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 폰 뵈멘운트웅가른
1. 개요
아나 폰 뵈멘운트웅가른은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블라디슬라우스 2세의 딸로, 1521년 페르디난트 1세와 결혼하여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비가 되었다. 1526년 모하치 전투 이후 남편 페르디난트 1세가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위를 계승하는 데 기여했으며, 15명의 자녀를 두어 합스부르크 가문의 번영에 기여했다. 남편이 부재 시 섭정 역할을 수행하며 국정에 참여했고, 자선과 지혜로 명성을 얻었다. 1547년 프라하에서 사망했으며, 그녀의 자녀들은 유럽 각국의 왕가와 혼인하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 배우자 | 페르디난트 1세 |
|---|---|
| 자녀 | 엘리자베트, 폴란드 여왕 막시밀리안 2세, 신성 로마 황제 안나, 바이에른 공작 부인 페르디난트 2세, 오스트리아 대공 마리아, 율리히-클레베-베르크 공작 부인 막달레나 대공녀 카타리나, 폴란드 여왕 엘레오노레, 만토바 공작 부인 마르가레테 대공녀 요한 대공 바르바라, 페라라 공작 부인 카를 2세, 내오스트리아 대공 우르술라 대공녀 헬레나 대공녀 요한나, 토스카나 대공녀 |
| 가문 | 야기에우워 가문 |
| 아버지 | 울라슬로 2세 |
| 어머니 | 안 드 푸아 |
| 출생일 | 1503년 7월 23일 |
| 출생지 | 부다, 헝가리 왕국 |
| 사망일 | 1547년 1월 27일 |
| 사망지 | 프라하, 보헤미아 왕국, 신성 로마 제국 |
| 매장지 | 성 비투스 대성당 |
| 로마 왕비 | 1531년 1월 5일 – 1547년 1월 27일 |
|---|---|
| 헝가리 왕비 | 1526년 – 1547년 1월 27일 |
| 보헤미아 왕비 | 1526년 – 1547년 1월 27일 |
| 크로아티아 왕비 | 1526년 – 1547년 1월 27일 |
| 오스트리아 대공비 | 1521년 5월 25일 – 1547년 1월 27일 |
| 결혼일 | 1521년 5월 26일 |
|---|---|
| 결혼 장소 | 린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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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년 출생 -
페르디난트 1세 (신성 로마 황제)
페르디난트 1세는 1556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1526년부터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 1521년부터 오스트리아 대공을 지냈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 분가를 창시하고 헝가리와 보헤미아 왕위를 계승하여 합스부르크 제국의 기틀을 마련, 종교 갈등을 조정하여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이끌어냈고 중앙집권화와 가톨릭 부흥을 추진했다. -
1503년 출생 -
브론치노
브론치노는 16세기 이탈리아 매너리즘 미술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으로, 메디치 가문의 궁정 화가로서 궁정 인물 초상화를 주로 그리며 정적이고 우아한 화풍으로 유럽 궁정 초상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종교화, 우화화, 태피스트리 디자인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
1547년 사망 -
에르난 코르테스
에르난 코르테스는 16세기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르로, 멕시코 원정을 통해 아즈텍 제국을 정복했지만, 정복 과정에서의 잔혹 행위와 아즈텍 문명 파괴에 대한 비판도 존재하는 인물이다. -
1547년 사망 -
윤원로
윤원로는 조선 중기 문정왕후의 친척이자 윤원형의 형으로, 급변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부침을 겪으며 윤임 등과의 갈등, 을사사화 연루, 동생 윤원형과의 정쟁 끝에 사사된 인물이다. -
신성 로마 황후 -
마리아 아말리아 폰 외스터라이히 (1701년)
마리아 아말리아 폰 외스터라이히는 신성 로마 황제 요제프 1세의 딸로 태어나 바이에른의 카를 알브레히트와 결혼하여 황후가 되었으며, 사후에는 자선 활동을 펼치다 사망했다. -
신성 로마 황후 -
마틸다 (잉글랜드)
잉글랜드 왕 헨리 1세의 딸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후였던 마틸다는 12세기 잉글랜드 왕위 계승 분쟁 시기에 왕위를 주장했으나, 비록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아들 헨리 2세가 왕위를 계승하며 플랜태저넷 왕조를 열었다.
2. 생애
아나는 1503년 7월 23일 헝가리 왕국의 수도인 부다(현재 부다페스트)에서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블라디슬라우스 2세와 그의 세 번째 부인 푸아-캉달의 앤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자 외동딸이었다. 그녀의 남동생은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루이 2세였다.
