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돌말렉 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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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압돌말렉 리기는 1979년 발루치족 출신으로, 이란에서 활동한 무장 단체 준달라의 지도자였다. 그는 2006년 민간인 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었으며, 알카에다와의 연관성, 미국 정부의 지원 의혹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리기는 2010년 2월 체포되었으며, 이란 정부는 전투기가 리기가 탑승한 항공기를 요격하여 체포했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 정보 관계자는 파키스탄 당국에 체포되어 미국 지원 하에 이란으로 인도되었다고 주장했다. 리기는 2010년 6월 테헤란의 에빈 감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압돌말렉 리기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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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가 이슬람 혁명 재판소에서 재판받는 모습, 2010년 6월 18일
이름압돌말렉 리기
별명압돌말렉
출생일1979년경
사망일2010년 6월 20일 (31세)
출생지시스탄오발루체스탄 주, 이란
사망 장소에빈 교도소, 테헤란
매장지카바란 공동묘지, 테헤란
로마자 표기Abdolmalek Rigi
발루치어 표기عبدالمالک ریگی
군사 정보
충성준달라(신의 군대)
복무 기간1998년–2010년
계급총사령관
전투2005년 이란 대통령 공격
2007년 타수키 공격
2007년 자헤단 폭탄 테러
차바하르 납치 사건
사라반 폭탄 테러
사라반 매복
2009년 피신 폭탄 테러
기타
처형 원인교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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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압돌말렉 리기는 1979년 발루치족으로 태어났다. 준달라를 세우기 전 십대 시절, 칼로 사람을 폭행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었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카라치의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이곳은 많은 탈레반 지도자들이 수학한 곳이다.

2.1. 활동 및 논란

압돌말렉 리기는 1979년에 태어났으며, 발루치족 출신이다. 준달라를 설립하기 전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으며, 공식 교육을 받지는 않았고, 카라치의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이곳은 많은 탈레반 지도자들이 수학한 곳이기도 하다.

리기와 그의 조직은 이란에서 발생한 민간인 살해 사건의 주요 배후로 지목된다. 2006년, 리기와 그의 조직은 자볼-자헤단 사이의 도로를 막고 새해를 보내기 위해 지나가던 민간인 22명을 살해했다. 그 외에도 리기와 준달라는 여러 차례 민간인 공격과 폭동에 연루되었다.

최근 리기의 후원자 및 국제적인 협력자들에 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준달라가 알카에다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미국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있으며, 해외의 발루치 계 이란인들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HDnet의 댄 래더와의 인터뷰에서 리기는 발루치족의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은 자신의 목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발루치족의 생활 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이란 내의 순니 무슬림들을 위해 싸울 것"임을 밝혔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방송에 따르면, 리기는 50명 이상의 발루치계 이란인들의 사상 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한다.

2005년 4월 7일, 이란의 신문 카이한(Kayhan)은 리기가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살해됐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며칠 뒤 리기가 살아있는 비디오가 공개되었다.

2007년 4월 2일, 리기는 미국의 소리(VOA)에 출연하였는데, 여기서 미국의 소리는 리기를 "유명한 이란 저항운동 지도자"로 소개했다.

전 인질에 따르면, 리기는 이틀 연속 같은 곳에서 자지 않았고 장갑을 끼지 않고는 다른 사람과 악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또한 그의 행동과 인질 처형 영상에서 알 자르카위를 모방했다고 알려졌다. 리기의 형인 압둘하미드 리기는 그의 형이 미국과 협력하여 이란에 대항했다고 비난했다.

3. 체포

압돌말렉 리기의 체포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존재한다.

* 이란 정부는 리기가 2010년 2월 23일 두바이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체포되었다고 주장했다.
* 미국의 전 정보 관계자는 리기가 파키스탄 당국에 체포되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란에 인도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상관없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3.1. 이란 정부의 주장

이란 언론에 따르면, 2010년 2월 23일 리기는 두바이를 거쳐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체포되었다. 이란 관계자는 "그가 탄 비행기는 착륙 지시를 받았다. 비행기를 검색한 이후 그는 체포됐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즈도 나중에 이 사실을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이보다 빨리 같은 내용을 보도하며 파키스탄 당국이 리기 체포에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다. 테헤란의 뉴스분석 사이트 이란 디플로매시 역시 파키스탄의 도움으로 리기가 체포되었음을 보도했다. 이란 디플로매시는 리기가 비행기가 아닌 병원에서 파키스탄 정보 당국자가 미국과 '상담'한 후 리기 체포를 도왔다고 전했다. 테헤란 주재 파키스탄 대사 모하메드 아바시도 자신들의 도움으로 리기 체포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체포 당일 테헤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란 정보부 장관 헤이다르 모슬레히는 리기가 체포되기 24시간 전까지 아프가니스탄 미군 기지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헤이다르는 리기가 미군 기지에 2명의 남자와 함께 있는 사진을 제시했으나, 해당 기지와 사진 획득 경위는 밝히지 않았다. 또 미 정부가 리기에게 주었다는 아프가니스탄 여권과 신분증 사진을 제시했다. 헤이다르는 리기가 2008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직 나토 사무국장 야콥 셰퍼를 만났고, 여러 유럽 국가를 방문했다고 알렸다. 그는 요원들이 5달간 리기를 추적했으며, 체포는 "미국과 영국의 심대한 패배"라고 말했다.

