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건국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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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의 건국 신화는 서라벌 지역의 여섯 촌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를 건국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원전 69년, 육부 촌장들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샤량리의 알영 우물가에서 태어난 알영을 왕후로 맞이했다.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와 알영을 성인으로 칭송하며, 중국 연나라 유민이 박혁거세의 선조라는 설도 전해진다. 신라 건국 신화는 난생 설화, 광명 사상, 유이민과 토착 집단의 결합 등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신라는 이후 6촌을 6부로 개편하고, 각 촌장에게 성을 부여했다.
신라는 서라벌 지역의 육부촌을 기반으로 건국되었다. 각 촌은 촌장이 다스렸고, 6촌장이 모인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제로 중요한 문제를 결정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옛 진한(辰韓) 땅에는 6촌(六村)이 있었다고 한다. 이 6촌은 신라 건국의 기반이 되었다.
2. 신라의 건국
기원전 69년, 화백회의에서 임금을 추대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6촌장들은 남산 기슭 나정 우물가에서 신비로운 기운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흰 말이 하늘로 오르고 큰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 6촌장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정했다. 박혁거세는 스스로를 거서간이라 칭했다.
이후 알영 우물가에서 계룡이 낳은 여자아이가 알영인데, 13세에 박혁거세의 왕후가 되었다.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와 알영을 "성인"이라 칭송했고,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의 선조가 중국 연나라에서 마한으로 피난 온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1]
2. 1. 박혁거세와 알영부인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그의 왕비 알영부인에 대한 설화는 다음과 같다.
박혁거세는 기원전 69년, 서라벌 지역 6촌장들이 모인 화백회의에서 임금으로 추대되었다. 6촌장들은 남산 기슭의 나정 우물가에서 흰 말이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고 큰 알을 발견했는데, 그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 6촌장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정했다.
알영은 샤량리의 알영 우물가에서 계룡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입술에 닭의 부리가 달려 있었으나, 북쪽 시냇가에서 씻은 후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 13세에 박혁거세의 왕후가 되었다.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와 알영의 나이는 같으며, 나라 사람들이 이 둘을 "성인"이라고 부르며 크게 좋아하였다고 한다. 한편, 삼국사기 경순왕조에 따르면 옛날 중국 연나라에서 마한으로 피난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박혁거세의 선조라고 한다는 얘기도 전해진다.[1]
2. 1. 1. 건국 신화의 내용
서라벌 지역에는 여섯 개의 촌이 있어 육부촌이라 불렸다. 각 촌에는 촌장이 있어 대소사를 관장하였고 6촌장들이 모인 화백회의가 있어 ‘만장일치제’로 6촌 전체의 문제를 결정하였다.[1]
기원전 69년 화백회의에서 6촌에는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법도를 모르니 임금을 추대하고 도읍을 세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6촌장들이 산에 올라 서라벌 땅을 굽어보니 남산 기슭의 나정 우물가에 신비한 기운이 서려있어 모두 그곳으로 갔다.[1]
우물가에는 흰말이 있었는데 6촌장들이 나타나자 말은 하늘로 오르고 우물가에는 큰 알이 하나 놓여있었다. 알에서 건장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아이의 몸에서는 광채가 나고 뭇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었으며 해와 달이 밝게 빛났다. 6촌장들이 아이의 이름을 박혁거세라 칭하고 왕으로 추대하자, 왕은 국호를 서라벌이라 하고 스스로를 거서간으로 정했다.[1]
박혁거세가 왕으로 추대된 후 어느 날, 샤량리의 알영 우물가에서 계룡이 나타나 겨드랑이로 여자아이를 낳았다. 여자아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피부가 고왔지만, 입술에 닭의 부리가 달려있어 보기 흉했다. 사람들이 여자아이를 북쪽 시냇가로 데려가 씻기니 부리가 떨어지고 매우 고운 자태를 드러내었다. 아이가 자라 13세가 되어 왕후로 추대되었다. 아이의 이름은 알영이다. 사량리의 알영 우물가를 따서 이름을 지은 것이다.[1]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와 알영의 나이는 같으며, 나라 사람들이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을 "성인"이라고 부르며 크게 좋아하였다고 한다. 한편, 삼국사기 경순왕조에 따르면 옛날 중국 연나라에서 마한으로 피난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박혁거세의 선조라고 한다는 얘기도 전해진다.[1]
2. 1. 2. 건국 신화의 해석
신라는 서라벌 지역의 여섯 촌, 즉 육부촌을 기반으로 건국되었다. 각 촌은 촌장이 다스렸고, 6촌장이 모인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제로 중요한 문제를 결정했다.
