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오 에두아르도 마세라
1. 개요
에밀리오 에두아르도 마세라는 아르헨티나의 해군 제독으로, 1976년부터 1978년까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올란도 라몬 아고스티와 함께 군사 정권에 참여하여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축출하고 국가 재조직 과정 동안 아르헨티나를 통치했다. 그는 1946년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해군 내 다양한 직책을 거쳤으며, 1973년 해군 함대 사령관, 1973년 해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군사 정권 참여 후 인권 침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사면되었고, 201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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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25년 10월 19일 |
|---|---|
| 출생지 | 파라나, 엔트레리오스 주, 아르헨티나 |
| 사망일 | 2010년 11월 8일 |
| 사망지 |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
| 배우자 | 델리아 비에이라 |
| 자녀 | 5명 |
| 서명 | Firma de Emilio Massera.svg |
| 소속 | 아르헨티나 |
|---|---|
| 군종 | 아르헨티나 해군 |
| 복무 기간 | 1946년 – 1978년 |
| 계급 | 해군 제독 (1991년 이전 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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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군인 -
알레한드로 아구스틴 라누세
아르헨티나의 군인이자 정치인인 알레한드로 아구스틴 라누세는 1971년부터 1973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하며 중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 게릴라 활동 증가, 정치적 불안, 트레레우 학살 등의 어려움 속에서 1973년 민정 이양을 이루어냈다. -
아르헨티나의 군인 -
로베르토 에두아르도 비올라
로베르토 에두아르도 비올라는 아르헨티나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후임 대통령이었으나 쿠데타로 실각했으며, 재임 중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협력을 증진시켰지만 군부 내 갈등과 경제 정책 실패를 겪었고, 민주화 후 인권 침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사면되었다. -
1935년 출생 -
이회창
이회창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 판사, 최연소 대법관, 국회의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세 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자유선진당을 창당하여 활동하며 강경한 보수주의적 정치 성향으로 알려졌다. -
1935년 출생 -
김석휘
김석휘는 1935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학교법인 홍익학원 이사로 재직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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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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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생애
에밀리오 마세라는 1925년 10월 19일 스위스 이민자의 손자로, 파울라 파둘라와 에밀리오 마세라의 아들로 파라나에서 태어났다. 1942년 아르헨티나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46년 해군 소위로 임관, 해군에서 훈련용 범선 ARA 리베르타드의 지휘와 1973년 해군 함대 사령관 직을 포함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1973년 12월 6일, 아르헨티나 해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1974년 8월 23일에는 정식 제독으로 승진했다. 1974년 6월 15일, 육군 및 공군 사령관들과 함께 당시 부통령 이사벨 페론을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동행하여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만났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올란도 라몬 아고스티와 함께 군사 정권에 참여하여 이사벨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축출하고 국가 재조직 과정 동안 아르헨티나를 사실상 통치했다. 1978년 9월, 해군 총사령관직과 군사 정권에서 사임했으며, 1981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여행했다.
1983년 독재 정권 종식 후, 군사재판에서 인권 침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군 계급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1990년 12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 1998년까지 자유로웠으나, 재임 기간 동안 미성년자 유괴 및 신분 은폐, 고문, 처형 명령, 불법 구금 시설 수감, 죄수 익사 등 여러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2004년 뇌출혈과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졸중을 앓았고, 2005년 3월 17일 정신 이상으로 법적 책임을 면제받아 사건은 중단되었다. 2010년 11월 8일 부에노스아이레스 해군 병원에서 출혈성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은 에스크라체를 피하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되었으며, 정부나 군의 어떤 대표도 없이 10명만 참석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에밀리오 마세라는 1925년 10월 19일 스위스 이민자의 손자이자, 파울라 파둘라와 에밀리오 마세라의 아들로 파라나에서 태어났다. 1942년 아르헨티나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46년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1955년 6월, 호위함 대위이자 해군 장관 보좌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5월 광장 폭탄 테러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955년 자유 혁명 이후, 마세라는 해군 정보국에 들어갔다.
그는 해군에서 훈련용 범선 ARA 리베르타드의 지휘, 1973년 해군 함대 사령관 직을 포함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1973년 12월 6일, 마세라는 페론 대통령과 안헬 F. 로블레도 장관이 서명한 법령 552호에 따라 아르헨티나 해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1974년 8월 23일에는 마리아 에스텔라 마르티네스 데 페론 대통령과 호세 로페스 레가 장관이 서명한 법령 612호에 따라 정식 제독으로 승진했다. 1974년 6월 15일, 그는 육군 및 공군 사령관들과 함께 당시 부통령 이사벨 페론을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동행하여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만났다.
2.2. 군사 정권 참여와 '더러운 전쟁'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 당시 가톨릭 교회는 쿠데타를 묵인했으며, 에밀리오 에두아르도 마세라는 당시 교황의 외교사절인 피오 라기 추기경과 정기적으로 만나 테니스를 쳤다고 알려져 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마세라 제독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올란도 라몬 아고스티와 함께 군사 정권에 참여하여 이사벨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축출하고 국가 재조직 과정 동안 아르헨티나를 사실상 통치했다. 1978년 9월, 마세라는 해군 총사령관직과 군사 정권에서의 자리를 사임했다. 1981년 그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여행했다.
그는 P2의 수장인 리치오 젤리에게 외교 여권을 발급한 것에 대해, 젤리가 "우리 [를] 반 정부 전복 투쟁과 해외 아르헨티나 이미지 관리에 지원했다"라고 설명했다.
2.3. 군사 정권 이후
1976년부터 1978년까지, 마세라 제독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및 올란도 라몬 아고스티와 함께 군사 정권에 참여하여 아르헨티나 대통령 이사벨 페론을 축출하고 국가 재조직 과정 동안 아르헨티나를 사실상 통치했다. 1978년 9월 마세라는 해군 총사령관직과 군사 정권에서의 자리를 사임했다. 1981년 그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여행했다.
1983년 독재 정권 종식 이후, 군사재판에서 인권 침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군 계급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1990년 12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 마세라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미성년자의 유괴 및 신분 은폐, 고문, 처형 명령, 불법 구금 시설 수감, 죄수 익사 등 여러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1998년까지 자유로웠다.
그는 P2의 수장인 리치오 젤리에게 외교 여권을 발급한 것에 대해, 젤리가 "우리 [를] 반 정부 전복 투쟁과 해외 아르헨티나 이미지 관리에 지원했다"라고 설명했다.
2004년 뇌출혈과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졸중을 앓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군 병원에 입원했다. 뇌졸중의 결과로 에두아르도 마세라는 2005년 3월 17일 정신 이상으로 법적 책임을 면제받았으며, 그에 대한 사건은 중단되었다.
마세라는 2010년 11월 8일 부에노스아이레스 해군 병원에서 출혈성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은 에스크라체를 피하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되었으며, 정부나 군의 어떤 대표도 없이 10명만 참석했다.
3. 프로파간다 두에(P2)와의 관계
에밀리오 에두아르도 마세라는 P2 회원이며, 리치오 젤리에게 외교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젤리는 "우리 [를] 반정부 전복 투쟁과 해외 아르헨티나 이미지 관리에 지원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