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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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드워드 리어는 19세기 영국의 화가이자 작가로, 특히 넌센스 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앵무새 등 조류 그림으로 경력을 시작하여 빅토리아 여왕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지중해와 인도 등지를 여행하며 풍경화가로도 활동했다. 리어는 『넌센스의 책』을 통해 익살시 형식을 대중화했으며, "런시블 스푼"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 등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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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리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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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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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에드워드 리어 |
출생일 | 1812년 5월 12일 |
출생지 | 영국, 미들섹스주(현재 런던시 이스링턴구) 할로웨이 |
사망일 | 1888년 1월 29일 |
사망지 | 이탈리아 왕국, 리구리아주 산레모 |
국적 | 영국, 이탈리아 |
직업 | 화가, 삽화가, 작가, 시인, 음악가 |
작품 활동 | |
활동 시기 | 19세기 |
장르 | 아동 문학, 넌센스 문학, 리머릭 |
대표 작품 | '넌센스 이야기 책' 올빼미와 고양이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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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리어는 런던 교외의 홀로웨이에서 증권 중개인인 아버지 밑에서 21남매 중 20번째 아이[37]로 태어났으며, 21살이나 차이 나는 누나 앤에게 길러졌다[37]. 15세 때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위해 도제 수업을 받았다. 19세 때 런던 동물원의 의뢰로[37] 습작 그림을 모아 『앵무새 그림책』을 출판했다. 그의 조류 그림은 존 제임스 오듀본 등과 자주 비교되었고, 평생 사실적인 화가로 활동했다. 그림 실력을 인정받아 짧은 기간 동안 빅토리아 여왕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다.
리어의 조류 그림은 조류 연구가였던 더비 백작 가문의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13대 더비 백작의 눈에 띄어, 노즐리에 있는 더비 백작 저택의 사설 동물원에서 동물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1832년부터 1836년까지 머무는 동안, 동물 그림을 그리는 한편, 당주인 에드워드 스미스-스탠리 12대 더비 백작과 그의 손자들에게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그려주거나 그 그림에 재미있는 시를 붙여 즐겁게 해주었다[37]. 1837년 이후로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져 지중해 연안, 인도 등 해외를 방랑했다[36].
1846년에 그림과 시를 모은 『넌센스 그림책』을 출판했고, 이후에도 화가로 활동하면서 넌센스 시화집을 집필했다. 그의 넌센스 작품은 생전부터 널리 읽혔고, 이로 인해 리머릭이라는 시 형식이 일반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870년대에 산레모에 정착하여 "빌라 테니슨"이라고 이름 붙인 빌라에서 살았다. 오랜 건강 악화 끝에 1888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22] 리어의 장례식은 슬프고 고독한 의식이었으며, 많은 평생 친구들은 참석하지 못했다.[22] 리어는 산레모의 포체 묘지에 묻혔으며, 묘비에는 알프레드 테니슨 경의 시에서 발췌한 토모흐릿 산에 관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의 사망 100주년은 1988년 영국에서 왕립우편 우표 세트와 왕립예술원 전시회로 기념되었다. 2012년 그의 탄생 200주년은 전 세계의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행사, 전시회, 강연으로 기념되었고, 그의 생일에는 국제 올빼미와 고양이 날도 열렸다.[24]
대단한 고양이 애호가였던 리어는 이탈리아 체류 후기에 애묘 포스를 「수컷 고양이 포스의 영광스러운 문장」이라는 제목의 풍자화 시리즈에 그렸다. 포스가 죽자 정식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묘비까지 세웠으며, 포스의 죽음으로부터 불과 2개월 후, 그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38].