기원전 69년, 화백회의에서 임금을 추대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6촌장들은 남산 기슭 나정 우물가에서 신비로운 기운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흰 말이 하늘로 오르고 큰 알이 나타났으며,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 6촌장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정했다.
박혁거세가 왕위에 오른 후, 샤량리의 알영 우물가에서 계룡이 여자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는 입술에 닭의 부리가 있었으나, 북쪽 시냇가에서 씻은 후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 이 아이가 알영이며, 13세에 왕후가 되었다.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와 알영을 "성인"이라 칭송했다고 기록한다.
한편, 삼국사기 경순왕조에는 박혁거세의 선조가 옛날 중국 연나라에서 마한으로 피난 온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3. 6촌
6촌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노례왕(유리 이사금) 9년(32년) 6부로의 개편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다루고 있다.
3. 1. 6촌의 기원과 명칭
최치원은 진한이 본래 연나라 사람들이 피난해 온 것이라고 하였다.[1]
《삼국유사》에 따르면 옛 진한(辰韓) 땅에는 6촌(六村)이 있었다. 6촌은 다음과 같다.
순서 | 촌락 이름 | 촌장 | 강림 위치 | 후신 | 비고 |
---|---|---|---|---|---|
첫째 |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 | 알평(謁平) | 표암봉(瓢嵓峰) | 급량부(及梁部) 이씨(李氏) | 남쪽은 지금의 담엄사이다. 노례왕 9년(32)[2]에 급량부로 개칭, 고려 태조 천복 5년(940)에 중흥부(中興部)로 개칭. 파잠, 동산, 피상, 동촌이 속한다. |
둘째 |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 소벌도리(蘇伐都利) | 형산(兄山) | 사량부(沙梁部) 정씨(鄭氏) | 지금의 남산부. 구량벌, 마등오, 도북, 회덕 등 남촌이 속한다. 지금은 고려 태조 때 설치된 기준.[3] |
셋째 |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 구례마(俱禮馬) | 이산(伊山) (계비산) |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 | 지금의 장복부. 박곡촌 등 서촌이 속한다. |
넷째 | 취산(觜山) 진지촌(珍支村) | 지백호(智伯虎) | 화산(花山) | 본피부(本彼部) 최씨(崔氏) | 지금의 통선부. 시파 등 동남촌이 속한다.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옛 터가 있는데, 최치원의 옛 집이라고 한다. |
다섯째 | 금산(金山) 가리촌(加里村) | 기타(祗沱) | 명활산(明活山) | 한기부(漢歧部) 또는 한기부(韓歧部) 배씨(裵氏) | 지금의 가덕부. 상서지, 하서지, 내아 등 동촌이 속한다. 지금의 금강산 백률사 북쪽 산이다. |
여섯째 |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 | 호진(虎珍) | 금상산(金剛山) | 습비부(習比部) 설씨(薛氏) | 지금의 임천부. 물이촌, 잉구미촌, 궐곡 등 동북촌이 속한다. |
위의 기록을 보면 6부의 조상은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 같다. 노례왕 9년[2]에 비로소 6부의 이름을 고치고, 여섯 성(姓)을 주었다.[3]
3. 2. 6부로의 개편
신라 건국 이전, 진한 땅에는 6개의 촌이 있었다. 이 6촌은 노례왕(유리 이사금) 9년(32년)[2]에 6부로 개편되었고, 각 부는 새로운 성씨를 하사받았다.[3]6촌 | 6부 | 성씨 | 비고 |
---|---|---|---|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 | 급량부(及梁部) | 이씨(李氏) | 고려 태조 때 중흥부(中興部)로 개칭[3] |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 사량부(沙梁部) | 정씨(鄭氏) | |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부(牟梁部) | 손씨(孫氏) | |
취산(觜山) 진지촌(珍支村) | 본피부(本彼部) | 최씨(崔氏) | 최치원은 본피부 출신 |
금산(金山) 가리촌(加里村) | 한기부(漢歧部) 또는 한기부(韓歧部) | 배씨(裵氏) | |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 | 습비부(習比部) | 설씨(薛氏) |
4. 신화와 역사
신라 건국 신화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전해지는데,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지만 당시 서라벌 지역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 지역에는 육부촌이라 불리는 6개의 촌락이 있었고, 각 촌락은 촌장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기원전 69년, 6촌장들은 화백회의를 열어 임금을 추대하고 도읍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알영을 왕후로 삼았다.
