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 후사마로
1. 개요
쓰가루 후사마로는 일본의 귀족으로, 고노에 다다후사의 차남으로 태어나 쓰가루 노부아키의 양자가 되었다. 독일에서 법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하고 귀국하여 와세다 대학과 가쿠슈인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1907년 대한제국으로 건너가 통감부, 궁내부, 이왕직 등에서 관료로 활동했으며, 1918년 귀족원 의원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망했다. 쓰가루 테루코와 결혼했으나, 조카를 양자로 삼는 데 실패하고 도쿠가와 요시타카가 쓰가루 가문을 이었다. 1916년 훈4등 서보장을 받았다.
| 각국어 표기 | 쓰가루 후사마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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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872년 4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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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지 | 일본 도쿄부(현 도쿄도) |
| 사망일 | 1919년 4월 5일 |
| 출신 학교 | 본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제네바 대학교 |
| 전 직책 | 궁내성 대신 관방 어용 걸 |
| 칭호 및 훈장 | 훈4등 서보장 |
| 배우자 | 쓰가루 데루코 |
| 자녀 | 양자 - 쓰가루 요시타카 |
| 친족 (정치가) | 장인 - 오가사와라 다다시게(귀족원 의원) 형 - 고노에 아쓰마로(귀족원 의장) 의형 - 도쿠가와 이에사다(귀족원 의장) 조카 - 고노에 후미마로(내각총리대신) 조카 - 고노에 히데마로(귀족원 의원) 조카 - 미야가와 다다마로(귀족원 의원) 조카 - 도쿠가와 이에마사(귀족원 의장) |
| 직책 | 귀족원 의원 |
|---|---|
| 취임일 | 1918년 7월 10일 |
| 퇴임일 | 1919년 4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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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부 관련자 -
메가타 다네타로
메가타 다네타로는 일본 제국의 관료이자 법률가, 교육자로, 귀족원 의원과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교 졸업 후 일본 법률 및 재정 제도 정비에 기여했고, 대한제국 재정 고문으로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하여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일본 근대 교육 발전에도 공헌했으며 국제연맹 총회에 일본 대표로 참석했다. -
통감부 관련자 -
시노다 지사쿠
시노다 지사쿠는 러일 전쟁 당시 국제법 고문으로 활동하고 한국통감부와 조선총독부에서 관직을 역임한 일본의 관료이자 법학자이다. -
고노에가 -
고노에 사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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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에가 -
고노에 아쓰마로
일본 메이지 시대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고노에 아쓰마로는 공작 작위를 받은 화족 출신으로 귀족원 의원, 귀족원 의장, 가쿠슈인 원장을 역임하며 문벌 정치를 비판하고 범아시아주의를 주창, 동아동문회 설립과 대러동지회 조직 등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펼쳤다. -
가쿠슈인 대학 교수 -
고다이라 구니히코
고다이라 구니히코는 일본의 수학자로, 대수기하학 분야에서 변형 이론, 대수곡면 분류, 고다이라 차원, 고다이라 소멸 정리 등의 업적을 남겨 1954년 필즈상을 수상했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여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수학 대중화에도 기여했다. -
가쿠슈인 대학 교수 -
레지널드 블라이스
레지널드 블라이스는 영국 출신의 영문학자로,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며 선불교와 하이쿠 연구에 헌신했고, 서구 사회에 선불교와 하이쿠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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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후사마로는 고노에 다다후사의 차남으로 도쿄에서 태어나, 옛 히로사키번 번주였던 쓰가루 노부아키의 양자가 되었다. 가쿠슈인 중등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하여 본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본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제네바 대학교에서 법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1904년 일본으로 귀국하여 와세다 대학 및 가쿠슈인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07년 조선으로 건너가 통감부 법제 조사 사무 촉탁, 대한제국 궁내부 서기관이 되었다. 1911년 이왕직 사무관, 총독부 외사국 조사 사무 촉탁을 거쳐 1914년 식부관 겸 이왕직 사무관 및 궁내성 대신 관방 어용계에 임명되었다. 1918년 귀족원 의원이 되었으나, 이듬해 48세의 나이로 급서했다.
아내는 가인 쓰가루 테루코 (오가사와라 타다자네의 딸)이다. 부부는 조카 고노에 나오마로를 양자로 들이려 했으나 실현되지 못했고,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도쿠가와 요시노리의 차남 요시타카가 쓰가루 가문을 이었다.
2.1. 초기 생애
고노에 다다후사의 차남으로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옛 히로사키번 번주였던 쓰가루 노부아키의 양자가 되었다. 가쿠슈인 중등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유학하여 본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본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제네바 대학교에서 법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2.2. 경력
1904년 일본으로 귀국하여 와세다 대학 및 가쿠슈인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07년 10월 조선으로 건너가 통감부 법제 조사 사무 촉탁, 대한제국 궁내부 서기관이 되었다. 1911년 이왕직 사무관, 총독부 외사국 조사 사무 촉탁이 되었고, 1914년 식부관 겸 이왕직 사무관 및 궁내성 대신 관방 어용계에 임명되었다. 1918년 7월 10일 귀족원 의원이 되었으나, 이듬해 급서했다. 향년 48세.
2.3. 가족 관계
아내는 가인 쓰가루 테루코로, 고쿠라번의 번주였던 오가사와라 타다자네의 딸이다. 부부는 조카 고노에 나오마로를 양자로 삼고 싶어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도쿠가와 요시노리의 차남 요시타카가 쓰가루 가문을 이었다.
3.1. 쓰가루 가문
쓰가루 씨는 오우라 모리노부의 아들로 여겨지는 쓰가루 다메노부를 시조로 하며, 히로사키 번의 번주 가문이었다.
3.2. 고노에 가문
근위가는 후지와라노 타다미치의 아들인 코노에 모토자네를 시조로 하며 오섭가 중 하나였다. 양어머니(쓰가루 우케아키의 계실)인 쓰가루 린시는 근위가 출신으로 숙모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