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두 (카묵 몽골)
1. 개요
카이두는 『몽골비사』, 『원사』, 『자미 알-타와리흐』 등에 언급되는 인물로, 1025년경 메넨 두툼의 아들 카치 쿨루그의 미망인과 모놀룬 여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1050년대 요나라의 거란족이 자라이르를 공격했을 때 어머니와 형제들을 잃었지만 삼촌 나친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자라이르를 정복하고 신하로 삼았다. 몽골 부족을 부흥시켰으며, 요사(遼史)의 기록에 따르면 자라이르 울루스의 멸망 시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 이름 | 카이두 칸 |
|---|---|
| 로마자 표기 | Khaidu |
| 칸 칭호 | 칸 |
| 씨족 | 몽골 보르지긴 씨족 |
| 통치 기간 | ? – 1100년 |
| 이전 통치자 | 하치 홀로그 |
| 다음 통치자 | 바신코르 칸 |
| 출생 | 기원후 1025년경 |
| 출생지 | 몽골 북부 |
| 사망 | 기원후 1100년경 (74~75세) |
| 사망지 | 몽골 북부 |
| 자녀 | 바신코르 독신 차라카이 링쿰 |
| 시대 | 11세기 |
| 아버지 | 하치 홀로그 |
| 어머니 | 모놀룬 |
| 종교 | 텡그리 신앙 |
| 왕가 | 보르지긴 왕조 |
| 음성 표기 (IPA) | IPA-en: /ˈkaɪdu/ IPA-mn: /ˈqʰaɪd̥ʊ/ IPA-mn: /ˈχæːtʊ̽/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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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년 출생 -
해럴드 2세
해럴드 2세는 1066년 짧게 잉글랜드를 다스린 왕으로, 참회왕 에드워드의 후계자였으나 노르망디 공 윌리엄의 침공으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전사하며 잉글랜드 역사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
1100년 사망 -
윌리엄 2세 (잉글랜드)
윌리엄 정복왕의 아들인 윌리엄 2세는 1087년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여 형과의 전쟁으로 노르망디를 지배하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캔터베리 대주교와의 갈등,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정복의 어려움, 그리고 사냥 중 의문사로 백성들에게 인기가 없던 통치자로 평가받는다. -
1100년 사망 -
고드프루아 드 부용
11세기 후반 로렌 공작이자 제1차 십자군 지도자였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예루살렘 함락 후 통치자가 되었으나 왕 대신 '성묘 수호자' 칭호를 사용했다. -
보르지긴 -
알탄 칸
알탄 칸은 16세기 몽골의 지배자로서 투메트부를 다스리고 명나라와 교역을 시도하다 베이징을 공격하고 화의를 맺었으며, 티베트 불교를 몽골에 부흥시키고 후허하오터를 건설하는 등 몽골의 종교적, 사회적 통합에 기여했다. -
보르지긴 -
귀위크 칸
귀위크 칸은 몽골 제국의 3대 대칸으로, 쿠릴타이를 통해 즉위하여 유럽 원정에 참여하고 교황에게 서신을 보냈지만, 과음으로 급사하여 몽골 제국의 유럽 진출을 늦추었다.
2. 생애
카이두는 『몽골비사』, 『원사』, 『자미 알-타와리흐』에 언급된 인물이다. 1025년경 메넨 두툼의 아들 카치 쿨루그의 미망인이자 모놀룬(노물룬) 여왕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몽골 북부 지역은 통제하기 어려웠지만, 몽골에는 몽골계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907-1125)가 있었다.
1050년대 요나라의 거란족은 몽골 동부 케룰렌강을 따라 살던 달리그인 몽골 부족인 자라이르를 공격했다. 자라이르는 카이두의 어머니 모놀룬이 이끄는 보르지긴 몽골족으로 도망쳤으나, 카이두를 제외한 모놀룬과 아들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카이두는 삼촌 나친에 의해 숨겨졌고, 이후 자라이르를 정복하여 신하로 삼았다.
라시드 알-딘의 『자미 알-타와리흐』에 따르면, 케룰렌강은 거란족 지역과 가까워 잦은 전쟁이 벌어졌다. 거란족 군대가 자라이르족을 약탈하러 오자, 자라이르족은 강을 믿고 조롱했지만, 거란군은 댐을 건설하여 강을 건너 자라이르족을 공격하고 재산을 약탈했다. 70개 천막 그룹의 자라이르족은 서쪽으로 도망쳐 모놀룬에게 의지했으나, 굶주림에 목초지를 파헤치자 모놀룬은 분노했다. 이에 자라이르족은 모놀룬과 아들들을 죽였다. 카이두는 콴바구드 부족의 사위였고, 나친은 카이두를 숨겨 보호했다. 이후 주변 부족들이 자라이르족을 공격했고, 카이두는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노예로 삼았다.
