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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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시아 태평양 이사회(ASPAC)는 1960년대 냉전 시대에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고 역내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의 제창으로 설립된 기구이다. 1966년 대한민국, 일본, 중화민국, 필리핀, 남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9개국이 참여하여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사업을 추진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을 지원하는 등 반공주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었으며, 일본은 경제·사회 분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71년 닉슨 쇼크,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 연합 가입, 베트남 전쟁 반전 운동 등으로 인해 회원국 간 결속력이 약화되어 1973년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었다. ASPAC의 경험은 이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지역 협력체 창설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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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태평양 이사회 | |
|---|---|
| 아시아 태평양 이사회 | |
| 약칭 | ASPAC (아스팍) |
| 유형 | 국제 기구 |
| 역사 | |
| 창설 | 1966년 |
| 해체 | 1975년 |
| 목적 | |
| 목표 |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협력 증진 |
| 성격 | 반공주의 성격 |
| 회원국 | |
| 회원국 |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필리핀 타이 남베트남 |
| 옵서버 | 라오스 |
| 관련 정보 | |
| 창설 배경 |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 |
| 기타 | 자유 아시아 연맹과 연계 |
2. 창설 배경
1960년대 냉전 시대에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고 역내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연대를 통해 경제 발전과 안보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했다.
1966년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의 제창으로, 일본, 중화민국, 필리핀, 남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9개국이 참가했다. 참가 제국 간의 개발과 상호 협력을 표방했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에 대한 지원 등 공산주의 세력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진출을 억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일본은 일본국 헌법상의 제약으로, 경제 사회 협력 프로젝트를 주도하여 자금 지원을 하는 등 경제·사회 분야에 한정되면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1971년 닉슨 쇼크 및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 연합 가입, 세계적인 베트남 반전 운동의 발생으로 참가 제국의 발걸음이 흐트러져, 1973년에는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었다.
2. 1. 대한민국의 역할
2. 2. 일본의 역할
3. 주요 활동
1966년 대한민국의 박정희대통령의 제창으로 일본, 중화민국, 필리핀, 남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9개국이 참여하여 다양한 협력 사업을 추진했다.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회원국 간 협력을 도모했으며, 베트남 전쟁 지원과 같은 공산주의 세력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진출 억제를 위한 반공주의 연대 강화 활동도 전개했다.
일본은 헌법상의 제약으로 군사적 지원은 하지 못하고, 경제 사회 협력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자금을 지원하는 등 경제·사회 분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71년 닉슨 쇼크와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 연합 가입, 그리고 세계적인 베트남 반전 운동의 확산으로 인해 회원국 간 결속력이 약화되었고, 1973년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었다.
4. 한계와 해체
1971년 닉슨 쇼크 및 1972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 연합 가입, 세계적인 베트남 반전 운동의 발생으로 참가 제국의 발걸음이 흐트러졌다. 1973년에는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러한 국제 정세 변화는 회원국 간 결속력을 약화시켰고, ASPAC은 실질적인 영향력을 상실했다.
5. 역사적 의의
아시아 태평양 이사회(ASPAC)는 냉전 시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반공주의 연대와 경제 협력을 추구했던 시도였다. 그러나 국제 정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단명했다. 1966년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의 제창으로 창설되었으며, 일본, 중화민국, 필리핀, 남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9개국이 참여했다. ASPAC은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 지원과 같이 공산주의 세력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진출 억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일본국 헌법상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 협력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자금 지원을 하는 등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닉슨 쇼크(1971년) 및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 연합 가입(1972년), 세계적인 베트남 반전 운동으로 인해 참가국 간 결속력이 약화되었고, 1973년 사실상 활동이 중단되었다.
ASPAC의 경험은 이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지역 협력체 창설의 밑거름이 되었다.
참조
[1]
뉴스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47) - 47. 아스팍창설 뒷얘기"
http://article.joins[...]
중앙일보
2002-02-23
[2]
간행물
아스팍을 통한 지역협력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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