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카르바할
1. 개요
안토니오 카르바할은 멕시코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1948년 클럽 에스파냐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클루브 레온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멕시코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50년부터 1966년까지 5번의 FIFA 월드컵에 출전하며,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최초로 4번의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가 되었고, 1966년 잉글랜드 대회에서 5번째 월드컵 출전 기록을 세웠다. 은퇴 후에는 클루브 레온, 우니온 데 쿠르티도레스, 아틀레타스 캄페시노스, 아틀레티코 모렐리아 등의 감독을 역임했다. 1998년 CONCACAF 센추리 팀에 선정되었으며, 2023년 5월 9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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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안토니오 펠릭스 카르바할 로드리게스 |
|---|---|
| 출생일 | 1929년 6월 7일 |
| 사망일 | 2023년 5월 9일 |
| 사망 장소 | 레온, 과나후아토 |
| 신장 | 1.81m |
| 포지션 | 골키퍼 |
| 연도 | 1948–1950 |
|---|---|
| 클럽 | 레알 클루브 에스파냐 |
| 출장 | 45 |
| 득점 | 0 |
| 연도 | 1950–1966 |
| 클럽 | 클루브 레온 |
| 출장 | 364 |
| 득점 | 0 |
| 총 출장 | 409 |
| 총 득점 | 0 |
| 연도 | 1950–1966 |
|---|---|
| 국가대표팀 | 멕시코 |
| 출장 | 48 |
| 득점 | 0 |
| 연도 | 1969 |
|---|---|
| 클럽 | 클루브 레온 |
| 연도 | 1970–1972 |
| 클럽 | 클루브 레온 |
| 연도 | 1974–1977 |
| 클럽 | 우니온 데 쿠르티도레스 |
| 연도 | 1978–1979 |
| 클럽 | 클루브 레온 |
| 연도 | 1979–1981 |
| 클럽 | 멕시코 (수석 코치) |
| 연도 | 1980 |
| 클럽 | 아틀레타스 캄페시노스 |
| 연도 | 1985–1995 |
| 클럽 | 아틀레티코 모렐리아 |
| 애칭 | La Tota, El Cinco Copas (라 토타, 엘 싱코 코파스) |
|---|---|
| 올림피아 | 올림피아 프로필 |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 월드컵 명예의 전당: 안토니오 카르바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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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축구 감독 -
라파엘 마르케스
라파엘 마르케스는 멕시코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멕시코 국가대표팀에서 뛰었고, 현재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멕시코의 축구 감독 -
우고 산체스
우고 산체스는 멕시코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멕시코와 스페인 리그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5회의 피치치상, 레알 마드리드 5년 연속 라리가 우승,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 3회의 FIFA 월드컵 출전 등 맹활약했으며 FIFA 100, 골든풋 레전드, 마르카 레전드 등에 선정되었다. -
2023년 사망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 세 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으며, 미디어셋 설립, 포르차 이탈리아 창당, 친미 외교 정책, 탈세 및 성 스캔들 등 여러 법적 문제와 논란에 휘말렸다. -
2023년 사망 -
콘스탄티노스 2세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로, 재위 기간 중 정치적 혼란과 군사 쿠데타, 왕정 폐지를 겪었으며,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
스페인계 멕시코인 -
엔리케 페냐 니에토
엔리케 페냐 니에토는 멕시코 혁명기관당 소속 정치인으로 멕시코 주 주지사를 거쳐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멕시코 대통령을 역임하며 경제 성장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으나, 부정부패 의혹과 여러 논란에 직면했다. -
스페인계 멕시코인 -
에밀리아노 사파타
에밀리아노 사파타는 1879년 멕시코에서 태어나 농민들의 토지 권리를 위해 멕시코 혁명에 참여하여 남부 해방군을 이끌었고, 농민 자치 정부를 수립했으나 1919년 암살당했으며 멕시코 국민 영웅으로 존경받는다.
2. 클럽 경력
멕시코 시티에서 태어난 카르바할은 1948년 12월, 멕시코 1부 리그의 레알 클럽 에스파냐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멕시코 선수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레알 클럽 에스파냐에서 두 시즌을 뛴 후, 1950년 클럽이 해체되자 클루브 레온으로 이적하여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활약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며 국가대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1950년 FIFA 월드컵에서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그의 첫 경기는 1950년 6월 24일,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개최국 브라질과의 경기였다. 당시 23세였던 카르바할은 이 대회에 참가한 최연소 골키퍼였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프랑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 출전했고,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나섰다. 1962년 칠레 월드컵에 참가하면서 그는 [[FIFA 월드컵 최다 출전 선수 목록#토너먼트|월드컵 4개 대회에 연속으로 출전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특히 이 대회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는 멕시코의 3-1 승리를 이끌며 팀의 월드컵 본선 역사상 첫 승리에 기여했다. 이 경기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바츨라프 마셰크에게 경기 시작 15초 만에 선제골(당시 월드컵 최단 시간 골 기록)을 내주었으나, 이후 멕시코가 역전에 성공했다. 경기가 열린 6월 7일은 카르바할의 생일이기도 했다.
4년 뒤인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참가하여, 39세의 나이로 월드컵 5개 대회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이후 독일의 로타어 마테우스(1982-1998),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부폰(1998-2014), 멕시코의 라파엘 마르케스(2002-2018),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006-2022),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2006-2022), 그리고 또 다른 멕시코 동료인 안드레스 과르다도(2006-2022)와 기예르모 오초아(2006-2022)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카르바할은 멕시코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48번의 국제 경기에 출전했다. 1950년부터 1966년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총 11경기에 나서 25골을 실점했는데, 이는 월드컵 통산 최다 실점 타이기록으로 남아있다 (200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골키퍼 모하메드 알데아예아가 같은 기록을 세웠다).
=== FIFA 월드컵 출전 기록 ===
4.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카르바할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는 클루브 레온, 우니온 데 쿠르티도레스, 아틀레타스 캄페시노스, 그리고 아틀레티코 모렐리아 등 여러 클럽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클루브 레온에서는 1970년대 초반 코파 멕시코와 캄페온 데 캄페오네스 우승을 각각 두 차례 이끌었다. 이후 우니온 데 쿠르티도레스를 맡아 팀을 플레이오프에 두 번 진출시켰으며, 프리메라 디비시온 최고의 감독으로 한 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아틀레타스 캄페시노스에서는 안토니오 아센시오와 함께 세군다 디비시온 우승을 달성했다.
1984–85 시즌에는 아틀레티코 모렐리아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첫 시즌에 팀의 강등을 막았다. 그는 이 팀을 10년 이상 이끌면서 여러 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두 번의 준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멕시코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5.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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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내역 | 연도 |
|---|---|
| CONCACAF 센추리 팀 | 1998 |
| IFFHS CONCACAF 역대 남자 팀 | 2021 |
| 시트랄리 트로피 (최우수 감독) | 1975–76 |
6. 사망
카르바할은 2023년 5월 9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사망하기 전 주에 혈압 문제로 병원에 입원했었다. 2023년 1월부터 사망 시점까지, 카르바할은 195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