1515년 빈 회의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는 야기에우워 왕조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이중 결혼(빈 이중 결혼)을 통해 자신의 손자와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 울라슬로 2세의 딸 안나를, 울라슬로의 아들 러요시와 자신의 손녀를 결혼시키기로 협의했다.
1516년 아버지 블라디슬라우스 2세가 사망하면서, 안나 남매는 막시밀리안 1세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이후 1521년 린츠에서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인 페르디난트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당시 페르디난트는 그의 형 카를 5세를 대신하여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습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으며, 헝가리 왕 러요시 2세가 후계없이 사망할 경우 페르디난트가 헝가리 왕위를 계승하기로 합의되어 있었다.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러요시 2세가 오스만 제국 군에게 패하여 20세의 나이로 전사하고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안나의 남편 페르디난트가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으로 선출되었고, 안나는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헝가리 영토는 오스만, 오스트리아, 트란실바니아 공국으로 분할, 흡수되었다. 1531년에 페르디난트는 로마 왕이 되기도 했다.
안나는 남편에게 조언을 하고, 가능한 한 따랐다. 남편 페르디난트가 브뤼셀에 머무는 동안에는 섭정으로서 국정을 책임졌다. 1547년 막내딸 요하나를 출산하고 3일 후 프라하에서 사망하였다.
2.1. 출생과 성장
아나는 부다(현재의 부다페스트)에서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블라디슬라우스 2세와 그의 세 번째 부인 푸아-캉달의 앤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자 외동딸이었다.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루이 2세는 그녀의 남동생이다. 그녀의 친조부모는 폴란드의 카지미르 4세와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스였으며, 외조부모는 캉달 백작 가스통 드 푸아와 나바라의 카탈리나였다.
1516년 3월 13일 아버지 블라디슬라우스 2세가 사망하면서 아나는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아나와 그녀의 여동생 메리는 처음에 빈으로 이사했고, 그 후에 인스브루크로 이사했다. 인스브루크는 황제의 무기고가 있었고 무기 산업의 본거지였다. 막시밀리안은 거의 방문하지 않았지만, 인문학 교사들을 보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2.2. 결혼
1515년 빈 회의에서 당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막시밀리안 1세는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 울라슬로 2세의 딸 안나와 자신의 손자를, 또한 울라슬로의 아들 러요시와 자신의 손녀를 결혼시키기로 협의했다. 이 때 안나와 결혼 상대는 카를과 페르디난트 중 어느 쪽이 될 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1521년 5월 26일 오스트리아의 린츠에서 페르디난트와 결혼했다. 이듬해 동생 러요시 2세도 페르디난트의 여동생 마리아와 결혼했다. 당시 남편 페르디난트는 그의 형 카를 5세를 대신하여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습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다. 헝가리 왕 러요시 2세가 후계없이 사망할 경우에 남편 페르디난트가 헝가리 왕위를 계승하도록 그녀가 결혼할 때 양국이 합의하였다.
2.3.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비
1526년 러요시 2세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오스만 제국과의 모하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헝가리 왕조가 단절되자,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위는 안나의 남편 페르디난트가 계승했다. 헝가리 영토는 오스만, 오스트리아, 트란실바니아 공국으로 분할, 흡수되었다.
1526년 10월 24일 남편 페르디난트는 아나와 함께 보헤미아의 왕으로 선출된 후, 귀족들에 의해 헝가리의 왕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일부 헝가리 귀족들은 외국의 통치자가 왕위를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대신 자폴랴 요한을 왕으로 선출했다. 1570년 슈파이어 조약의 일부로서 요한의 아들 지기스문트가 페르디난트의 아들 막시밀리안에게 헝가리 왕위를 내줄 때까지 두 경쟁자와 그들의 후계자 사이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1531년 페르디난트의 형 카를 5세가 페르디난트를 차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지명하면서 페르디난트는 로마 왕이 되었다.
안나는 남편 페르디난트가 브뤼셀에 머무는 동안에 트리에스테의 주교와 함께 섭정이 되어 평의회 의장으로서 국정을 책임졌다.
1515년 야기에우워 왕조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이중 결혼(빈 이중 결혼)이 결정되었지만, 당시 안나의 남편은 미정이었고, 대신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대리 결혼했다. 1521년 린츠에서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인 페르디난트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1522년에는 남동생 러요시 2세와 페르디난트의 여동생 마리아가 결혼했다.
