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소아이모스
1. 개요
소아이모스는 2세기 로마 제국 시대의 아르메니아 왕으로, 콤마게네 왕국과 시리아 에메사 왕조 출신이다. 그는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임명되었으며, 파르티아의 침공과 로마-파르티아 전쟁을 겪으며 두 차례 왕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163년 또는 164년에 복위되었으나, 파르티아를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다시 추방되었고, 186년에는 볼로가세스 2세가 아르메니아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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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소하에무스 |
|---|---|
| 그리스어 | Γάϊος Ἰούλιος Σόαιμος (가이오스 율리우스 소아이모스) |
| 작위 | 아르메니아의 왕 |
|---|---|
| 통치 기간 (1차) | 144년–161년 |
| 이전 통치자 (1차) | 볼로가세스 1세 |
| 다음 통치자 (1차) | 파코루스 |
| 통치 기간 (2차) | 163년–180년 |
| 이전 통치자 (2차) | 파코루스 |
| 다음 통치자 (2차) | 볼로가세스 2세 |
| 사망 | 180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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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원로원 의원 -
타키투스
타키투스는 로마 제정 초기 역사를 다룬 저서를 남긴 역사가이자 정치가로, 황제와 원로원 간의 권력 관계, 지배층의 부패, 언론 자유의 중요성 등을 다루며 후대 역사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로마 제국의 원로원 의원 -
마르쿠스 에그나티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에그나티우스 루푸스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인물이며,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
2세기 로마인 -
아풀레이우스
아풀레이우스는 로마 제국 시대 북아프리카 출신의 작가이자 철학자, 웅변가로, 『황금 당나귀』라는 소설과 뛰어난 변론 능력으로 유명하며, 플라톤 철학 연구와 신플라톤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
2세기 로마인 -
폼페이아 플로티나
폼페이아 플로티나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아내이자 하드리아누스 즉위에 영향을 미쳤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를 후원하고 황제 숭배 대상이 된 로마 황후이다. -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
로마 제국의 멸망
안소니 만 감독의 영화 《로마 제국의 멸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통치 말기부터 코모두스 죽음까지의 로마 제국 권력 다툼과 부패를 다룬 서사 영화로, 알렉 기네스, 소피아 로렌 등이 출연했지만 역사 왜곡과 빈약한 스토리로 평가가 엇갈렸다. -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161년 집정관)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는 히스파니아 출신의 로마 가문으로 161년 집정관을 지냈으며, 시리아 속주 총독으로 파르티아 원정을 지원하다 루키우스 베루스와의 갈등으로 사망하여 독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2. 생애
소아이모스는 콤마게네 왕국의 오론테스 왕조 및 시리아의 에메사 왕조 출신이다. 그의 동시대인 소설가 이암블리코스는 소아이모스를 자신과 같은 나라 사람이라 주장했다. 이암블리코스는 소아이모스를 아르사케스 및 아케메네스 왕조 출신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자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와 한때 약혼했던 메디아의 공주 이오타파의 후손이었다. 왕위에 오르기 전, 소아이모스는 원로원 의원을 지냈고 불명확한 시기에 로마에서 집정관으로 있었다.
144년, 소아이모스는 볼로가세스 1세가 죽은 뒤 안토니누스 피우스로부터 아르메니아 왕위를 수여받았다. 그의 즉위를 기념해, 소아이모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형상이 있고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주어진 왕'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세스테르티우스가 발행됐다. 소아이모스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로마 황제들인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콤모두스와 동시대 인물이다. 그의 첫 재위는 144년부터 161년까지였고, 이 시기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가 통치하던 아르메니아에 거주했던 소설가 이암블리코스는 그의 재위를 '선조들을 계승하여'라고 묘사했다.
161년, 파르티아의 볼로가세스 4세는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 레가투스 마르쿠스 세다티우스 세베리아누스 휘하의 로마 군단을 제거하고 소아이모스를 몰아낸뒤 파코루스를 왕으로 세웠다. 스파보드 오스로에스에게 고무된 파르티아 군대는 시리아 속주로 진격했다. 아르메니아가 파르티아인들에게 점령된 후, 소아이모스는 정치적 망명을 떠나 로마에서 거주하며 원로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이 사건으로 로마-파르티아 전쟁이 발발했고, 로마의 승리 이후 163년 또는 164년에 소아이모스는 루키우스 베루스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복위되었다. 소아이모스의 두 번째 즉위식은 안티오키아 또는 에페소스에서 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군이 동방에서 질병을 가져와 제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시키면서, 로마는 큰 피해를 입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르메니아를 로마 속주로 선포하려 했으나, 티리다테스 왕자가 일으킨 아르메니아인들의 반란으로 인해 이 계획을 철회했다. 164년, 아르메니아에서는 L. Verus. Aug. Armeniacus라는 문구가 새겨진 로마 주화가 발행되었다.
