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론 아부하치라
1. 개요
아하론 아부하치라는 프랑스령 모로코에서 태어나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시민권을 얻은 인물이다. 그는 라믈라 시장, 크네세트 의원, 이스라엘 종교부 장관, 이민 흡수부 장관, 사회봉사사무처 장관을 역임했다. 1982년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장관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프랑스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특임자문관과 텔아비브 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일 | 1938년 10월 28일 |
|---|---|
| 출생지 | 에르푸드, 모로코 |
| 사망일 | 2021년 9월 21일 |
| 직업 | 이스라엘의 정치인 |
| 종교 | 유대교 |
| 거주지 | 중부 구 라믈라 텔 아비브 구 라마트간(前) 모스크바주 모스크바(前) 파리(前) 라바트(前) 카사블랑카(前) 텔 아비브 구 텔 아비브(前) 예루살렘 구 예루살렘(前) |
| 학력 | 1961년 바르 일란 대학교 히브리어학과 학사 |
| 주요 경력 | 前 소련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행정참사관 리쿠드 고문 겸 대표최고위원 前 라믈라 시장 前 종교사목사업부 장관 前 이민수용처 장관 前 사회봉사사무처 장관 前 크네세트 리쿠드 당속 입법의원 前 프랑스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특임자문관 前 텔아비브 대학교 행정학과 초빙교수 |
|---|
| 소속 정당 | 리쿠드 |
|---|---|
| 이전 소속 정당 | 국민종교당 타미 |
| 국민종교당 | 크네세트 대표 (1977–1981) |
|---|---|
| 타미 | 1981–1988 |
| 리쿠드 | 1988–1992 |
| 장관직 | 각료 역할 |
|---|---|
| 종교부 장관 | 1977–1981 |
| 이민 흡수부 장관 | 1981–1982 |
| 노동 및 사회 복지부 장관 | 1981–1982 |
-
바르 일란 대학교 동문 -
이갈 아미르
-
이스라엘의 외교관 -
골다 메이어
골다 메이어는 러시아 태생의 이스라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노동운동과 정치 활동을 통해 이스라엘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어 국가 발전에 기여하며 이스라엘 정치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바르일란 대학교 동문 -
치피 리브니
이스라엘의 정치인이자 법조인인 치피 리브니는 리쿠드당에서 정계에 입문하여 법무부 장관, 외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카디마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가자 지구 철수를 옹호했다. -
바르일란 대학교 동문 -
노먼 러브렉트
노먼 러브렉트는 1948년 런던에서 태어난 언론인, 작가, 문화 평론가로, 클래식 음악계에 대한 비평을 주로 하며 여러 저서를 출간하고 블로그를 운영한다.
2. 생애
1938년 프랑스 식민지 모로코 드라 타필랄트 지방 타필랄트에서 출생한 그는 11세 시절이던 1949년에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며 이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 23세 때였던 1961년 이스라엘 바르 일란 대학교 졸업 이후 31세 때였던 1969년까지 이스라엘 라믈라에서 고등학교 교사직을 8년간 지내다가 1969년 고등학교 교사직을 사직한 이후에는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이스라엘 라믈라 시장을 지내다가 1972년 라믈라 시장 직위를 퇴임 이후 1972년부터 이듬해 1973년까지 소련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행정참사관을 지내다가 1973년 이스라엘에 귀환하여 같은 해 1973년부터 1992년까지 이스라엘 크네세트 입법의원을 19년간 역임하였으며 그 와중에 1977년부터 1981년까지는 이스라엘 종교사목사업부 장관을 겸직하였고 1981년부터 1982년까지는 이스라엘 이민수용처 장관 겸 사회봉사사무처 장관 직위를 겸직한 적도 있으며 이후 1992년부터 1993년까지는 프랑스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특임자문관을, 1993년부터 1994년까지는 텔아비브 대학교 행정학과 초빙교수를 지냈다. 그는 크파르 하로에 예시바에서 수학했으며, 예루살렘의 교사 세미나를 졸업하고 바르-일란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아하론 아부하치라는 1938년 프랑스 식민지 모로코 드라 타필랄트 지방 타필랄트에서 출생하였다. 11세 시절이던 1949년에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며, 이스라엘로 알리야했다. 이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 크파르 하로에 예시바에서 수학했으며, 예루살렘의 교사 세미나를 졸업하고 바르 일란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23세 때였던 1961년 이스라엘 바르 일란 대학교 졸업 이후 31세 때였던 1969년까지 이스라엘 라믈라에서 고등학교 교사직을 8년간 지냈다.
2.2. 교사 경력
아하론 아부하치라는 프랑스령 모로코 보호령의 타필랄트 지역에서 태어나 1949년 이스라엘로 알리야했다. 그는 크파르 하로에 예시바에서 수학했으며, 예루살렘의 교사 세미나를 졸업하고 바르-일란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3. 정치 경력
아하론 아부하치라는 1949년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 후,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이스라엘 라믈라 시장을 역임하였다. 1972년 라믈라 시장 직위에서 퇴임 후, 1973년까지 소련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행정참사관을 지냈다. 1973년 이스라엘 귀환 후, 1992년까지 이스라엘 크네세트 입법의원을 역임하였다.
