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블레프 Yak-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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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코블레프 Yak-38은 1960년대 후반 소련 해군의 함재기 개발 계획에 따라 야코블레프 설계국에서 개발한 수직 이착륙(VTOL) 경공격기이다. 영국 호커 시들리 해리어와 유사한 외형을 가졌지만, 주 엔진 외에 이착륙을 위한 별도의 리프트 엔진 2기를 장착한 독특한 설계를 특징으로 한다. 1970년에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고, 1970년대 중반부터 키예프급 항공모함에 탑재되어 운용되었다. Yak-38은 소련 최초의 실용 VTOL기이자 함재기였으나, 기술적 난제와 성능 부족으로 인해 실전에서의 활용도는 제한적이었다. 총 231기가 생산되었으며, 후속 기종인 Yak-141 개발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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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코블레프 Yak-38 | |
|---|---|
| 개요 | |
| 유형 | VTOL 전투기 |
| 제작 국가 | 소비에트 연방 |
| 제작사 | 야코블레프 |
| 최초 비행 | 1971년 1월 15일 |
| 도입 | 1976년 8월 11일 |
| 퇴역 | 1991년 |
| 주요 사용자 | 소비에트 해군 항공대 |
| 생산 기간 | 1975년–1981년 |
| 생산 대수 | 231대 (Yak-38U – 34대, Yak-38M – 52대 포함) |
| 개발 기반 | 해당 사항 없음 |
| 파생형 | 해당 사항 없음 |
| 명칭 | |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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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발 배경
1967년 여름, 소련 해군 총사령관 세르게이 고르쉬코프 원수는 시험 제작 수직이착륙기(VTOL)인 Yak-36의 성능에 주목하여, 당시 건조가 계획되었던 1123.3형 대잠 순양함(모스크바급)에 탑재할 함재기 개발을 지시했다.[7] 1968년 12월, 소련 정부는 야코블레프 설계국에 Yak-36을 기반으로 한 경공격기 Yak-38을 설계하도록 요청했다.[9] 1968년 9월 2일에는, 항공 운용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1123.3형의 건조가 중단되었고, 대신 더 크고 강력한 항공 운용 능력을 갖춘 1143형 대잠 순양함(키예프급) 건조가 지시되었다.[8]
야코블레프 설계국이 설계한 Yak-38은 호커 시들리 해리어와 외형은 비슷했지만, 완전히 다른 구성을 따랐다. 비행 중 사용되는 후방의 추력 가변 엔진과 함께, 두 개의 더 작고 덜 강력한 엔진이 동체 전방에 장착되어 이착륙에만 사용되었다.[1]
야코블레프 설계국이 설계한 이 항공기의 초기 도면은 영국에서 연구 중이던 호커 P.1154와 매우 유사했지만, R27-300 엔진 2개를 장착한 초음속 항공기였다. 초음속 성능 개발의 어려움으로 인해, 초기에는 마하 수 0.95로 제한된 비교적 단순한 항공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야크-38과 야코블레프 Yak-36은 육상 기반으로 개발되었지만, 두 항공기는 거의 공통점이 없었다.
Yak-36M (Yak-36의 개량형) 시제기는 1969년 1월, 해군 총사령관과 공군 총사령관이 작전 및 기술 요구사항을 승인하면서 개발되었다.[8] 1970년 3월 기술안이 승인되었고, 그 다음 달에 첫 번째 시제기(VM-01)가 완성되었다. 외형은 영국의 호커 시들리 해리어와 비슷했지만, 비행 중 사용되는 후방의 추력 가변 엔진과 함께, 두 개의 더 작고 덜 강력한 엔진이 동체 전방에 장착되어 이착륙에만 사용되는 완전히 다른 구성을 따랐다.[1] 야크-38에는 자동 사출 좌석이 장착되어, 이륙 엔진 중 하나가 고장나거나 항공기가 60도 이상 기울어지면 조종사가 자동으로 탈출했다.