《집사》에 따르면 카이두가 태어날 무렵, 켈렌 강 유역에는 70클리엔(7만 부민)을 보유한 강대한 자라이르 울루스가 있었다. 히타이(거란) 군세가 자라이르 울루스를 공격하자 자라이르인은 얕보며 도발했고, 히타이인은 뗏목을 만들어 켈렌 강을 건너 자라이르인을 몰살했다. 히타이 병사에게서 도망친 자라이르 부는 모나룬에게 의지했지만, 목초지를 훼손하자 모나룬은 격분하여 자라이르인을 공격했다. 분노한 자라이르인은 모나룬과 아이들을 죽여 몽골 부를 궤멸시켰다.
《집사》에서는 카이두와 나친은 사위로 들어간 부족에 머물렀고, 나친이 카이두를 숨겨 보호했으며, 성장한 카이두는 바르구진 투쿰으로 이주하여 몽골 부족을 부흥시켰다고 한다. 《원사》에서는 카이두는 모나룬 곁에 있었으나 유모가 숨겨 살아남았고, 나친이 카이두를 데리고 바르구진 투쿰으로 이주, 카이두가 성장하자 군주(칸)로 받들어 몽골 부를 부흥시켰다고 한다.
몽골 부의 우두머리가 된 카이두는 자라이르 부 잔당에게 보복하여 복속시켰다. 《집사》 "자라이르 부족지"에는 자라이르 부족민이 몽골 보르지긴 씨의 세습 가인(오테그 보골)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자라이르 울루스의 공격으로 몽골 울루스는 궤멸 직전이었으나, 나친의 도움으로 자라이르 울루스를 병합하여 더욱 강대해졌다.
2.1. 자라이르 부족과의 갈등
카이두는 『몽골비사』, 『원사』, 『자미 알-타와리흐』에 언급되는 인물이다. 1050년대 요나라의 거란족은 케룰렌강을 따라 살던 자라이르를 공격했다. 자라이르는 카이두의 어머니 모놀룬(비사에는 노물룬)이 이끄는 몽골족으로 도망쳤으나, 카이두를 제외한 모놀룬과 그녀의 모든 아들이 살해당했다. 카이두는 삼촌 나친에 의해 숨겨졌고, 훗날 자라이르를 정복하여 신하로 삼았다.
《집사》 "두툼 마난기"에 따르면, 카이두가 태어났을 무렵 켈렌 강 유역에는 70클리엔(7만 부민)을 보유한 강대한 자라이르 울루스가 몽골 울루스를 비롯한 주변 세력과 다투고 있었다. 히타이(거란) 군대가 자라이르 울루스를 공격했을 때, 자라이르인은 켈렌 강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 얕보며 도발했지만, 히타이인은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너 자라이르인을 몰살시켰다.
히타이 병사에게서 도망친 자라이르 부는 모나룬이 다스리는 몽골 부 근처까지 이르렀다. 자라이르인은 식용 식물 뿌리를 파먹어 몽골 부의 목초지를 훼손했다. 모나룬은 이에 격분하여 자라이르인을 공격했고, 분노한 자라이르인은 모나룬과 그 아들들을 죽여 몽골 부를 궤멸시켰다.
모나룬의 가족 중 메넨 투둔의 막내 동생이자 바르구트 부에 사위로 들어간 나친과, 메넨 투둔의 아들 카이두만이 살아남았다. 《집사》에서는 나친이 카이두를 숨겨 보호했고, 성장한 카이두는 바르구진 투쿰으로 이주하여 세력을 키워 몽골 부족을 부흥시켰다고 한다. 《원사》에서는 카이두는 유모 덕에 살아남았고, 나친은 자라이르인에게서 빼앗은 말과 매를 되찾아 카이두와 함께 바르구진 투쿰으로 이주, 카이두를 칸으로 받들어 몽골 부를 부흥시켰다고 한다.
몽골 부의 우두머리가 된 카이두는 자라이르 부 잔당에게 보복하여 복속시켰다. 《집사》 "자라이르 부족지"에는 자라이르인들이 몽골 보르지긴 씨의 세습 가인(오테그 보골)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자라이르 울루스의 공격으로 몽골 울루스는 궤멸될 뻔했으나, 카이두와 나친에 의해 오히려 자라이르 울루스를 병합하여 더욱 강대해졌다.
