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
1. 개요
위풍은 조조에게 등용되어 서조연을 지낸 인물로, 219년 조조가 한중 전투에 참여한 틈을 타 진의 등과 함께 업에서 반란을 계획했으나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이 사건으로 위풍을 천거한 종요가 면직되고, 다수의 명문가 자제들이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위풍은 종요의 추천으로 조조에게 등용될 당시, 부손과 유엽에게 반역을 일으킬 인물로 평가받았다.
| 이름 | 위풍 (魏諷) |
|---|---|
| 자 | 자경 (子京) |
| 출생지 | 패현 (장쑤성) 또는 허쩌 (산둥성) |
| 사망일 | 219년 9월월 또는 10월 |
| 직업 | 정부 관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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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년 사망 -
관우
관우는 후한 말기 ~ 삼국시대 촉한의 무장이자 정치인으로, 유비,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로서 유비를 보좌하며 뛰어난 무예와 충절로 이름을 알렸으나, 손권의 계략으로 최후를 맞이한 후 동아시아에서 신으로 숭배받고 대중문화에서 영웅적 인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강직함과 자만심이 정치적 판단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도 받는 인물이다. -
219년 사망 -
하후연
하후연은 조조 휘하의 장수로 동탁 토벌, 관도 전투, 황건적 토벌 등에서 활약했으며, 군수 물자 수송에도 기여했으나, 219년 정군산 전투에서 황충에게 패하여 전사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중국 삼국 시대 사람 -
위유
위유는 후한 말 유우의 동조연으로, 유우가 공손찬을 공격하려 할 때 만류했으며 이민족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정책을 건의했으나 193년에 병사한 인물이다. -
중국 삼국 시대 사람 -
위자 (삼국지)
위자는 후한 말 장막의 부장으로, 조조를 알아보고 동탁 토벌을 지원했으며, 서영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2. 생애
종요(鍾繇)에게 대중을 능숙하게 움직이는 재능을 평가받아 조조(曹操)에게 천거되어 서조연(西曹掾)으로 등용되었다. 조조의 제후국 위(魏; 현재의 허베이성과 허난성 일부를 포함)의 수도인 예 (현재의 허베이성한단시) 전역에서 그의 재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219년 9월, 위풍(魏諷)은 업(鄴)의 수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틈타, 장락위위(長樂衛尉)였던 진의(陳禕) 등과 함께 업(鄴)을 습격하는 쿠데타 계획을 세웠다. 이는 관우(関羽)가 번성(樊城)에서 조인(曹仁)을 포위공격하고, 우금(于禁)을 격파하여 항복을 받아내는 등, 조조가 한중 전투에서 유비(劉備)의 군대와 전쟁을 치르던 시기와 맞물려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진의가 조비(曹丕)에게 밀고하는 바람에 위풍은 처형당했다.
이 반란미수사건으로 송충(宋忠)의 아들, 왕찬(王粲)의 두 아들, 유이(劉廙)의 아우 유위(劉偉), 장수(張繍)의 아들 장천(張泉) 등 명문 · 고관의 자제 수십 명이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상국(相國)에 있던 종요는 위풍을 천거했다는 책임을 물어 면직되었으며, 중위(中尉)였던 양준(楊俊)도 사건을 사전에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중위를 사임했다. 그 밖에 유이도 동생이 연루되어 있었지만, 조조가 특별히 사면하였고, 문직(文稷)의 아들이었던 문흠(文欽)도 연루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공적을 생각해서 처형은 면하였다.
위풍의 반란사건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2.1. 평가
종요의 추천으로 조조에게 등용되었을 때, 부손과 유엽에게는 "훗날 반기를 들을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으며, 정무에게는 간웅, 유이에게는 내실이 없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3. 반란 미수 사건
219년 5월, 조조가 한중에서 유비의 군대와 전쟁을 하느라 장안에 나가 있어서 업이 비어 있었다. 같은 해 7월에는 관우가 번성에서 조인을 포위공격하였고, 8월에는 우금을 격파하여 우금이 항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을 틈타 9월에, 위풍은 업의 수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 진의 등과 함께 업을 습격하는 쿠데타 계획을 세웠으나, 진의가 조비에게 밀고하는 바람에 붙잡혀 처형되었다.
이 사건으로 수십 명의 공모자들이 처형되었는데, 유이의 동생 유위, 장수의 아들 장천 등 명문 · 고관의 자제들이 연루되었다.
종요는 위풍을 천거했다는 책임을 물어 면직되었으며, 양준은 사건을 사전에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중위(中尉) 직을 사임했다. 유이는 동생이 연루되었지만, 조조가 특별히 사면하였고, 문흠은 아버지 문직의 공적을 생각해서 처형은 면하였다.
3.1. 연루자
219년 9월, 위풍은 진의 등과 함께 업에서 반란을 계획했으나, 실행 전에 진의가 조비에게 밀고하여 실패했다. 이 사건으로 위풍을 포함한 수십 명이 처형되었다.
다음은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된 주요 인물들이다.
종요는 위풍을 추천했다는 이유로 상국(相國) 직에서 해임되었고, 양준은 사건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중위(中尉) 직을 사임했다. 유이는 동생이 연루되었지만 조조의 특별 사면을 받았고, 문흠은 아버지 문직의 공적을 고려하여 처형을 면했다.
4. 후세의 평가
북주의 장숙은 재능이 있고 경박하고 교활하여, 사람들이 그를 위풍에 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