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 나씨
1. 개요
수성 나씨는 금성 라씨의 시조 라총례의 후손인 나광우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수성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대의 고려 시대 지명에서 유래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대구에 속했다가 1938년 대구에 편입되어 수성구가 되었다. 수성 나씨는 조선 시대에 문신들을 배출했으며, 나광우, 나홍서, 나이준, 나학천 등이 주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과거 급제자로는 문과 3명, 사마시 합격자 10명이 있으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집성촌이 있다. 2015년에는 수성 나씨와 수성 라씨를 합쳐 3,461명이 있었다.
2. 역사
수성 나씨는 금성 라씨에서 분관된 성씨이다. 시조 및 본관 유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고하면 된다.
2.1. 시조
수성 나씨(壽城 羅氏) 시조 나광우(羅光佑)는 금성 라씨의 시조 라총례의 15세손이다.
나광우의 아버지 나순(혹은 위)이 고려 말에 수성군사를 지내고 내직으로 들어올 때 둘째 아들 나광우가 수성에 정착하면서 본관을 수성으로 하였다.
2.2. 본관 유래
수성(壽城)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대의 고려 시대 지명이다. 신라의 위화군(喟火郡)과 달구화현(達句火縣)이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위화군을 수창군(壽昌郡)이라 하였고, 940년(고려 태조 23) 수창군은 수성군(壽城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018년(현종 9)에는 경주의 속현이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조선 태조 때 대구(大丘)에 속하였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달성군에 속하면서 수성면이 되었다. 1938년 대구에 편입되었고, 1980년 대구직할시 수성구로 개편되었다.
3. 주요 인물
수성 나씨는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을 배출했다.
* 나춘호(羅春浩, 1942년 ~ ) : 예림당 회장,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APPA) 회장 역임.
* 나은택(羅殷澤, 1953년 ~ ) : 화승 대표이사 부사장 역임.
* 나건연(羅建淵, 1959년 ~ ) : 경북대학교 의대 교수.
3.1. 고려
고려시대에 나천서가 처음으로 수성(수성 나씨의 시조)에 봉해졌다.
3.2. 조선
* 나광우(羅光佑) : 조선 초기의 문신. 시조 라총례의 15세손이다. 중현대부 충주목사(종3품)를 지냈다.
* 나만(羅蔓) : 조선 초기의 문신. 나광우의 장남이다. 봉선대부 서운관 도정(종4품)을 지냈다.
* 나유겸(羅有謙) : 조선 초기의 문신. 나만의 차남이다. 봉상대부 순흥부사(정4품)를 지냈다.
* 나홍서(羅弘瑞) : 조선 초기의 문신. 1425년 삼가 현감, 1434년 원주 판관을 지냈으며, 1435년(세종 17년)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한 뒤 사헌부 장령을 거쳐 1454년(단종 2년) 형조 참의,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 나순손(羅順孫) : 조선 초기의 문신. 나유겸의 손자. 호는 취원정. 문종조에 통훈대부 행하동부사(정3품)를 지냈고, 세조 등극시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 나이동(羅異童, 1473년 ~ 1505년) : 조선 초기의 문신. 나순손의 손자. 성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장영과 사인(정4품)을 지냈고, 한성부 판윤(정2품)에 이르렀으나 만 3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아버지는 성균생원 나수경(羅守經)이고, 어머니는 선인(宣人)순천박씨이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양주조씨이다.
* 나이준(羅以俊, 1602년 ~ 1686년) : 조선의 문신.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택우(宅于), 호는 매음(梅陰).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1646년(인조 2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태학(太學)의 선비들이 모두 도망하였으나 혼자 남아 성묘(聖廟)를 지켰다. 정신국(鄭信國)·박산미(朴潸美) 등을 불러모아 위판(位板)·제기(祭器) 등을 모두 수습하여 도성을 빠져나왔다. 남한산성에 이르자, 인조는 그의 행위를 가상히 여겨 미포(米布)를 하사하였고, 위판은 개원사(開元寺)에 편안히 모셨다. 1637년 환도 후 다시 위판을 받들고 귀환하였다. 1653년(효종 4) 정언, 1663년(현종 4) 장령에 이어 수찬·교리·보덕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숙종 즉위 후 부교리가 되었으며, 집의·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774년(영조 50) 성묘를 지켰다는 공으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사계서원(泗溪書院)에 배향되었다.
* 나학천(羅學川, 1658년 ~ 1731년) : 조선의 문신.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사도(師道), 호는 창주(滄洲). 경상도 영주 출신. 1683년(숙종 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688년 전적을 거쳐 병조좌랑·강원도도사를 역임하고, 1690년 지평·정언·면천군수·울산부사·예빈시정·인동부사·판교(判校)·서천군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영조 즉위 후 노론의 일파로 시론(時論)을 진언하여 민생의 어려움과 군비의 소홀함 등을 지적하였고, 1725년(영조 1) 사성·필선·보덕·사간을 거쳐 승지·병조참지·우부승지에 이르렀다. 영조가 탕평책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바꾸려고 하자, 역적 김일경(金一鏡)일파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1727년에 좌부승지에 제수되자 나이 칠십을 이유로 극구 사양하다가 좌승지·형조참의가 되었다. 그때 영남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북관(北關)사람들이 그를 난적(亂賊)으로 몰아 파직시켰다. 고향에 내려가 있다가 난이 평정된 뒤 1729년 다시 병조참지가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당시의 당론에 휩쓸리지 않고 독보적인 존재로 정명의리론(正明義理論)을 주장하였다.
3.3. 현대
羅중국어씨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성씨로, 현대에도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을 배출하고 있다.
* 나춘호(1942년 ~ ): 예림당 회장을 지냈고,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APPA) 회장을 역임했다.
* 나은택(1953년 ~ ): 화승 대표이사 부사장을 지냈다.
* 나건연(1959년 ~ ): 경북대학교 의대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