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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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베 요코는 1928년 기시 노부스케의 장녀로 태어나 아베 신타로와 결혼하여 아베 히로노부, 아베 신조, 기시 노부오를 낳았다. 3대에 걸친 일본의 정치 명문가 기시-아베 가문의 '대모'로 불리며, 남편과 아들들의 정치 활동을 지원했다. 1991년 남편 사후 아들 아베 신조를 뒷받침했으나, 며느리와의 갈등을 겪었다. 2022년 아베 신조가 암살당하고, 2024년 2월 4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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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요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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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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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이름 | 기시 요코 |
출생일 | 1928년 6월 11일 |
출생지 | 도쿄도나카노구 |
사망일 | 2024년 2월 4일 |
사망지 | 도쿄도 |
국적 | 일본 |
학력 | 시라유리 고등학교 졸업 |
직업 | 서예가 |
가족 | |
배우자 | 아베 신타로 (1951년 5월 결혼 ~ 1991년 5월 15일 사별) |
자녀 | 아베 히로노부 아베 신조 기시 노부오 |
어머니 | 기시 요시코 |
아버지 | 기시 노부스케 |
기타 | |
로마자 표기 | Abe Yōko |
일본어 표기 | 安倍 洋子 |
일본어 표기 (출생명) | 岸 洋子 |
2. 생애
1928년 6월 11일 도쿄부 도요다마군 나카노정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기시 요코 부부의 장녀로 태어났다.[27][13][17] 아버지 노부스케가 만주국 정부에 부임했던 시기(1936년-1939년)에는 외가에서 자랐다.[17] 어린 시절 비교적 순탄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A급 전범 용의자로 구속되면서 잠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기시 노부스케가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상황은 다시 안정되었다.
1941년 가족과 함께 신주쿠구로 이사했으며, 1945년 시라유리 고등여학교(현: 시라유리학원 중학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기시 가문의 본가가 있는 야마구치현 타부세정으로 피난하여 야마구치은행 타부세 지점에서 근무했다.[18][19] 1949년 다시 도쿄로 돌아와 삼촌인 사토 에이사쿠의 집에서 지냈다.[20]
1951년 5월, 당시 마이니치 신문의 정치부 기자였던 아베 신타로와 중매로 결혼했다.[20] 남편 신타로와의 사이에서 장남 히로노부, 차남 신조, 삼남 노부오 세 아들을 두었다.[13] 삼남 노부오는 후에 요코의 친오빠인 기시 노부카즈에게 입양되었다.[2]
1953년 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제2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했을 때 처음으로 선거 유세를 도왔으며,[20] 이후 남편 아베 신타로와 아들 아베 신조, 기시 노부오의 선거 운동에도 깊이 관여하며 정치 활동을 지원했다.[15][22] 이러한 활동을 통해 3대에 걸친 정치 명문가인 기시-아베 가문의 "대모"[4]이자 "정치계의 대모"라는 별칭을 얻었으며,[6] 오랫동안 자민당 내 파벌인 청화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소속 의원 부인들의 모임을 이끌었다.[5]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으며,[3] 국제부인복지협회 모금 위원,[13] 정치가 부인들의 서도 그룹 '옹용원' 회장, 우메와카 로쿠로 후원회 회장,[23] 아카마 신궁 존경회 회장,[24] 오모테센케 동문회 야마구치현 지부장·명예회원[25] 등 다양한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1991년 남편 아베 신타로가 사망한 후에는 차남 아베 신조의 정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 그러나 말년에는 2022년 차남 신조가 암살당하고, 2023년 삼남 노부오가 건강 문제 등으로 정계를 은퇴하는 등 개인적인 아픔을 겪었다. 말년에는 손녀인 기시 노치세의 정계 진출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26]
2024년 2월 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향년 95세로 사망했다.[7][10]
2. 1. 결혼과 가족
1951년 5월, 당시 마이니치 신문의 정치부 기자였던 아베 신타로와 중매를 통해 결혼했다.[20] 아베 신타로는 도쿄대 출신이었다. 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와 남편 아베 신타로는 같은 자민당 소속이었지만 정치적 배경과 성향에는 차이가 있었다. 기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A급 전범 용의자로 구속되었던 이력이 있으며 강경 우익 성향을 보인 반면, 신타로는 아버지 아베 간의 영향으로 반전 평화주의적 입장을 가진 온건 우익으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신타로는 기시의 정치적 기반을 일부 물려받아 사실상 데릴사위와 같은 위치였으나, 정작 본인은 이러한 평가를 매우 싫어했으며 부부 사이도 원만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남편 신타로와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두었다.[13] 장남 히로노부는 미쓰비시상사 패키징 사장을 지낸 실업가이다. 차남 신조는 후에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정치인이 되었다. 요코는 신조에게 어머니로서의 역할보다는 '정치인 아베 신타로의 아내', '미래의 정치인 아베 신조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우선시하여 매우 엄격하게 대했다고 한다. 반면 신조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삼남 노부오는 요코의 친오빠인 기시 노부카즈가 자녀를 갖지 못하자 그에게 입양되었다.[2] 노부오 역시 정치인이 되어 방위대신 등을 역임했다.
