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
1. 개요
송충은 후한 말 유표, 유종을 섬긴 인물로, 유학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려 하자 유비에게 이를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유비는 이에 분노하여 송충을 꾸짖었다. 이후 조조에게 항복하여 조조의 영내에서 생활했고, 허정을 촉군 태수 왕상에게 추천했다. 송충의 아들은 위풍의 반란에 가담하여 처형되었다. 송충은 훈고학 연구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형주학파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에게 붙잡혀 유비 휘하로 끌려오는 인물로 묘사된다.
2. 생애
송충은 후한 말의 인물로, 형주를 다스리던 유표에게 초빙되어 유생들을 가르쳤다. 유표 사후에는 그의 아들 유종을 섬겼으며,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한 후에는 조조 휘하에서 생활했다.
유표 밑에서 유학자로서 교편을 잡았으며, 촉군태수 왕상에게 허정을 추천하기도 했다. 유표가 죽은 후에는 유종을 섬기면서, 유종의 명을 받아 유비에게 조조에게 항복한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때 유비에게 "너 같은 자를 죽이는 것은 대장부의 수치다"라는 말을 들으며 죽을 뻔 하기도 했다. 이후 조조에게 항복하여 그의 휘하에서 생활했다. 아들은 위풍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처형되었는데, 송충 본인이 연좌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2.2. 유종 휘하
건안 13년(208년), 유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유종이 뒤를 잇자, 송충은 계속해서 유종을 섬겼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려 할 때, 형주에 와 있던 유비에게는 이 사실을 숨겼다. 그러나 유비가 문의하고, 숨기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유종의 명령으로 송충은 유비에게 항복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 유비는 크게 놀라 칼을 빼 들고 "당신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당신을 죽이는 것 자체가 대장부의 수치다"라며 송충을 꾸짖었고, 송충은 그대로 달아났다.
2.3. 조조 휘하
유종을 따라 조조에게 항복하고, 조조의 영내에서 생활했다. 송충에게는 아들(이름 불명)이 있었으나, 건안 24년 (219년) 위풍의 반란에 가담하여 처형되었다. 아버지 송충이 생존해 있었다면, 연좌되어 처벌받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자세한 것은 불명이다.
3. 학문적 업적
송충은 고문(古文) 훈고학 연구에 뛰어났으며, 형주학파(荊州學派)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여러 경서(經書)에 주석을 달았으며, 특히 『주역』 주석은 명주석으로 평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 밖의 저서로는 『세본주(世本注)』와 『법언주(法言注)』가 있다. 양양(襄陽)에서는 기무개와 함께 오경장구(五経章句)를 편집하기도 했는데, 이를 『후정(後定)』이라고도 부른다.
송충은 고전 학자이자 주석가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특히 양웅의 『태현경』 주석으로 많은 문하생을 거느렸다. 주요 문하생으로는 왕숙, 윤묵, 반준, 이인(이찬의 아버지) 등이 있다.
그러나 우번은 송충이 정현에 미치지 못하며, 『태현경』 주석에 오류가 있다고 비판했다. 우번은 송충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주석 수정을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