2. 1. 어린 시절
에드워드 리어는 런던 북부 홀로웨이의 중산층 가정에서 설탕 정제 사업을 하던 가문의 주식 중개인 제레마이어 리어와 앤 클락 스케릿 사이에서 21명의 자녀 중 막내이자 살아남은 막내로 태어났다.[4][5] 그는 자신보다 21살 많은 누나 앤에게 길러졌다. 제레마이어 리어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경제적 혼란 속에서 런던 증권거래소에 채무 불이행을 하게 되었다.[6] 가정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리어는 네 살 때 누나와 함께 보먼스 롯지라는 가족의 집을 떠나 함께 살아야 했다. 앤은 에드워드를 매우 귀여워했고, 그가 거의 50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 역할을 했다.[7]리어는 평생 건강 문제를 안고 살았다. 여섯 살 때부터 잦은 대발작 간질 발작, 기관지염, 천식을 겪었고, 나이가 들면서 부분적인 시력 상실까지 겪었다. 리어는 아버지와 함께 하이게이트 근처의 축제에서 처음 발작을 경험했다. 이 사건은 그를 겁먹게 하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평생 간질이라는 질환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꼈고, 성인이 된 후의 일기에는 항상 발작이 시작되는 것을 감지하여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리어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 불안정한 어린 시절로 인해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모비드"라고 부르는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8]
2. 2. 예술가로서의 경력
리어는 16세 때부터 이미 '빵과 치즈를 위해' 그림을 그렸으며, 곧 런던동물학회와 1832년부터 1836년까지는 개인 동물원을 소유한 더비 백작 밑에서 일하는 진지한 "조류 화가"로 발전했다.[9] 그는 표본의 가죽이 아닌 살아있는 새를 그린 최초의 주요 조류 화가였다. 19세 되던 해에 출판한 리어의 첫 번째 작품은 1830년에 출판된 ''앵무새과(Psittacidae) 또는 앵무새 그림(Illustrations of the Family of Psittacidae, or Parrots)''이다.[9] 당대 최고의 조류 화가 중 한 명인 그는 엘리자베스 굴드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존 굴드의 작품에도 기여했으며, 일부 사람들에 의해 자연주의자 존 제임스 오듀본과 비교되기도 했다. 리어의 조류 그림을 기념하여, ''Anodorhynchus leari'', 일반 명칭 리어의 아라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시력이 석판화에 사용되는 정밀한 그림과 에칭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후, 그는 풍경화와 여행으로 방향을 바꿨다.[10]
다른 여행들 중에서도 그는 1848년에서 1849년 사이에 그리스와 이집트를 방문했고, 1873년에서 1875년 사이에 실론으로 잠시 들르는 것을 포함하여 인도를 여행했다. 여행 중 그는 독특한 스타일의 많은 채색 수채화 그림을 제작했는데, 이를 나중에 자신의 작업실에서 유화와 수채화 그림으로, 그리고 그의 책을 위한 판화로 바꿨다.[11] 그의 풍경화 스타일은 종종 강렬한 색채 대비가 있는 강한 햇빛이 비치는 풍경을 보여준다.[12]
1878년에서 1883년 사이에 리어는 스위스 티치노주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경계에 있는 산인 몬테 제네로소에서 여름을 보냈다. 그의 유화 ''몬테 제네로소에서 바라본 롬바르디 평원''은 옥스퍼드의 애슈몰린 미술관에 있다.[13][14]
그는 일생 동안 계속해서 진지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는 알프레드 테니슨 경의 시에 삽화를 넣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았고, 생애 말기에 소수의 삽화가 담긴 책 한 권이 출판되었다.


1842년, 리어는 이탈리아 반도를 여행하기 시작하여 라치오, 로마, 아브루초, 몰리제, 풀리아, 바실리카타, 칼라브리아 그리고 시칠리아를 여행했다. 개인적인 메모와 그림을 함께 기록하며 리어는 이탈리아의 삶, 민속 전통, 그리고 고대 유적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상을 모았다. 리어에게 특히 흥미로웠던 곳은 1843년에 방문한 아브루초였는데, 마르시카(첼라노, 아베차노, 알바 푸켄스, 트라사코)와 칭케 밀리아 고원(카스텔 디 상그로와 알페데나)을 목동들의 오래된 양떼 길을 따라 여행했다.
