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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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담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군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1895년 일본 유학 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 육군에 임관했으나, 러일 전쟁 이후 고종의 측근에서 호위와 감시를 병행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조선보병대에서 근무했으며, 일본군에서 소장, 중장으로 진급했다. 3·1 운동 당시 순직 경찰관 초혼제에 참석하고, 중일 전쟁 발발 후 지원병제도에 찬성하며 친일 행위를 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회고록 《어담소장 회고록》을 저술했다.

어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글어담
한자魚潭
가타카나오・담
히라가나ぎょ・たん
로마자 표기Eo Dam
인물 정보
이름어담
생애1881년 음력 5월 7일 ~ 1943년 양력 7월 5일
출생지경기도 광주군
복무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복무 기간1900년 ~ 1931년
최종 계급대한제국 육군 정령
주요 참전 전투/전쟁러일 전쟁
기타 이력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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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경기도 광주군에서 태어나 1895년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했다. 게이오의숙을 거쳐 1899년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제11기로 졸업했다.

1930년 일본 제국 육군 중장으로 진급했고, 1931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어 1936년까지 연임했다. 중일 전쟁 발발 후 1938년 일제가 지원병제를 실시하자 매일신보에 이를 지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배영동지회 상담역과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도 맡았다.

2.1. 대한제국 시기

1899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고, 1900년 대한제국 육군 포병 참위(參尉)로 임관했다. 동기생 가운데 노백린은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김관현은 일제 관헌의 관료가 되었으며, 어담은 계속 일본 군대에 남아 있었다. 윤치호의 동생인 윤치성도 이들과 함께 졸업했으나 일찍 사망했다.

러일 전쟁 때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하자 일본 육사를 나온 어담은 능력을 인정받았고, 일본 제국은 그를 고종의 최측근에서 호위와 감시를 병행할 수 있도록 시종무관 등의 지근직으로 임명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뒤 이왕직 왕실 호위부대인 조선보병대에서 근무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만세 시위가 일어나면서 살해된 경찰관이 나오자, 1921년 경복궁에서 열린 순직경찰관초혼제에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다.

1920년 4월 26일에는 칙령 제118호에 따라 조선군인인 정령에서 일반 대좌로 전임되었다.

2.2. 일제 강점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어담은 이왕직 왕실 호위부대인 조선보병대에서 근무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만세 시위로 인해 경찰관이 살해되자, 1921년 경복궁에서 열린 순직경찰관초혼제에 참석했다.

1920년 4월 26일, 칙령 제118호에 따라 조선군인 정령에서 일반 대좌로 전임되었다. 1922년 9월 18일에는 소장, 1930년 12월 22일에는 일본 제국 육군 중장으로 진급했다. 1931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어 1936년까지 연임했다.

중일 전쟁 발발 후 1938년 일제가 지원병제를 실시하자 매일신보에 이를 지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배영동지회 상담역과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도 맡았으며, 김석원, 최린 등과 함께 후방 지원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3. 사후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광복회와 함께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수록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과 중추원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4. 저서

회고록 《어담소장 회고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