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준
1. 개요
호준은 조위의 장군으로, 호분과 호열의 아버지이다. 장기에게 발탁되어 벼슬을 시작했으며, 흉노 토벌, 제갈량의 북벌 방어, 공손연 토벌 등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252년 동흥 전투에서 패배했으나, 관구검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기여하여 위장군으로 승진했다. 256년에 사망했으며, 사후 거기장군·음밀후로 추증되었다.
-
안정 호씨 -
영태후
영태후 호선진은 북위 선무제의 후궁으로 효명제를 낳아 섭정을 시작, 불교 장려 등 문화적 업적을 남겼으나 권력 남용과 부패로 북위 쇠퇴를 가속화했고 효명제 독살 후 원조를 옹립했다가 이주영에 의해 폐위되어 황하에 익사했다. -
안정 호씨 -
호분
서진 시대의 무장 호분은 공손연 토벌, 제갈탄의 반란 진압, 오나라 정벌 등 주요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무인 가문 출신임에도 학문을 좋아했으며, 딸이 황후가 된 후에도 권세에 기대지 않는 강직한 성품으로 장후라는 시호를 받았고 거기장군으로 추증되었다. -
256년 사망 -
여대 (삼국지)
여대는 후한 말기부터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손권 휘하에서 교주 자사를 역임하며 반란 진압에 공헌했고, 손권 사후 대사마에 임명되었으며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로 알려졌다. -
256년 사망 -
왕숙
왕숙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이자 학자로, 왕랑의 아들이며 조예의 신임을 받아 난릉후에 봉해졌고, 자신만의 학설을 펼치며 《공자가어》에 주석을 달았으나 위작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호준은 정남대장군 왕창, 진남장군 제갈탄과 함께 '삼정(三征)'이라 불렸다.
252년 정월, 방현령의 『진서』 세종 경기기에서는 사마사가 위의 대장군이 되어 선정을 펼치고 인재가 갖춰졌다고 칭찬했다. 그중 사방을 도독한 인물로 제갈탄, 관구검, 왕창, 진태와 함께 호준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같은 해 4월, 오나라 황제 손권이 붕어하자, 왕창, 관구검과 함께 상소문을 올려 오나라를 토벌할 것을 청원했다. 오나라 공격이 실패한 뒤, 위나라 조정에서는 여러 장수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사마사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아들은 7명이었다. 서진의 진군대장군과 상서복야가 된 호분 외에, 호광, 호열, 호기가 고관에 올라 사서에 이름을 남겼다.
2.1. 초기 생애와 흉노 토벌
220년부터 223년 사이에 옹주자사 등을 역임한 장기에게 발탁되어 벼슬길에 올랐다. 장기가 초빙한 인물로는 양부, 방육 등 모두 명성과 지위를 얻었다고 한다.
233년 9월, 안정군 국경지대 수비를 맡고 있던 흉노의 우두머리 호박거자직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의 명을 받아 호박거자직을 토벌하고 항복시켰다.
234년, 제갈량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침공하자 곽회와 함께 양주를 방어해 제갈량의 진격을 막았다.
238년, 요동 지방의 군벌 공손연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가 직접 토벌에 나섰을 때 우금과 함께 종군해 비연 등을 격파하는 공을 세웠다.
2.2. 제갈량의 북벌 방어
234년, 제갈량(諸葛亮)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촉한(촉)을 침공하자 곽회(郭淮)와 함께 제갈량의 제5차 북벌을 요격했다(오장원 전투). 이때 호준은 양주를 방어해 제갈량의 진격을 막았다.
2.4. 오나라와의 전투와 동흥 전투 패배
252년, 정동장군이었던 호준은 왕창, 관구검, 제갈탄과 함께 오나라를 공격했다. 호준은 제갈탄과 함께 동흥에 제방을 쌓은 제갈각을 공격했으나, 12월에 제갈각의 군사에게 한종, 환가 등이 전사하는 등 패배했다. (동흥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