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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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합호 사건은 2008년 6월 10일, 대만 유어선 연합호가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고시키와 충돌하여 침몰한 사건이다. 일본 측은 연합호가 영해를 침범하여 도주하다 충돌했다고 주장했지만, 연합호 측은 자동 조종 상태였으며 도주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사건 이후 일본은 쌍방의 부주의로 인한 해난 사고로 간주했으며, 대만 내에서는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으나, 이후 마잉주 총통은 실용주의적 접근을 보였다. 이 사건은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각국의 입장 변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동북아시아 지역 안보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2008년 6월 10일 심야, 대만 타이베이현을 모항으로 하는 유어선 연합호(등록번호: CT3-5816)가 16명을 태우고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으로 향하던 중,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고시키'와 충돌하여 침몰한 사건이다[1]. 당시 센카쿠 열도는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었으나, 중화민국(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영유권을 주장하며 댜오위다오 보존 운동 등이 벌어지고 있던 민감한 지역이었다.
사건 발생 이후 대만 중화민국 총통부는 6월 12일,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가 중화민국 고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 함선이 대만이 주장하는 영해 내에서 대만 어선을 침몰시키고 선장을 불법 구류했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대만 측은 선장의 조기 석방과 침몰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5][6]
2. 사건의 경위
일본 해상보안청은 연합호가 영해를 침범하여 추적했으며, 연합호가 지그재그로 도주하다가 갑자기 우회전하면서 '고시키'의 좌현 선수와 충돌, 오전 4시 38분에 침몰했다고 주장했다[1]. 그러나 연합호 측은 자동 조종 상태였으며 도주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고, 6월 12일에는 승무원이 휴대 전화로 촬영한 충돌 당시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다[2]. 이 충돌로 연합호 승무원 2명이 부상을 입었다[2].
6월 14일, 일본 이시가키 해상보안부는 연합호 선장과 '고시키' 선장 양측 모두를 업무상 과실 왕래 위험 및 업무상 과실 상해 혐의로 나하 지법 이시가키 지부에 서류 송검했다[3][4]. 이는 일본 당국이 사건 초기 양측 모두에게 과실이 있는 해난 사고로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연합호 승선원 16명 중 13명은 조사를 마친 뒤 대만 순찰선에 인계되어 귀환했고, 선장 등 3명은 추가 조사를 받은 후 나하시 나하 공항을 통해 귀환했다[1].
2. 1. 연합호와 고시키의 충돌
연합호(등록번호: CT3-5816)는 대만 타이베이현을 모항으로 하는 유어선으로, 16명이 승선하여 2008년 6월 10일 심야에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로 향하고 있었다[1]. 당시 센카쿠 열도에서는 댜오위다오 보존 운동 활동가들이 1996년경부터 중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상륙 퍼포먼스를 간헐적으로 벌이고 있었고, 때로는 중화민국이 함선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일본은 해당 해역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해상 경비 중이던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 '고시키'는 연합호가 일본 측 영해를 침범했다고 판단하고 즉시 추적을 시작했다[1]. 일본 측 주장에 따르면, 연합호는 소형 선박의 이점을 이용해 지그재그로 항해하며 도주하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때 '고시키'의 좌현 선수 부분이 연합호의 우현 선교 부근과 충돌하여 연합호는 오전 4시 38분에 침몰했다[1]. 그러나 연합호 측은 자동 조종 상태였으며 도주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고, 6월 12일에는 승무원이 휴대전화로 촬영한 충돌 당시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 충돌로 연합호 승무원 2명이 부상을 입었다[2].
6월 14일, 이시가키 해상보안부는 연합호 선장(당시 48세)을 업무상 과실 왕래 위험 혐의로, '고시키'의 선장(당시 58세)을 업무상 과실 왕래 위험 및 업무상 과실 상해 혐의로 나하 지법 이시가키 지부에 서류 송검했다[3][4]. 이를 통해 일본 측은 이 사건을 양측의 부주의로 인한 해난 사고로 규정했다. 연합호에 승선했던 16명 중 13명은 조사를 마친 뒤 대만 순찰선 '타이중'에 인계되어 귀환했으며, 선장을 포함한 나머지 3명은 일본 당국의 추가 조사를 받은 후 나하시의 나하 공항에서 항공편으로 대만에 돌아갔다[1].
2. 2. 침몰 원인에 대한 상반된 주장
일본 측의 주장에 따르면, 연합호는 해상보안청 순시선 '고시키'의 정선 명령을 무시하고 영해를 침범한 뒤[1] 소형 선박의 이점을 이용해 지그재그로 항해하며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던 중 연합호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고시키'의 좌현 선수 부분과 연합호의 우현 선교 부근이 충돌했고, 결국 2008년 6월 10일 오전 4시 38분에 침몰했다고 한다[1].