1972년 11월 18일, 덱스바흐가 조종하는 Yak-36M이 헬리콥터 순양함 "모스크바"의 헬리콥터 갑판에 처음으로 착함하여, "소련 해군 함재기의 생일"로 기록되었다.[9]
3. 설계 및 특징
Yak-38은 주 엔진 외에 2기의 리프트 엔진을 탑재하여 수직이착륙을 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이러한 방식은 엔진의 미세 조정이 필요하여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었으며, 항속 거리 및 무장 탑재량 제한의 원인이 되었다.
Yak-38에는 자동 사출 좌석(K-36VM)이 장착되어 비상 상황 시 조종사의 생존성을 높였다.[1] 알루미늄-리튬 합금을 사용하여 기체 경량화를 시도했으며, 레이더를 장착하지 않은 주간 공격기로 제한적인 작전 능력을 가졌다.
3. 1. 동력
Yak-38은 추진용 주 엔진 외에 2기의 이륙용 엔진(리프트 엔진)을 탑재하여 수직 이착륙(VTOL)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수직 이착륙 시에는 리프트 엔진의 흡입용 엔진 덮개와 덕트 커버가 열리고, 전방 하중은 리프트 엔진이, 후방 하중은 회전식 배기 노즐에 의해 추력 편향된 주 엔진이 각각 담당한다.[1] 기체의 롤링 제어는 엔진 압축기에서 생성된 고압 공기를 추출하여 공기 배관을 통해 주익 양단에 장착된 롤 제어 밸브로 제어되며, 요잉 제어는 마찬가지로 엔진 압축기에서 생성된 고압 공기를 추출하여 공기 배관을 통해 기체 후부에 장착된 요 제어 밸브로 제어된다.[10]
호커 시들리 해리어의 롤스로이스 페가수스 엔진이 전후방 편향 노즐 모두 주 엔진의 힘에 의존하는 반면, Yak-38의 방식은 수평 비행 시 리프트 엔진이 데드 웨이트가 되어 연료나 무장 탑재량에서 불리하다. 또한 단거리 발진(STO) 시에는 주 엔진과 리프트 엔진의 출력을 미세 조정해야 하므로 기술적 난도가 매우 높았다.[10]
이러한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크림 반도의 Novofedorivka|노보페도리우카영어에 위치한 흑해 함대의 사키 비행장에서 STO 기술 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수동 출력 미세 조정은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에, 스로틀 조작만으로 추력과 노즐 각도를 제어하는 장치 개발이 목표였다. 당시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78년 12월 13일부터 실제 STOL 시험이 시작되어 1979년 1월 9일까지 27회의 테스트를 거쳐 민스크 함상 시험으로 이어졌다.[11]
같은 해 민스크함이 극동으로 회항했을 때 565회/300시간의 비행 중 120회가 STO 발진이었다. 이 항해 도중 저위도 지역의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는 이륙용 엔진의 성능 저하가 심각하여(심한 경우 1회 수직 이륙으로 연료의 30%를 소비, 비행 가능 시간 20분), STO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판단되어 기술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초기 VTOL 운용 시 페이로드 750kg 탑재, 항속 거리 185km에서 단거리 이함/수직 착함(STOVL) 운용을 통해 2톤 탑재 시 400km, 1톤 탑재 시 600km까지 항속 거리가 연장되었다.[10]
3. 2. 기체
야코블레프 Yak-38은 실용기로는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리튬 합금(01420)을 대규모로 채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합금은 주익 윗면 외판과 동체에 사용되었다.[12]