리어는 시렌테 산이 있는 알베의 중세 마을을 스케치하고, 피콜로미니 성이 후치노 호수의 광활한 평야를 내려다보는 첼라노의 중세 마을을 묘사했다. 후치노 호수는 몇 년 후 농업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배수되었다. 카스텔 디 상그로에서는 리어가 산의 겨울 정적과 아름다운 바실리카를 묘사했다.
1847년 남부 이탈리아 지역으로의 모험적인 여정은 리어의 "남부 칼라브리아 등지의 풍경화가의 기록"에 묘사되어 있다. 리어가 숨 막힐 듯한 풍경과 종종 초현실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광범위한 칼라브리아 부분은 그의 여행 문학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여겨진다.[15]
2. 3. 넌센스 문학
리어는 1846년에 익살시 모음집인 『넌센스의 책』(A Book of Nonsense)을 출판하여 익살시 형식과 유머 문학 장르를 대중화하는데 기여하였다.[25] 1871년에는 넌센스송 "올빼미와 고양이"(The Owl and the Pussy-Cat)를 포함한 『넌센스 노래, 이야기, 식물학 및 알파벳』(Nonsense Songs, Stories, Botany and Alphabets)을 출판하였고, 그 후에도 많은 작품들이 뒤따랐다.리어의 넌센스 작품들은 언어적 발명의 능숙함과 실제 및 허구의 단어 소리에 대한 시인의 즐거움으로 구별된다. 예를 들어 박제된 코뿔소는 "투명한 문긁개"가 되고, "푸른 보스-워스"는 "수직적, 첨탑형, 원형, 사각형, 원형의 부드러운 진흙 깊이"로 뛰어든다. 그의 주인공들은 콴글-완글, 포블, 점블리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언어적 발명 중 하나인 "런시블 스푼"(runcible spoon)이라는 구절은 "올빼미와 고양이"의 마지막 구절에 나온다.[26]
신조어로 유명하지만, 리어는 독자의 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게는 차갑다"(Cold Are the Crabs)[27]와 같이 소네트 전통을 따르다가 마지막 행이 극적으로 단축되는 등 여러 가지 다른 기법들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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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익살시는 항상 다섯 줄로 조판되지만, 리어의 익살시는 리어가 원고를 그림 아래에 공간이 있는 만큼 여러 줄로 썼던 것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출판되었다.
리어의 익살시에서는 첫 번째 줄과 마지막 줄이 운율을 이루기보다는 보통 같은 단어로 끝난다. 대부분 진정으로 넌센스적이며 어떤 핵심이나 요점도 없다. 전형적인 주제적 요소는 무관심하고 비판적인 "그들"의 존재이다. 전형적인 리어의 익살시는 다음과 같다.
2. 4. 만년과 죽음
리어는 1870년대에 자신이 "빌라 테니슨(Villa Tennyson)"이라고 이름 붙인 빌라에서 산레모에 정착했다.오랜 건강 악화 끝에 리어는 1888년 자신의 빌라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다.[22] 리어의 주치의였던 하살 박사의 부인에 따르면 리어의 장례식은 슬프고 고독한 의식이었으며, 리어의 많은 평생 친구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22]
리어는 산레모의 포체 묘지(Cemetery Foce)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테니슨의 시 "그리스 여행 중인 E.L.[에드워드 리어]에게"에서 발췌한 토모흐릿 산(알바니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의 사망 100주년은 1988년 영국에서 왕립우편(Royal Mail) 우표 세트와 왕립예술원(Royal Academy) 전시회로 기념되었다. 리어의 출생지 지역은 현재 런던 이즐링턴의 보먼즈 뮤즈(Bowman's Mews)에 있는 명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2012년 그의 탄생 200주년은 전 세계의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행사, 전시회, 강연으로 기념되었고, 그의 생일에는 국제 올빼미와 고양이 날(International Owl and Pussycat Day)도 열렸다.[24]