그러나 연합호 측은 이러한 일본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연합호는 자동 조종 상태로 항해 중이었으며, 도주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충돌 당시 상황을 휴대 전화로 촬영한 동영상을 6월 12일 언론에 공개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2]. 이 충돌로 연합호 승무원 2명이 부상을 입었다[2].
한편, 일본 이시가키 해상보안부는 6월 14일 연합호 선장(당시 48세)과 '고시키' 순시선 선장(당시 58세) 양측 모두를 업무상 과실 왕래 위험 및 업무상 과실 상해 혐의로 나하 지법 이시가키 지부에 서류 송검했다[3][4]. 이는 일본 당국이 양측 모두에게 과실이 있는 해난 사고로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3. 사건 이후 양국의 대응
일본 측은 이 사건을 쌍방의 부주의로 인한 해난 사고로 간주하고, 6월 14일 연합호 선장과 일본 순시선 '고시키'의 선장 모두를 업무상 과실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며 조사를 진행했다.
대만 내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어 타이베이의 공익재단법인 교류협회 (일본 대사관 격) 앞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대만 당국은 사고 원인 조사를 명분으로 해순서 소속 함선 4척을 현장에 파견하고[11] 주일 대표를 소환하는 등 강경한 외교적 조치를 취했다. 당시 행정원장이었던 류자오쉬안은 군함 파견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으나[12], 민주진보당 등 일각에서는 외교적 협상을 통한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1]
6월 16일에는 대만 민간 선박과 순시선들이 센카쿠 열도 인근 일본 영해에 진입하여 항의 활동을 벌이는 등[1] 해상에서의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13]
이러한 갈등은 6월 20일, 일본 측이 사고 발생에 대한 과실을 일부 인정하고 피해 배상을 약속하면서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14] 이후 양측은 손해 배상에 관한 합의에 이르러 사건은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3. 1. 일본 측의 대응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고시키'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주변 해역을 경비하던 중, 대만 어선 '연합호'가 영해를 침범했다고 판단하여 추적을 시작했다. 일본 측의 설명에 따르면, 연합호가 지그재그로 항해하며 도주하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고시키 순시선의 뱃머리와 충돌하여 침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연합호 측은 자동 조타 상태였으며 도주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사고 조사를 진행한 이시가키 해상보안부는 2008년 6월 14일, 연합호 선장(당시 48세)에게 업무상 과실 왕래 위험죄 혐의를, 고시키 순시선 선장(당시 58세)에게 업무상 과실 왕래 위험죄 및 업무상 과실 상해죄 혐의를 적용하여 두 선장 모두 불구속 입건했다. 이는 일본 측이 이 사건을 쌍방의 부주의로 인한 해난 사고로 간주했음을 보여준다.
사고 당시 연합호에 타고 있던 16명 중 13명은 대만 측 순찰선 '타이중'에 인계되어 대만으로 귀환했다. 선장을 포함한 나머지 3명은 일본 당국의 조사를 받은 후 나하시에 위치한 나하 공항에서 항공편으로 대만으로 돌아갔다.
3. 2. 대만 측의 반응과 대응
6월 12일, 대만의 중화민국 총통부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가 중화민국 고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의 함선이 대만이 주장하는 영해 내에서 대만 어선을 침몰시킨 데다 선장을 불법적으로 구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선장의 조기 석방과 침몰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5][6]
일본에서는 센카쿠 열도 문제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이 강경하게 나온다는 인식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대만은 "친일"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대만 당국 역시 중화인민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주장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7][8] 이 때문에 대만 내에서도 "중화 민족주의"가 부상하며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9][10] 타이베이에 위치한 일본의 사실상 대사관인 공익재단법인 교류협회 앞에서는 침몰 사고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일본에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대만 당국은 "사고 원인을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해순서 소속 함선 "허싱", "타이중", "롄장" 등 4척을 사고 현장 해역에 파견했으며[11], 주일 대표(대사급)를 타이베이로 소환하는 등 강경한 외교적 조치를 취했다. 나아가 당시 행정원장이었던 국민당 소속 류자오쉬안은 입법원 답변 과정에서 "최종 수단으로서 군함 파견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발언하며 군사적 수단 동원 가능성까지 시사했다.[12]
한편, 민주진보당의 린청웨이 국제사무부 주임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우선 냉정하게 일본과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표 소환이나 군사 문제로 비화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주권 문제를 제쳐두고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 일본에 주권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양국 간 협의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1]
6월 16일에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서남서쪽 약 22km 해역에서 대만의 민간 선박 "취안자푸 6호"와 대만 순시선 3척이 일본 영해를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 곧이어 다른 대만 순시선 6척도 추가로 일본 영해에 진입했으며, 민간 선박에 탑승한 반일 활동가들은 연합호 침몰 사건에 대해 항의했다.[1] 이를 확인한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들은 확성기와 기적을 사용하여 이들 선박에게 영해 밖으로 나갈 것을 경고했다.[1] 대만 선박들은 댜오위다오에 접근한 뒤 일본 영해 밖으로 퇴거했다.[13]
이러한 갈등 상황은 일본 측이 사고가 우발적이었으며 해상보안청 측의 과실도 일부 인정하고, 6월 20일 피해 배상을 약속하면서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14] 또한, 연합호는 "지그재그 항행"을 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15] 이후 양측은 손해 배상금으로 3000만엔 상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하여 최종적으로 화해가 성립되었다.
