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1. 개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개인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소비에트와 소비에트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녀는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제2차 세계 대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소비에트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정치적 활동에도 참여하여 2020년 벨라루스 시위 당시 야당의 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한민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 이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
| 원어 이름 | 'Светла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Алексиевич러시아어' |
| 로마자 표기 | Svetlana Alexandrovna Alexievich |
| 벨라루스어 이름 | 'Святлана Аляксандраўна Алексіевіч벨라루스어' |
| 벨라루스어 로마자 표기 | Svyatlana Alyaksandrawna Alyeksiyevich |
| 러시아어 이름 | 'Светла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Алексиевич러시아어' |
| 러시아어 로마자 표기 | Svetlana Aleksandrovna Alexievich |
| 우크라이나어 이름 | 'Світлана Олександрівна Алексієвич우크라이나어' |
| 우크라이나어 로마자 표기 | Svitlana Oleksandrivna Aleksiyevich |
| 출생일 | 1948년 5월 31일 |
| 출생지 |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키우스크' |
| 국적 | '벨라루스' |
| 직업 | '저널리스트, 구술 역사가' |
| 모국어 | 러시아어 |
| 웹사이트 | 'Voices from Big Utopia' |
| 노벨 문학상 | 2015년 |
|---|---|
| 전미 비평가 협회상 논픽션 부문 | 2005년 |
| 독일 서적상 평화상 | 2013년 |
| 메디치 상 에세이 부문 | 2013년 |
| 훈장 | 'Order of the Badge of Honour (1984)' 'Order of the Arts and Letters (2014)' 'Belarusian Democratic Republic 100th Jubilee Medal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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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의 노벨상 수상자 -
메나헴 베긴
메나헴 베긴은 이스라엘의 총리이자 이르군의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건국에 기여하고, 리쿠드를 이끌어 정권 교체를 이루었으며,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나, 레바논 침공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한 인물이다. -
벨라루스의 작가 -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는 현대 히브리어 부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히브리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유대 민족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헌신하며 히브리어 신문 발행, 히브리어 위원회 설립, 히브리어 대사전 편찬 등의 활동을 펼쳤다. -
이바노프란키우스크 출신 -
안나 자야치키우스카
안나 자야치키우스카는 1988년 폴란드 출생으로, 2013년 미스 월드 대회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하여 폴란드 문화를 알렸으며, 유로마이단 시위 동안 민주주의 지지 자원 봉사 활동을 펼쳤다. -
이바노프란키우스크 출신 -
알프레트 얀자
알프레트 얀자는 오스트리아의 군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오스트리아군의 참모총장을 역임하고 독일의 공격에 대한 방어 시나리오를 개발했으나 해임된 후 추방되었다가 전쟁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2. 생애 및 배경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스타니슬라우(현재 이바노프란키우시크)에서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버지가 군에서 제대하자 가족은 벨라루스로 이주했고, 부모는 교사가 되었다.
벨라루스 국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여 1972년에 졸업하고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졸업 후 브레스트주의 『공산주의의 등대』지에서 일한 후, 민스크의 『농업신문』과 문예지 『뉴맨』에서 활동했다.
저널리즘 경력 동안 알렉시예비치는 증언을 기반으로 한 서사를 만드는 데 전문성을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에트 연방 역사의 여러 극적인 사건들(제2차 세계 대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의 붕괴, 체르노빌 참사)에 대한 구술사를 작성했다.
1989년, 다큐멘터리 책 아연 소년들(Zinky Boys)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아연 관에 담겨 돌아온 전사들에 대한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고, "명예훼손"과 "군인들의 명예 훼손"으로 고발당해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여러 차례 재판을 받았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의 정치적 박해 이후 2000년 벨라루스를 떠났으며, 국제 피난 도시 네트워크의 도움으로 파리, 예테보리, 베를린 등지에서 10년간 생활하다가 2011년 민스크로 돌아왔다.
루카셴코 정권과 푸틴 정권을 비판했으며, 루카셴코 대통령 취임 이후 벨라루스에서는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이 출판되지 않았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 후, 2016년에 후쿠시마를 방문하여 남소마시, 이이타테무라, 다테시 등지를 취재했다.
2015년, 저널리스트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과 크림반도 합병을 비판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비난 여론이 강하다.
2020년 대통령 선거 직후 벨라루스에서 루카셴코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알렉시예비치는 스베틀라나 티하노프스카야를 비롯한 야당, 시민 단체 등이 설립한 조정협의회(Каардынацыйная рада (Беларус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2020년 9월, 지병 치료를 위해 독일로 출국했고 2022년 현재도 체류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자, 이를 비판하는 그녀에게 다시 주목이 집중되어 뉴스 인터뷰 취재를 받았다.
2.1. 초기 생애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스타니슬라우(현재 이바노프란키우시크)에서 1948년 5월 31일에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버지가 군에서 제대하자 가족은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주했고, 부모는 교사가 되었다.
벨라루스 국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여 1972년에 졸업하고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졸업 후 브레스트주의 『공산주의의 등대』지에서 일한 후, 민스크의 『농업신문』과 문예지 『뉴맨』에서 활동했다.