대단한 고양이 애호가였으며, 이탈리아 체류 후기에는 애묘 포스(フォス)를 「수컷 고양이 포스의 영광스러운 문장(雄猫フォスの輝かしき紋章)」(Heraldic Blazon of Foss the Cat)이라는 제목의 풍자화 시리즈에 그렸다. 그 포스가 죽자 정식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묘비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포스의 죽음으로부터 불과 2개월 후, 그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38]
3. 주요 작품
에드워드 리어의 주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제목 | 출판 연도 | 비고 |
---|---|---|
『앵무과(Psittacidae) 조류 그림』 | 1832년 | |
『로마와 그 주변의 풍경』 | 1841년 | |
『노즐리 홀 동물원의 수집품』 | 1846년 | |
『넌센스의 책』 | 1846년 | 익살시 모음집. 세 번의 판을 거치며 익살시 형식과 유머 문학 장르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
『이탈리아 삽화 여행』 | 1846년 | |
『알바니아 티모호릿 산』 | 1848년 | |
『그리스와 알바니아의 풍경화가의 여정』 | 1851년 | |
『알바니아 칼라마 폭포』 | 1851년 | |
『남부 칼라브리아의 풍경화가의 여정』 | 1852년 | |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와 노래』 | 1853년, 1859년, 1860년 | 테니슨의 시 12편을 위한 음악 작품. |
『피플포플 호수의 일곱 가문의 역사』 | 1865년 | 현재 영국 도서관에 소장된 삽화 원고[32] |
『코르시카의 풍경화가의 여정』 | 1870년 | |
『넌센스 노래와 이야기』 | 1870년 (1871년으로 표기)[33] | 더비 13세 백작의 자녀들을 위해 작곡한 넌센스송 "올빼미와 고양이"를 포함한다. |
『거북이, 막이거북, 그리고 바다거북』 | 1872년 | J. E. 그레이 서문. |
더 많은 넌센스 그림, 운율, 식물학 등 | 1872년 | [34] |
『웃긴 가사』 | 1877년 | |
『넌센스 알파벳』 | ||
『미케네의 아르고스』 | 1884년 | 현재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소장[35] |
『넌센스 식물학』 | 1888년 | |
『테니슨의 시, 리어 삽화』 | 1889년 | |
『넌센스 알파벳의 복사본』 | 1926년 | 1849년 작성. |
『콸글 왐글의 모자』 | 1876년 | |
브라이언 리드 저, 『에드워드 리어의 앵무새』 | 1949년 | 더크워스, 리어의 『Psittacidae』에서 12개의 컬러판 포함. |
스크루비어스 핍 | 1968년 | 사후 미완성, 오그든 내시가 완성하고 낸시 에크홀름 버커트 삽화. |
『빛나는 코를 가진 동이』 | 1969년 | 에드워드 고리 삽화, 영 스콧 북스, 뉴욕. |
"에드워드 리어: 코르푸 시절" | 1988년 |
리어의 넌센스 작품들은 언어적 발명의 능숙함과 실제 및 허구의 단어 소리에 대한 시인의 즐거움으로 구별된다. "런시블 스푼"이라는 구절은 "올빼미와 고양이"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며, 현재 많은 영어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리어는 신조어로 유명하지만, 독자의 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 다른 기법들을 사용했다.
