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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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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는 유고슬라비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다. 선수 시절에는 오른쪽 윙어로 활약했으며, BSK 베오그라드에서 500경기 이상을 뛰었다.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30년 FIFA 월드컵 4강에 기여했으며, 1929년부터 1940년까지 50경기에서 12골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감독을 두 차례 역임하여 1948년, 1952년, 1956년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1960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60년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2년 베오그라드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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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
티르나니치, 1930년 FIFA 월드컵
풀네임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
출생일1910년 7월 15일
출생지크르네보, 세르비아 왕국
사망일1992년 12월 13일
사망지베오그라드, FR 유고슬라비아
포지션윙어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1923: SK 올림피야
1924: SK 유고슬라비야
1924–1927: BSK 베오그라드
클럽1927–1937: BSK 베오그라드 (500경기, 527골)
1937–1938: SK 유고슬라비야
1938–1939: BASK
1939–1941: 예딘스트보 베오그라드
1942–1943: 슬로가 베오그라드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1929–1940: 유고슬라비아 왕국 (50경기, 12골)
감독 경력
감독1946–1948: 유고슬라비아 (공동 감독)
1952–1961: 유고슬라비아 (공동 감독)
수상

2. 선수 시절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는 세르비아 중부의 작은 마을 크르네보(벨리카 플라나 시)에서 태어났으며, 노동자 계급의 가족은 그가 유아였을 때 수도 베오그라드로 이사했다. 그는 1914년 세르비아군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중에 사망한 금속 공장 노동자였던 그의 아버지를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어린 티르나니치는 곧 축구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사바강 우안의 바라 베네치야 경기장에서 끊임없이 축구를 했다. 그는 그곳에서 코치 라덴코 미트로비치에게 발탁되어 재능 있는 젊은이를 SK 유고슬라비아 유소년 팀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티르나니치는 곧 지역 라이벌 BSK 유소년팀으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그는 뛰어난 오른쪽 윙어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의 잠재력을 깨달은 그는 축구에 완전히 몰두하여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는 17세의 나이에 1군 선수로 데뷔하여 유능하고 다혈질적인 선수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으며, 모샤 마르야노비치와 미드필더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티르나니치는 BSK 베오그라드에서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500경기에 출전했다. BSK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티르나니치는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뛰었던 레오 레메시치(1924–1940)와 류보 벤치치(1921–1935)를 강력한 라이벌로 두었다. 또한 1929년부터 1940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왕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50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다. 1937년에는 다시 SK 유고슬라비아로 이적하여 1938년까지 뛰다가 BASK에 합류했다.[1] BASK에서는 1938년부터 1939년까지 뛰었다. 이후 베오그라드를 연고로 하는 두 클럽 예딘스트보(1939–1941)와 슬로가(1942–1943)에서 활약했다.[2]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BSK에서 블라고예 말리아노비치와 함께 활약한 오른쪽 윙어이다. 1930년 FIFA 월드컵에서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4위에 기여했다.

2. 1. 클럽 경력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는 크르네보에서 태어났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중 사망한 아버지로 인해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사바강 우안의 바라 베네치야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다 SK 유고슬라비아 유소년 팀에 발탁되었으나, 곧 BSK 유소년팀으로 옮겨 오른쪽 윙어로 성장했다.[1] 17세에 1군 선수로 데뷔하여 모샤 마르야노비치와 강력한 파트너쉽을 구축했다.[1]

1927년 OFK 베오그라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0년간 통산 500경기 527골을 기록,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4회 우승 및 2회 준우승, 1934년 유고슬라비아컵 우승 등에 기여했다.[1] BSK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뛰었던 레오 레메시치와 류보 벤치치를 강력한 라이벌로 두었다. 1937년 SK 유고슬라비아로 이적하여 1938년까지 활동했고, 1938년부터 1943년까지 FK 바스크, SK 예딘스트보 베오그라드, 슬로가 베오그라드에서 활동 후 은퇴했다.[1][2]

2. 2. 국가대표팀 경력

1929년 유고슬라비아 왕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다.[3] 1930년 불가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며 팀의 6-1 대승에 기여했다.[3] 같은 해 1930년 FIFA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1차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3]

티르나니치는 20세 생일 전날 월드컵에서 득점하여 당시 월드컵 최연소 득점자가 되었으나, 이후 마누엘 로사스, 펠레, 마이클 오언, 드미트리 시체프, 리오넬 메시에 의해 기록이 깨져 현재는 FIFA 월드컵 역대 6번째 최연소 득점자이다.

1934-35 발칸컵에서 3골을 기록하며 토마셰비치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3] 유고슬라비아는 이 대회에서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제치고 발칸컵 우승을 차지했다.[3] 1940년까지 A매치 통산 50경기에서 12골을 기록했다.[3]

#날짜경기장상대팀점수결과대회
1.1930년 4월 13일BSK 베오그라드 경기장, 베오그라드, 유고슬라비아3–16–1친선 경기
2.1930년 6월 15일레프스키 필드, 소피아, 불가리아1–22–2친선 경기
3.1930년 7월 14일에스타디오 그란 파르케 센트럴, 몬테비데오, 우루과이1–02–11930년 FIFA 월드컵
4.1931년 10월 4일유나크 스타디움, 소피아, 불가리아1–02–31931년 발칸컵
5.1932년 6월 26일BSK 베오그라드 경기장, 베오그라드, 유고슬라비아1–17–11932년 발칸컵
6.1933년 9월 10일폴란드 육군 경기장, 바르샤바, 폴란드3–43–4친선 경기
7.1934년 6월 3일BSK 베오그라드 경기장, 베오그라드, 유고슬라비아7–48–4친선 경기
8.1934년 12월 25일레오포로스 알렉산드라스 스타디움, 아테네, 그리스3–14–31934–35년 발칸컵
9.4–1
10.1935년 1월 1일레오포로스 알렉산드라스 스타디움, 아테네, 그리스1–04–0
11.1936년 7월 12일탁심 스타디움, 이스탄불, 터키3–23–3친선 경기
12.1936년 9월 6일BSK 베오그라드 경기장, 베오그라드, 유고슬라비아9–39–3친선 경기


3. 은퇴 이후

알렉산다르 티르나니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BSK에서 블라고예 말리아노비치와 함께 활약한 오른쪽 윙어였다. 1930년 FIFA 월드컵에서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4위에 기여했다. 감독으로서는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두 번 지휘했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공동 감독을 맡아 1948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을 이끌었고, 1952년부터 1961년까지 다시 공동 감독을 맡아 1952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54년 FIFA 월드컵 8강, 1956년 하계 올림픽 은메달, 1958년 FIFA 월드컵 8강, 1960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UEFA 유로 1960 준우승을 이끌었다. 1992년 12월 13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4. 기타

5. 수상 내역

5. 1. 선수

5. 2. 감독

참조

[1] 문서 Beogradski sokolovi page 87
[2] 문서 Beogradski sokolovi page 96
[3] 웹사이트 Balkan Cup (for Nations) 1934-5 https://www.rsss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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