소아이모스는 163년 또는 164년에 루키우스 베루스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재옹립되었다. 두 번째 즉위식은 안티오키아 또는 에페소스에서 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르메니아를 로마의 속주로 선포하려 했으나, 티리다테스 대공이 일으킨 아르메니아인들의 봉기로 인해 로마는 이 계획을 철회해야 했다. 164년에, L. Verus. Aug. Armeniacus라는 문구가 새겨진 로마의 주화가 아르메니아에서 발행되었으며, 뒷면에는 Rex Armen(ii)s datu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소아이모스의 두 번째 재위 기간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63년부터 186년까지 통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수도 바가르샤팟에서는 건설 작업이 계속되었다. 이 도시에는 성채, 요새, 궁전 단지, 신전 등이 건설되었다. 소아이모스는 파르티아에 우호적인 세력에 의해 다시 추방되었는데, 오스로에네의 왕을 시해하고 카파도키아 속주의 총독인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앞에서 칼을 휘두른 티리다테스라는 인물이 일으킨 소동도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티리다테스를 브리타니아로 추방하는 처벌을 내렸다.
소아이모스는 아르메니아에서 두 번째 추방을 당한 결과, 시리아로 도피했다. 166년에 로마군은 파르티아와 전쟁을 벌여 상실한 영토 대부분을 회복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그리고 파르티아의 통치자들이 이 분쟁에 개입한 후, 186년에 파르티아의 볼로가세스 4세의 아들 볼로가세스 2세가 아르메니아 왕위에 올랐다.
2.1. 혈통과 초기 생애
소아이모스는 콤마게네 왕국의 오론테스 왕조 및 시리아의 에메사 왕조 출신이다. 그의 동시대인 소설가 이암블리코스는 소아이모스를 자신과 같은 나라 사람이라 주장했다. 이암블리코스는 소아이모스를 아르사케스 및 아케메네스 왕조 출신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자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와 한때 약혼했던 메디아의 공주 이오타파의 후손이었다. 왕위에 오르기 전, 소아이모스는 원로원 의원을 지냈고 불명확한 시기에 로마에서 집정관으로 있었다.
2.2. 아르메니아 왕위 즉위 (144년)
144년, 소아이모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로부터 아르메니아 왕위를 받았다. 그의 아르메니아 왕위 즉위를 기념하여, 소아이모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형상이 있고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주어진 왕'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세스테르티우스가 발행됐다. 소아이모스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로마 황제들인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콤모두스와 동시대 인물이다.
소아이모스는 콤마게네의 오론테스 왕조와 시리아 에메사 왕조 출신이다. 소설가 이암블리코스는 소아이모스를 자신과 같은 나라 사람이라 칭하며, 아르사케스 및 아케메네스 왕조 출신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자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와 약혼했던 이오타파의 후손이었다. 소아이모스의 가족과 아르메니아 왕위에 오르기 전 생애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으며, 왕이 되기 전 원로원 의원과 집정관으로 있었다.
2.3. 첫 번째 통치 (144년 ~ 161년)
소아이모스는 2세기 로마 제국의 유력 인사로, 콤마게네 왕국의 오론테스 왕조 및 시리아의 에메사 왕조 출신이었다. 그는 아르사케스 및 아케메네스 왕조 출신으로도 칭해졌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자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와 약혼했던 메디아의 공주 이오타파의 후손이었다. 왕이 되기 전, 소아이모스는 원로원 의원을 지냈고 로마에서 집정관으로 있었다.
144년, 소아이모스는 볼로가세스 1세가 죽은 뒤 안토니누스 피우스로부터 아르메니아 왕위를 수여받았다. 그의 즉위를 기념해, 소아이모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형상이 있고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주어진 왕'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세스테르티우스가 발행됐다. 소아이모스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로마 황제들인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콤모두스와 동시대 인물이다. 그의 첫 재위는 144년부터 161년까지였고, 이 시기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가 통치하던 아르메니아에 거주했던 소설가 이암블리코스는 그의 재위를 '선조들을 계승하여'라고 묘사했다.