3. 1. 그림
리어는 16세 때부터 이미 '빵과 치즈를 위해' 그림을 그렸으며, 곧 런던동물학회와 더비 백작 밑에서 일하는 진지한 "조류 화가"로 발전했다.[9] 그는 표본의 가죽이 아닌 살아있는 새를 그린 최초의 주요 조류 화가였다. 19세에 출판한 리어의 첫 번째 작품은 1830년에 출판된 ''앵무새과(Psittacidae) 또는 앵무새 그림(Illustrations of the Family of Psittacidae, or Parrots)''이다.[9] 엘리자베스 굴드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존 굴드의 작품에도 기여했으며, 일부 사람들에 의해 존 제임스 오듀본과 비교되기도 했다. 리어의 조류 그림을 기념하여, ''Anodorhynchus leari'', 일반 명칭 리어의 아라(Lear's macaw)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시력이 석판화에 사용되는 정밀한 그림과 에칭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후, 그는 풍경화와 여행으로 방향을 바꿨다.[10] 1848년에서 1849년 사이에 그리스와 이집트를 방문했고, 1873년에서 1875년 사이에 실론으로 잠시 들르는 것을 포함하여 인도를 여행했다. 여행 중 그는 독특한 스타일의 많은 채색 수채화 그림을 제작했는데, 이를 나중에 자신의 작업실에서 유화와 수채화 그림으로, 그리고 그의 책을 위한 판화로 바꿨다.[11] 그의 풍경화 스타일은 종종 강렬한 색채 대비가 있는 강한 햇빛이 비치는 풍경을 보여준다.[12]
1878년에서 1883년 사이에 리어는 스위스 티치노주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경계에 있는 산인 몬테 제네로소(Monte Generoso)에서 여름을 보냈다. 그의 유화 ''몬테 제네로소에서 바라본 롬바르디 평원(The Plains of Lombardy from Monte Generoso)''은 옥스퍼드의 애슈몰린 미술관(Ashmolean Museum)에 있다.[13][14]
그는 일생 동안 계속해서 진지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는 테니슨의 시에 삽화를 넣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았고, 생애 말기에 소수의 삽화가 담긴 책 한 권이 출판되었다.

1842년, 리어는 이탈리아 반도를 여행하기 시작하여 라치오, 로마, 아브루초, 몰리제, 풀리아, 바실리카타, 칼라브리아 그리고 시칠리아를 여행했다. 개인적인 메모와 그림을 함께 기록하며 리어는 이탈리아의 삶, 민속 전통, 그리고 고대 유적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상을 모았다. 리어에게 특히 흥미로웠던 곳은 1843년에 방문한 아브루초였는데, 마르시카(첼라노, 아베차노, 알바 푸켄스, 트라사코)와 칭케 밀리아 고원(카스텔 디 상그로와 알페데나)을 목동들의 오래된 양떼 길을 따라 여행했다.
리어는 시렌테 산이 있는 알베의 중세 마을을 스케치하고, 피콜로미니 성이 후치노 호수의 광활한 평야를 내려다보는 첼라노의 중세 마을을 묘사했다. 카스텔 디 상그로에서는 리어가 산의 겨울 정적과 아름다운 바실리카를 묘사했다.
3. 2. 문학
1846년, 리어는 세 번의 판을 거치며 익살시 형식과 유머 문학 장르의 대중화에 기여한 익살시 모음집인 『넌센스의 책』을 출판했다. 1871년에는 그의 후원자였던 에드워드 스탠리, 더비 13세 백작의 자녀들을 위해 작곡한 넌센스송 "올빼미와 고양이"를 포함한 『넌센스 노래, 이야기, 식물학 및 알파벳』을 출판했다. 그 후에도 많은 작품들이 뒤따랐다.리어의 넌센스 책들은 그의 생전에 상당한 인기를 얻었지만, "에드워드 리어"는 단순한 필명일 뿐이며, 실제 저자는 리어가 작품을 헌정했던 그의 후원자인 더비 백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두 사람 모두 에드워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리어"(Lear)가 "백작"(Earl)의 아나그램이라는 점을 증거로 제시했다.[25]
리어의 넌센스 작품들은 언어적 발명의 능숙함과 실제 및 허구의 단어 소리에 대한 시인의 즐거움으로 구별된다. 박제된 코뿔소는 "투명한 문긁개"가 된다. "푸른 보스-워스"는 "수직적, 첨탑형, 원형, 사각형, 원형의 부드러운 진흙 깊이"로 뛰어든다. 그의 주인공들은 콴글-완글, 포블, 점블리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언어적 발명 중 하나인 "런시블 스푼"이라는 구절은 "올빼미와 고양이"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며, 현재 많은 영어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신조어로 유명하지만, 리어는 독자의 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 다른 기법들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게는 차갑다"[27]는 마지막 행이 극적으로 단축될 때까지 소네트 전통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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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익살시는 항상 다섯 줄로 조판된다. 그러나 리어의 익살시는 다양한 형식으로 출판되었는데, 리어가 원고를 그림 아래에 공간이 있는 만큼 여러 줄로 썼던 것 같다. 처음 세 번의 판에서는 대부분 각각 두 줄, 다섯 줄, 세 줄로 조판되었다. 한 판의 표지[28]에는 두 줄로 조판된 전체 익살시가 실려 있다.