1955년 보수합동 무렵에는 시부야구 미나미다이바의 기시가에 아베 일가도 함께 살았다.[20] 이후 기시 노부스케가 외무대신이 되었을 때는 잠시 시라카네의 관저로 함께 이사했지만, 내각총리대신이 된 이후 기시가 총리대신 관저에 살지 않고 미나미다이바로 돌아오자 아베 일가도 다시 미나미다이바로 돌아왔다.[21]
기시 노부스케의 정계 은퇴 후, 요코는 남편 신타로의 선거구(야마구치 1구) 활동을 지원했으며,[15] 1991년 차기 총리 후보로 유력했던 남편 신타로가 췌장암으로 사망한 뒤에는 차남 신조의 정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했다.[22] 신조의 아내이자 며느리인 아베 아키에와는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키에가 아이를 갖지 못한 점과 요코와 달리 친한파 성향을 보인 점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2022년 차남 신조가 피살당하는 비극을 겪었으며, 이 사건의 여파와 건강 악화로 삼남(생물학적 아들이자 입양된 조카) 노부오마저 2023년 정계를 은퇴하면서 순탄치 않은 말년을 보냈다. 요코 본인도 아들의 죽음으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말년에는 손녀이자 노부오의 딸인 기시 노치세의 정계 진출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26]
2. 2. 정치적 영향력
아베 요코는 3대에 걸친 일본의 정치 명문가인 기시-아베 가문의 "대모"[4]로 여겨졌다. 오랫동안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인 청화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소속 의원들의 부인들을 이끌었으며,[5] 정계에 많은 추종자를 두어 "정치계의 대모"라고 불리기도 했다.[6]그녀의 정치적 영향력은 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정치 활동 지원에서 시작되었다. 기시 노부스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었다가 불기소 처분된 후 정계에 복귀한 인물로, 요코는 1953년 제2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아버지의 선거 유세에 처음 참여했다.[20]
결혼 후에는 남편 아베 신타로의 선거구(야마구치 1구) 활동을 지휘하며 남편의 정치 경력을 뒷받침했다.[15] 남편 아베 신타로는 기시 노부스케의 정치적 기반을 일부 물려받았지만, 장인인 기시의 강경 우익 노선과는 달리 비교적 온건한 성향을 보였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정치적으로 미묘했으며, 신타로는 기시 가문의 영향력 아래 놓이는 것을 꺼렸다고 전해진다.
1991년 남편 신타로가 사망한 후에는 차남 아베 신조의 정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그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다. 아베 신조가 총리직에 오르는 과정에서 요코의 영향력이 상당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남 기시 노부오 역시 정계에 진출하여 활동했으며, 요코는 두 아들의 선거에 지속적으로 관여했다.[22] 다만, 아베 신조의 부인인 아베 아키에와는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아키에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말년에는 손녀인 기시 노치세(기시 노부오의 딸)의 정계 진출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26] 기시-아베 가문의 정치적 명맥을 잇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국제부인복지협회 모금 위원,[13] 정치가 부인들의 서도 그룹 “옹용원” 회장, 우메와카 로쿠로 후원회 회장,[23] 아카마 신궁 존경회 회장,[24] 오모테센케 동문회 야마구치현 지부장·명예회원[25]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유지했다.
2. 3. 말년과 사망
2022년 차남 아베 신조가 야마가미 데쓰야의 총격으로 암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28] 이 사건은 아베 요코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본인 스스로 정신착란을 느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28] 이듬해인 2023년에는 아베 신조 암살 사건의 여파와 건강 악화로 인해 삼남 기시 노부오마저 정계에서 은퇴하면서[28] 순탄치 않은 말년을 보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손녀인 기시 노치세의 정계 진출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26]아베 요코는 2024년 2월 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0][28][7]
3. 저서
4. 서훈
- 성 모리츠와 성 라자루스 훈장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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