2.2. 저널리스트 경력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벨라루스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1972년 벨라루스 국립대학교를 졸업하고 민스크의 문학 잡지 니오만(Nyoman)의 통신원이 되었다(1976). 벨라루스 국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였고 1972년에 졸업 후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졸업 후 브레스트주의 『공산주의의 등대』지에서 일한 후, 민스크의 『농업신문』과 문예지 『뉴맨』에서 활동했다.
저널리즘 경력 동안 알렉시예비치는 증언을 기반으로 한 서사를 만드는 데 전문성을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소비에트 역사의 여러 극적인 사건들에 대한 예술적으로 구성된 구술사를 작성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체르노빌 참사 등이 그것이다.
1985년 출판한 첫 작품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여성들과 관련자들을 취재했다. 두 번째 작품 『단추구멍으로 본 전쟁』(1985년)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독소전쟁 당시 어린이였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모았다. 1988년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개입 하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하여 『아프간 귀환병의 증언』에서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참전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증언을 모았다. 그러나 소련 국민들에게 감춰져 있던 사실들이 드러나자 소련군과 공산당 신문들은 알렉시예비치를 공격했다.
1989년 알렉시예비치의 다큐멘터리 책인 아연 소년들(Zinky Boys)은 1979년부터 1985년까지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아연 관에 담겨 돌아온 전사들에 대한 내용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그녀는 "명예훼손"과 "군인들의 명예 훼손"으로 고발당했다. 알렉시예비치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여러 차례 재판을 받았다.
『체르노빌의 기도』(1997년)에서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증언을 다루었는데, 벨라루스에서는 아직도 사고에 대한 언론 통제가 시행되고 있다. 2003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체르노빌을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알렉산더 루카셴코 정권의 정치적 박해 이후 2000년 벨라루스를 떠났다. 국제 피난 도시 네트워크(International Cities of Refuge Network)가 그녀에게 피난처를 제공했고, 그 후 10년 동안 파리, 예테보리, 베를린에서 살았다. 2011년 알렉시예비치는 민스크로 다시 돌아왔다.
2.3. 정치적 박해와 망명
1989년 알렉시예비치의 다큐멘터리 책인 아연 소년들(Zinky Boys)은 1979년부터 1985년까지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아연 관에 담겨 돌아온 전사들에 대한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고, 그녀는 "명예훼손"과 "군인들의 명예 훼손"으로 고발당했다. 알렉시예비치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여러 차례 재판을 받았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의 정치적 박해 이후 2000년 벨라루스를 떠났다. 국제 피난 도시 네트워크가 그녀에게 피난처를 제공했고, 그 후 10년 동안 파리, 예테보리, 베를린에서 살았다. 2011년 알렉시예비치는 민스크로 다시 돌아왔다.
3. 작품 세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권력에 억압받는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감정의 역사"를 엮어왔다고 말한다. 그녀는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을 바탕으로 글을 쓰지만, 편집자로서 증언을 소재로 창작을 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벨라루스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렉시예비치는 그를 자신의 스승으로 부른다.
알렉시예비치의 책들은 인터뷰를 모아 구성하는 방식으로, 소비에트 연방과 그 이후 시대 사람들의 감정적인 역사를 보여준다. 러시아 작가이자 비평가인 드미트리 비코프는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이 알레스 아다모비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아다모비치는 20세기의 끔찍한 사건들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증인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벨라루스 시인 블라지미르 냐클랴예프는 아다모비치를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적 대부"라고 불렀다. 그는 또한 알레스 아다모비치, 얀카 브릴, 블라지미르 칼레즈니크가 쓴 다큐멘터리 소설 『나는 불타는 마을에서 왔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불타버린 마을에 대한 이야기로, 알렉시예비치의 문학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말했다. 알렉시예비치 자신도 알레스 아다모비치와 벨라루스 작가 바실 비카우 등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그녀는 바람 샬라모프를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꼽는다.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의 작품을 목소리나 합창과 같은 음악에 비유하기도 하며,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1. 주요 작품 및 주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권력에 억압받는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감정의 역사"를 엮어왔다고 말한다. 그녀는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을 바탕으로 글을 쓰지만, 편집자로서 증언을 소재로 창작을 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벨라루스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렉시예비치는 그를 자신의 스승으로 부른다.
알렉시예비치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985):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여성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 《마지막 증인들 : 어린이 목소리를 위한 솔로》 (1985):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증언을 담은 책이다. 전쟁이 어린이들에게 남긴 상처와 고통을 보여준다.
* 《아연 소년들》 (1991):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전쟁의 비극성과 참전 군인들의 고통을 드러내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죽음에 매료되다》 (1993): 소련 붕괴 이후 체제 전환기에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 《체르노빌의 기도》 (1997):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피해 지역 주민들과 사고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 《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2013): 20년 이상 인터뷰를 통해 소련 붕괴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알렉시예비치의 책들은 벨라루스에서 출판이 제한되기도 했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주제를 "우리 역사 전체, 소비에트 시대와 소비에트 이후 시대를 돌아보면 거대한 공동묘지이자 피의 탕"이라고 설명하며, 처형자와 희생자의 영원한 대화, 혁명, 굴라그, 제2차 세계 대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위대한 제국의 몰락, 체르노빌 등을 다룬다고 말한다.