최치원은 진한이 본래 연나라 사람들이 피난 온 것이라고 언급하며, 신라 건국 세력의 형성에 외부 집단의 유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했다.[1] 이는 삼국사기 경순왕조에 박혁거세의 선조가 옛날 중국 연나라에서 마한으로 피난 온 사람이라는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육부촌과 각 촌락의 촌장, 강림한 산, 성씨, 현재 지명(고려 태조 기준)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의 관계' 섹션의 표를 참고하면 된다.
4. 1. 신화의 의의와 가치
신라 건국 신화는 고대 국가의 정체성 확립, 지배층의 권위 강화, 사회 통합 등에 기여했다는 의의를 가진다. 특히 박혁거세와 알영의 탄생 설화는 한국 문화의 난생설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삼국유사에 따르면, 박혁거세와 알영은 같은 나이로, 나라 사람들이 이 둘을 "성인"이라 부르며 크게 좋아했다고 한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나 몸에서 광채가 났으며, 뭇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고 해와 달이 밝게 빛났다고 묘사된다. 알영은 계룡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으며, 처음에는 닭의 부리를 가졌으나 씻은 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러한 신비로운 탄생 이야기는 지배층의 신성성을 강조하고, 백성들에게 존경과 복종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삼국사기 경순왕조에는 박혁거세의 선조가 옛날 중국 연나라에서 마한으로 피난 온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는 신라 건국 신화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고대 사회의 다양한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4. 2. 역사적 사실과의 관계
신라의 건국 신화는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당시 서라벌 지역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 지역에는 6개의 촌락, 즉 육부촌이 존재했고, 각 촌락은 촌장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6촌의 촌장들은 화백회의를 통해 6촌 전체의 중요한 문제를 '만장일치제'로 결정했다. 이는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 지역에 이미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춘 촌락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종합하면, 육부촌은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무산 대수촌, 취산 진지촌, 금산 가리촌, 명활산 고야촌으로 구성되었다. 각 촌락은 특정 성씨의 조상이 되는 인물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각 촌락의 기원에 대한 신성성을 부여하고, 촌락 간의 위계 질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 육부촌과 성씨
촌락 이름 | 촌장 | 강림한 산 | 성씨 | 현재 지명 (고려 태조 기준[3]) |
---|---|---|---|---|
알천 양산촌 | 알평 | 표암봉 | 이씨 | 중흥부 (급량부[2]) |
돌산 고허촌 | 소벌도리 | 형산 | 정씨 | 남산부 |
무산 대수촌 | 구례마 | 이산 | 손씨 | 장복부 (점량부/모량부) |
취산 진지촌 | 지백호 | 화산 | 최씨 | 통선부 |
금산 가리촌 | 기타 | 명활산 | 배씨 | 가덕부 (한기부) |
명활산 고야촌 | 호진 | 금강산 | 설씨 | 임천부 |
박혁거세와 알영의 탄생 설화는 신화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화백회의를 통한 왕 추대, 6촌 촌장의 존재, 연나라 유민설 등은 당시 서라벌 지역의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최치원이 언급한 것처럼 진한이 연나라 유민들의 피난처였다는 기록[1]은 신라 건국 세력의 형성에 외부 집단의 유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5. 참고: 신라 건국과 관련된 문화유산
신라 건국 신화와 관련된 대표적인 유물로는 경주 나정이 있다.
5. 1. 경주 나정
기원전 69년 화백회의에서 6촌에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법도를 모르니 임금을 추대하고 도읍을 세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6촌장들이 산에 올라 서라벌 땅을 굽어보니 남산 기슭의 나정 우물가에 신비한 기운이 서려 있어 모두 그곳으로 갔다.우물가에는 흰말이 있었는데 6촌장들이 나타나자 말은 하늘로 오르고 우물가에는 큰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알에서 건장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아이의 몸에서는 광채가 나고 뭇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었으며 해와 달이 밝게 빛났다. 6촌장들은 아이의 이름을 박혁거세라 칭하고 왕으로 추대했다. 왕은 국호를 서라벌이라 하고 스스로를 거서간으로 정했다.
참조
[1]
서적
삼국유사
null
[2]
서적
삼국사기
null
[3]
서적
삼국유사, 삼국사기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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