161년에 파르티아의 왕 파르티아의 볼로가세스 4세는 아르메니아를 차지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 로마 군단을 제거하고 파코루스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세웠다. 이후 파르티아 병력은 시리아 속주로 진격했다. 아르메니아가 파르티아인들에게 장악당한 뒤, 소아이모스는 로마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 원로원 의원으로 있었다.
2.4. 파르티아의 침공과 망명 (161년)
161년, 파르티아의 볼로가세스 4세는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 레가투스 마르쿠스 세다티우스 세베리아누스 휘하의 로마 군단을 제거하고 소아이모스를 몰아낸뒤 파코루스를 왕으로 세웠다. 스파보드 오스로에스에게 고무된 파르티아 군대는 시리아 속주로 진격했다. 아르메니아가 파르티아인들에게 점령된 후, 소아이모스는 정치적 망명을 떠나 로마에서 거주하며 원로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2.5. 로마-파르티아 전쟁과 복위 (163년/164년)
161년에 파르티아의 왕 볼로가세스 4세는 군대를 보내 아르메니아를 점령하고, 레가투스 마르쿠스 세다티우스 세베리아누스 휘하의 로마 군단을 제거한 뒤 파코루스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옹립했다. 이 사건으로 로마-파르티아 전쟁이 발발했고, 로마의 승리 이후 163년 또는 164년에 소아이모스는 루키우스 베루스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복위되었다. 소아이모스의 두 번째 즉위식은 안티오키아 또는 에페소스에서 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군이 동방에서 질병을 가져와 제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시키면서, 로마는 큰 피해를 입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르메니아를 로마 속주로 선포하려 했으나, 티리다테스 왕자가 일으킨 아르메니아인들의 봉기로 인해 이 계획을 철회했다. 164년, 아르메니아에서는 L. Verus. Aug. Armeniacus라는 문구가 새겨진 로마 주화가 발행되었다.
2.6. 두 번째 통치 (163년/164년 ~ 186년)
소아이모스는 163년 또는 164년에 루키우스 베루스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재옹립되었다. 두 번째 즉위식은 안티오키아 또는 에페소스에서 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쟁은 로마가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는데, 승리한 병력들이 동방에서 가져온 질병이 제국 전역에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르메니아를 로마의 속주로 선포하려 했으나, 티리다테스 대공이 일으킨 아르메니아인들의 봉기로 인해 로마는 이 계획을 철회해야 했다. 164년에, L. Verus. Aug. Armeniacus라는 문구가 새겨진 로마의 주화가 아르메니아에서 발행되었으며, 뒷면에는 Rex Armen(ii)s datus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소아이모스의 두 번째 재위 기간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63년부터 186년까지 통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수도 바가르샤팟에서는 건설 작업이 계속되었다. 이 도시에는 성채, 요새, 궁전 단지, 신전 등이 건설되었다. 소아이모스는 파르티아에 우호적인 세력에 의해 다시 추방되었는데, 오스로에네의 왕을 시해하고 카파도키아 속주의 총독인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앞에서 칼을 휘두른 티리다테스라는 인물이 일으킨 소동도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티리다테스를 브리타니아로 추방하는 처벌을 내렸다.
소아이모스가 아르메니아에서 두 번째로 추방된 결과, 로마군은 파르티아와 전쟁을 벌여 166년에 상실한 영토 대부분을 회복했고, 소아이모스는 시리아로 도피했다. 이후 파르티아의 볼로가세스 4세의 아들 볼로가세스 2세가 186년에 아르메니아 왕위에 올랐다.
2.7. 두 번째 추방과 이후
소아이모스는 아르메니아에서 두 번째 추방을 당한 결과, 시리아로 도피했다. 166년에 로마군은 파르티아와 전쟁을 벌여 상실한 영토 대부분을 회복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그리고 파르티아의 통치자들이 이 분쟁에 개입한 후, 186년에 파르티아의 볼로가세스 4세의 아들 볼로가세스 2세가 아르메니아 왕위에 올랐다.
3. 평가
소아이모스는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사이의 갈등 속에서 아르메니아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친로마적인 입장을 취하며 로마 제국과의 협력을 통해 아르메니아의 안정을 추구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소아이모스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임명했고, 이를 기념하는 주화가 발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아이모스는 파르티아와의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두 차례나 왕위에서 쫓겨나는 한계를 보였다. 161년 파르티아의 볼로가세스 4세가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 소아이모스는 로마로 망명했다. 이후 로마-파르티아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면서 소아이모스는 163년 또는 164년에 복위되었지만, 파르티아를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다시 추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