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앤더슨
1. 개요
에드가 앤더슨은 미국의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였다. 미시간 주립 대학교에서 식물학과 원예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유전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앤더슨은 미주리 식물원에서 연구를 시작하여, 붓꽃의 지리적 변이와 교잡 침투 현상을 연구했다. 또한, 옥수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대중 과학 서적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1967년 은퇴했으며, 에스터 레더버그, J. B. S. 홀데인 등과 교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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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에드가 섀넌 앤더슨 |
|---|---|
| 로마자 표기 | Edeuga Syaeneon Aendeoseun |
| 출생 | 1897년 11월 9일 |
| 출생지 | 포레스트빌, 뉴욕주 |
| 사망 | 1969년 6월 18일 (향년 71세) |
| 분야 | 식물학 |
| 소속 기관 | 미주리 식물원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존 이네스 원예 연구소 아널드 수목원 |
| 모교 | 미시간 주립 대학 하버드 대학교 |
| 지도교수 | 에드워드 머레이 이스트 |
| 수상 | 다윈-월리스 메달 |
| 식물학 저자 약칭 | E.S.Anderson |
| 박사 지도 학생 | 조지 레들야드 스테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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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 |
| 전미 과학 아카데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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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의 과학자 -
아사 그레이
아사 그레이는 19세기 미국의 영향력 있는 식물학자로, 하버드 대학교의 자연사 교수로서 그레이 허바리움을 설립하여 식물학과 발전에 기여했으며,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하고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동부 식물상의 유사성을 연구했다. -
뉴욕주의 과학자 -
데이비드 코크
데이비드 코크는 미국의 기업인, 정치 운동가이자 자선가로, 자유당 부통령 후보, 코크 인더스트리 수석 부사장, 소규모 정부와 낮은 세금 지지, 다양한 분야 기부를 했으며 2019년에 사망했다. -
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 -
이재갑 (공무원)
이재갑은 행정고시 합격 후 노동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여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하고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 정책을 추진한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
미시간 주립 대학교 동문 -
이완구
이완구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국회의원과 충청남도지사를 지냈으며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나 성완종 리스트 사건 연루 의혹으로 사퇴 후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
미국의 유전학자 -
클로드 섀넌
클로드 섀넌은 정보 이론의 창시자이자 디지털 회로 설계의 선구자로, 정보 엔트로피 개념을 도입하여 정보 이론을 개척하고 디지털 회로 설계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암호학, 인공지능, 컴퓨터 체스 연구에도 기여하여 현대 디지털 시대의 기반을 구축했다. -
미국의 유전학자 -
앤드루 파이어
앤드루 파이어는 이중 가닥 RNA가 상보적인 서열을 가진 mRNA를 파괴하여 단백질 번역을 억제하는 RNA 간섭 현상을 크레이그 멜로와 함께 발견하여 2006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생물학자이며,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 병리학 및 유전학 교수와 미국 국립과학원 및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및 교육
앤더슨은 미국 뉴욕주 포레스트빌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앤더슨의 가족은 미시간주 이스트랜싱으로 이사했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그곳에서 낙농업을 가르치는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1914년, 앤더슨은 미시간 주립 대학교에 입학하여 식물학과 원예학을 공부했다. 1918년에 생물학 학위를 받은 후, 해군 예비대에 입대했다. 1919년, 앤더슨은 하버드 대학교 버시 연구소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으며, 유전학자 에드워드 머레이 이스트의 지도를 받아 담배(Nicotiana)의 자기불화합성 유전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1920년에는 석사 학위를, 1922년에는 농업 유전학으로 이학박사(DSc) 학위를 취득했다.
2.1. 어린 시절 및 학부
앤더슨은 미국 뉴욕주 포레스트빌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앤더슨의 가족은 미시간주 이스트랜싱으로 이사했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그곳에서 낙농업을 가르치는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1914년, 앤더슨은 미시간 주립 대학교에 입학하여 식물학과 원예학을 공부했다. 1918년에 생물학 학위를 받은 후, 그는 해군 예비대에 입대했다. 1919년, 앤더슨은 하버드 대학교 버시 연구소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으며, 유전학자 에드워드 머레이 이스트의 지도를 받아 담배(Nicotiana)의 자기불화합성 유전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1920년에는 석사 학위를, 1922년에는 농업 유전학으로 이학박사(DSc) 학위를 취득했다.
2.2. 대학원 시절
미국 뉴욕주 포레스트빌에서 태어난 앤더슨은 1914년 미시간 주립 대학교에 입학하여 식물학과 원예학을 공부했다. 1918년 생물학 학위를 취득한 후, 해군 예비대에 입대했고, 1919년 하버드 대학교 버시 연구소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 에드워드 머레이 이스트의 지도를 받아 담배(Nicotiana)의 자기불화합성 유전에 관해 연구했으며, 1920년 석사 학위, 1922년 농업 유전학으로 이학박사(DSc) 학위를 받았다.
