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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라 제럴딘 메리 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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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쉴라 제럴딘 메리 머피는 아일랜드의 외교관으로, 1898년 더블린에서 태어나 1983년 사망했다. 1921년 아일랜드 의회에서 공무를 시작하여, 아일랜드 외교부에서 1964년 퇴직할 때까지 근무하며 아일랜드 공화국의 외교 관계 형성에 기여했다. 1946년 교황청, 1956년 파리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1956년 유엔 총회에 파견된 최초의 아일랜드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퇴직 당시 아일랜드 최고위 여성 외교관이었다.

2. 초기 생애

쉴라 제럴딘 메리 머피는 1898년 12월 28일 더블린 하코트 스트리트 18번지에서 태어났다.[1] 그녀는 의사이자 외과 의사인 존 조셉 머피 박사와 루이 자 머피(결혼 전 성씨 딕슨)의 다섯 자녀 중 장녀였다.[1]

3. 경력

머피는 1921년 아일랜드 의회에서 통계 편찬자로 공무를 시작했다. 1921년 2월부터 1922년 1월까지 아일랜드 의회 홍보 부서에서 임시 정부의 서기 역할을 했다. 1923년 제임스 맥닐이 런던에서 아일랜드 고등 판무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의 개인 비서가 되었다. 1926년 런던을 떠나 조셉 왈시의 외무부 개인 비서가 되었다. 그녀는 1936년부터 부서의 기록 보관관을 겸하면서 1946년까지 이 직책을 유지했다. 그녀는 이 직책을 떠나 아일랜드의 교황청에 파견된 최초의 대사 부서의 서기가 되었다.[1]

3. 1. 아일랜드 외교 관계에 기여

쉴라 제럴딘 메리 머피는 초기 아일랜드 공화국의 외교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1] 조셉 왈시와 긴밀히 협력하며 많은 기밀 서신과 문서를 처리했다.[1] 왈시의 부관인 숀 머피와 함께 머피는 다른 많은 부서 직원보다 훨씬 더 많은 필요 정보를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고위급 부서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1] 코너 크루즈 오브라이언은 머피가 에몬 데 발레라에게 조언하는 "매우 작고, 긴밀하게 연결된, 기밀 유지 집단"의 일원임을 확인했다.[1] 1946년 머피는 왈시가 바티칸 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정치 및 조약 관계 부서의 제2 서기관으로 첫 외교 직책을 맡았고, 1948년에는 제1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왈시, 숀 머피, 프랭크 크레민스와 함께 머피는 24년 동안 봉사한 부서의 가장 오래 근무한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1] 1956년부터 1961년까지 그녀는 파리에서 제1 서기관으로 근무했으며, 1956년 유엔 총회에 파견된 최초의 아일랜드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그녀는 1961년 외무부 국제기구 부서를 담당했으며, 유엔을 제외한 모든 국제기구를 책임졌다. 1962년 그녀는 차관보로 승진했다. 1964년 2월 19일 퇴직 당시 그녀는 아일랜드 최고위 여성 외교관이었다.[1]

3. 2. 외교관 경력

1946년 머피는 왈시가 교황청 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정치 및 조약 관계 부서의 제2 서기관으로 첫 외교 직책을 맡았고, 1948년에는 제1 서기관으로 승진했다.[1] 왈시, 숀 머피, 프랭크 크레민스와 함께 머피는 24년 동안 봉사한 부서의 가장 오래 근무한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1] 부서의 사서이자 번역가인 로시타 오스틴과 함께 그들은 1922년부터 1946년까지 부서의 고위직에 있는 유일한 여성이었으며, 머피는 유일한 여성 "직업 외교관"으로 여겨졌다.[1] 1956년부터 1961년까지 파리에서 제1 서기관으로 근무했으며, 1956년 유엔 총회에 파견된 최초의 아일랜드 대표단의 일원이었다.[1] 1961년 외무부 국제기구 부서를 담당했으며, 유엔을 제외한 모든 국제기구를 책임졌다.[1] 1962년 차관보로 승진했다.[1] 1964년 2월 19일 퇴직 당시 그녀는 아일랜드 최고위 여성 외교관이었다.[1]

3. 3. 한국과의 관계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미국과의 친분을 갖던 쉴라 제럴딘 메리 머피는 1946년 5월 31일 지브롤터 총독부 방문 당시와 1946년 8월 26일 홍콩 총독부 방문 당시 각각 '소피아 양'(Sofia Yang)이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였다. 1946년 10월 16일 미 군정 조선 남조선과도정부 서울 미군정청을 방문 당시에는 '조혜령'(趙慧玲)이라는 한국어 이름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행적은 머피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미군정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4. 은퇴 이후와 죽음

머피는 1983년 1월 15일 더블린 래스가르의 오웰 로드에 있는 오크 하우스 요양원에서 사망했다.[1] 그녀는 딘스 그레인지 묘지에 묻혔다.[1] 머피와 월시와 함께 외무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월시가 머피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믿었다.[4]

참조

[1] 서적 Dictionary of Irish Biograp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2] 간행물 "It Is a Disadvantage to be Represented by a Woman': The Experiences of Women in the Irish Diplomatic Service" 2002
[3] 서적 Ireland: 60 years at the United Nations https://www.dfa.ie/m[...] Royal Irish Academy
[4] 서적 Dictionary of Irish Biograp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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