이란은 준달라 조직을 순니계 알카에다와 연결지었다. 또한 파키스탄, 영국, 미국이 이란 불안정을 위해 이들을 도왔다고 비난했다. 일부 서방 언론도 2007년 CIA가 준달라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2월 25일, 이란 국영 TV는 리기가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고 스스로 말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미국인들은 이란이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며, 현재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알카에다나 탈레반이 아닌 이란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란을 공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우리(준달라)를 도와줄 것이라 말했으며, 우리측 포로들을 풀어주고, 군사 장비, 폭탄, 기관총, 기지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BBC는 이 발언을 보도하며 "리기가 자유로운 상황에서 말했는지, 강제적인 상황에서 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준달라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로이터는 리기가 체포 직전 미군 기지에 있었다는 이란 정부 발표를 부인하는 펜타곤 대변인 조프 모렐의 발언을 전했다. 모렐은 미국 비난이 이란 측 프로파간다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2010년 2월 23일, 리기는 위조 아프가니스탄 여권을 소지하고 두바이(아랍에미리트)에서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 비행기가 페르시아만 상공을 지날 때 이란 전투기들이 요격, 조종사에게 이란 영토 착륙을 명령했고, "몇몇 외국인 승객들이 강제로 내려졌다." 반다르압바스 국제공항 착륙 후 이란군은 리기를 확인, 체포했다. 체포 후 이란 TV는 손이 묶인 리기가 가면 쓴 이란 특수부대원 4명에게 호송되는 장면을 방영했다.

3.2. 미국 정보 당국의 주장

이란의 정보부 장관 헤이다르 모슬레히는 리기가 체포되기 24시간 전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군 기지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리기가 미군 기지에서 두 명의 남자와 함께 있는 사진을 제시했지만, 해당 기지가 어디인지, 어떻게 사진을 얻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또한 미국 정부가 리기에게 주었다는 아프가니스탄 여권과 신분증 사진을 제시하며, 리기가 2008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직 나토 사무국장 야콥 셰퍼를 만났고, 여러 유럽 국가들을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리기를 잡기 위해 5달간 추적했으며, 체포를 "미국과 영국의 심대한 패배"라고 칭했다.

이란은 준달라 조직을 알카에다와 연관 짓고, 파키스탄, 영국, 미국이 이란의 불안정을 위해 이들을 도왔다고 비난했다. 몇몇 서방 언론들도 2007년에 CIA가 준달라에게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2010년 2월 25일, 이란 국영 TV는 리기가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고 자백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리기는 "미국은 이란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며, 군사적 공격은 어렵기 때문에 우리(준달라)를 지원하고 군사 장비, 폭탄, 기지 등을 제공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BBC는 이 발언이 강제적인 상황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언급했고, 미국은 준달라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로이터펜타곤 대변인 조프 모렐이 이란 정부의 발표를 부인하며, 미국의 비난은 이란 측의 선전(프로파간다)이라고 말한 내용을 전했다.

3.3. 제3의 주장

이란의 정보부 장관 헤이다르 모슬레히는 리기가 체포되기 24시간 전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군 기지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리기가 미군 기지에 2명의 남자와 함께 있는 사진, 미국 정부가 리기에게 주었다는 아프가니스탄 여권과 신분증 사진을 제시하며, 리기가 2008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직 나토 사무국장 야콥 셰퍼를 만났고 여러 유럽 국가들을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리기 체포를 "미국과 영국의 심대한 패배"로 칭했다.

이란은 준달라 조직을 알카에다와 연관 짓고, 파키스탄, 영국, 미국이 이란의 불안정성을 위해 이들을 도왔다고 비난했다. 일부 서방 언론들도 2007년에 CIA가 준달라에게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2010년 2월 25일, 이란 국영 TV는 리기가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고 자백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리기는 "미국은 이란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며, 우리(준달라)를 도와주고 군사 장비, 폭탄, 기지를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BBC는 이 발언이 강제적인 상황에서 나왔을 가능성을 언급했고, 미국은 준달라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펜타곤 대변인 조프 모렐은 이란 정부의 발표가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4. 처형

이란 및 국제 언론은 2010년 6월 20일, 리기가 테헤란의 에빈 감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보도했다. 이슬람 공화국 통신(Islamic Republic News Agency)은 테헤란 혁명 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밝혔다. 법원 성명은 "국가 동부의 무장 반혁명 단체 지도자는 무장 강도, 암살 시도, 군경 및 일반인에 대한 무장 공격, 살인 등의 혐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의 사형 집행은 준둘라에 대한 "심각한 타격"으로 묘사되었다.

리기는 테헤란 남동부의 카바란 묘지에 매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