알렉시예비치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기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자신은 기자라는 생각을 거부하며, 자신의 장르를 "다큐멘터리 문학"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실제 삶에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근사치를 허용하는 문학적 방법"을 찾고 있으며, "개별 목소리의 합창과 일상적인 세부 사항의 콜라주"로 세상을 듣고 본다고 말한다.
알렉시예비치의 작품들은 여러 차례 연극, 영화, 만화 등으로 각색되었다.
3.2. 문학적 기법과 특징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들은 인터뷰를 모아 구성하는 방식으로, 소비에트 연방과 그 이후 시대 사람들의 감정적인 역사를 보여준다. 러시아 작가이자 비평가인 드미트리 비코프는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이 벨라루스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아다모비치는 20세기의 끔찍한 사건들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증인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벨라루스 시인 블라지미르 냐클랴예프는 아다모비치를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적 대부"라고 불렀다. 그는 또한 알레스 아다모비치, 얀카 브릴, 블라지미르 칼레즈니크가 쓴 다큐멘터리 소설 『나는 불타는 마을에서 왔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불타버린 마을에 대한 이야기로, 알렉시예비치의 문학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말했다. 알렉시예비치 자신도 알레스 아다모비치와 벨라루스 작가 바실 비카우 등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그녀는 바람 샬라모프를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꼽는다.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의 작품 주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역사 전체, 소비에트 시대와 그 이후 시대를 돌아보면 거대한 공동묘지이자 피의 탕입니다. [...] 이것이 제 책의 주제이며, 제 길이며, 제 지옥의 원입니다."
알렉시예비치는 권력에 억압받으며 살아가는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감정의 역사"를 엮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을 바탕으로 글을 쓰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게 표현하며 편집자로서 증언을 소재로 한 창작을 수행한다. 이러한 인터뷰 기반 방법론은 벨라루스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를 계기로 한 것이며, 알렉시예비치는 아다모비치를 스승으로 부른다.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의 작품을 목소리나 합창과 같은 음악에 비유하기도 하며,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 정치적 활동 및 사회 참여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정권과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을 비판해 왔으며, 루카셴코 집권 이후 벨라루스에서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은 출판되지 못했다. 압력과 언론 통제를 피하기 위해 2000년대에는 서유럽을 전전했고, 2011년에 귀국했다.고에노, 2017a, p.156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발생 이후, 2016년에 후쿠시마를 방문하여 남소마시의 고타역 부근, 이이타테무라, 다테시 그리고 사고 후 잇따른 자살 현장 등을 취재했다.알렉시예비치 외, 2021, pp.200-202, 208, 210
2015년, 저널리스트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4.1. 2020년 벨라루스 시위 참여
2020년 8월 9일 2020년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 직후부터 벨라루스에서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스베틀라나 티하노프스카야를 비롯한 야당 후보자, 시민 단체, 작가, 전문가들은 법질서 회복과 정권 이양을 목표로 조정협의회(Каардынацыйная рада (Беларусь))를 설립했고, 알렉시예비치는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8월 26일에는 알렉시예비치에게도 수사 당국이 출두를 요구하여 약 40분간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전 알렉시예비치는 루카셴코가 반정부 세력과의 대화에 응하도록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에 협력을 요청했다.
2020년 9월 28일, 지병 치료를 위해 독일로 출국했고, 2022년 현재도 체류하고 있다. 독일로 출국한 후 벨라루스 법무부는 알렉시예비치가 회장인 벨라루스 펜의 해산을 요구했고, 벨라루스 펜의 은행 계좌가 동결되었다. 알렉시예비치가 올가 토카르추크와 함께 행사에 참가할 때는 그녀가 폭탄을 소지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 베를린에서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4.2. 국제 문제에 대한 입장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권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과 크림반도 합병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여 러시아 내에서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2020년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 이후 루카셴코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알렉시예비치는 야당 후보 스베틀라나 티하노프스카야를 지지하며 조정협의회(Каардынацыйная рада (Беларусь))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벨라루스 수사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으며, 루카셴코 정권과의 대화를 촉구하는 국제적 연대를 호소하기도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5. 수상 및 영예
* 1996년 스웨덴 펜클럽에서 쿠르트 투홀스키 상(Kurt-Tucholsky-Preis)을 받았다.
* 1998년 라이프치히(Leipzig) 유럽 상호 이해상(Leipziger Buchpreis zur Europäischen Verständigung)을 받았다.
* 2005년 제30회 미국 전국 비평가 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 2011년 리샤르트 카푸시친스키 상(Ryszard Kapuściński Award)을 받았다.
* 2013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Frankfurter Buchmesse)에서 독일 도서협회 평화상(Deutscher Buchpreis)을 수상했다.
* 2013년 메디시스상(Prix Médicis)을 받았다.
* 201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6. 한국과의 관계
주어진 원본 소스(source)에는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작성할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