면서 보다 수비적인 중앙 수비수 역할을 맡았다.

5. 사생활

가에타노 시레아는 마리엘라 카반나와 결혼하여 아들 리카르도를 두었다. 마리엘라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정치계에 입문했다.

6. 사망

1989년 여름, 시레아는 유벤투스 FCUEFA컵에서 맞붙을 폴란드의 구르니크 자브제를 관전하러 폴란드로 갔다. 1989년 9월 3일, 밥스크 근처에서 시레아가 탄 차량이 트럭과 정면 충돌했다. 당시 폴란드에는 가스 파동으로 인해 비상시를 대비하여 가솔린 캔을 차에 싣고 다니는 일이 흔했는데, 시레아의 차량에도 가솔린 캔 4개가 실려 있었다. 이 가솔린 캔은 추돌과 함께 폭발했고, 시레아는 다른 동승자 2명과 함께 사망했다.

7. 유산

수비적 역량과 경기 예의로 회자되는 시레아는 유소년부의 여러 대회와 공정한 경기상 명칭에 이름을 남겼고, 신사적인 태도와 빼어난 활약상으로써 본보기로 회자되었다. [[가에타노 시레아 경력모범상|'가에타노 시레아 경력모범상](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은 현역 시절에 위업을 세우고, 재능을 뽐냈으며, 신실한 태도를 보인 전설적인 선수들에게 수여되었다. 2005년, 엔초 베아르초트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전 감독은 시레아를 기리기 위해 유벤투스에 등번호 6번을 영구 결번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유벤투스의 안방 유벤투스 경기장의 남쪽 스탠드와 구 안방인 델레 알피 모두 시레아 스탠드''(Curva Scirea)로 불렸고, 이 구역을 유벤투스 울트라가 점거하고 있다.

뛰어난 수비 실력과 스포츠맨십 덕분에 시레아의 이름은 다양한 청소년 토너먼트와 페어플레이 상에 스포츠맨십과 스포츠적 우수성의 모범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에타노 시레아 "모범적인 경력" 국가상"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이 상은 세리에 A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에게 그들의 경력, 재능 및 인격을 기리는 상으로 수여된다. 시레아의 이름은 이탈리아 국내에서 스포츠맨십의 대명사로, 젊은 세대의 대회명이나 페어플레이상에 사용되고 있다.

8.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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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대회시즌우승/준우승
유벤투스세리에 A1974–75, 1976–77, 1977–78, 1980–81, 1981–82, 1983–84, 1985–86우승
코파 이탈리아1978–79, 1982–83우승
인터콘티넨털컵1985우승
유러피언컵1984–85우승
1982–83준우승
유러피언 컵위너스컵1983–84우승
UEFA컵1976–77우승
UEFA 슈퍼컵1984우승
이탈리아FIFA 월드컵1982우승
19784위
개인UEFA 유로 1980 베스트팀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2011
유벤투스 역대 베스트2017

8.1. 유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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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시즌우승/준우승
세리에 A1974–75, 1976–77, 1977–78, 1980–81, 1981–82, 1983–84, 1985–86우승
코파 이탈리아1978–79, 1982–83우승
인터콘티넨털컵1985우승
유러피언컵1984–85우승
1982–83준우승
유러피언 컵위너스컵1983–84우승
UEFA컵1976–77우승
UEFA 슈퍼컵1984우승


아탈란타 소속으로 1972-73 시즌 개막전에 잔카를로 사비올라의 부상으로 선발 출전했다. 1973-74 시즌 세리에 B에서 38경기 출전 후, 1974-75 시즌부터 유벤투스 FC로 이적했다. 유벤투스에서 골키퍼 디노 초프와 함께 수비진을 구축, UEFA 챔피언스컵 우승과 7회의 스크데토 획득에 기여했다. 1985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서는 부상으로 교체되었지만, 우승을 차지했다. 1987-88 시즌까지 현역으로 활동했지만, 마지막 시즌에는 벤치 멤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1988년 4월 24일, 리그 27라운드 삼프도리아전 교체 출전하여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으며 마지막 득점을 기록했다. 리그 최종전 피오렌티나전에서 현역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유벤투스 공식전 552경기 출전은 2008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 의해 깨졌다.

8.2.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시레아는 1975년 12월 30일, 그리스전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엔초 베아르초트호의 기둥으로 도약했고, 3번의 월드컵과 안방에서 열린 1980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이탈리아의 4강행에 공을 세웠다. 시레아는 이 대회의 선수단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1982년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시레아(뒷줄, 왼쪽에서 3번째)
1982년 월드컵에 참가해 우승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시레아(뒷줄, 왼쪽에서 3번째)


시레아는 유벤투스 동료인 안토니오 카브리니, 클라우디오 젠틸레와 더불어 중앙 수비수 주세페 베르고미, 수문장 디노 초프와 조합되어 이탈리아 전후 역대 가장 단단한 수비진을 구성했다. 푸른 군단(Azzurri)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국제 축구계를 주름잡았다.

시레아는 1978년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이탈리아의 4위에 일조했다. 1982년 월드컵에서는 1차 조별 리그에서 부진하게 시작했지만, 이어지는 2차 조별 리그에서 아르헨티나브라질을 모두 제압하고, 준결승전에서 폴란드를 2-0으로 제쳤다.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3-1로 이긴 후 시레아는 월드컵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1982년 스페인 대회에서는 모든 경기에 풀타임 출전, 결승 서독전에서는 마르코 타르델리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1984년 이후에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전환기를 맞은 1986년 월드컵에서는 프랑스와의 16강전에서 패하며 조기에 탈락했다. 시레아는 이 경기가 마지막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였고, 그때까지 그는 국가대표팀 경기에 78번 출전해 2번 골을 넣었다.

8.3. 개인

* UEFA 유로 1980 베스트팀: 1980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1
* 유벤투스 역대 베스트: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