1977년 국가 종교당 명단으로 크네세트에 선출되었고, 메나헴 베긴의 제18차 이스라엘 정부에서 종교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국가 종교당을 떠나 자신의 정당인 타미를 창당, 1981년 선거에서 3석을 얻었고, 베긴의 새로운 제19차 이스라엘 정부에 포함되었다. 이민 흡수부 장관과 노동 사회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는 이스라엘 이민수용처 장관 겸 사회봉사사무처 장관 직위를 겸직하였다.
1984년 선거에서 재선되었지만, 그의 정당은 단 1석만 얻었다. 크네세트 임기 말에 그는 정당을 리쿠드에 합병했고, 1988년 선거에서 리쿠드 명단으로 한 자리를 얻었지만, 1992년 투표에서는 자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1980년 6월 이스라엘 경찰은 아부하치라가 1978년과 1979년에 존재하지 않는 예시바에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종교 기관으로부터 52,500 구 이스라엘 셰켈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1980년 12월 이스라엘 법무 장관 이츠하크 자미르는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크네세트에 아부하치라의 의원 면책 특권을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고, 1981년 1월 13일 크네세트 본회의는 그의 의원 면책 특권을 해제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1982년 4월 19일 유죄 판결을 받은 후, 그는 4월 30일 내각에서 사임했으며, 그 후 동료 타미 국회의원 아하론 우잔이 그의 직책을 맡았다. 그는 4년 3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3.1. 람라 시장
아하론 아부하치라는 1969년 람라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72년에는 시장이 되었다. 그는 1977년 국가 종교당 명단으로 크네세트에 선출되었다.
1980년 6월 이스라엘 경찰은 아부하치라가 1978년과 1979년에 존재하지 않는 예시바에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종교 기관으로부터 52,500 구 이스라엘 셰켈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이 주장이 "도발과 명예 훼손"이라고 주장하며 부인했지만, 1980년 12월 이스라엘 법무 장관 이츠하크 자미르는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크네세트에 아부하치라의 의원 면책 특권을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1981년 1월 13일 크네세트 본회의는 그의 의원 면책 특권을 해제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1982년 4월 19일 유죄 판결을 받은 후, 그는 4월 30일 내각에서 사임했으며, 그 후 동료 타미 국회의원 아하론 우잔이 그의 직책을 맡았다. 그는 4년 3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절도 혐의로 30개월, 관리자의 배임 및 사기 혐의로 18개월, 공무원의 배임 혐의로 3개월이었다.
3.2. 크네세트 의원 및 장관
아하론 아부하치라는 1949년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 후,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이스라엘 라믈라 시장을 역임하였다. 1972년 라믈라 시장 직위에서 퇴임 후, 1973년까지 소련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행정참사관을 지냈다. 1973년 이스라엘 귀환 후, 1992년까지 이스라엘 크네세트 입법의원을 역임하였다.
1977년 국가 종교당 명단으로 크네세트에 선출되었고, 메나헴 베긴의 제18차 이스라엘 정부에서 종교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국가 종교당을 떠나 자신의 정당인 타미를 창당, 1981년 선거에서 3석을 얻었고, 베긴의 새로운 제19차 이스라엘 정부에 포함되었다. 이민 흡수부 장관과 노동 사회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는 이스라엘 이민수용처 장관 겸 사회봉사사무처 장관 직위를 겸직하였다.
1984년 선거에서 재선되었지만, 그의 정당은 단 1석만 얻었다. 크네세트 임기 말에 그는 정당을 리쿠드에 합병했고, 1988년 선거에서 리쿠드 명단으로 한 자리를 얻었지만, 1992년 투표에서는 자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1980년 6월 이스라엘 경찰은 아부하치라가 1978년과 1979년에 존재하지 않는 예시바에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종교 기관으로부터 52,500 구 이스라엘 셰켈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1980년 12월 이스라엘 법무 장관 이츠하크 자미르는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크네세트에 아부하치라의 의원 면책 특권을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고, 1981년 1월 13일 크네세트 본회의는 그의 의원 면책 특권을 해제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1982년 4월 19일 유죄 판결을 받은 후, 그는 4월 30일 내각에서 사임했으며, 그 후 동료 타미 국회의원 아하론 우잔이 그의 직책을 맡았다. 그는 4년 3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3.3. 외교관 및 학계 경력
아하론 아부하치라는 1949년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한 후, 1961년 바르 일란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1969년까지 라믈라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8년간 근무하였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라믈라 시장을 역임하였고, 1972년부터 1973년까지 소련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행정참사관을 지냈다. 1973년 이스라엘로 귀환하였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프랑스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특임자문관을 역임하였고, 1993년부터 1994년까지 텔아비브 대학교 행정학과 초빙교수를 지냈다.
4. 뇌물 수수 및 배임 혐의
1980년 6월 이스라엘 경찰은 아부하치라가 1978년과 1979년에 존재하지 않는 예시바에 자금을 제공하기 위해 종교 기관으로부터 52,500 구 이스라엘 셰켈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이 주장이 "도발과 명예 훼손"이라고 주장하며 부인했지만, 1980년 12월 이스라엘 법무 장관 이츠하크 자미르는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하기 위해 크네세트에 아부하치라의 의원 면책 특권을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1981년 1월 13일 크네세트 본회의는 그의 의원 면책 특권을 해제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1982년 4월 19일 유죄 판결을 받은 후, 그는 4월 30일 내각에서 사임했으며, 그 후 동료 타미 국회의원 아하론 우잔이 그의 직책을 맡았다. 그는 4년 3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 절도 혐의로 30개월, 관리자의 배임 및 사기 혐의로 18개월, 공무원의 배임 혐의로 3개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