유압 시스템은 메인, 액추에이터, 백업의 3계통으로 분리되어 있다. 메인 시스템은 보조익, 승강타, 주익 접기에 사용되고, 액추에이터 시스템은 착륙 장치나 고양력 장치 등에 사용되며, 백업 시스템은 메인 시스템 고장 시 사용된다. 메인 시스템에서는 통상적인 유압 작동유를 사용하는 반면, 액추에이터와 백업 시스템에서는 제트 연료를 사용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연료가 유압 작동유보다 가벼워 무게를 줄일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지만, 실제 무게 감소 효과는 미미했던 것으로 보이며, 후계기인 Yak-141에서는 모든 계통이 통상적인 유압 작동유를 사용하도록 변경되었다.[12]
3. 3. 안전 장치
야크-38에는 자동 사출 좌석이 장착되었다. 이륙 엔진 중 하나가 고장나거나 항공기가 60도 이상 기울어지면 조종사가 자동으로 탈출했다.[1]
소련 최초의 실용 V/STOL기이자 최초의 함재기였기 때문에 사고 손실이 자주 발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이 비상 탈출 시 사출 좌석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원형기인 KYa-1M을 대신하여 양산기에서는 고성능의 K-36 사출 좌석이 탑재되었다. K-36VM은 VTOL 모드에서 피치와 요의 변화율이 규정값을 초과하면 조종사의 조작과 관계없이 자동으로 사출 좌석이 작동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이는 저고도에서 VTOL 모드를 사용 중 고장이 발생한 경우, 조종사가 이에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이다.[12] 총 36대가 다양한 사고로 손실되었지만, 이 중 31대에서 조종사가 생환했다.[8]
3. 4. 장비
야크-38은 기본적으로 주간 공격기이며, 레이더나 화기 관제 시스템(FCS), 거리 측정 레이더는 장착되지 않았다. 조준 장치로는 MiG-21PF와 동일한 모델인 광학식 ASP-PFD-21을 사용했다.[12]
무장은 양쪽 날개 아래 4곳(좌우 2곳씩)의 하드 포인트에 탑재되었다. 고정 무장은 없었으며, 1980년부터 동체 하부에 장착하는 ВСПУ-36ru 건포드(GSh-23 기관포와 탄환 160발 수용)의 시험이 시작되었지만, 장비화 결정이 1989년까지 늦어져 실제로는 하드 포인트에 매달기 위한 UPK-23-250 건포드(GSh-23 기관포와 탄환 250발 수용)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12]
하드 포인트에는 적외선 호밍 유도 방식의 R-60 (AA-8 "애피드")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Kh-23|label=Kh-23영어 (AS-7 "케리") 무선 지령 유도형 공대지 미사일, S-5 로켓탄, FAB-100, FAB-500 무유도 폭탄 등을 장착할 수 있었다.
4. 무장
Yak-38은 고정 무장이 없으며, 탈착식 GSh-23L 23mm 기관포 포드 (VSPU-36 또는 UPK-23-250)를 장착할 수 있었다. VSPU-36 건포드의 장비화 결정이 1989년까지 늦어져 실제로는 UPK-23-250 건포드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12] 주익 하부 4개 하드포인트에는 다양한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다.
탑재 가능 무장은 다음과 같다.[12]
- R-60 (AA-8 "애피드")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 (AS-7 "케리") 무선 지령 유도형 공대지 미사일
- S-5 로켓탄
- FAB-100, FAB-500 무유도 폭탄
5. 운용 역사
1974년부터 사라토프 항공기 제조 공장에서 양산기 제조가 시작되었고,[8] 1975년 5월 18일에는 Yak-36M이 키예프에 처음 착함했다.[8] 10월 24일, 크림반도 사키 비행장에서 마토코프스키 대령을 연대장으로 하는 소련 해군 최초의 함상 비행 연대가 편성되었다.[8] 1977년, Yak-38은 1143형 탑재기로 정식으로 해군에 인도되었다.[8] 초기 생산된 Yak-36M의 대부분은 크림반도 사키에 위치한 해군 항공대 훈련 센터인 제279 ''OKShAP'' (''Otdelny Korabelny Shturmovoy Aviatsionny Polk'', 독립 함재 공격 항공 연대)에 인도되었다.