4. 영유권 분쟁과 국제 관계
연합호(등록번호: CT3-5816)는 대만 타이베이현을 모항으로 하는 어선으로, 2008년 6월 10일 밤 승무원 16명을 태우고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던 일본은 자국 영해로 접근하는 외국 선박, 특히 중국 및 대만 선박의 진입을 막기 위해 경계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고시키'는 연합호가 영해를 침범했다고 판단하고 즉시 추적을 시작했다.
일본 측의 발표에 따르면, 연합호는 소형 선박의 기동성을 이용해 지그재그로 항해하며 도주를 시도하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순시선 '고시키'의 뱃머리 부분과 충돌했고, 이로 인해 6월 11일 새벽 4시 38분경 침몰했다. 하지만 연합호 측은 자동 조타 상태로 항해 중이었으며 도주 행위는 없었다고 반박했고, 6월 12일 선상에서 휴대전화로 촬영한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 충돌 과정에서 연합호 승무원 중 2명이 부상을 입었다.
6월 14일, 일본 이시가키 해상보안부는 업무상 과실 왕래 위험 및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연합호 선장(당시 48세)과 순시선 '고시키'의 선장(당시 58세)을 모두 불구속 입건했다. 이는 일본 당국이 초기에는 이 사건을 쌍방의 부주의로 인한 해상 사고로 간주했음을 보여준다. 연합호에 타고 있던 승선원 16명 중 13명은 대만 측 순시선 '타이중'에 인계되어 대만으로 귀환했으며, 선장을 포함한 나머지 3명은 일본 당국의 조사를 받은 후 나하시의 나하 공항을 통해 항공편으로 대만에 돌아갔다. 이 사건은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일본과 대만 간의 외교적 마찰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4. 1.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6월 12일, 대만의 중화민국 총통부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중화민국 고유의 영토임을 재확인하며, 일본 함선이 대만이 주장하는 영해 내에서 대만 어선을 침몰시키고 선장을 불법 구류했다며 선장의 조기 석방과 침몰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5][6]이 사건 이전까지 일본 내에서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문제를 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강경하게 제기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대만은 상대적으로 "친일" 성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연합호 사건을 계기로 대만 당국 역시 중화인민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7][8] 이로 인해 대만 내에서도 "중화 민족주의"가 부상하며 반일 감정이 고조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9][10]
대만에서는 일본의 사실상 대사관 역할을 하는 공익재단법인 교류협회 타이베이 사무소 앞에서 침몰 사고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대만 당국은 사고 원인 조사를 명분으로 해순서 소속 함선 "허싱", "타이중", "롄장" 등 4척을 사고 현장에 파견했으며[11], 주일 대표를 일시 소환하는 등 강경한 외교적 조치를 취했다.
당시 국민당 소속 류자오쉬안 행정원장은 입법원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군함 파견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발언하며 군사적 대응 가능성까지 시사했다.[12] 반면, 제1야당이었던 민주진보당의 린청웨이 국제사무부 주임은 "우선 냉정하게 일본과 협의해야 한다"며 대표 소환이나 군사 문제로 비화시키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주권 문제를 제쳐두고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 일본에 주권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양국 간 협의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1]
6월 16일에는 대만 민간 선박 "취안자푸 6호"와 대만 해순서 소속 순시선 3척이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서남서쪽 약 22km 해역에서 일본이 주장하는 영해 내로 진입했다.[1] 이후 다른 대만 순시선 6척도 추가로 영해에 진입했으며, 민간 선박에 탑승한 활동가들은 연합호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1]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은 확성기와 기적을 이용해 이들에게 영해 밖으로 나갈 것을 경고했고[1], 대만 선박들은 댜오위다오에 접근한 뒤 일본 영해 밖으로 퇴거했다.[13]
사태는 일본 측이 연합호 침몰 사고가 우발적이었으며 해상보안청 순시선 측에도 과실이 있음을 인정하고, 6월 20일 피해 배상을 약속하면서 일단락되었다.[14] 당초 일본 측이 주장했던 연합호의 "지그재그 항행"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15] 이후 양측은 손해 배상금으로 3000만엔 상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화해에 합의했다.