2.2. 몽골 부족의 부흥
카이두는 『몽골비사』, 『원사』, 『자미 알-타와리흐』에 언급된 인물이다. 1025년경 메넨 두툼의 아들 카치 쿨루그의 미망인이자 모놀룬(노물룬) 여왕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몽골 북부 지역은 통제하기 어려웠지만, 몽골에는 몽골계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907-1125)가 있었다.
1050년대 요나라의 거란족은 몽골 동부 케룰렌강을 따라 살던 달리그인 몽골 부족인 자라이르를 공격했다. 자라이르는 카이두의 어머니 모놀룬이 이끄는 보르지긴 몽골족으로 도망쳤으나, 카이두를 제외한 모놀룬과 아들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카이두는 삼촌 나친에 의해 숨겨졌고, 이후 자라이르를 정복하여 신하로 삼았다.
라시드 알-딘의 『자미 알-타와리흐』에 따르면, 케룰렌강은 거란족 지역과 가까워 잦은 전쟁이 벌어졌다. 거란족 군대가 자라이르족을 약탈하러 오자, 자라이르족은 강을 믿고 조롱했지만, 거란군은 댐을 건설하여 강을 건너 자라이르족을 공격하고 재산을 약탈했다. 70개 천막 그룹의 자라이르족은 서쪽으로 도망쳐 모놀룬에게 의지했으나, 굶주림에 목초지를 파헤치자 모놀룬은 분노했다. 이에 자라이르족은 모놀룬과 아들들을 죽였다. 카이두는 콴바구드 부족의 사위였고, 나친은 카이두를 숨겨 보호했다. 이후 주변 부족들이 자라이르족을 공격했고, 카이두는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노예로 삼았다.
《집사》에 따르면 카이두가 태어날 무렵, 켈렌 강 유역에는 70클리엔=7만 부민을 보유한 강대한 자라이르 울루스가 있었다. 히타이(거란) 군세가 자라이르 울루스를 공격하자 자라이르인은 얕보며 도발했고, 히타이인은 뗏목을 만들어 켈렌 강을 건너 자라이르인을 몰살했다. 히타이 병사에게서 도망친 자라이르 부는 모나룬에게 의지했지만, 목초지를 훼손하자 모나룬은 격분하여 자라이르인을 공격했다. 분노한 자라이르인은 모나룬과 아이들을 죽여 몽골 부를 궤멸시켰다.
《집사》에서는 카이두와 나친은 사위로 들어간 부족에 머물렀고, 나친이 카이두를 숨겨 보호했으며, 성장한 카이두는 바르구진 투쿰으로 이주하여 몽골 부족을 부흥시켰다고 한다. 《원사》에서는 카이두는 모나룬 곁에 있었으나 유모가 숨겨 살아남았고, 나친이 카이두를 데리고 바르구진 투쿰으로 이주, 카이두가 성장하자 군주(칸)로 받들어 몽골 부를 부흥시켰다고 한다.
몽골 부의 우두머리가 된 카이두는 자라이르 부 잔당에게 보복하여 복속시켰다. 《집사》 "자라이르 부족지"에는 자라이르 부족민이 몽골 보르지긴 씨의 세습 가인(오테그 보골)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자라이르 울루스의 공격으로 몽골 울루스는 궤멸 직전이었으나, 나친의 도움으로 자라이르 울루스를 병합하여 더욱 강대해졌다.
3. 요사(遼史)의 기록
1014년(개태 3년) 적렬부의 이랄(이라)이라는 인물이 추장 소와(샤와)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고, 인근 부족도 이에 호응하여 요나라의 거모고(쿰크) 성을 함락시켰다. 야율세량이 반란 진압을 위해 파견되었고, 1015년 여름에는 먼저 적렬부에 호응한 저복부(케레이트부)・오고부(타타르부)를 격파하고, 적렬부마저 일단 복속시켰다. 그러나 요나라 조정에서는 적렬부의 반란 재발을 막기 위해 내지로 이주시키는 계획이 제기되었고, 야율세량이 이 계획을 실행할 틈을 타서 적렬부는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재차 일어난 반란에 징벌을 가한 야율세량은 적렬부를 다시 격파하고 그 성년 남자(정장)를 모두 죽였다. 그 후에도 요나라 군의 틈을 노린 적렬부의 역습이 있었고, 장수 중 한 명인 발괄을 놓치는 실책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적렬부 사람들을 케레이트 강을 따라 이주시켜 그곳에 살게 했다.
이처럼 『요사』에 묘사된 적렬부의 멸망은 시대·장소 모두 자라이르 울루스의 멸망과 매우 흡사하며, 동일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건에서 요나라 군의 공격을 피한 적렬부인=자라이르인이 몽골부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고 한다면, 카이두 칸이 활약한 것은 11세기 전반의 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