리어의 익살시에서는 첫 번째 줄과 마지막 줄이 운율을 이루기보다는 보통 같은 단어로 끝난다. 대부분 진정으로 넌센스적이며 어떤 핵심이나 요점도 없다. 그것은 현재 이 운문 형식과 관련된 저속함이 전혀 없다. 전형적인 주제적 요소는 무관심하고 비판적인 "그들"의 존재이다.
리어가 시로 쓴 자기 묘사인 『리어 씨를 아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가』는 그의 죽음을 언급하는 연으로 끝맺는다.
리어의 『넌센스의 책』에 실린 5편의 익살시(1946년 카를로 이조의 이탈리아어 번역본)는 1952년 고프레도 페트라시에 의해 무반주 합창곡으로 편곡되었다.
리어의 문학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4. 평가 및 영향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 허버트 리드 등은 에드워드 리어의 시를 높이 평가했다. 조지 오웰은 리어의 그림이 제임스 서버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했다.[39]
리어는 “런시블(Runcible)”이라는 의미 없는 신조어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37] 이 단어는 이후 여러 작가들이 형용사, 캐릭터 이름, 지명 등으로 사용했다.
4. 1. 중도진보적 관점에서의 평가
에드워드 리어는 넌센스 문학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과 생애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중도진보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작품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리어의 넌센스 문학은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대한 유쾌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발하고 엉뚱한 인물들과 사건들은 획일화된 사고방식과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풍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회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중도진보적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리어의 작품은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의 넌센스 시와 그림들은 어린이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하는 동시에,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이는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중도진보적 관점과도 부합한다.
그러나 리어의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그의 작품이 사회적 불평등이나 정치적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현실 도피적인 성격을 띤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일부 표현들이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부적절하거나 차별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에드워드 리어는 넌센스 문학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통해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고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비판적인 시각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5. 대중문화 속 에드워드 리어
에드워드 리어의 작품은 다양한 대중 매체에서 언급되거나 사용되고 있다.
- 그의 작품은 에드워드 리어 웹사이트([https://www.nonsenselit.org/])에서 찾아볼 수 있다.
- Standard Ebooks([https://standardebooks.org/ebooks/edward-lear/nonsense-books])에서 "Nonsense Books"를,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와 인터넷 아카이브(리어의 ''Nonsense Songs, Stories, Botany, and Alphabets'' 낭독)에서 그의 작품들을 찾을 수 있다.
- 리브리복스에서 오디오북 형태로 그의 작품을 들을 수 있다.
- 벤 코트니의 웹사이트([http://www.bencourtney.com/ebooks/lear/])에서 "Edward Lear's books of nonsense" 온라인 백과사전을 볼 수 있다.
- 안드로이드 앱([https://web.archive.org/web/20201021222005/https://www.appbrain.com/app/com.staircase3.limericksfree])으로 에드워드 리어의 리머릭(limerick)을 즐길 수 있다.
- 존 킬패트릭의 웹사이트([http://johnkilpatrick.co.uk/music/JAK/#lear])에서 리어의 시 "The Jumblies"와 "The Dong with the Luminous Nose" 등에 붙인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 Raffaele Gaetano의 웹사이트([https://www.raffaelegaetano.it/category/libri/])에서 칼라브리아(남부 이탈리아)에서의 에드워드 리어 관련 작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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