4. 2. 사건이 동북아시아 정세에 미친 영향
6월 12일, 대만의 중화민국 총통부는 센카쿠 열도가 중화민국 고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 함선이 (대만이 주장하는) 영해 내에서 대만 어선을 침몰시키고 선장을 불법적으로 구류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선장의 조속한 석방과 침몰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5][6]。이 사건은 당시 일본 내 일반적인 인식, 즉 대만은 비교적 "친일" 성향이 강하다는 통념에 변화를 가져왔다. 중화인민공화국과 마찬가지로 대만 당국 역시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7][8]。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만 내에서도 "중화 민족주의"가 부상하며 "반일" 감정이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9][10]。
대만 내에서는 타이베이에 위치한 일본의 사실상 대사관인 공익재단법인 교류협회 앞에서 침몰 사고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역시 일본에 항의 성명을 발표하며 사태에 개입했다. 대만 당국은 "사고 원인 조사"를 명분으로 해순서 소속 함선 "허싱", "타이중", "롄장"을 포함한 4척을 사고 현장에 급파하고[11], 주일 대표(대사급)를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 강경한 외교적 조치를 취했다.
국민당 소속의 류자오쉬안 행정원장은 입법원 답변 과정에서 입법 위원의 추궁에 응하며, 필요시 군함 파견이라는 군사적 수단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긴장감을 고조시켰다[12]。 반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진보당의 린청웨이 국제사무부 주임은 "우선 냉정하게 일본과 협의해야 한다"며, 대표 소환이나 군사적 대응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특히 영유권 문제를 내세워 중화인민공화국과 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에 강경하게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며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1]。
6월 16일에는 센카쿠 열도 서남서쪽 약 22km 해역에서 대만의 민간 선박 "취안자푸 6호"와 이를 호위하는 대만 순시선 3척이 일본이 주장하는 영해 내로 진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 이후 다른 대만 순시선 6척도 추가로 영해에 진입했으며, 민간 선박에 탑승한 활동가들은 연합호 침몰 사건에 대해 항의했다[1]。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들은 확성기와 기적을 이용해 이들에게 영해 밖으로 나갈 것을 경고했고[1], 대만 선박들은 댜오위다오(일본명 우오쓰리섬)에 접근한 뒤 회항하여 일본 영해 밖으로 이동했다[13]。
결국 일본 측이 사고 발생이 우발적이었으며 해상보안청 측에도 과실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사태는 외교적으로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6월 20일, 일본 정부는 연합호 침몰 사고 피해에 대한 배상을 약속했으며[14], 대만 측이 주장한 대로 연합호가 "지그재그 항행"을 하며 도주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받아들여졌다[15]。 최종적으로 일본 측이 손해 배상금으로 3000만엔 상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양측 간의 화해가 성립되었다.
5.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입장 차이 (가상)
이 섹션은 연합호 사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가상적인 입장 차이를 다루기 위해 마련되었으나, 현재 참고할 수 있는 원본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섹션의 내용은 가상임을 명확히 밝힌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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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魚釣島沖、海保船と台湾漁船衝突 漁船沈没、16人救助
http://www.asahi.com[...]
200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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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巡視船と接触、沈没 遊漁船乗客ら台湾へ
http://www.y-mainich[...]
200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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巡視船と遊漁船の船長を書類送検 往来危険容疑など
http://www.asahi.com[...]
200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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尖閣沖の衝突沈没、海保巡視船と台湾遊漁船の両船長を書類送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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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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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巡視船接触による台湾漁船「聯合号」の沈没に対する抗議声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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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北駐日経済文化代表処
200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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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遊漁船接触事故、台湾外交部が船長の書類送検に抗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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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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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台湾国防部長「応援要請あれば尖閣へ軍艦派遣」
http://www.yomiuri.c[...]
200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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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尖閣は台湾の領土」馬総統が日本との協議要求
http://www.yomiuri.c[...]
200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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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台頭する「仇日」思想 尖閣で強硬姿勢の台湾・馬政権
http://sankei.jp.msn[...]
200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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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尖閣沖衝突・沈没に抗議、台湾の反日活動家が事故現場へ出港
http://www.yomiuri.c[...]
200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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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台湾側海保が領海侵犯 台湾遊漁船沈没事故後「現場確認」として4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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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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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台湾、日本へ態度硬化 尖閣沖衝突巡り軍艦派遣も検討か
http://www.asah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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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台湾船10隻が日本領海に侵入、尖閣沖事故に抗議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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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巡視船にも過失あり遺憾」海保本部長が陳謝 尖閣沖衝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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尖閣沖巡視船、台湾遊漁船の接触・沈没「ジグザグ航行」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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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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