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 김씨
1. 개요
신빈 김씨는 조선 세종의 후궁으로, 본관은 청주이며 아버지는 김원이다. 13세에 원경왕후에게 발탁되어 궁인이 되었고, 세종의 승은을 입어 계양군 등을 낳았다. 귀인에 봉해진 후 신빈으로 책봉되었으며, 소헌왕후의 신임을 얻어 영응대군의 유모를 맡기도 했다. 불교를 신봉하여 세종 사후 여승이 되었으며, 1464년에 59세로 사망하여 경기도 화성시에 묘역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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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년 출생 -
프라 필리포 리피
프라 필리포 리피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로, 마사초의 영향을 받아 종교화를 현실적으로 묘사했으며, 프라토 대성당의 프레스코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남겼다. -
1406년 출생 -
이순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천문학자, 역법학자인 이순지는 세종의 신임을 받아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완성하여 조선의 독자적인 역법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으며, 다양한 관직을 역임하고 천문학 관련 저술을 남겼다. -
청주 김씨 -
김영정 (1929년)
김영정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소속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
청주 김씨 -
김형석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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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4년 사망 -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독일 출신의 철학자, 신학자, 추기경으로서 스콜라 철학 비판, 독창적 형이상학, 동서 교회 통합 노력, 그리고 "지적인 무지"와 "대립의 일치" 개념을 통해 중세에서 근대로의 사상적 전환에 기여하고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
1464년 사망 -
정통제
정통제는 명나라의 제6대 황제이자 제8대 황제로, 선덕제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왕진의 발호와 토목의 변을 겪었으며, 포로 생활과 유폐 후 복위하여 천순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2. 생애
신빈 김씨는 성품이 부드럽고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의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세종 사후에는 승려가 되었으며, 1450년(문종 즉위년) 사망한 막내아들 담양군을 위한 경문 인쇄 비용으로 쌀 500석을 하사받았다. 1452년(단종 즉위년) 단종이 아들 의창군의 청원으로 머리를 기르도록 명했으나 거절하였다.
1464년(세조 10년) 음력 9월 4일 59세로 사망하자, 세조는 쌀과 콩 등 모두 70석을 부의로 내렸다. 묘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에 있는 《화성 남양리 신빈김씨 묘역》이다. 묘역에는 세조 11년(1465)에 세운 묘갈, 묘비, 장명등, 문인석 1쌍, 상석이 있으며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1994년 경기도의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입궁
청주를 본관으로 하며, 아버지는 김원이고 어머니는 삭녕 고씨이다. 원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1418년(세종 즉위년)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되어 소헌왕후의 궁인이 되었다. 훗날 세종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으며, 1427년(세종 9년) 장남 계양군을 출산하였다. 그 후 정2품 소의를 거쳐 1439년(세종 21년) 종1품 귀인에 진봉되었다. 당시 세종이 도승지 김돈에게 "김씨의 출신이 천하지만 13세부터 궁중에 들어와 행실이 바르기에 빈이나 귀인으로 삼고자 하는데 어떠하냐"고 묻자 김돈이 신개 등과 의논해 귀인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정1품 신빈(愼嬪)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다.
2.2. 후궁 시절
청주를 본관으로 하며, 아버지는 김원이고 어머니는 삭녕 고씨이다. 원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1418년(세종 즉위년)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되어 소헌왕후의 궁인이 되었다. 훗날 세종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고, 1427년(세종 9년) 장남 계양군을 출산하였다. 그 후 정2품 소의를 거쳐 1439년(세종 21년) 종1품 귀인에 진봉되었다. 당시 세종이 도승지 김돈에게 "김씨의 출신이 천하지만 13세부터 궁중에 들어와 행실이 바르기에 빈이나 귀인으로 삼고자 하는데 어떠하냐"고 묻자 김돈이 신개 등과 의논해 귀인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정1품 신빈(愼嬪)에 책봉되었다.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다. 평소에 불교를 신봉했었는데, 세종이 죽고나서는 아예 여승이 되어 살았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사망한 막내아들 담양군을 위한 경문 인쇄 비용으로 조정에서 쌀 500석을 하사받았으며, 1452년(단종 즉위년)에는 단종이 그녀의 아들 의창군의 청원에 의해 그녀에게 머리를 기르도록 명령하였지만 이를 거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3. 불교 귀의와 말년
신빈 김씨는 평소 불교를 신봉하였는데, 세종이 죽은 후에는 승려가 되어 살았다. 1450년(문종 즉위년) 막내아들 담양군을 위한 경문 인쇄 비용으로 조정에서 쌀 500석을 하사받았다. 1452년(단종 즉위년) 단종이 아들 의창군의 청원으로 신빈 김씨에게 머리를 기르도록 명하였지만, 신빈 김씨는 이를 거절하였다.
1464년(세조 10년) 음력 9월 4일 59세를 일기로 죽었으며, 세조는 쌀, 콩 등 모두 70석을 부의로 내렸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김원(金元) | |
| 어머니 | 삭녕 고씨 | |
| 남편 | 세종대왕 | 제4대 국왕 (재위 1418년 ~ 1450년) |
| 슬하 6남 | ||
| 장남 | 계양군 증(桂陽君 璔) | 1427년 ~ 1464년 8월 16일 |
| 자부 | 정선군부인 청주 한씨(旌善郡夫人 淸州 韓氏) | 1426년 4월 12일 ~ 1480년 7월 27일 |
| 차남 | 의창군 공(義昌君 玒) | 1428년 ~ 1460년 2월 27일 |
| 자부 | 양원군부인 연안 김씨(梁源郡夫人 延安金氏) | 1429년 ~ 1482년 |
| 삼남 | 밀성군 침(密城君 琛) | 1430년 ~ 1479년 1월 1일 |
| 자부 | 풍덕군부인 여흥 민씨(豊德郡夫人 驪興閔氏) | |
| 사남 | 익현군 연(翼峴君 璭) | 1431년 ~ 1463년 5월 4일 |
| 자부 | 김제군부인 평양 조씨(金堤郡夫人 平壤趙氏) | |
| 오남 | 영해군 당(寧海君 瑭) | 1435년 ~ 1477년 |
| 자부 | 임천군부인 평산 신씨(林川郡夫人 平山 申氏) | |
| 육남 | 담양군 거(潭陽君 璖) | 요절 |
| 자녀, 손주, 증손주, 양자 관계는 생략 | ||
4. 기타
드라마 〈대왕 세종〉(KBS 제작)에서 배우 이정현이 신빈 김씨 역을 연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