3. 연구 경력
앤더슨은 붓꽃과 옥수수 연구로 유명하며, 식물 분류, 유전학, 진화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9년 교잡 침투를 출판하여 교배 형태 사이의 유전자 전달과 종 분화에서 침투의 역할을 설명했다. 1952년에는 대중 과학 서적 식물, 인간, 그리고 삶을 저술했는데, 한 평론가는 이 책을 "모든 식물학자와 인류학자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묘사했다.
1954년 잠시 미주리 식물원 원장을 역임했지만, 1957년에 다시 교직으로 돌아왔으며 1967년에 은퇴했다.
에스터 레더버그의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였으며,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심포지엄에 자주 참석했다. J. B. S. 홀데인과 G. 레디야드 스테빈스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3.1. 초기 연구 (붓꽃 연구)
앤더슨은 1922년 미주리 식물원에서 유전학자 자리를 수락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의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그의 연구는 버들붓꽃(Iris versicolor)의 지리적 변이를 정량화하는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앤더슨은 두 번째 종인 버지니카붓꽃(Iris virginica)의 존재를 밝혀냈다.
1929년 앤더슨은 영국 존 이네스 원예 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펠로우십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세포유전학자 C. D. 달링턴, 통계학자 R. A. 피셔, 유전학자 J. B. S. 홀데인과 함께 일했다. 앤더슨의 붓꽃 3종에 대한 데이터 세트는 피셔가 분류의 통계적 방법을 시연하기 위한 예제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머신 러닝 커뮤니티에서 매우 잘 알려지게 되었지만, 종종 피셔의 붓꽃 데이터로 묘사된다.
1931년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 대학교의 아놀드 수목원에서 유전학자 칼 삭스와 함께 일했다. 1935년 그는 미주리 식물원으로 돌아갔고, 1937년 워싱턴 대학교에서 엥겔만 식물학 교수를 받았다. 1934년에서 1938년까지 그는 주로 트라데스칸티아(Tradescantia)를 연구했다. 그는 교잡 침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3.2. 하버드 대학교 및 옥수수 연구
1931년 앤더슨은 하버드 대학교의 아놀드 수목원에서 유전학자 칼 삭스와 함께 일했다. 1934년에서 1938년까지 트라데스칸티아를 주로 연구했으며, 교잡 침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1935년 미주리 식물원으로 돌아갔고, 1937년 워싱턴 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에서 엥겔만 식물학 교수를 받았다.
1941년 어니스트 마이어와 함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제수프 강연에 초청받아 식물 계통 분류학에서 유전학의 역할을 논의했다. 그러나 앤더슨은 현대 진화 종합의 토대로 여겨지는 제수프 강연의 다른 발표자들과 달리, 계통 분류학 및 종의 기원에 대한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야생 식물과 재배 식물을 모두 연구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옥수수에 대한 연구로 전환했다.
3.3. 교잡 침투와 후기 연구
앤더슨은 1922년 미주리 식물원에서 유전학자 자리를 수락했고,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의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버들붓꽃(Iris versicolor)의 지리적 변이를 정량화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버지니카붓꽃(Iris virginica)의 존재를 밝혀냈다.
1929년, 앤더슨은 영국 존 이네스 원예 연구소에서 연구 펠로우십을 받았다. 그곳에서 세포유전학자 C. D. 달링턴, 통계학자 R. A. 피셔, 유전학자 J. B. S. 홀데인과 함께 연구했다. 앤더슨의 붓꽃 3종 데이터는 피셔가 분류 통계 방법을 시연하는 예제로 사용되었고, 이후 머신 러닝 커뮤니티에서 피셔의 붓꽃 데이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31년, 앤더슨은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 대학교 아놀드 수목원에서 유전학자 칼 삭스와 함께 연구했다. 1935년에는 미주리 식물원으로 돌아갔고, 1937년 워싱턴 대학교에서 엥겔만 식물학 교수가 되었다. 1934년부터 1938년까지 그는 주로 트라데스칸티아(Tradescantia)를 연구하며 교잡 침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1941년, 앤더슨은 어니스트 마이어와 함께 컬럼비아 대학교 제수프 강연에 초청받아 식물 계통 분류학에서 유전학의 역할을 논의했다. 그러나 그는 현대 진화 종합의 토대가 된 제수프 강연의 다른 발표자들과 달리, 계통 분류학 및 종의 기원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고 옥수수 연구로 전환했다.
1949년, 앤더슨은 교잡 침투를 출판하여 교배 형태 사이의 유전자 전달과 종 분화에서 침투의 역할을 설명했다. 1952년에는 대중 과학 서적 식물, 인간, 그리고 삶을 저술했는데, 이 책은 "모든 식물학자와 인류학자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앤더슨은 1954년 잠시 미주리 정원의 원장을 역임했지만, 1957년에 다시 교직으로 돌아왔다. 그는 1967년에 은퇴했다.
앤더슨은 에스터 레더버그의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였으며,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심포지엄에 자주 참석했다. 또한 J. B. S. 홀데인과 G. 레디야드 스테빈스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