러요시 2세는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 군에게 패하여 20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왕비 마리아와의 사이에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안나의 남편 페르디난트가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으로 선출되었고, 안나는 왕비가 되었다.
안나는 남편에게 조언을 하고, 가능한 한 따랐다.
1547년 1월 27일, 프라하에서 44세로 사망했다. 안나 사망 후의 페르디난트 1세는 결코 수염을 깎지 않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은둔하게 되었다고 한다.
2.4. 사망
1547년 막내딸 요하나를 출산하고 3일 후 프라하에서 사망하였다. 남편 페르디난트 1세는 아내가 사망한 후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1547년 1월 27일 프라하에서 44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 페르디난트 1세는 수염을 깎지 않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은둔하였다고 한다.
3. 자녀
페르디난트 1세와 아나 폰 뵈멘운트웅가른 사이에는 4남 11녀가 태어났다. 다음은 그 자녀들의 목록이다.
| 이름 | | 사망 || 비고 | ||
|---|---|---|---|
| 엘리자베트 | 1526년 7월 9일 | 1545년 6월 15일 |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투스와 결혼; 자녀 없음 |
| 막시밀리안 2세 | 1527년 7월 31일 | 1576년 10월 12일 | 사촌 누이 스페인의 마리아와 결혼; 자녀를 낳음 |
| 안나 | 1528년 7월 7일 | 1590년 10월 16일–17일 | 바이에른 공작 알브레히트 5세와 결혼; 자녀를 낳음 |
| 페르디난트 2세 | 1529년 6월 14일 | 1595년 1월 24일 | 필리핀 웰저와 결혼; 자녀를 낳음; 조카 안네 율리아나 곤차가와 결혼; 자녀를 낳음 |
| 마리아 | 1531년 5월 15일 | 1581년 12월 11일 | 율리히-클레베-베르크 공작 빌헬름과 결혼; 자녀를 낳음 |
| 마그달레나 | 1532년 8월 14일 | 1590년 9월 10일 | 수녀 |
| 카타리나 | 1533년 9월 15일 | 1572년 2월 28일 |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투스와 결혼; 자녀 없음 |
| 엘레오노라 | 1534년 11월 2일 | 1594년 8월 5일 | 만토바 공작 빌헬름 1세와 결혼; 자녀를 낳음 |
| 마르가레테 | 1536년 2월 16일 | 1567년 3월 12일 | 수녀 |
| 요한 | 1538년 4월 10일 | 1539년 3월 20일 | 유아 사망 |
| 바르바라 | 1539년 4월 30일 | 1572년 9월 19일 | 알폰소 2세 데스테와 결혼; 자녀 없음 |
| 카를 2세 | 1540년 6월 3일 | 1590년 7월 10일 | 조카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와 결혼; 자녀를 낳음 (신성 로마 황제 페르디난트 2세 포함) |
| 우르술라 | 1541년 7월 24일 | 1543년 4월 30일 | 유아 사망 |
| 헬레나 | 1543년 1월 7일 | 1574년 3월 5일 | 수녀 |
| 요안나 | 1547년 1월 24일 | 1578년 4월 10일 | 토스카나 대공 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와 결혼; 자녀를 낳음 |
장남 막시밀리안은 페르디난트 1세의 조부 막시밀리안 1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차남 페르디난트는 아내가 남편의 이름을 붙이기를 원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되었다.
폴란드 왕국에서 국왕 자유 선거에 의해 국왕이 선출되게 되자, 안나의 아들 막시밀리안 2세와 그의 아들 막시밀리안 3세가 입후보했다. 또한, 안나의 혈통을 근거로 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후손인 카를 슈테판 대공이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 제국의 위성국인 폴란드 섭정 왕국의 국왕 후보로 추천되었다.
4. 유산
아나의 유산은 후손들에게 중요한 정치적,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특히 폴란드 왕위 계승 시도는 주목할 만한 유산이다.
폴란드 왕국에서 국왕 자유 선거를 통해 국왕을 선출하면서, 아나의 아들 막시밀리안 2세와 손자 막시밀리안 3세가 왕위 후보로 나섰다. 비록 이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아나의 혈통은 후손들에게 폴란드 왕위 계승의 명분을 제공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아나의 후손인 카를 슈테판 대공이 독일 제국의 위성국인 폴란드 섭정 왕국의 국왕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는 아나의 혈통이 가진 역사적, 정치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