1979년 7월, ''민스크''는 동해에 도착하여 스트렐록 만에 모항을 두었고, 이후 항공단의 Yak-38은 태평양 함대 소속의 제311 ''OKShAP''에서 제공받았다.
1982년 9월, 세 번째 키예프급 항공모함인 노보로시스크가 취역했다. 노보로시스크가 세베로모르스크에서 태평양 함대에 합류하는 동안 Yak-38의 전반적인 성능과 능력이 향상된 점이 활용되었다. ''민스크''에서 작전 중이던 무장한 Yak-38기 2대가 1982년 12월 16일 아라비아해 상공에서 미국 해군 항공모함 USS 엔터프라이즈의 F-14를 요격했다. 이 사건은 소련의 VTOL 항공기가 미사일로 무장한 채 미국 항공기를 요격한 첫 번째 사례였다.[2]
해상 환경에서 Yak-38은 ''키예프'' 갑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83년 9월,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은 민간 Ro-Ro 선박인 ''아고스티뉴 네토''에서 작전을 수행했으며, NII-VVS (공군 과학 시험 연구소) 조종사들은 다른 Ro-Ro 선박인 ''니콜라이 체르카소프''에서 추가 시험을 실시했다. 두 경우 모두 내열성 착륙 플랫폼이 사용되었다.[3]
무장 탑재량과 항속 성능의 부족은 경공격기인 Yak-38에게는 문제였다. 실제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따라 육군의 요청을 받아 1980년에 수 대가 해당 지역에 파견되어 대지 공격 임무에 투입되었으나, 정작 중요한 대지 공격 능력이 시스템 및 무장 양면에서 부족하여 거의 쓸모가 없었다. 결국 이 임무를 위해 특별 위장을 한 약간의 기수만이 시험적으로 투입되었을 뿐 Yak-38의 실전 운용은 종료되었다.
VTOL기 지지자였던 드미트리 우스티노프 소련 국방부 장관이 1984년에 사망하고, 세르게이 고르쉬코프 총사령관이 1985년에 총사령관에서 퇴임하면서, 해군은 VTOL기에 대한 관심을 급속히 잃어갔다. 1991년에는 예비역 편입되었고, 1992년에는 제적되었다.[10] 1989년까지 파생형을 포함하여 총 231기가 제조되었다. 총 비행 시간은 29,425시간이었다.[8]
6. 파생형
7. 제원 (Yak-38M)
참조
[1]
문서
[2]
뉴스
"F-14's From Carrier Nimitz Chased 2 Libyan Jets, U.S. Officials Say."
https://www.nytimes.[...]
New York Times
2017-08-03
[3]
간행물
"The Soviet Navy 'Forger': Yak-36M, Yak-38, Yak-38U and Yak-38M."
http://www.acig.org/[...]
Air Combat Information Group
2008-07-16
[4]
문서
[5]
웹사이트
"Vertical take-off/landing aircraft: Yak-38."
http://www.yak.ru/EN[...]
Yakovlev Design Bureau
2008-07-16
[6]
웹사이트
"Vertical take-off/landing aircraft: Yak-38."
http://www.yak.ru/EN[...]
Yakovlev Design Bureau
2008-07-16
[7]
논문
ソ連/ロシア空母建造秘話(2)
海人社
[8]
논문
ソ連/ロシア空母建造秘話(4)
海人社
[9]
논문
ソ連/ロシア空母建造秘話(3)
海人社
[10]
논문
ソ連/ロシア空母建造秘話(5)
海人社
[11]
서적
世界の傑作機No.162
文林堂
[12]
서적
世界の傑作機No.162
文林堂
[13]
웹인용
History.navy.mil
http://www.history.n[...]
2011-08-11
[14]
문서
[15]
웹사이트
"Vertical take-off/landing aircraft: Yak-38."
http://www.yak.ru/EN[...]
Yakovlev Design Bureau
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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